원전 수소제거장치 “규격 미달”…한수원 보고서 입수

입력 2021.02.01 (23:41) 수정 2021.02.01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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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국내 원자력발전소의 중요 안전장치의 성능에 문제가 있고, 원전 사고시 오히려 이 장치가 폭발 위험성을 키울 수 있다는 내용의 한수원 내부 보고서를 KBS가 단독 입수했습니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가 접수됐는데, 한수원이 보고서 내용을 축소·은폐하려 했다는 정황도 포함됐습니다.

사회부 이재희 기자와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이 기자, 문제의 장비 원전 안전장치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 설비인가요?

[기자]

네, 피동촉매형 수소제거장치 영어로 '파'라고 부르는데요.

말 그대로 원전 내 수소를 제거하는 장치입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뒤 국내에 대대적으로 도입됐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피해가 커진 가장 큰 원인은 '수소 폭발'이었습니다.

격납 건물 안에 가연성 기체인 수소가 가득 차면서 결국 폭발로 이어진거죠.

당시 후쿠시마 원전엔 환기 장치 등 수소 제거 설비가 있었지만 전원이 끊어져 제 기능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PAR는 전원 없이도 작동합니다.

수소와 산소를 결합시켜 수증기로 만드는 촉매가 장치 안에 들어있거든요.

한국수력원자력은 이 장치 덕분에 우리나라 원전에선 후쿠시마처럼 '수소 폭발'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앵커]

매우 좋은 장비 같은데 어떤 문제가 확인된 겁니까?

[기자]

네, 저희가 2018년 9월 한수원이 독일의 한 시험 업체에서 진행한 수소제거장치 실험에 대한 한수원 내부 보고서를 입수했습니다.

이 장치가 원래 섭씨 60도, 1.5기압 환경에서 초당 0.2g의 수소를 제거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뜻밖에도 장치 수소제거율이 이 예상치의 30~60%에 그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KBS가 입수한 보고서는 이를 바탕으로 장치 성능이 구매 규격에도 못 미친다고 판단했습니다.

[앵커]

폭발 위험이 있는 수소를 원전 안에서 제대로 제거할 수 없다는 얘기로 들리네요.

[기자]

네, 그리고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실험 중에는 초기 온도와 압력 등을 다양하게 바꿔가며, 실제 원전 중대사고 상황과 비슷한 환경을 조성하기도 했는데요.

이때 수소제거장치의 촉매가 떨어져 가루로 흩날리는 현상이 관찰된 겁니다.

게다가 이 가루가 수소와 반응하면서 1분 만에 고온의 불꽃으로 변했습니다.

원전 중대사고 상황에서 고온의 불꽃이 원전 내부에 떠돌아다닐 수 있는 셈이죠.

한수원 보고서도 해당 현상이 넓은 범위의 수소 연소를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원자로 내부 압력을 더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격납건물 내에 가연성 물질이 많고, 수소 폭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앵커]

어쨌든 해당 문제가 문서 형태로 작성돼 한수원 내부 보고까지 된거잖아요?

한수원이 잘 대처했을 것 같은데요.

[기자]

그러면 저희가 보도를 안 했을텐데, 이 실험 결과가 나온 지 2년 정도 지난 지난해 7월, 한수원은 해당 실험 내용을 포함한 원전 안전 관련 최종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말씀드린 수소제거장치의 문제점은 축소되거나 아예 빠졌습니다.

저희가 최종보고서도 입수했는데, 내용을 보면 수소제거장치 촉매의 수소제거 효율이 매우 높다고 언급하고 있고요.

구매 규격에조차 미달했던 실험 결과에 대해선 '일부 환경'에서 일어난 문제라고 적었습니다.

불붙은 촉매 가루가 흩날린 현상은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앵커]

보고서까지 작성돼 지적이 나온 문제가, 연구 최종 결과에는 반영되지 않은 건데, 한수원 측은 뭐라고 하나요?

[기자]

독일 실험이 구매 규격이나 실제 운전 조건보다 훨씬 가혹한 환경에서 진행돼 생긴 현상이라는 입장입니다.

실험 공간이 매우 협소했고, 실험 온도나 압력, 수소 농도도 실제 운전 상황보다 크게 웃돌았다는 겁니다.

또 해당 실험이 연구 개발용도였을 뿐 인허가에 해당하는 실험이 아니어서 장비 교체나 수리, 개선 등 조치에 나설 사안도 아니라고 한수원은 강조했습니다.

다만 촉매 가루가 불티로 날리는 현상은 '이상 현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했는데요.

이 문제를 관련 부서와 장치 제조사에 공유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후속 연구나 설계 변경 등의 한수원의 추가 조치는 없었습니다.

[앵커]

한수원의 해명 설득력이 있는 얘깁니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기자]

좀 전에 한수원이 독일 실험이 매우 협소한 구조물에서 이뤄졌다고 KBS측에 해명했다고 말씀드렸죠.

한수원이 해당 실험 내용을 총정리한 동영상 잠시 보여드리겠습니다.

[한수원 홍보 동영상 : "국내 원전의 특성을 반영한 대형 실험시설에서 수소 거동에 대한 실증 실험을 수행함으로써, 수소 위협에 대한 실측 데이터를 수집하고 원자로 건물의 안전성 평가를 위한 실증 자료를 확보하고자 했습니다."]

영상에서는 독일 시설이 최적의 실험 환경을 재현했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연구 개발용 실험일 뿐 실제 안전성 입증과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던 한수원이, 정작 이 동영상에서는 원전 안전성이 입증됐다고 하는 등 KBS에 내놓았던 해명과 앞뒤가 안 맞는 얘기를 하는거죠.

또 실험 조건이 매우 가혹했다는 한수원 측 주장도, 전문가들은 수소제거장치가 제 역할을 해야 할 중대사고 시 원전 내 환경은 실험 조건보다 더 가혹하다면서, 해외에서도 매우 심각하고 가혹한 환경을 가정하고 실험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내일 KBS는 한수원이 왜 실험 내용을 최종보고서에서 축소했는지, 그 의문을 둘러싼 취재 내용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촬영기자:조용호/영상편집:김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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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국내 원자력발전소의 중요 안전장치의 성능에 문제가 있고, 원전 사고시 오히려 이 장치가 폭발 위험성을 키울 수 있다는 내용의 한수원 내부 보고서를 KBS가 단독 입수했습니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가 접수됐는데, 한수원이 보고서 내용을 축소·은폐하려 했다는 정황도 포함됐습니다.

사회부 이재희 기자와 자세한 내용 알아보겠습니다.

이 기자, 문제의 장비 원전 안전장치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 설비인가요?

[기자]

네, 피동촉매형 수소제거장치 영어로 '파'라고 부르는데요.

말 그대로 원전 내 수소를 제거하는 장치입니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뒤 국내에 대대적으로 도입됐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피해가 커진 가장 큰 원인은 '수소 폭발'이었습니다.

격납 건물 안에 가연성 기체인 수소가 가득 차면서 결국 폭발로 이어진거죠.

당시 후쿠시마 원전엔 환기 장치 등 수소 제거 설비가 있었지만 전원이 끊어져 제 기능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PAR는 전원 없이도 작동합니다.

수소와 산소를 결합시켜 수증기로 만드는 촉매가 장치 안에 들어있거든요.

한국수력원자력은 이 장치 덕분에 우리나라 원전에선 후쿠시마처럼 '수소 폭발'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앵커]

매우 좋은 장비 같은데 어떤 문제가 확인된 겁니까?

[기자]

네, 저희가 2018년 9월 한수원이 독일의 한 시험 업체에서 진행한 수소제거장치 실험에 대한 한수원 내부 보고서를 입수했습니다.

이 장치가 원래 섭씨 60도, 1.5기압 환경에서 초당 0.2g의 수소를 제거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뜻밖에도 장치 수소제거율이 이 예상치의 30~60%에 그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KBS가 입수한 보고서는 이를 바탕으로 장치 성능이 구매 규격에도 못 미친다고 판단했습니다.

[앵커]

폭발 위험이 있는 수소를 원전 안에서 제대로 제거할 수 없다는 얘기로 들리네요.

[기자]

네, 그리고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실험 중에는 초기 온도와 압력 등을 다양하게 바꿔가며, 실제 원전 중대사고 상황과 비슷한 환경을 조성하기도 했는데요.

이때 수소제거장치의 촉매가 떨어져 가루로 흩날리는 현상이 관찰된 겁니다.

게다가 이 가루가 수소와 반응하면서 1분 만에 고온의 불꽃으로 변했습니다.

원전 중대사고 상황에서 고온의 불꽃이 원전 내부에 떠돌아다닐 수 있는 셈이죠.

한수원 보고서도 해당 현상이 넓은 범위의 수소 연소를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원자로 내부 압력을 더 높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격납건물 내에 가연성 물질이 많고, 수소 폭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앵커]

어쨌든 해당 문제가 문서 형태로 작성돼 한수원 내부 보고까지 된거잖아요?

한수원이 잘 대처했을 것 같은데요.

[기자]

그러면 저희가 보도를 안 했을텐데, 이 실험 결과가 나온 지 2년 정도 지난 지난해 7월, 한수원은 해당 실험 내용을 포함한 원전 안전 관련 최종 보고서를 내놨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말씀드린 수소제거장치의 문제점은 축소되거나 아예 빠졌습니다.

저희가 최종보고서도 입수했는데, 내용을 보면 수소제거장치 촉매의 수소제거 효율이 매우 높다고 언급하고 있고요.

구매 규격에조차 미달했던 실험 결과에 대해선 '일부 환경'에서 일어난 문제라고 적었습니다.

불붙은 촉매 가루가 흩날린 현상은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앵커]

보고서까지 작성돼 지적이 나온 문제가, 연구 최종 결과에는 반영되지 않은 건데, 한수원 측은 뭐라고 하나요?

[기자]

독일 실험이 구매 규격이나 실제 운전 조건보다 훨씬 가혹한 환경에서 진행돼 생긴 현상이라는 입장입니다.

실험 공간이 매우 협소했고, 실험 온도나 압력, 수소 농도도 실제 운전 상황보다 크게 웃돌았다는 겁니다.

또 해당 실험이 연구 개발용도였을 뿐 인허가에 해당하는 실험이 아니어서 장비 교체나 수리, 개선 등 조치에 나설 사안도 아니라고 한수원은 강조했습니다.

다만 촉매 가루가 불티로 날리는 현상은 '이상 현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했는데요.

이 문제를 관련 부서와 장치 제조사에 공유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후속 연구나 설계 변경 등의 한수원의 추가 조치는 없었습니다.

[앵커]

한수원의 해명 설득력이 있는 얘깁니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기자]

좀 전에 한수원이 독일 실험이 매우 협소한 구조물에서 이뤄졌다고 KBS측에 해명했다고 말씀드렸죠.

한수원이 해당 실험 내용을 총정리한 동영상 잠시 보여드리겠습니다.

[한수원 홍보 동영상 : "국내 원전의 특성을 반영한 대형 실험시설에서 수소 거동에 대한 실증 실험을 수행함으로써, 수소 위협에 대한 실측 데이터를 수집하고 원자로 건물의 안전성 평가를 위한 실증 자료를 확보하고자 했습니다."]

영상에서는 독일 시설이 최적의 실험 환경을 재현했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연구 개발용 실험일 뿐 실제 안전성 입증과는 무관하다고 강조했던 한수원이, 정작 이 동영상에서는 원전 안전성이 입증됐다고 하는 등 KBS에 내놓았던 해명과 앞뒤가 안 맞는 얘기를 하는거죠.

또 실험 조건이 매우 가혹했다는 한수원 측 주장도, 전문가들은 수소제거장치가 제 역할을 해야 할 중대사고 시 원전 내 환경은 실험 조건보다 더 가혹하다면서, 해외에서도 매우 심각하고 가혹한 환경을 가정하고 실험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내일 KBS는 한수원이 왜 실험 내용을 최종보고서에서 축소했는지, 그 의문을 둘러싼 취재 내용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촬영기자:조용호/영상편집:김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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