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北 ‘1호 가수’ 전향진 씨…트로트를 향한 도전
입력 2021.02.20 (08:27)
수정 2021.02.27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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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에서 노래를 부른 가수에게 ‘1호 가수’라는 별칭이 주어지는데요.
북한에선 1호 가수, 한국에 와선 초보 가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탈북 여성이 있다고 합니다.
최효은 리포터가 만나보셨죠?
[답변]
네. 요즘 트로트의 매력에 푹 빠진 탈북 가수 전향진 씨를 만나고 왔는데요.
북한에선 성악을 전공했다고 합니다.
[앵커]
북한 음악과 남한의 트로트는 창법이 좀 다르지 않나요?
[답변]
네. 그래서 어려움도 많았다고 하는데요.
최근엔 트로트 앨범까지 내면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북한 1호 가수 전향진 씨의 트로트 도전기! 지금부터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구슬픈 노랫소리를 따라 도착한 곳은 서울시 마포구의 한 녹음실.
절절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전향진 씨를 만날 수 있었는데요.
향진 씨는 2014년 압록강을 넘은 탈북민입니다.
북한에선 16살 때부터 무대에 오른 베테랑 가수라고 하는데요.
하지만 김동찬 작곡가 앞에서는 초보 가수나 다름없습니다.
[김동찬/작곡가 : "휴전선 만들지 말라고 휴전선 그냥 빨랫줄처럼 쫙쫙 가져가야지 질질 끌지 말라고. 다시 해볼게."]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선생님이 “야 그건 아냐” 그럴 때면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하지 당황을 해요."]
향진 씨는 북한 청진예술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뒤 예술단에서 활동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앞에서 독창하고 ‘1호 가수’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그 당시에는 제가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했어요. 북한에는 김부자를 하나님처럼 찬양하고 칭송하고 이러는데 그런 사람들한테 앙코르 받고 잘한다고 치하해 주고 말씀이란 걸 받으면 눈물이 자연히 나요."]
북한에서 남부럽지 않은 가수 생활을 했던 전향진 씨.
하지만 체제선전을 위한 노래가 아니라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꿈을 찾아 한국에 왔지만 마주한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습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북한에 대한 편견 때문에 북한 창법 북한 목소리 김부자 찬양하는 목소리 이러는 건데 북한 목소리 듣기 싫다고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오랜 고민 끝에 참가한 전국노래자랑..
["함경북도 청진에서 달려온 처인구의 전향진입니다. (오늘의 최우수상입니다.) "]
모든 걸 쏟아부은 무대였습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예선에는) 앞에 심사하시는 분들만 있으니까 이분들 앞에서 노래 부르니까 너무 떨렸는데 손뼉 치고 이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무대 공포증이 싹 없어지는 거예요."]
한국 가요에 어울리는 창법으로 바꾸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는데요.
1년 전 만난 김동찬 작곡가가 향진 씨만의 개성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김동찬/작곡가 : "통일 창법이라는 거죠. 북한의 주체 창법과 우리 대중가요, 성악의 창법을 섞어서 새로운 하나의 창법을 만들어 낸 거죠."]
["관심 좀 가져주세요. 신경 좀 써주세요. 당신 사랑받고 싶은 여자예요."]
전향진 씨는 자신의 꿈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데요. 가족들의 응원과 지원이 없었더라면 가수의 꿈을 이루지 못했을 거라고 말합니다.
북한 1호 가수로서 안정된 직업을 뿌리치고 탈북을 한 향진 씨... 아들에게 자유가 없는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강가에서 울면 어떻게 할까 이 생각이 먼저 나는 거예요. 잡히면 안 되는데 울면 무조건 총구가 겨눠지는데 목숨을 담보로 하는데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게 아들한테 수면제를 먹이려고 생각했어요."]
아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온갖 위험을 견뎌내며 무사히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다행스럽게 아들은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해 나갔는데요.
그 뒤엔 한국에 와서 만난 남편 김대환 씨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김대환/전향진 씨 남편 : "저 사람이랑 같이 잘 살려면 내가 아들을 정말 가슴으로 잘 안아야겠단 생각을 했죠.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고 생활의 일부가 내 삶의 일부가 됐어요."]
향진 씨 부부는 우연히 송년회 자리에서 만나 사랑을 키웠고 3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는데요. 하지만 단란한 가정을 꾸리기까지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습니다
[김대환/전향진 씨 남편 : "주변에서 그러면 안 된다는 사람도 있고 나쁜 놈이야 하는 사람도 있고 거꾸로 그러다가 나중에 후회한단 사람도 있고 지금도 그런 기우는 많이 들어요. 주변에서."]
코로나 19로 무대가 줄어들자 김대환 씨는 아내를 위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방송 시설까지 마련해줬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는 없지만, 방송을 시청하는 팬들을 위해 신명 나게 노래를 부르는데요.
부부의 듀엣곡을 부르기 위해 김대환 씨가 카메라 앞에 섭니다.
["우리 신랑 운다."]
["아들 아빠가 울었어, 아빠가 왜 울었어. (몰라 슬퍼서?)"]
향진 씨는 낯선 땅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 가족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입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가족이란 게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도 되고 내가 아파서 넘어지면 일으켜 줘야 할 사람인 거 같기도 하고 젤 든든하면서 행복을 주는 거 같아요."]
북한 1호 가수에서 트로트 가수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전향진 씨...남북이 함께 주최하는 무대에서 평화의 노래를 부르는 게 가수로서 향진 씨의 마지막 꿈입니다.
북한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에서 노래를 부른 가수에게 ‘1호 가수’라는 별칭이 주어지는데요.
북한에선 1호 가수, 한국에 와선 초보 가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탈북 여성이 있다고 합니다.
최효은 리포터가 만나보셨죠?
[답변]
네. 요즘 트로트의 매력에 푹 빠진 탈북 가수 전향진 씨를 만나고 왔는데요.
북한에선 성악을 전공했다고 합니다.
[앵커]
북한 음악과 남한의 트로트는 창법이 좀 다르지 않나요?
[답변]
네. 그래서 어려움도 많았다고 하는데요.
최근엔 트로트 앨범까지 내면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북한 1호 가수 전향진 씨의 트로트 도전기! 지금부터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구슬픈 노랫소리를 따라 도착한 곳은 서울시 마포구의 한 녹음실.
절절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전향진 씨를 만날 수 있었는데요.
향진 씨는 2014년 압록강을 넘은 탈북민입니다.
북한에선 16살 때부터 무대에 오른 베테랑 가수라고 하는데요.
하지만 김동찬 작곡가 앞에서는 초보 가수나 다름없습니다.
[김동찬/작곡가 : "휴전선 만들지 말라고 휴전선 그냥 빨랫줄처럼 쫙쫙 가져가야지 질질 끌지 말라고. 다시 해볼게."]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선생님이 “야 그건 아냐” 그럴 때면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하지 당황을 해요."]
향진 씨는 북한 청진예술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뒤 예술단에서 활동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앞에서 독창하고 ‘1호 가수’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그 당시에는 제가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했어요. 북한에는 김부자를 하나님처럼 찬양하고 칭송하고 이러는데 그런 사람들한테 앙코르 받고 잘한다고 치하해 주고 말씀이란 걸 받으면 눈물이 자연히 나요."]
북한에서 남부럽지 않은 가수 생활을 했던 전향진 씨.
하지만 체제선전을 위한 노래가 아니라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꿈을 찾아 한국에 왔지만 마주한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습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북한에 대한 편견 때문에 북한 창법 북한 목소리 김부자 찬양하는 목소리 이러는 건데 북한 목소리 듣기 싫다고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오랜 고민 끝에 참가한 전국노래자랑..
["함경북도 청진에서 달려온 처인구의 전향진입니다. (오늘의 최우수상입니다.) "]
모든 걸 쏟아부은 무대였습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예선에는) 앞에 심사하시는 분들만 있으니까 이분들 앞에서 노래 부르니까 너무 떨렸는데 손뼉 치고 이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무대 공포증이 싹 없어지는 거예요."]
한국 가요에 어울리는 창법으로 바꾸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는데요.
1년 전 만난 김동찬 작곡가가 향진 씨만의 개성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김동찬/작곡가 : "통일 창법이라는 거죠. 북한의 주체 창법과 우리 대중가요, 성악의 창법을 섞어서 새로운 하나의 창법을 만들어 낸 거죠."]
["관심 좀 가져주세요. 신경 좀 써주세요. 당신 사랑받고 싶은 여자예요."]
전향진 씨는 자신의 꿈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데요. 가족들의 응원과 지원이 없었더라면 가수의 꿈을 이루지 못했을 거라고 말합니다.
북한 1호 가수로서 안정된 직업을 뿌리치고 탈북을 한 향진 씨... 아들에게 자유가 없는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강가에서 울면 어떻게 할까 이 생각이 먼저 나는 거예요. 잡히면 안 되는데 울면 무조건 총구가 겨눠지는데 목숨을 담보로 하는데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게 아들한테 수면제를 먹이려고 생각했어요."]
아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온갖 위험을 견뎌내며 무사히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다행스럽게 아들은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해 나갔는데요.
그 뒤엔 한국에 와서 만난 남편 김대환 씨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김대환/전향진 씨 남편 : "저 사람이랑 같이 잘 살려면 내가 아들을 정말 가슴으로 잘 안아야겠단 생각을 했죠.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고 생활의 일부가 내 삶의 일부가 됐어요."]
향진 씨 부부는 우연히 송년회 자리에서 만나 사랑을 키웠고 3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는데요. 하지만 단란한 가정을 꾸리기까지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습니다
[김대환/전향진 씨 남편 : "주변에서 그러면 안 된다는 사람도 있고 나쁜 놈이야 하는 사람도 있고 거꾸로 그러다가 나중에 후회한단 사람도 있고 지금도 그런 기우는 많이 들어요. 주변에서."]
코로나 19로 무대가 줄어들자 김대환 씨는 아내를 위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방송 시설까지 마련해줬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는 없지만, 방송을 시청하는 팬들을 위해 신명 나게 노래를 부르는데요.
부부의 듀엣곡을 부르기 위해 김대환 씨가 카메라 앞에 섭니다.
["우리 신랑 운다."]
["아들 아빠가 울었어, 아빠가 왜 울었어. (몰라 슬퍼서?)"]
향진 씨는 낯선 땅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 가족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입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가족이란 게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도 되고 내가 아파서 넘어지면 일으켜 줘야 할 사람인 거 같기도 하고 젤 든든하면서 행복을 주는 거 같아요."]
북한 1호 가수에서 트로트 가수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전향진 씨...남북이 함께 주최하는 무대에서 평화의 노래를 부르는 게 가수로서 향진 씨의 마지막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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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1-02-20 08:27:10
- 수정2021-02-27 08:14:54
[앵커]
북한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에서 노래를 부른 가수에게 ‘1호 가수’라는 별칭이 주어지는데요.
북한에선 1호 가수, 한국에 와선 초보 가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탈북 여성이 있다고 합니다.
최효은 리포터가 만나보셨죠?
[답변]
네. 요즘 트로트의 매력에 푹 빠진 탈북 가수 전향진 씨를 만나고 왔는데요.
북한에선 성악을 전공했다고 합니다.
[앵커]
북한 음악과 남한의 트로트는 창법이 좀 다르지 않나요?
[답변]
네. 그래서 어려움도 많았다고 하는데요.
최근엔 트로트 앨범까지 내면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북한 1호 가수 전향진 씨의 트로트 도전기! 지금부터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구슬픈 노랫소리를 따라 도착한 곳은 서울시 마포구의 한 녹음실.
절절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전향진 씨를 만날 수 있었는데요.
향진 씨는 2014년 압록강을 넘은 탈북민입니다.
북한에선 16살 때부터 무대에 오른 베테랑 가수라고 하는데요.
하지만 김동찬 작곡가 앞에서는 초보 가수나 다름없습니다.
[김동찬/작곡가 : "휴전선 만들지 말라고 휴전선 그냥 빨랫줄처럼 쫙쫙 가져가야지 질질 끌지 말라고. 다시 해볼게."]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선생님이 “야 그건 아냐” 그럴 때면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하지 당황을 해요."]
향진 씨는 북한 청진예술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뒤 예술단에서 활동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앞에서 독창하고 ‘1호 가수’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그 당시에는 제가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했어요. 북한에는 김부자를 하나님처럼 찬양하고 칭송하고 이러는데 그런 사람들한테 앙코르 받고 잘한다고 치하해 주고 말씀이란 걸 받으면 눈물이 자연히 나요."]
북한에서 남부럽지 않은 가수 생활을 했던 전향진 씨.
하지만 체제선전을 위한 노래가 아니라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꿈을 찾아 한국에 왔지만 마주한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습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북한에 대한 편견 때문에 북한 창법 북한 목소리 김부자 찬양하는 목소리 이러는 건데 북한 목소리 듣기 싫다고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오랜 고민 끝에 참가한 전국노래자랑..
["함경북도 청진에서 달려온 처인구의 전향진입니다. (오늘의 최우수상입니다.) "]
모든 걸 쏟아부은 무대였습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예선에는) 앞에 심사하시는 분들만 있으니까 이분들 앞에서 노래 부르니까 너무 떨렸는데 손뼉 치고 이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무대 공포증이 싹 없어지는 거예요."]
한국 가요에 어울리는 창법으로 바꾸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는데요.
1년 전 만난 김동찬 작곡가가 향진 씨만의 개성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김동찬/작곡가 : "통일 창법이라는 거죠. 북한의 주체 창법과 우리 대중가요, 성악의 창법을 섞어서 새로운 하나의 창법을 만들어 낸 거죠."]
["관심 좀 가져주세요. 신경 좀 써주세요. 당신 사랑받고 싶은 여자예요."]
전향진 씨는 자신의 꿈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데요. 가족들의 응원과 지원이 없었더라면 가수의 꿈을 이루지 못했을 거라고 말합니다.
북한 1호 가수로서 안정된 직업을 뿌리치고 탈북을 한 향진 씨... 아들에게 자유가 없는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강가에서 울면 어떻게 할까 이 생각이 먼저 나는 거예요. 잡히면 안 되는데 울면 무조건 총구가 겨눠지는데 목숨을 담보로 하는데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게 아들한테 수면제를 먹이려고 생각했어요."]
아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온갖 위험을 견뎌내며 무사히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다행스럽게 아들은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해 나갔는데요.
그 뒤엔 한국에 와서 만난 남편 김대환 씨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김대환/전향진 씨 남편 : "저 사람이랑 같이 잘 살려면 내가 아들을 정말 가슴으로 잘 안아야겠단 생각을 했죠.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고 생활의 일부가 내 삶의 일부가 됐어요."]
향진 씨 부부는 우연히 송년회 자리에서 만나 사랑을 키웠고 3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는데요. 하지만 단란한 가정을 꾸리기까지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습니다
[김대환/전향진 씨 남편 : "주변에서 그러면 안 된다는 사람도 있고 나쁜 놈이야 하는 사람도 있고 거꾸로 그러다가 나중에 후회한단 사람도 있고 지금도 그런 기우는 많이 들어요. 주변에서."]
코로나 19로 무대가 줄어들자 김대환 씨는 아내를 위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방송 시설까지 마련해줬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는 없지만, 방송을 시청하는 팬들을 위해 신명 나게 노래를 부르는데요.
부부의 듀엣곡을 부르기 위해 김대환 씨가 카메라 앞에 섭니다.
["우리 신랑 운다."]
["아들 아빠가 울었어, 아빠가 왜 울었어. (몰라 슬퍼서?)"]
향진 씨는 낯선 땅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 가족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입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가족이란 게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도 되고 내가 아파서 넘어지면 일으켜 줘야 할 사람인 거 같기도 하고 젤 든든하면서 행복을 주는 거 같아요."]
북한 1호 가수에서 트로트 가수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전향진 씨...남북이 함께 주최하는 무대에서 평화의 노래를 부르는 게 가수로서 향진 씨의 마지막 꿈입니다.
북한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에서 노래를 부른 가수에게 ‘1호 가수’라는 별칭이 주어지는데요.
북한에선 1호 가수, 한국에 와선 초보 가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탈북 여성이 있다고 합니다.
최효은 리포터가 만나보셨죠?
[답변]
네. 요즘 트로트의 매력에 푹 빠진 탈북 가수 전향진 씨를 만나고 왔는데요.
북한에선 성악을 전공했다고 합니다.
[앵커]
북한 음악과 남한의 트로트는 창법이 좀 다르지 않나요?
[답변]
네. 그래서 어려움도 많았다고 하는데요.
최근엔 트로트 앨범까지 내면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북한 1호 가수 전향진 씨의 트로트 도전기! 지금부터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구슬픈 노랫소리를 따라 도착한 곳은 서울시 마포구의 한 녹음실.
절절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전향진 씨를 만날 수 있었는데요.
향진 씨는 2014년 압록강을 넘은 탈북민입니다.
북한에선 16살 때부터 무대에 오른 베테랑 가수라고 하는데요.
하지만 김동찬 작곡가 앞에서는 초보 가수나 다름없습니다.
[김동찬/작곡가 : "휴전선 만들지 말라고 휴전선 그냥 빨랫줄처럼 쫙쫙 가져가야지 질질 끌지 말라고. 다시 해볼게."]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선생님이 “야 그건 아냐” 그럴 때면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하지 당황을 해요."]
향진 씨는 북한 청진예술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뒤 예술단에서 활동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앞에서 독창하고 ‘1호 가수’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그 당시에는 제가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했어요. 북한에는 김부자를 하나님처럼 찬양하고 칭송하고 이러는데 그런 사람들한테 앙코르 받고 잘한다고 치하해 주고 말씀이란 걸 받으면 눈물이 자연히 나요."]
북한에서 남부럽지 않은 가수 생활을 했던 전향진 씨.
하지만 체제선전을 위한 노래가 아니라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꿈을 찾아 한국에 왔지만 마주한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습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북한에 대한 편견 때문에 북한 창법 북한 목소리 김부자 찬양하는 목소리 이러는 건데 북한 목소리 듣기 싫다고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오랜 고민 끝에 참가한 전국노래자랑..
["함경북도 청진에서 달려온 처인구의 전향진입니다. (오늘의 최우수상입니다.) "]
모든 걸 쏟아부은 무대였습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예선에는) 앞에 심사하시는 분들만 있으니까 이분들 앞에서 노래 부르니까 너무 떨렸는데 손뼉 치고 이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무대 공포증이 싹 없어지는 거예요."]
한국 가요에 어울리는 창법으로 바꾸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는데요.
1년 전 만난 김동찬 작곡가가 향진 씨만의 개성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김동찬/작곡가 : "통일 창법이라는 거죠. 북한의 주체 창법과 우리 대중가요, 성악의 창법을 섞어서 새로운 하나의 창법을 만들어 낸 거죠."]
["관심 좀 가져주세요. 신경 좀 써주세요. 당신 사랑받고 싶은 여자예요."]
전향진 씨는 자신의 꿈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데요. 가족들의 응원과 지원이 없었더라면 가수의 꿈을 이루지 못했을 거라고 말합니다.
북한 1호 가수로서 안정된 직업을 뿌리치고 탈북을 한 향진 씨... 아들에게 자유가 없는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강가에서 울면 어떻게 할까 이 생각이 먼저 나는 거예요. 잡히면 안 되는데 울면 무조건 총구가 겨눠지는데 목숨을 담보로 하는데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게 아들한테 수면제를 먹이려고 생각했어요."]
아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온갖 위험을 견뎌내며 무사히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다행스럽게 아들은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해 나갔는데요.
그 뒤엔 한국에 와서 만난 남편 김대환 씨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김대환/전향진 씨 남편 : "저 사람이랑 같이 잘 살려면 내가 아들을 정말 가슴으로 잘 안아야겠단 생각을 했죠.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고 생활의 일부가 내 삶의 일부가 됐어요."]
향진 씨 부부는 우연히 송년회 자리에서 만나 사랑을 키웠고 3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는데요. 하지만 단란한 가정을 꾸리기까지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습니다
[김대환/전향진 씨 남편 : "주변에서 그러면 안 된다는 사람도 있고 나쁜 놈이야 하는 사람도 있고 거꾸로 그러다가 나중에 후회한단 사람도 있고 지금도 그런 기우는 많이 들어요. 주변에서."]
코로나 19로 무대가 줄어들자 김대환 씨는 아내를 위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방송 시설까지 마련해줬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는 없지만, 방송을 시청하는 팬들을 위해 신명 나게 노래를 부르는데요.
부부의 듀엣곡을 부르기 위해 김대환 씨가 카메라 앞에 섭니다.
["우리 신랑 운다."]
["아들 아빠가 울었어, 아빠가 왜 울었어. (몰라 슬퍼서?)"]
향진 씨는 낯선 땅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 가족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입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가족이란 게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도 되고 내가 아파서 넘어지면 일으켜 줘야 할 사람인 거 같기도 하고 젤 든든하면서 행복을 주는 거 같아요."]
북한 1호 가수에서 트로트 가수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전향진 씨...남북이 함께 주최하는 무대에서 평화의 노래를 부르는 게 가수로서 향진 씨의 마지막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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