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北 ‘1호 가수’ 전향진 씨…트로트를 향한 도전

입력 2021.02.20 (08:27) 수정 2021.02.27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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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에서 노래를 부른 가수에게 ‘1호 가수’라는 별칭이 주어지는데요.

북한에선 1호 가수, 한국에 와선 초보 가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탈북 여성이 있다고 합니다.

최효은 리포터가 만나보셨죠?

[답변]

네. 요즘 트로트의 매력에 푹 빠진 탈북 가수 전향진 씨를 만나고 왔는데요.

북한에선 성악을 전공했다고 합니다.

[앵커]

북한 음악과 남한의 트로트는 창법이 좀 다르지 않나요?

[답변]

네. 그래서 어려움도 많았다고 하는데요.

최근엔 트로트 앨범까지 내면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북한 1호 가수 전향진 씨의 트로트 도전기! 지금부터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구슬픈 노랫소리를 따라 도착한 곳은 서울시 마포구의 한 녹음실.

절절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전향진 씨를 만날 수 있었는데요.

향진 씨는 2014년 압록강을 넘은 탈북민입니다.

북한에선 16살 때부터 무대에 오른 베테랑 가수라고 하는데요.

하지만 김동찬 작곡가 앞에서는 초보 가수나 다름없습니다.

[김동찬/작곡가 : "휴전선 만들지 말라고 휴전선 그냥 빨랫줄처럼 쫙쫙 가져가야지 질질 끌지 말라고. 다시 해볼게."]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선생님이 “야 그건 아냐” 그럴 때면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하지 당황을 해요."]

향진 씨는 북한 청진예술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뒤 예술단에서 활동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앞에서 독창하고 ‘1호 가수’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그 당시에는 제가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했어요. 북한에는 김부자를 하나님처럼 찬양하고 칭송하고 이러는데 그런 사람들한테 앙코르 받고 잘한다고 치하해 주고 말씀이란 걸 받으면 눈물이 자연히 나요."]

북한에서 남부럽지 않은 가수 생활을 했던 전향진 씨.

하지만 체제선전을 위한 노래가 아니라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꿈을 찾아 한국에 왔지만 마주한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습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북한에 대한 편견 때문에 북한 창법 북한 목소리 김부자 찬양하는 목소리 이러는 건데 북한 목소리 듣기 싫다고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오랜 고민 끝에 참가한 전국노래자랑..

["함경북도 청진에서 달려온 처인구의 전향진입니다. (오늘의 최우수상입니다.) "]

모든 걸 쏟아부은 무대였습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예선에는) 앞에 심사하시는 분들만 있으니까 이분들 앞에서 노래 부르니까 너무 떨렸는데 손뼉 치고 이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무대 공포증이 싹 없어지는 거예요."]

한국 가요에 어울리는 창법으로 바꾸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는데요.

1년 전 만난 김동찬 작곡가가 향진 씨만의 개성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김동찬/작곡가 : "통일 창법이라는 거죠. 북한의 주체 창법과 우리 대중가요, 성악의 창법을 섞어서 새로운 하나의 창법을 만들어 낸 거죠."]

["관심 좀 가져주세요. 신경 좀 써주세요. 당신 사랑받고 싶은 여자예요."]

전향진 씨는 자신의 꿈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데요. 가족들의 응원과 지원이 없었더라면 가수의 꿈을 이루지 못했을 거라고 말합니다.

북한 1호 가수로서 안정된 직업을 뿌리치고 탈북을 한 향진 씨... 아들에게 자유가 없는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강가에서 울면 어떻게 할까 이 생각이 먼저 나는 거예요. 잡히면 안 되는데 울면 무조건 총구가 겨눠지는데 목숨을 담보로 하는데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게 아들한테 수면제를 먹이려고 생각했어요."]

아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온갖 위험을 견뎌내며 무사히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다행스럽게 아들은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해 나갔는데요.

그 뒤엔 한국에 와서 만난 남편 김대환 씨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김대환/전향진 씨 남편 : "저 사람이랑 같이 잘 살려면 내가 아들을 정말 가슴으로 잘 안아야겠단 생각을 했죠.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고 생활의 일부가 내 삶의 일부가 됐어요."]

향진 씨 부부는 우연히 송년회 자리에서 만나 사랑을 키웠고 3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는데요. 하지만 단란한 가정을 꾸리기까지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습니다

[김대환/전향진 씨 남편 : "주변에서 그러면 안 된다는 사람도 있고 나쁜 놈이야 하는 사람도 있고 거꾸로 그러다가 나중에 후회한단 사람도 있고 지금도 그런 기우는 많이 들어요. 주변에서."]

코로나 19로 무대가 줄어들자 김대환 씨는 아내를 위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방송 시설까지 마련해줬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는 없지만, 방송을 시청하는 팬들을 위해 신명 나게 노래를 부르는데요.

부부의 듀엣곡을 부르기 위해 김대환 씨가 카메라 앞에 섭니다.

["우리 신랑 운다."]

["아들 아빠가 울었어, 아빠가 왜 울었어. (몰라 슬퍼서?)"]

향진 씨는 낯선 땅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 가족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입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가족이란 게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도 되고 내가 아파서 넘어지면 일으켜 줘야 할 사람인 거 같기도 하고 젤 든든하면서 행복을 주는 거 같아요."]

북한 1호 가수에서 트로트 가수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전향진 씨...남북이 함께 주최하는 무대에서 평화의 노래를 부르는 게 가수로서 향진 씨의 마지막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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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北 ‘1호 가수’ 전향진 씨…트로트를 향한 도전
    • 입력 2021-02-20 08:27:10
    • 수정2021-02-27 08:14:54
    남북의 창
[앵커]

북한에서는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에서 노래를 부른 가수에게 ‘1호 가수’라는 별칭이 주어지는데요.

북한에선 1호 가수, 한국에 와선 초보 가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탈북 여성이 있다고 합니다.

최효은 리포터가 만나보셨죠?

[답변]

네. 요즘 트로트의 매력에 푹 빠진 탈북 가수 전향진 씨를 만나고 왔는데요.

북한에선 성악을 전공했다고 합니다.

[앵커]

북한 음악과 남한의 트로트는 창법이 좀 다르지 않나요?

[답변]

네. 그래서 어려움도 많았다고 하는데요.

최근엔 트로트 앨범까지 내면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북한 1호 가수 전향진 씨의 트로트 도전기! 지금부터 함께 만나보시죠.

[리포트]

구슬픈 노랫소리를 따라 도착한 곳은 서울시 마포구의 한 녹음실.

절절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전향진 씨를 만날 수 있었는데요.

향진 씨는 2014년 압록강을 넘은 탈북민입니다.

북한에선 16살 때부터 무대에 오른 베테랑 가수라고 하는데요.

하지만 김동찬 작곡가 앞에서는 초보 가수나 다름없습니다.

[김동찬/작곡가 : "휴전선 만들지 말라고 휴전선 그냥 빨랫줄처럼 쫙쫙 가져가야지 질질 끌지 말라고. 다시 해볼게."]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선생님이 “야 그건 아냐” 그럴 때면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하지 당황을 해요."]

향진 씨는 북한 청진예술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뒤 예술단에서 활동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앞에서 독창하고 ‘1호 가수’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그 당시에는 제가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했어요. 북한에는 김부자를 하나님처럼 찬양하고 칭송하고 이러는데 그런 사람들한테 앙코르 받고 잘한다고 치하해 주고 말씀이란 걸 받으면 눈물이 자연히 나요."]

북한에서 남부럽지 않은 가수 생활을 했던 전향진 씨.

하지만 체제선전을 위한 노래가 아니라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꿈을 찾아 한국에 왔지만 마주한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습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북한에 대한 편견 때문에 북한 창법 북한 목소리 김부자 찬양하는 목소리 이러는 건데 북한 목소리 듣기 싫다고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오랜 고민 끝에 참가한 전국노래자랑..

["함경북도 청진에서 달려온 처인구의 전향진입니다. (오늘의 최우수상입니다.) "]

모든 걸 쏟아부은 무대였습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예선에는) 앞에 심사하시는 분들만 있으니까 이분들 앞에서 노래 부르니까 너무 떨렸는데 손뼉 치고 이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무대 공포증이 싹 없어지는 거예요."]

한국 가요에 어울리는 창법으로 바꾸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다는데요.

1년 전 만난 김동찬 작곡가가 향진 씨만의 개성을 만드는 데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김동찬/작곡가 : "통일 창법이라는 거죠. 북한의 주체 창법과 우리 대중가요, 성악의 창법을 섞어서 새로운 하나의 창법을 만들어 낸 거죠."]

["관심 좀 가져주세요. 신경 좀 써주세요. 당신 사랑받고 싶은 여자예요."]

전향진 씨는 자신의 꿈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데요. 가족들의 응원과 지원이 없었더라면 가수의 꿈을 이루지 못했을 거라고 말합니다.

북한 1호 가수로서 안정된 직업을 뿌리치고 탈북을 한 향진 씨... 아들에게 자유가 없는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강가에서 울면 어떻게 할까 이 생각이 먼저 나는 거예요. 잡히면 안 되는데 울면 무조건 총구가 겨눠지는데 목숨을 담보로 하는데 그래서 제가 생각한 게 아들한테 수면제를 먹이려고 생각했어요."]

아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온갖 위험을 견뎌내며 무사히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다행스럽게 아들은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해 나갔는데요.

그 뒤엔 한국에 와서 만난 남편 김대환 씨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김대환/전향진 씨 남편 : "저 사람이랑 같이 잘 살려면 내가 아들을 정말 가슴으로 잘 안아야겠단 생각을 했죠.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고 생활의 일부가 내 삶의 일부가 됐어요."]

향진 씨 부부는 우연히 송년회 자리에서 만나 사랑을 키웠고 3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는데요. 하지만 단란한 가정을 꾸리기까지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야 했습니다

[김대환/전향진 씨 남편 : "주변에서 그러면 안 된다는 사람도 있고 나쁜 놈이야 하는 사람도 있고 거꾸로 그러다가 나중에 후회한단 사람도 있고 지금도 그런 기우는 많이 들어요. 주변에서."]

코로나 19로 무대가 줄어들자 김대환 씨는 아내를 위해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방송 시설까지 마련해줬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관객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는 없지만, 방송을 시청하는 팬들을 위해 신명 나게 노래를 부르는데요.

부부의 듀엣곡을 부르기 위해 김대환 씨가 카메라 앞에 섭니다.

["우리 신랑 운다."]

["아들 아빠가 울었어, 아빠가 왜 울었어. (몰라 슬퍼서?)"]

향진 씨는 낯선 땅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돼준 가족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입니다.

[전향진/탈북 트로트 가수 : "가족이란 게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도 되고 내가 아파서 넘어지면 일으켜 줘야 할 사람인 거 같기도 하고 젤 든든하면서 행복을 주는 거 같아요."]

북한 1호 가수에서 트로트 가수로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는 전향진 씨...남북이 함께 주최하는 무대에서 평화의 노래를 부르는 게 가수로서 향진 씨의 마지막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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