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천읍 일대 4·3 유적지 보전 실태는?

입력 2021.03.29 (19:00) 수정 2021.03.2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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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21년 만에 여야 합의로 4·3특별법이 전부 개정되면서 4·3에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는 기대가 큽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 주변에서 4·3을 기억하고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은 다소 부족한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4·3 유적지 관리인데요.

지금까지 확인된 도내 4·3 유적지는 800여 곳에 이르지만 제대로 조명이 안 되거나 심지어 방치된 곳이 많은데요.

이번 주 7시 뉴스에서는 4·3유적지 현장을 직접 찾아가 현장을 확인해 봅니다.

오늘은 첫 번째 순서로, 제주시 조천 지역에 허지영 기자 나가 있습니다.

허 기자, 뒤로 유적지 안내문이 보이는데요.

지금 나가 있는 곳, 어딘가요?

[기자]

저는 지금 조천지서 옛터에 나와 있습니다.

지금은 제 뒤로 조천파출소가 보이죠,

4·3 당시엔 경찰과 우익단체의 활동 근거지로 무고하게 끌려온 도민들을 심문해 학살한 곳입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박종철 열사, 기억하시죠.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 끝에 사망해 6월 항쟁을 촉발시킨 희생자인데요,

조천지서 옛터, 남영동 대공분실과 비슷한 곳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조천중학원 김용철 선생이 이곳에서 고문당해 숨지면서 4·3의 불을 당겼는데요,

제 뒤로 안내판이 하나 보이는데요,

1948년 4월 3일 당시 폭도들이 무장기습해, 경찰이 교전 끝에 일부를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고 적혀있습니다.

'폭도'라는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했는데요,

4·3진상보고서에서도 4·3사건의 성격을 폭동으로 정의하고 있지 않고 있는 만큼 다소 편향된 시각에서 쓰인 내용으로 볼 수 있는데요,

냉전과 분단으로 인한 갈등의 시절 세워진 안내판이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기존 안내판을 그대로 두고 중립적으로 서술한 새 안내판을 함께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앵커]

허 기자가 나가 있는 조천지서 옛터 주변으로 4·3 관련 유적들이 많다던데, 그곳 상황은 좀 어떻습니까?

[기자]

저희 취재진이 주변 유적지 2곳을 미리 가봤는데요,

모두 안내판조차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민간인 수용소 옛터가 대표적인데요,

4·3 당시 가족이 한 명이라도 사라진 중산간 주민을 무장대와 손잡은 '도피자 가족'으로 낙인 찍고 이 터에 있던 집단수용소에 수용했습니다.

수용자만 2~3백 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중 90여 명이 수용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던 조천지서 앞밭에서 집단 총살됐는데요,

하지만 두 장소엔 안내판조차 없습니다.

모두 사유지기 때문인데요,

이러다 보니 주변 주민분들도 이곳이 4·3 유적지인지 잘 모르시거나, 뒤늦게 알게 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직접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다.

[김두식/제주시 조천읍 주민 : "(안내판도 없어서) 아쉽긴 하죠. 한마디로 그때를 생각하면. 나도 4·3 때 아버지, 어머니 고생한 것만 생각하면 말도 못 하죠."]

제주도가 실시한 용역에선 이 일대 부지를 사들여 기념관을 조성할 것을 제안했는데요,

4·3의 아픔이 서려 있는 유적지를 역사적으로 보전하고 그 곳에서 벌어진 진실을 규명하는 일이 시급해 보입니다.

지금까지 제주시 조천지서 옛터에서 KBS 뉴스 허지영입니다.

촬영기자:부수홍/영상편집:장원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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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천읍 일대 4·3 유적지 보전 실태는?
    • 입력 2021-03-29 19:00:57
    • 수정2021-03-29 20:17:32
    뉴스7(제주)
[앵커]

21년 만에 여야 합의로 4·3특별법이 전부 개정되면서 4·3에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는 기대가 큽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 주변에서 4·3을 기억하고 진실을 찾기 위한 노력은 다소 부족한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4·3 유적지 관리인데요.

지금까지 확인된 도내 4·3 유적지는 800여 곳에 이르지만 제대로 조명이 안 되거나 심지어 방치된 곳이 많은데요.

이번 주 7시 뉴스에서는 4·3유적지 현장을 직접 찾아가 현장을 확인해 봅니다.

오늘은 첫 번째 순서로, 제주시 조천 지역에 허지영 기자 나가 있습니다.

허 기자, 뒤로 유적지 안내문이 보이는데요.

지금 나가 있는 곳, 어딘가요?

[기자]

저는 지금 조천지서 옛터에 나와 있습니다.

지금은 제 뒤로 조천파출소가 보이죠,

4·3 당시엔 경찰과 우익단체의 활동 근거지로 무고하게 끌려온 도민들을 심문해 학살한 곳입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박종철 열사, 기억하시죠.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 끝에 사망해 6월 항쟁을 촉발시킨 희생자인데요,

조천지서 옛터, 남영동 대공분실과 비슷한 곳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조천중학원 김용철 선생이 이곳에서 고문당해 숨지면서 4·3의 불을 당겼는데요,

제 뒤로 안내판이 하나 보이는데요,

1948년 4월 3일 당시 폭도들이 무장기습해, 경찰이 교전 끝에 일부를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고 적혀있습니다.

'폭도'라는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했는데요,

4·3진상보고서에서도 4·3사건의 성격을 폭동으로 정의하고 있지 않고 있는 만큼 다소 편향된 시각에서 쓰인 내용으로 볼 수 있는데요,

냉전과 분단으로 인한 갈등의 시절 세워진 안내판이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기존 안내판을 그대로 두고 중립적으로 서술한 새 안내판을 함께 설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앵커]

허 기자가 나가 있는 조천지서 옛터 주변으로 4·3 관련 유적들이 많다던데, 그곳 상황은 좀 어떻습니까?

[기자]

저희 취재진이 주변 유적지 2곳을 미리 가봤는데요,

모두 안내판조차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민간인 수용소 옛터가 대표적인데요,

4·3 당시 가족이 한 명이라도 사라진 중산간 주민을 무장대와 손잡은 '도피자 가족'으로 낙인 찍고 이 터에 있던 집단수용소에 수용했습니다.

수용자만 2~3백 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중 90여 명이 수용소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던 조천지서 앞밭에서 집단 총살됐는데요,

하지만 두 장소엔 안내판조차 없습니다.

모두 사유지기 때문인데요,

이러다 보니 주변 주민분들도 이곳이 4·3 유적지인지 잘 모르시거나, 뒤늦게 알게 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직접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다.

[김두식/제주시 조천읍 주민 : "(안내판도 없어서) 아쉽긴 하죠. 한마디로 그때를 생각하면. 나도 4·3 때 아버지, 어머니 고생한 것만 생각하면 말도 못 하죠."]

제주도가 실시한 용역에선 이 일대 부지를 사들여 기념관을 조성할 것을 제안했는데요,

4·3의 아픔이 서려 있는 유적지를 역사적으로 보전하고 그 곳에서 벌어진 진실을 규명하는 일이 시급해 보입니다.

지금까지 제주시 조천지서 옛터에서 KBS 뉴스 허지영입니다.

촬영기자:부수홍/영상편집:장원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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