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팀장] “숨진 아버지, 성추행 시도” 정당방위 vs 패륜적 범행

입력 2021.04.26 (19:23) 수정 2021.04.26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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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사고의 뒷이야기를 자세히 풀어보는 사건팀장 시간입니다.

성용희 사건팀장, 오늘은 어떤 사건 들고 나오셨나요?

[기자]

네, 집에서 90세가 넘은 고령의 아버지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50대 여성 김 모 씨 사건입니다.

김 씨는 법정에서 치매를 앓던 아버지가 자신을 성추행하려고 해 몸싸움을 벌이다가 숨졌다고 진술했는데요.

1심 법원은 김 씨에게 정당방위로 무죄를 선고했던 반면, 최근 항소심 법원은 유죄를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오늘은 1심과 2심을 거치며 정반대의 판결이 나온 여전히 의문점이 많은 이 사건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앵커]

도대체 이 여성과 아버지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한데요.

[기자]

지금까지 드러난 사건의 경위는 이렇습니다.

2019년 5월 1일 낮, 김 씨는 대전시 대덕구에 있는 아버지의 집에 찾아가 거실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술을 마셨습니다.

그러다가 김 씨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평생 일만 하면서 고생해 몸이 안 좋다"는 등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말다툼을 했습니다.

이어서 몸싸움이 벌어졌고 김 씨 아버지는 저녁에 집에 돌아온 다른 가족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왼쪽 갈비뼈와 목뼈 일부가 부러지고 이마와 어깨 등이 찢어져 피를 흘린 상태였습니다.

집 안은 아수라장이었고 김 씨는 집 안에 있었습니다.

검찰은 김 씨가 아버지에게 집 안 물건을 던지고 휘두르는 등 여러 차례 때려 숨지게 했다고 보고 김 씨를 존속상해치사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앵커]

그런데 김 씨 진술에 이상한 점이 많았다고요?

[기자]

네, 김 씨가 최초 경찰 조사에서 한 진술입니다.

"아버지와 말다툼을 하다가 아버지가 던진 물건에 눈을 맞았고, 집을 나가려고 했지만 아버지가 못 가게 한 뒤에는 기억이 없다" 이렇게 어느 정도 당시 상황을 진술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경찰과 검찰 조사에서 한 진술을 보시죠.

"술을 마신 뒤 상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바뀌더니 법정에 가서는 돌연 "아버지가 성추행하려고 해 저항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정당방위"였다고 바뀌었습니다.

술을 마시다 거실에서 잠이 들었는데 느낌이 이상해 눈을 떠보니 아버지가 웃옷을 벗은 상태에서 자신의 신체 일부를 만지고 있었고 저항하려고 물건을 잡히는 대로 던졌다는 겁니다.

저도 1심 판결문을 보면서 이렇게 뒤바뀐 진술이 좀 의아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이것 말고도 김 씨 아버지의 얼굴까지 이불이 덮여 있던 점, 사건 직후 김 씨가 아버지의 의식을 확인해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점 등, 재판부조차 의심스럽다고 본 정황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앵커]

그런데도 앞서 1심에서는 정당방위가 인정돼 무죄가 선고됐다고 했잖아요?

이유가 뭔가요?

[기자]

네, 1심 재판부는 김 씨의 진술이 사실일 가능성을 함부로 배제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먼저 피고인이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고, 김 씨 역시 마찬가지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김 씨가 아버지의 명예와 어머니가 받을 충격, 자신의 수치심 때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고 했는데 이 역시 수긍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숨진 아버지를 부검한 결과 '도네페질'이라는 성분이 검출됐는데 이게 치매 치료제 성분이거든요?

치매를 앓던 아버지가 판단능력이 흐려져 실제로 성추행을 시도했을 가능성도 고려됐습니다.

결국, 김 씨 주장대로 아버지의 성추행 시도가 사실이라면 김 씨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행동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즉 정당방위로 볼 수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앵커]

1심 판결 내용을 들어보니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항소심에서는 어떻게 정반대 판결이 나온 건가요?

[기자]

항소심 재판부는 진술이 너무 자주 바뀌어 김 씨의 정당방위 주장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김 씨의 기억이 명확하지 않은 점도 유죄 판결을 내린 이유였는데요.

김 씨는 자신이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성추행을 시도했다던 아버지가 언제 웃옷을 벗었는지, 이런 점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또 이런 김 씨의 진술 내용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구체적으로 바뀌었는데 김 씨의 기억이 만들어졌거나 왜곡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김 씨가 수사단계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다가 법정에서 갑자기 정당방위 주장을 했다고 말씀드렸죠.

항소심 재판부는 김 씨가 구속까지 됐는데, 이미 숨진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모든 처벌을 감수하려고 했다는 설명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김 씨 아버지가 사건이 일어나기 전 성추행을 하려는 시도나 낌새를 보인 적이 없고 치매 증상 역시 가벼웠던 점도 고려됐습니다.

[앵커]

결국, 정당방위냐 아버지를 성추행범으로 몬 패륜적인 범행이냐 진실은 둘 중에 하나 일텐데, 결국 대법원에서 가려지게 됐군요.

[기자]

네, 맞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존속상해치사죄를 적용해 김 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는데요.

아흔세 살의 아버지를 때려 사망에 이르게 한 패륜적인 사건이라고 양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또 정신을 잃은 아버지를 방치했고, 법정에서 "아버지가 나이가 들어 돌아가신 것인데 왜 내 책임인지 모르겠다"며 반성하지 않고 있는 점도 고려됐습니다.

특히 김 씨가 혐의를 벗기 위해 아버지를 성추행범으로 몰아가는 파렴치한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고 판시했습니다.

다만, 범행이 우발적으로 벌어진 것으로 보이고 김 씨가 형사처벌을 받은 적 없다는 점이 참작됐는데요.

1심과 2심을 거치며 정반대의 판결이 나온 이 사건은 결국 대법원에서 최종 판단이 내려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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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건팀장] “숨진 아버지, 성추행 시도” 정당방위 vs 패륜적 범행
    • 입력 2021-04-26 19:23:11
    • 수정2021-04-26 19:59:24
    뉴스7(대전)
[앵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사고의 뒷이야기를 자세히 풀어보는 사건팀장 시간입니다.

성용희 사건팀장, 오늘은 어떤 사건 들고 나오셨나요?

[기자]

네, 집에서 90세가 넘은 고령의 아버지를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50대 여성 김 모 씨 사건입니다.

김 씨는 법정에서 치매를 앓던 아버지가 자신을 성추행하려고 해 몸싸움을 벌이다가 숨졌다고 진술했는데요.

1심 법원은 김 씨에게 정당방위로 무죄를 선고했던 반면, 최근 항소심 법원은 유죄를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오늘은 1심과 2심을 거치며 정반대의 판결이 나온 여전히 의문점이 많은 이 사건을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앵커]

도대체 이 여성과 아버지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궁금한데요.

[기자]

지금까지 드러난 사건의 경위는 이렇습니다.

2019년 5월 1일 낮, 김 씨는 대전시 대덕구에 있는 아버지의 집에 찾아가 거실에서 아버지와 단둘이 술을 마셨습니다.

그러다가 김 씨는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평생 일만 하면서 고생해 몸이 안 좋다"는 등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말다툼을 했습니다.

이어서 몸싸움이 벌어졌고 김 씨 아버지는 저녁에 집에 돌아온 다른 가족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왼쪽 갈비뼈와 목뼈 일부가 부러지고 이마와 어깨 등이 찢어져 피를 흘린 상태였습니다.

집 안은 아수라장이었고 김 씨는 집 안에 있었습니다.

검찰은 김 씨가 아버지에게 집 안 물건을 던지고 휘두르는 등 여러 차례 때려 숨지게 했다고 보고 김 씨를 존속상해치사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앵커]

그런데 김 씨 진술에 이상한 점이 많았다고요?

[기자]

네, 김 씨가 최초 경찰 조사에서 한 진술입니다.

"아버지와 말다툼을 하다가 아버지가 던진 물건에 눈을 맞았고, 집을 나가려고 했지만 아버지가 못 가게 한 뒤에는 기억이 없다" 이렇게 어느 정도 당시 상황을 진술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경찰과 검찰 조사에서 한 진술을 보시죠.

"술을 마신 뒤 상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바뀌더니 법정에 가서는 돌연 "아버지가 성추행하려고 해 저항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정당방위"였다고 바뀌었습니다.

술을 마시다 거실에서 잠이 들었는데 느낌이 이상해 눈을 떠보니 아버지가 웃옷을 벗은 상태에서 자신의 신체 일부를 만지고 있었고 저항하려고 물건을 잡히는 대로 던졌다는 겁니다.

저도 1심 판결문을 보면서 이렇게 뒤바뀐 진술이 좀 의아하다고 생각했는데요.

이것 말고도 김 씨 아버지의 얼굴까지 이불이 덮여 있던 점, 사건 직후 김 씨가 아버지의 의식을 확인해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점 등, 재판부조차 의심스럽다고 본 정황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앵커]

그런데도 앞서 1심에서는 정당방위가 인정돼 무죄가 선고됐다고 했잖아요?

이유가 뭔가요?

[기자]

네, 1심 재판부는 김 씨의 진술이 사실일 가능성을 함부로 배제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먼저 피고인이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는 것은 드물지 않은 일이고, 김 씨 역시 마찬가지일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김 씨가 아버지의 명예와 어머니가 받을 충격, 자신의 수치심 때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고 했는데 이 역시 수긍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숨진 아버지를 부검한 결과 '도네페질'이라는 성분이 검출됐는데 이게 치매 치료제 성분이거든요?

치매를 앓던 아버지가 판단능력이 흐려져 실제로 성추행을 시도했을 가능성도 고려됐습니다.

결국, 김 씨 주장대로 아버지의 성추행 시도가 사실이라면 김 씨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행동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즉 정당방위로 볼 수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앵커]

1심 판결 내용을 들어보니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는데, 항소심에서는 어떻게 정반대 판결이 나온 건가요?

[기자]

항소심 재판부는 진술이 너무 자주 바뀌어 김 씨의 정당방위 주장을 믿을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김 씨의 기억이 명확하지 않은 점도 유죄 판결을 내린 이유였는데요.

김 씨는 자신이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성추행을 시도했다던 아버지가 언제 웃옷을 벗었는지, 이런 점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또 이런 김 씨의 진술 내용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구체적으로 바뀌었는데 김 씨의 기억이 만들어졌거나 왜곡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김 씨가 수사단계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다가 법정에서 갑자기 정당방위 주장을 했다고 말씀드렸죠.

항소심 재판부는 김 씨가 구속까지 됐는데, 이미 숨진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모든 처벌을 감수하려고 했다는 설명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봤습니다.

김 씨 아버지가 사건이 일어나기 전 성추행을 하려는 시도나 낌새를 보인 적이 없고 치매 증상 역시 가벼웠던 점도 고려됐습니다.

[앵커]

결국, 정당방위냐 아버지를 성추행범으로 몬 패륜적인 범행이냐 진실은 둘 중에 하나 일텐데, 결국 대법원에서 가려지게 됐군요.

[기자]

네, 맞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존속상해치사죄를 적용해 김 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는데요.

아흔세 살의 아버지를 때려 사망에 이르게 한 패륜적인 사건이라고 양형 이유를 밝혔습니다.

또 정신을 잃은 아버지를 방치했고, 법정에서 "아버지가 나이가 들어 돌아가신 것인데 왜 내 책임인지 모르겠다"며 반성하지 않고 있는 점도 고려됐습니다.

특히 김 씨가 혐의를 벗기 위해 아버지를 성추행범으로 몰아가는 파렴치한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고 판시했습니다.

다만, 범행이 우발적으로 벌어진 것으로 보이고 김 씨가 형사처벌을 받은 적 없다는 점이 참작됐는데요.

1심과 2심을 거치며 정반대의 판결이 나온 이 사건은 결국 대법원에서 최종 판단이 내려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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