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미얀마 “우리는 돌아가지 않는다”

입력 2021.05.15 (21:59) 수정 2021.05.15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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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미스 그랜드 인터내셔널대회에 참가했다가 고국의 참상을 고발한 미스 미얀마 한 레이씨를 특파원 보고가 직접 만났습니다.

대회가 끝나고 50여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집에 돌아가지 못한 한 레이씨는 미얀마에서 지금 아이들까지 잡혀가고 있다며 간절하게 국제사회의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방콕 김원장특파원입니다.

[리포트]

미얀마 쿠데타 두 달이 돼 가던 지난 3월 27일, 최악의 유혈진압이 자행됐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가던 10대 3명에게 군경이 갑자기 총격을 가합니다.

2명은 달아났지만, 17살 남성은 그자리에서 숨졌습니다.

5살과 13살 아이도 군경의 총에 맞은 이날, 모두 114명의 미얀마 시민이 목숨을 읽었습니다.

이날 방콕에서 열린 미스그랜드 인터내셔널대회, 63개국 대표들이 15일의 자가격리를 감수하고 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양곤대학교 3학년 한레이(han lay)도 미얀마 대표로 참가했습니다.

화려한 미인대회가 열기를 더해갈 무렵,

[“우리 대회 조직위는 미스 미얀마에게 발언의 기회를 주기로 했습니다.”]

[“저는 오늘 나의 조국 미얀마인들이 겪고 있는 슬픔을 대신해서 이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거리에서 목숨을 잃은 시민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세계의 모든 시민들은 번영과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이를 위해 지도자는 이기심과 권력을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왜 무고한 여성과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어야합니까? 미얀마를 도와주십시오. 우리는 지금 국제사회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상위권에 들지 못했지만, 한 레이는 이날 가장 뜨거운 지지를 받았습니다.

지금도 방콕에 머물고 있는 한 레이를 만났습니다.

[“(대회측에) 지금 상황에 대해 말할 기회를 달라고 했어요. 기회를 달라. 정말로 무대위에서 말할 기회를 줄지는 몰랐어요.”]

그 발언 이후 이제 그녀는 대회가 끝났어도 집에 가지 못한 유일한 참가자가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네가 (미얀마로) 들어오면 감옥에 갈 것이라고...어떤 사람은 페이스북에 협박도 하고요.”]

미얀마에 남아있는 가족들도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들 위험하다고 이사하는게 좋다고 해서 어머니는 (집에서) 다른 곳으로 피신했어요. 그래도 어머니는 (저에게) 그것이 맞다고 생각하면 멈추지 마라고 하세요. 절대 포기하지 마라, 항상 응원한다고 말씀하세요."]

방콕에서도 그녀는 미얀마 시민을 위한 작은 행동들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매일 SNS에 미얀마의 실상을 전하고 며칠전에는 태국의 미얀마대사관을 찾아 항의서한을 전달했습니다.

["지금까지 770명이 숨졌어요. 단지 명단에 있는 사람만요. 그 명단에 없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그 중에 아는 사람도 있는가?) 제 고향의 친구 한명도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실제로 즉각적인 폭력의 중단을 약속한 아세안(ASEAN) 합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혈진압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무릎에 총을 맞고 쓰러진 청년에게 다가온 군인들, 응급조치는 커녕 조롱의 말을 내뱉습니다.

이때까지 청년은 살아있었습니다.

평화시위를 벌이는 시민들 건너편으로 두 대의 차량이 멈춰 섭니다.

갑자기 경찰의 체포가 시작됩니다.

무차별 발포로 큰 시위가 열리지 않는데도, 여기저기서 사복경찰들이 시민들을 연행합니다.

계엄령이 내려진 미얀마에선 연행되고 며칠만에 군사재판에 넘겨집니다.

시위 참가 혐의로 붙잡힌 32명의 의대생들이 법원으로 가기위해 유치장을 나서자 기다리던 친구들이 손을 흔들며 힘내라고 외칩니다.

["심지어 유명 연예인들까지 모두 연행합니다. 어린 아이들과 수많은 학생들이 감금돼 있습니다."]

군경의 무차별 사격이 계속되면서 시민들은 이제 갑자기 모여 구호를 외치고 빠르게 사라지는 게릴라식 시위를 벌입니다.

국제사회가 더이상 이 비극을 외면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합니다.

카렌 반군(KNLA)이나 카친반군(KNA)등 미얀마 소수민족 반군에 입대해 훈련을 받는 청년들도 늘었습니다.

[헤잉 또우/전 미얀마 99여단 소령/반군에 자진입대 : "군대가 시민을 학살하는 것은 국민들도 용납할 수 없고 저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제 어쩔 수 없이 무기를 들어야 하는 시간이 됐습니다."]

미얀마 사태는 시리아처럼 끝이 안보이는 내전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한 레이는 언제 집에 돌아갈지 모르지만 , 그때는 분명 국민들이 다시 주권을 되찾은 때라고 말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길에서 죽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잖아요. 군부와 싸우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그때까지 다시 돌아가지 않을겁니다."]

그녀와 인터뷰를 한 날에도 미얀마 군정은 파업에 참가한 대학교수 2,233명의 업무를 정지시켰습니다.

반 쿠데타진영의 국민통합정부(NUG)를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주요 인사를 수배했습니다.

[앵커]

그럼 여기서 방콕 김원장특파원 연결합니다.

김특파원, 폭력진압을 중단하겠다던 아세안(ASEAN) 정상회담의 합의는 사실상 폐기됐다고 봐야죠?

[기자]

네, 합의는 지키지도 않으면서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이 아세안 회담 참석하는 장면은 연일 TV뉴스에 내보내고 있습니다.

국가원수로서 권위만 부여해준 회담이 됐습니다.

오늘 이곳 방콕에 크리스틴 유엔 미얀마 특사가 와 있는데요 미얀마 입국을 허용이나 할지 모르겠습니다.

[앵커]

반 쿠데타 진영은 국민통합정부(NUG)를 발족한데 이어 시민방위군을 출범시켰다죠?

[기자]

네, 8개 소수민족 반군과 연대해서 미얀마군에 맞서보겠단 겁니다.

하지만 상징적인 발표일 뿐이고, 시민방위군이 실체가 있는 건 아닙니다.

지금도 국경지대에선 교전이 점점 격화되고 있는데요.

카렌족 카친족 샨족 로힝야족,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이 교전을 통해 바라는 것은 사실은 미얀마 민주정부가 아니고 민족의 ‘독립’입니다

과거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부터 ‘이번만 도와주면 자치 독립 보장해 준다’는 약속에 너무 많이 속아왔기 때문에 여전히 앙금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쿠데타는 받아들 일수 없으니 일단 같이 싸우기로 한겁니다.

그러니 시민방위군이 하나의 군대로 싸우거나 한명의 지휘관 아래 일사분란하게 전투를 치르긴 힘들겁니다.

50만 대군인 미얀마군과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래서 승자도 패자도 없는 희생자만 늘어나는 시리아 내전처럼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방콕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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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스미얀마 “우리는 돌아가지 않는다”
    • 입력 2021-05-15 21:59:12
    • 수정2021-05-15 22: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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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미스 그랜드 인터내셔널대회에 참가했다가 고국의 참상을 고발한 미스 미얀마 한 레이씨를 특파원 보고가 직접 만났습니다.

대회가 끝나고 50여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집에 돌아가지 못한 한 레이씨는 미얀마에서 지금 아이들까지 잡혀가고 있다며 간절하게 국제사회의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방콕 김원장특파원입니다.

[리포트]

미얀마 쿠데타 두 달이 돼 가던 지난 3월 27일, 최악의 유혈진압이 자행됐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가던 10대 3명에게 군경이 갑자기 총격을 가합니다.

2명은 달아났지만, 17살 남성은 그자리에서 숨졌습니다.

5살과 13살 아이도 군경의 총에 맞은 이날, 모두 114명의 미얀마 시민이 목숨을 읽었습니다.

이날 방콕에서 열린 미스그랜드 인터내셔널대회, 63개국 대표들이 15일의 자가격리를 감수하고 대회에 참석했습니다.

양곤대학교 3학년 한레이(han lay)도 미얀마 대표로 참가했습니다.

화려한 미인대회가 열기를 더해갈 무렵,

[“우리 대회 조직위는 미스 미얀마에게 발언의 기회를 주기로 했습니다.”]

[“저는 오늘 나의 조국 미얀마인들이 겪고 있는 슬픔을 대신해서 이자리에 섰습니다. 저는 거리에서 목숨을 잃은 시민들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세계의 모든 시민들은 번영과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이를 위해 지도자는 이기심과 권력을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왜 무고한 여성과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어야합니까? 미얀마를 도와주십시오. 우리는 지금 국제사회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상위권에 들지 못했지만, 한 레이는 이날 가장 뜨거운 지지를 받았습니다.

지금도 방콕에 머물고 있는 한 레이를 만났습니다.

[“(대회측에) 지금 상황에 대해 말할 기회를 달라고 했어요. 기회를 달라. 정말로 무대위에서 말할 기회를 줄지는 몰랐어요.”]

그 발언 이후 이제 그녀는 대회가 끝났어도 집에 가지 못한 유일한 참가자가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네가 (미얀마로) 들어오면 감옥에 갈 것이라고...어떤 사람은 페이스북에 협박도 하고요.”]

미얀마에 남아있는 가족들도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다들 위험하다고 이사하는게 좋다고 해서 어머니는 (집에서) 다른 곳으로 피신했어요. 그래도 어머니는 (저에게) 그것이 맞다고 생각하면 멈추지 마라고 하세요. 절대 포기하지 마라, 항상 응원한다고 말씀하세요."]

방콕에서도 그녀는 미얀마 시민을 위한 작은 행동들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매일 SNS에 미얀마의 실상을 전하고 며칠전에는 태국의 미얀마대사관을 찾아 항의서한을 전달했습니다.

["지금까지 770명이 숨졌어요. 단지 명단에 있는 사람만요. 그 명단에 없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그 중에 아는 사람도 있는가?) 제 고향의 친구 한명도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실제로 즉각적인 폭력의 중단을 약속한 아세안(ASEAN) 합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혈진압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무릎에 총을 맞고 쓰러진 청년에게 다가온 군인들, 응급조치는 커녕 조롱의 말을 내뱉습니다.

이때까지 청년은 살아있었습니다.

평화시위를 벌이는 시민들 건너편으로 두 대의 차량이 멈춰 섭니다.

갑자기 경찰의 체포가 시작됩니다.

무차별 발포로 큰 시위가 열리지 않는데도, 여기저기서 사복경찰들이 시민들을 연행합니다.

계엄령이 내려진 미얀마에선 연행되고 며칠만에 군사재판에 넘겨집니다.

시위 참가 혐의로 붙잡힌 32명의 의대생들이 법원으로 가기위해 유치장을 나서자 기다리던 친구들이 손을 흔들며 힘내라고 외칩니다.

["심지어 유명 연예인들까지 모두 연행합니다. 어린 아이들과 수많은 학생들이 감금돼 있습니다."]

군경의 무차별 사격이 계속되면서 시민들은 이제 갑자기 모여 구호를 외치고 빠르게 사라지는 게릴라식 시위를 벌입니다.

국제사회가 더이상 이 비극을 외면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합니다.

카렌 반군(KNLA)이나 카친반군(KNA)등 미얀마 소수민족 반군에 입대해 훈련을 받는 청년들도 늘었습니다.

[헤잉 또우/전 미얀마 99여단 소령/반군에 자진입대 : "군대가 시민을 학살하는 것은 국민들도 용납할 수 없고 저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제 어쩔 수 없이 무기를 들어야 하는 시간이 됐습니다."]

미얀마 사태는 시리아처럼 끝이 안보이는 내전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한 레이는 언제 집에 돌아갈지 모르지만 , 그때는 분명 국민들이 다시 주권을 되찾은 때라고 말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길에서 죽었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잖아요. 군부와 싸우는 것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그때까지 다시 돌아가지 않을겁니다."]

그녀와 인터뷰를 한 날에도 미얀마 군정은 파업에 참가한 대학교수 2,233명의 업무를 정지시켰습니다.

반 쿠데타진영의 국민통합정부(NUG)를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주요 인사를 수배했습니다.

[앵커]

그럼 여기서 방콕 김원장특파원 연결합니다.

김특파원, 폭력진압을 중단하겠다던 아세안(ASEAN) 정상회담의 합의는 사실상 폐기됐다고 봐야죠?

[기자]

네, 합의는 지키지도 않으면서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이 아세안 회담 참석하는 장면은 연일 TV뉴스에 내보내고 있습니다.

국가원수로서 권위만 부여해준 회담이 됐습니다.

오늘 이곳 방콕에 크리스틴 유엔 미얀마 특사가 와 있는데요 미얀마 입국을 허용이나 할지 모르겠습니다.

[앵커]

반 쿠데타 진영은 국민통합정부(NUG)를 발족한데 이어 시민방위군을 출범시켰다죠?

[기자]

네, 8개 소수민족 반군과 연대해서 미얀마군에 맞서보겠단 겁니다.

하지만 상징적인 발표일 뿐이고, 시민방위군이 실체가 있는 건 아닙니다.

지금도 국경지대에선 교전이 점점 격화되고 있는데요.

카렌족 카친족 샨족 로힝야족, 수많은 소수민족들이 이 교전을 통해 바라는 것은 사실은 미얀마 민주정부가 아니고 민족의 ‘독립’입니다

과거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부터 ‘이번만 도와주면 자치 독립 보장해 준다’는 약속에 너무 많이 속아왔기 때문에 여전히 앙금이 남아있지만, 그래도 쿠데타는 받아들 일수 없으니 일단 같이 싸우기로 한겁니다.

그러니 시민방위군이 하나의 군대로 싸우거나 한명의 지휘관 아래 일사분란하게 전투를 치르긴 힘들겁니다.

50만 대군인 미얀마군과의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그래서 승자도 패자도 없는 희생자만 늘어나는 시리아 내전처럼 될 수 있다는 겁니다.

방콕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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