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당시 사라진 아이들은 어디에?…41년 숙제를 풀자

입력 2021.05.17 (21:06) 수정 2021.05.17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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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방금 보신 계엄군 버스의 아이, 헌병에 넘겨지고 나서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5·18 때 사라진 뒤 찾지 못한 아이들이 적지 않은데요.

취재기자 연결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양 기자, 80년 5월 당시 행방불명돼서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어린이 얼마나 됩니까?

[기자]

5·18 때 피해를 본 것으로 광주광역시가 인정한 행방불명자는 78명인데요.

10대의 미성년자가 26명입니다.

이 가운데는 중·고등학생이 있는가 하면, 열 살이 되지 않은 어린아이들도 7명이나 됩니다.

여기에 국가의 인정을 받지 못한 행방불명자 수백 명까지 더하면 당시 실제 사라진 아이들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앵커]

부모 형제들은 어떤 심정으로 살아왔을지 상상하기 힘듭니다.

직접 몇 분 만나봤죠?

[기자]

네, 맞습니다.

앞서 전해 드렸던 이창현 군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5·18 당시 일곱 살이었고요.

어느 날 집을 나선 뒤 행방불명됐는데요.

어린 동생을 잃어버린 누나는 아직도 회한이 사무친다고 말합니다.

[이선영/5·18 행방불명자 이창현(당시 7살) 누나 : "동생이 밖을 나가고 있는 걸 봤는데 말리질 않았어요. 그날 나가는 동생을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를 많이 했죠."]

또 고흥에서 광주로 올라와 하숙 생활을 하던 도중, 계엄군을 피해 조선대 뒷산에 올랐다 실종된 고등학생의 사연도 가슴 아픕니다.

[김진덕/5·18 행방불명자 임옥환(당시 17살) 어머니 : "학교 다니면서 부모한테 부담 덜 준다고 남들 간다는 수학여행도 안 가고 신문 배달하고... 가방만 돌아왔습디다."]

[앵커]

5·18 묘역에는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어린아이도 묻혀 있다고요?

[기자]

네, 유골은 수습됐지만 이름을 알 수 없는 이른바 '무명 열사의 묘'가 5·18 민주묘지에 5기 있는데요.

이 가운데는 다른 유해보다 체구가 훨씬 작은, 어린아이가 묻힌 묘도 있습니다.

이 아이가 누구일까, 그동안 여러 차례 조사가 이뤄졌지만 아직 신원은 확인되지 않은 상탭니다.

5·18 당시 광주 봉쇄 작전에서 발생한 여러 차례의 민간인 학살 과정에서도 어린아이들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 아직도 정확한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앵커]

이렇게 행방불명된 아이들에 대한 진상 조사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기자]

행방불명자 문제 해결은 5·18 핵심 과제 중 하나인데요.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앞서 보도해 드린 도청 앞 계엄군 버스의 아이를 비롯해 어린 무명 열사의 묘 등에 대해 여러 각도로 조사하고 있습니다.

과거보다 고도화된 유전자 분석 기법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계엄군의 '암매장' 의혹도 철저히 밝혀내야 합니다.

5·18 조사위는 당시 계엄군이 사망자 시신을 암매장 형태로 처리했다는 증언도 나오는 만큼 그동안의 여러 증언 등을 토대로 암매장 추정 장소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5·18 당시 자식들을 잃고 지금껏 찾지 못한 채 속절없이 40년을 보낸 유족들은 더 늦기 전에 생사라도 꼭 확인할 수 있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광주에서 전해드렸습니다.

촬영기자:조민웅 정현덕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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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 당시 사라진 아이들은 어디에?…41년 숙제를 풀자
    • 입력 2021-05-17 21:06:07
    • 수정2021-05-17 21: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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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방금 보신 계엄군 버스의 아이, 헌병에 넘겨지고 나서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이렇게 5·18 때 사라진 뒤 찾지 못한 아이들이 적지 않은데요.

취재기자 연결해서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양 기자, 80년 5월 당시 행방불명돼서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어린이 얼마나 됩니까?

[기자]

5·18 때 피해를 본 것으로 광주광역시가 인정한 행방불명자는 78명인데요.

10대의 미성년자가 26명입니다.

이 가운데는 중·고등학생이 있는가 하면, 열 살이 되지 않은 어린아이들도 7명이나 됩니다.

여기에 국가의 인정을 받지 못한 행방불명자 수백 명까지 더하면 당시 실제 사라진 아이들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앵커]

부모 형제들은 어떤 심정으로 살아왔을지 상상하기 힘듭니다.

직접 몇 분 만나봤죠?

[기자]

네, 맞습니다.

앞서 전해 드렸던 이창현 군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5·18 당시 일곱 살이었고요.

어느 날 집을 나선 뒤 행방불명됐는데요.

어린 동생을 잃어버린 누나는 아직도 회한이 사무친다고 말합니다.

[이선영/5·18 행방불명자 이창현(당시 7살) 누나 : "동생이 밖을 나가고 있는 걸 봤는데 말리질 않았어요. 그날 나가는 동생을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를 많이 했죠."]

또 고흥에서 광주로 올라와 하숙 생활을 하던 도중, 계엄군을 피해 조선대 뒷산에 올랐다 실종된 고등학생의 사연도 가슴 아픕니다.

[김진덕/5·18 행방불명자 임옥환(당시 17살) 어머니 : "학교 다니면서 부모한테 부담 덜 준다고 남들 간다는 수학여행도 안 가고 신문 배달하고... 가방만 돌아왔습디다."]

[앵커]

5·18 묘역에는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어린아이도 묻혀 있다고요?

[기자]

네, 유골은 수습됐지만 이름을 알 수 없는 이른바 '무명 열사의 묘'가 5·18 민주묘지에 5기 있는데요.

이 가운데는 다른 유해보다 체구가 훨씬 작은, 어린아이가 묻힌 묘도 있습니다.

이 아이가 누구일까, 그동안 여러 차례 조사가 이뤄졌지만 아직 신원은 확인되지 않은 상탭니다.

5·18 당시 광주 봉쇄 작전에서 발생한 여러 차례의 민간인 학살 과정에서도 어린아이들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 아직도 정확한 경위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앵커]

이렇게 행방불명된 아이들에 대한 진상 조사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기자]

행방불명자 문제 해결은 5·18 핵심 과제 중 하나인데요.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앞서 보도해 드린 도청 앞 계엄군 버스의 아이를 비롯해 어린 무명 열사의 묘 등에 대해 여러 각도로 조사하고 있습니다.

과거보다 고도화된 유전자 분석 기법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계엄군의 '암매장' 의혹도 철저히 밝혀내야 합니다.

5·18 조사위는 당시 계엄군이 사망자 시신을 암매장 형태로 처리했다는 증언도 나오는 만큼 그동안의 여러 증언 등을 토대로 암매장 추정 장소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5·18 당시 자식들을 잃고 지금껏 찾지 못한 채 속절없이 40년을 보낸 유족들은 더 늦기 전에 생사라도 꼭 확인할 수 있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광주에서 전해드렸습니다.

촬영기자:조민웅 정현덕 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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