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네트워크] 5·18 ‘사라진 아이들’…진실은?

입력 2021.05.18 (19:31) 수정 2021.09.03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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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제주4·3 73주년을 맞아 주목을 끈 것 중의 하나, 당시 8백 명 넘게 희생된 어린이들입니다.

꽃도 피우지 못하고 스러진 어린이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영화도 만들어졌죠.

광주 5·18민주화운동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광주총국에서 5·18민주화운동 41주년을 맞아 당시 사라져 버린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기획 보도로 마련했는데요.

양창희, 김정대 기자가 차례로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헬기가 내려앉는 옛 전남도청 앞 광장.

5.18 도청 진압 작전이 끝난, 1980년 5월 27일 오전입니다.

광장 앞에는 체포된 시위대가 탄 버스가 있습니다.

버스 안을 들여다보니 뜻밖의 모습이 보입니다.

초등학교도 안 들어갔을 것 같은 어린아이입니다.

장발의 청년에게 안겨 있는 남자아이는, 주변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진난만한 얼굴입니다.

최근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통해 발굴된 영상에 촬영된 아이.

누구도 행방을 모르지만 곁에 있던 청년은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20대 초반, 이제는 어느덧 60대에 접어든 이동춘 목포과학대 교수입니다.

도청 앞에서 함께 체포된 고등학생들로부터 아이를 넘겨받았다는 이 교수.

아이를 끌어안고 헌병대까지 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동춘/목포과학대 교수 : "저는 그 아이를 부여안고 그 군인들의 버스에 탑승했고, 이후 군 연병장에서 분류심사를 하면서 반드시 나는 분명히 헌병들한테 인계했던 아이였고…."]

"열사들이 산화한 도청 앞에 어린아이가 있었다.", 누구도 믿지 않을 거란 생각에 40년 동안 마음에 묻어둔 기억은 영상을 통해 되살아났습니다.

[이동춘/목포과학대 교수 : "그 아이의 모습이 눈을 감으면 선하죠. 왜 생각이 안 나겠습니까. 어떻게 살았는지, 죽었는지, 어디에 있는지 왜 궁금하지 않겠어요."]

외신 기자 '노먼 소프'가 촬영한 사진에도 아이의 모습은 어렴풋하게 등장합니다.

이 아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갔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이경률/옛 전남도청 복원추진단 전시콘텐츠팀장 : "밝혀져야 할 행불자(행방불명자), 아직도 전체 사망자 숫자가 불명료한 상황에서 이 아이의 신원 확인 작업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옛 전남도청 복원추진단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넘겨받고 본격적인 조사에 나설 계획입니다.

KBS 뉴스 양창희입니다.

[리포트]

5·18 때 행방불명된 일곱 살 이창현 군, 어느덧 여든을 넘긴 이 군의 아버지는 지금도 개구쟁이 같던 아들의 모습이 어른거립니다.

[이귀복/故 이창현 아버지 : "조그마했을 때부터 어디서 뭐 좀 아이들이랑 뭐 한다고 하면 그냥 자기가 제일 대장이야. 자기가 제일 먼저 가서, 자기가 다 알아서 서두르고 다녔어."]

41년 전, 5월 19일 양동 집을 나선 창현이의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아버지는 십 년 넘게 전국을 떠돌았습니다.

[이귀복/故 이창현 아버지 : "부모가 자식이 죽었는데 어디서 죽었는지도 모르고, 시체도 못 찾고…. 지금 그놈이 살아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짧게 깎은 머리의 사진 속 고교생.

5.18 당시 열일곱 살이던 임옥환 군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고향인 고흥에서 광주로 올라와 하숙생활을 하던 중 실종됐습니다.

계엄군을 피해 친구들과 조선대 뒷산에 올랐다 사라졌다는 목격담만 남았습니다.

[김진덕/故 임옥환 어머니 : "학교 다니면서 부모한테 부담 덜 준다고 남들 간다는 수학여행도 안 가고 신문 배달하고…. 가방만 돌아왔습디다. 우리 아들 가방만 돌아와."]

어머니는 유일한 유품인 아들의 증명사진을 가방에 넣어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보며 안부를 전합니다.

[김진덕/故 임옥환 어머니 : "아들아 거기가 어디인가는 모르겠는데, 꿈에라도 나타나서 '어디 있소' 그러면 찾아가겠어…. 저승 가서 다시 만나서 손잡고 나랑 잘 살아보자. 보고 싶다. 아들."]

5·18 당시 행불자로 인정된 이들 가운데 10대 미성년자는 모두 스물여섯 명, 어린 자녀를 가슴에 묻은 부모들은 죽기 전에 뼛조각이라도 찾을 수 있을지.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정대입니다.

촬영기자:조민웅·정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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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BS네트워크] 5·18 ‘사라진 아이들’…진실은?
    • 입력 2021-05-18 19:31:44
    • 수정2021-09-03 15:31:50
    뉴스7(제주)
[앵커]

제주4·3 73주년을 맞아 주목을 끈 것 중의 하나, 당시 8백 명 넘게 희생된 어린이들입니다.

꽃도 피우지 못하고 스러진 어린이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영화도 만들어졌죠.

광주 5·18민주화운동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광주총국에서 5·18민주화운동 41주년을 맞아 당시 사라져 버린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기획 보도로 마련했는데요.

양창희, 김정대 기자가 차례로 전해드립니다.

[리포트]

헬기가 내려앉는 옛 전남도청 앞 광장.

5.18 도청 진압 작전이 끝난, 1980년 5월 27일 오전입니다.

광장 앞에는 체포된 시위대가 탄 버스가 있습니다.

버스 안을 들여다보니 뜻밖의 모습이 보입니다.

초등학교도 안 들어갔을 것 같은 어린아이입니다.

장발의 청년에게 안겨 있는 남자아이는, 주변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진난만한 얼굴입니다.

최근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통해 발굴된 영상에 촬영된 아이.

누구도 행방을 모르지만 곁에 있던 청년은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20대 초반, 이제는 어느덧 60대에 접어든 이동춘 목포과학대 교수입니다.

도청 앞에서 함께 체포된 고등학생들로부터 아이를 넘겨받았다는 이 교수.

아이를 끌어안고 헌병대까지 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이동춘/목포과학대 교수 : "저는 그 아이를 부여안고 그 군인들의 버스에 탑승했고, 이후 군 연병장에서 분류심사를 하면서 반드시 나는 분명히 헌병들한테 인계했던 아이였고…."]

"열사들이 산화한 도청 앞에 어린아이가 있었다.", 누구도 믿지 않을 거란 생각에 40년 동안 마음에 묻어둔 기억은 영상을 통해 되살아났습니다.

[이동춘/목포과학대 교수 : "그 아이의 모습이 눈을 감으면 선하죠. 왜 생각이 안 나겠습니까. 어떻게 살았는지, 죽었는지, 어디에 있는지 왜 궁금하지 않겠어요."]

외신 기자 '노먼 소프'가 촬영한 사진에도 아이의 모습은 어렴풋하게 등장합니다.

이 아이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갔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이경률/옛 전남도청 복원추진단 전시콘텐츠팀장 : "밝혀져야 할 행불자(행방불명자), 아직도 전체 사망자 숫자가 불명료한 상황에서 이 아이의 신원 확인 작업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옛 전남도청 복원추진단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넘겨받고 본격적인 조사에 나설 계획입니다.

KBS 뉴스 양창희입니다.

[리포트]

5·18 때 행방불명된 일곱 살 이창현 군, 어느덧 여든을 넘긴 이 군의 아버지는 지금도 개구쟁이 같던 아들의 모습이 어른거립니다.

[이귀복/故 이창현 아버지 : "조그마했을 때부터 어디서 뭐 좀 아이들이랑 뭐 한다고 하면 그냥 자기가 제일 대장이야. 자기가 제일 먼저 가서, 자기가 다 알아서 서두르고 다녔어."]

41년 전, 5월 19일 양동 집을 나선 창현이의 시신이라도 찾기 위해 아버지는 십 년 넘게 전국을 떠돌았습니다.

[이귀복/故 이창현 아버지 : "부모가 자식이 죽었는데 어디서 죽었는지도 모르고, 시체도 못 찾고…. 지금 그놈이 살아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짧게 깎은 머리의 사진 속 고교생.

5.18 당시 열일곱 살이던 임옥환 군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며 고향인 고흥에서 광주로 올라와 하숙생활을 하던 중 실종됐습니다.

계엄군을 피해 친구들과 조선대 뒷산에 올랐다 사라졌다는 목격담만 남았습니다.

[김진덕/故 임옥환 어머니 : "학교 다니면서 부모한테 부담 덜 준다고 남들 간다는 수학여행도 안 가고 신문 배달하고…. 가방만 돌아왔습디다. 우리 아들 가방만 돌아와."]

어머니는 유일한 유품인 아들의 증명사진을 가방에 넣어두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보며 안부를 전합니다.

[김진덕/故 임옥환 어머니 : "아들아 거기가 어디인가는 모르겠는데, 꿈에라도 나타나서 '어디 있소' 그러면 찾아가겠어…. 저승 가서 다시 만나서 손잡고 나랑 잘 살아보자. 보고 싶다. 아들."]

5·18 당시 행불자로 인정된 이들 가운데 10대 미성년자는 모두 스물여섯 명, 어린 자녀를 가슴에 묻은 부모들은 죽기 전에 뼛조각이라도 찾을 수 있을지.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정대입니다.

촬영기자:조민웅·정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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