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참전국 청년들이 본 6·25…유해발굴 현장은?

입력 2021.06.26 (09:01) 수정 2021.06.26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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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호국보훈의 달 기획 두 번째 순서, 오늘은 6·25전쟁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을 짚어보겠습니다.

전쟁 기간 32만여 명의 한국군과 유엔군이 전사했는데요.

네. 전사자 유해를 공동 발굴하자는 남북한 정상의 합의는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최효은 리포터, 지금은 우리측 전방 지역에서만 유해발굴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고요?

[답변]

네. 강원도 양구 대우산의 유해발굴 현장을 다녀왔는데요.

70년이 흘렀지만, 전쟁의 참혹함은 아직도 그대로였습니다.

[앵커]

그런데 유해발굴 현장에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왔다고요?

[답변]

네. 탈북민 청년들과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나라의 청년들이 우리 대학생들과 함께 전사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방문했는데요.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 앞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대우산 유해발굴 현장으로 지금부터 함께 가보시죠.

[리포트]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잠들어 있는 곳.

국립서울현충원에 청년들이 하나, 둘 모여듭니다.

[줄리/프랑스인 참가자 : "저는 한국 역사랑 문화 교류에 관심이 있었어요. 오늘 그런 걸 해볼 수 있다고 들어서 오게 됐어요."]

남북한 출신 대학생들과 6.25 전쟁 참전국 청년들이 함께 참배를 왔는데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께 대하여 경례."]

독립운동가 묘역 등 현충원 이곳저곳을 둘러봅니다.

["혹시 (묘지에) 그림자가 드리우면 안 되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양지바른 곳에 집을 만드는 것처럼 묘지도 사람이 사는 집이랑 비슷하거든요)."]

푹푹 찌는 초여름 무더위에 진지하게 설명을 듣는 이 외국 청년은 현충원 방문이 처음이 아니라고 하네요.

[폴린/프랑스인 참가자 : "2, 3년 전에 혼자 방문한 적이 있어요. 왜냐하면 사실 한국 전쟁에서 전사한 프랑스인들이 이곳에도 묻혀 있거든요."]

북에서 온 탈북 청년들에게 현충원 참배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70여 년 전 같은 민족끼리 총칼을 겨눴던 이유를 북한에선 다르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최세은/가명/탈북민 대학생 : "(북한에서) 너무나도 다른 교육을 받았고 너무 복잡해서 그냥 무시하고 싶은 생각이 많았던 거 같아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통일을 위해서도 저희의 역할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제일 먼저 찾아봐야 할 곳이 이런 곳이 아닌가."]

현충원 참배를 하러 갔던 청년들이 강원도 양구 민통선 북쪽의 한 야산에 나타났습니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온 걸까요?

지금 제가 서 있는 이곳은 대우산입니다.

이곳에선 북한의 제27사단과 한국의 해병대 미군 그리고 네덜란드 연합군들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곳입니다.

이 전투로 인해서 약 200여 명의 아군이 실종되거나 전사했는데요.

대우산은 6.25 전쟁 당시 고지를 탈환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입니다.

1951년 7월 휴전회담을 진행하던 도중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대우산 전투가 벌어졌는데요.

24일간 진행된 전투 끝에 국군과 유엔군이 고지를 점령했지만 많은 희생이 뒤따랐습니다.

70여 년이 흐른 지금 능선 곳곳에는 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정하민/프랑스인 참가자 : "사실 올라오면서 착잡하기도 했는데 앞으로 유해발굴하게 되고 참여하게 돼서 살짝 기대도 되고 빨리 발견돼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올라온 거 같습니다."]

대규모 폭격이 있었던 만큼 발굴하는 유해 대부분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라고 하는데요.

["지금 보고 계신 유해는 아래턱뼈 저희 좌측 아래턱뼈 중 우측 반쪽에 해당한다고 보시면 되는 부분이고요."]

전사자들이 사용했던 군용 물품도 함께 발견됩니다.

[한지예/대학생 : "전 실제로 유해라고 하면 사람의 신체가 전체 다 나올 거로 생각했는데 폭탄이 터져서 신체가 찢기고 얼마나 아팠을까라고 실제로 보게 되니 그런 생각도 드는 거 같아요."]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는 발굴팀.

험준한 산악지형 탓에 그냥 걷기도 쉽지 않았는데요.

얼마나 갔을까요? 참혹했던 상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한정희/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발굴팀장 : "다리뼈에 해당이 됩니다. 전투화를 신은 채로 지금 그대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서로 공방전이 치열했기 때문에 유해를 수습 못하고 그대로 현장을 떠나는 경우가 많이 있거든요."]

3년째 유해발굴사업이 진행된 이곳에선 총 35구의 유해가 발굴됐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팔과 다리뼈 등이 조각난 채로 발견됐는데요.

[마석우/육군 상병 : "제가 직접 전쟁을 겪어 보지는 못했지만, 선배님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하루라도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려 보내드리고 싶어서 열심히 굴토 중입니다."]

그런데 유해를 발굴한 뒤 유전자 DNA 검사를 하더라도 대조할 수 있는 유가족 유전자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35구의 유해 가운데 아직 신원이 확인된 사례는 없다고 합니다.

[한정희/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발굴팀장 : "전체 13만 유해 중에 약 10% 정도만 시료가 채취된 상태입니다. 본인의 8촌 이내까지 참전용사가 계신다면 시료를 꼭 채취하셔서 신원 확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청년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특히, 6·25전쟁 참전국에서 온 청년들은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줄리/프랑스인 참가자 : "조금 슬퍼요. 왜냐하면 프랑스 사람들 몇몇이 오래전에 한국(전쟁)에서 사망했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고국이 아니라 다른 국가를 위해서 싸우는 거잖아요. 다른 국가에 와서 사망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워요."]

[이성/탈북민 대학생 : "(탈북민이라) 한국 사람들이랑 같이 고향은 다르지만, 설명 듣고 보니 좀 더 맘이 무겁고 전쟁을 하면서 목숨 바쳐 지켜주신 곳에서 살 수 있게 해주신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총칼을 겨누고 싸운 지 70여 년이 흘렀습니다. 이름도 없는 수많은 전사자의 유해가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쪽짜리가 아닌, 남북 공동 유해발굴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그나마 제대로 전쟁의 상흔을 씻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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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참전국 청년들이 본 6·25…유해발굴 현장은?
    • 입력 2021-06-26 09:01:55
    • 수정2021-06-26 09: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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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호국보훈의 달 기획 두 번째 순서, 오늘은 6·25전쟁전쟁 전사자 유해발굴 사업을 짚어보겠습니다.

전쟁 기간 32만여 명의 한국군과 유엔군이 전사했는데요.

네. 전사자 유해를 공동 발굴하자는 남북한 정상의 합의는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최효은 리포터, 지금은 우리측 전방 지역에서만 유해발굴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고요?

[답변]

네. 강원도 양구 대우산의 유해발굴 현장을 다녀왔는데요.

70년이 흘렀지만, 전쟁의 참혹함은 아직도 그대로였습니다.

[앵커]

그런데 유해발굴 현장에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왔다고요?

[답변]

네. 탈북민 청년들과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나라의 청년들이 우리 대학생들과 함께 전사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방문했는데요.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 앞에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대우산 유해발굴 현장으로 지금부터 함께 가보시죠.

[리포트]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잠들어 있는 곳.

국립서울현충원에 청년들이 하나, 둘 모여듭니다.

[줄리/프랑스인 참가자 : "저는 한국 역사랑 문화 교류에 관심이 있었어요. 오늘 그런 걸 해볼 수 있다고 들어서 오게 됐어요."]

남북한 출신 대학생들과 6.25 전쟁 참전국 청년들이 함께 참배를 왔는데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께 대하여 경례."]

독립운동가 묘역 등 현충원 이곳저곳을 둘러봅니다.

["혹시 (묘지에) 그림자가 드리우면 안 되는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양지바른 곳에 집을 만드는 것처럼 묘지도 사람이 사는 집이랑 비슷하거든요)."]

푹푹 찌는 초여름 무더위에 진지하게 설명을 듣는 이 외국 청년은 현충원 방문이 처음이 아니라고 하네요.

[폴린/프랑스인 참가자 : "2, 3년 전에 혼자 방문한 적이 있어요. 왜냐하면 사실 한국 전쟁에서 전사한 프랑스인들이 이곳에도 묻혀 있거든요."]

북에서 온 탈북 청년들에게 현충원 참배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70여 년 전 같은 민족끼리 총칼을 겨눴던 이유를 북한에선 다르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최세은/가명/탈북민 대학생 : "(북한에서) 너무나도 다른 교육을 받았고 너무 복잡해서 그냥 무시하고 싶은 생각이 많았던 거 같아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통일을 위해서도 저희의 역할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제일 먼저 찾아봐야 할 곳이 이런 곳이 아닌가."]

현충원 참배를 하러 갔던 청년들이 강원도 양구 민통선 북쪽의 한 야산에 나타났습니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온 걸까요?

지금 제가 서 있는 이곳은 대우산입니다.

이곳에선 북한의 제27사단과 한국의 해병대 미군 그리고 네덜란드 연합군들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곳입니다.

이 전투로 인해서 약 200여 명의 아군이 실종되거나 전사했는데요.

대우산은 6.25 전쟁 당시 고지를 탈환하기 위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입니다.

1951년 7월 휴전회담을 진행하던 도중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기 위해 대우산 전투가 벌어졌는데요.

24일간 진행된 전투 끝에 국군과 유엔군이 고지를 점령했지만 많은 희생이 뒤따랐습니다.

70여 년이 흐른 지금 능선 곳곳에는 전쟁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정하민/프랑스인 참가자 : "사실 올라오면서 착잡하기도 했는데 앞으로 유해발굴하게 되고 참여하게 돼서 살짝 기대도 되고 빨리 발견돼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올라온 거 같습니다."]

대규모 폭격이 있었던 만큼 발굴하는 유해 대부분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라고 하는데요.

["지금 보고 계신 유해는 아래턱뼈 저희 좌측 아래턱뼈 중 우측 반쪽에 해당한다고 보시면 되는 부분이고요."]

전사자들이 사용했던 군용 물품도 함께 발견됩니다.

[한지예/대학생 : "전 실제로 유해라고 하면 사람의 신체가 전체 다 나올 거로 생각했는데 폭탄이 터져서 신체가 찢기고 얼마나 아팠을까라고 실제로 보게 되니 그런 생각도 드는 거 같아요."]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는 발굴팀.

험준한 산악지형 탓에 그냥 걷기도 쉽지 않았는데요.

얼마나 갔을까요? 참혹했던 상황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광경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한정희/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발굴팀장 : "다리뼈에 해당이 됩니다. 전투화를 신은 채로 지금 그대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서로 공방전이 치열했기 때문에 유해를 수습 못하고 그대로 현장을 떠나는 경우가 많이 있거든요."]

3년째 유해발굴사업이 진행된 이곳에선 총 35구의 유해가 발굴됐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팔과 다리뼈 등이 조각난 채로 발견됐는데요.

[마석우/육군 상병 : "제가 직접 전쟁을 겪어 보지는 못했지만, 선배님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하루라도 빨리 가족의 품으로 돌려 보내드리고 싶어서 열심히 굴토 중입니다."]

그런데 유해를 발굴한 뒤 유전자 DNA 검사를 하더라도 대조할 수 있는 유가족 유전자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35구의 유해 가운데 아직 신원이 확인된 사례는 없다고 합니다.

[한정희/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발굴팀장 : "전체 13만 유해 중에 약 10% 정도만 시료가 채취된 상태입니다. 본인의 8촌 이내까지 참전용사가 계신다면 시료를 꼭 채취하셔서 신원 확인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청년들은 전쟁의 참혹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특히, 6·25전쟁 참전국에서 온 청년들은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줄리/프랑스인 참가자 : "조금 슬퍼요. 왜냐하면 프랑스 사람들 몇몇이 오래전에 한국(전쟁)에서 사망했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고국이 아니라 다른 국가를 위해서 싸우는 거잖아요. 다른 국가에 와서 사망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워요."]

[이성/탈북민 대학생 : "(탈북민이라) 한국 사람들이랑 같이 고향은 다르지만, 설명 듣고 보니 좀 더 맘이 무겁고 전쟁을 하면서 목숨 바쳐 지켜주신 곳에서 살 수 있게 해주신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총칼을 겨누고 싸운 지 70여 년이 흘렀습니다. 이름도 없는 수많은 전사자의 유해가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쪽짜리가 아닌, 남북 공동 유해발굴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그나마 제대로 전쟁의 상흔을 씻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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