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폭발 참사 1년…벼랑끝에 몰리는 레바논

입력 2021.07.10 (22:19) 수정 2021.07.10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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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이번엔 레바논으로 갑니다.

한때 중동의 빠리로 불렸던 레바논이 지난해 초대형 폭발사고와 코로나 19의 직격탄을 맞아 심각한 경제 위기에 빠졌습니다.

급등하는 물가와 실업률, 화폐가치 폭락까지 3중고에 처하면서 레바논이 지금 벼랑끝에 몰린 상황인데요,

레바논 상황 자세히 살펴봅니다.

두바이의 우수경 특파원, 레바논 경제 지금 어느 정도 심각한가요?

[기자]

네. 지난해 8월 베이루트 항 대폭발 참사에 코로나19 여파까지 겹치면서 레바논의 경제가 자칫 파탄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기름값과 생필품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고요, 국민의 1/3이 실업 상태인데 식료품난까지 가중돼 전체 가구의 77%가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전력 사정도 빠듯해서 일부지역은 하루 22시간이나 정전이 되기도 하는데, 국민들은 발전기를 돌릴 기름을 구입할 여유조차 없는게 현실입니다.

이렇게 되자 하산 디아브 총리는 지난 7일, '레바논의 경제여건이 악화돼 사회적 폭발이 얼마남지 않았다"면서 레바논을 파멸에서 구해 달라고 국제사회에 호소했습니다.

[앵커]

네. 상황이 정말 만만치 않아보이는데요, 레바논이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빠진 건가요?

[기자]

네. 여러 원인들이 있겠지만 레바논의 답답한 정치체제 속에서 그 해답의 일단을 엿볼 수 있습니다.

레바논은 3대 정파인 마론파 기독교와 이슬람 수니파, 그리고 시아파가 권력 균형을 유지한 채 서로 대립과 갈등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정치권의 부패와 고질적인 기득권 병패가 국가 경제를 수렁에 빠뜨렸다며 정부를 강하게 성토하고 있습니다.

기약없는 혼란 속의 레바논을 취재했습니다.

베이루트 항 창고에 쌓여있던 질산암모늄 3천톤의 폭발력은 실로 끔찍했습니다.

도시는 한순간에 초토화되다시피 했고 사망자 최소 200명에 5천여 명 부상, 이재민 30만 명, 17조원의 재산피해가 났습니다.

대폭발 참사는 코로나 19로 가뜩이나 어려워진 레바논 경제에 치명타를 가했습니다.

수도 베이루트의 한 거리.

주유소로 들어가는 차량들이 차선 2개를 차지한 채 장사진을 쳤습니다.

주유소는 오토바이에 기름을 넣으려는 사람들로 이미 만원입니다.

조금이라도 싼값에 기름을 넣으려고 두 세시간씩 기다리기 일쑤지만, 그나마 기름이 달려 정해진 양밖에 넣을 수 없습니다.

[왈리드/베이루트 시민 : "경유값이 더 비싸졌어요. 발전기도 고장났고요. 이 나라에서는 아무것도 작동되는 게 없습니다. 두고 보세요, 조금 있으면 사람들이 서로 죽이기 시작할 거예요."]

지난달 29일 정부가 휘발유와 경유값을 40%가까이 올리자, 국민들은 기름값을 감당하기 힘들다며 한숨을 내쉽니다.

[아마르 니콜라스/베이루트 시민 : "저 긴 줄을 좀 보세요. 정치인들에게 이 상황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요. 신에게 도와달라고 할 수 밖에 없네요."]

먹고 사는 문제도 심각합니다.

레바논 북부 도시 트리폴리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타하 리즈씨는 지난 5월부터 한 달에 3일만 문을 엽니다.

외화 부족으로 밀가루 수입이 크게 준데다 값이 급등하면서 더 이상 빵을 만들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진열대는 텅 비었고 종업원들도 거의 떠났습니다.

[타하 리즈/빵가게 주인 : "종업원이 여기 한 명, 여기, 여기, 여기에도 한 명, 저기에도 있었죠. 작업대와 계산대가 이 곳에 꽉 들어 찼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장사가 힘들어 다 줄였죠."]

생활이 갈수록 빠듯해지면서 도로가의 철제 맨홀 뚜껑까지 훔쳐가는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닥치는대로 가져가는 게 일상화되다시피 했습니다.

[부자르 호사/'케어 인터네셔널 컨트리' 대표 : "불행히도 북부 레바논 지역이 다른 곳보다 훨씬 더 심각합니다. 상황이 하루하루 나빠지고 있어요."]

밤이 되면 레바논의 도시는 암흑으로 변합니다.

기름 부족으로 두세 시간 정도만 전력을 공급할 수 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고, 이들은 타이어와 쓰레기를 불태우며 정부를 성토했습니다.

[알리 스웨이드/시위대 : "모두 배가 고파요. 먹을 게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집에는 전기도 없죠. 그 누구도 아이에게 우유를 사 먹일 여력이 없어요. 그래서 여기 나온겁니다."]

빠듯한 재정난에 동물들도 수난을 겪고 있습니다.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한 맹수들은 기진맥진해 온종일 누워만 지냅니다.

이 동물원에서만 호랑이와 사자 등 250마리의 동물들이 이미 해외로 보금자리를 옮겼습니다

[제이슨 미어/'레바논의 동물들'대표 : "이 정도 규모의 동물원에서 입장료만으로는 동물들을 제대로 돌볼 수 없습니다."]

레바논의 경제 위기는 화폐가치 급락으로 이어졌습니다.

레바논 파운드화 가치가 2년여 만에 90%가까이 폭락하면서, 인구 600만 명의 절반이 빈곤층인 레바논 국민의 삶은 한계상황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사디 라바비디/16살·학교 중퇴 : "어느날 일어나 보니 가난해져 있더라고요. 지금 모든 게 비싸고 달러 값도 급등했어요. 이젠 놀이공원도, 해변에도 놀러 갈 수가 없습니다."]

극심한 재정위기 속에 레바논 군도 위험에 처했습니다.

조셉 아운 육군참모총장은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 군대도 무너질 것이라며,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급기야 레바논 공군은 자체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군용 헬기를 여행 상품으로 내놓기까지 했습니다.

레바논은 지난해 대폭발 참사로 총리와 내각이 총사퇴한 이후 1년이 다 되도록 새 내각을 구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산적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구심점이 없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세계은행 (IBRD)은 최근 "레바논이 1850년대 이후 세계역사에서 가장 심각하고 장기적인 불황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레바논 정부가 이 총체적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을 지, 아니면 이대로 회복불능 상태에 빠질 지.. 레바논은 지금 국가 존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두바이에서 우수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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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폭발 참사 1년…벼랑끝에 몰리는 레바논
    • 입력 2021-07-10 22:19:15
    • 수정2021-07-10 22:33:19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앵커]

이번엔 레바논으로 갑니다.

한때 중동의 빠리로 불렸던 레바논이 지난해 초대형 폭발사고와 코로나 19의 직격탄을 맞아 심각한 경제 위기에 빠졌습니다.

급등하는 물가와 실업률, 화폐가치 폭락까지 3중고에 처하면서 레바논이 지금 벼랑끝에 몰린 상황인데요,

레바논 상황 자세히 살펴봅니다.

두바이의 우수경 특파원, 레바논 경제 지금 어느 정도 심각한가요?

[기자]

네. 지난해 8월 베이루트 항 대폭발 참사에 코로나19 여파까지 겹치면서 레바논의 경제가 자칫 파탄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기름값과 생필품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고요, 국민의 1/3이 실업 상태인데 식료품난까지 가중돼 전체 가구의 77%가 식량 부족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전력 사정도 빠듯해서 일부지역은 하루 22시간이나 정전이 되기도 하는데, 국민들은 발전기를 돌릴 기름을 구입할 여유조차 없는게 현실입니다.

이렇게 되자 하산 디아브 총리는 지난 7일, '레바논의 경제여건이 악화돼 사회적 폭발이 얼마남지 않았다"면서 레바논을 파멸에서 구해 달라고 국제사회에 호소했습니다.

[앵커]

네. 상황이 정말 만만치 않아보이는데요, 레바논이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빠진 건가요?

[기자]

네. 여러 원인들이 있겠지만 레바논의 답답한 정치체제 속에서 그 해답의 일단을 엿볼 수 있습니다.

레바논은 3대 정파인 마론파 기독교와 이슬람 수니파, 그리고 시아파가 권력 균형을 유지한 채 서로 대립과 갈등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정치권의 부패와 고질적인 기득권 병패가 국가 경제를 수렁에 빠뜨렸다며 정부를 강하게 성토하고 있습니다.

기약없는 혼란 속의 레바논을 취재했습니다.

베이루트 항 창고에 쌓여있던 질산암모늄 3천톤의 폭발력은 실로 끔찍했습니다.

도시는 한순간에 초토화되다시피 했고 사망자 최소 200명에 5천여 명 부상, 이재민 30만 명, 17조원의 재산피해가 났습니다.

대폭발 참사는 코로나 19로 가뜩이나 어려워진 레바논 경제에 치명타를 가했습니다.

수도 베이루트의 한 거리.

주유소로 들어가는 차량들이 차선 2개를 차지한 채 장사진을 쳤습니다.

주유소는 오토바이에 기름을 넣으려는 사람들로 이미 만원입니다.

조금이라도 싼값에 기름을 넣으려고 두 세시간씩 기다리기 일쑤지만, 그나마 기름이 달려 정해진 양밖에 넣을 수 없습니다.

[왈리드/베이루트 시민 : "경유값이 더 비싸졌어요. 발전기도 고장났고요. 이 나라에서는 아무것도 작동되는 게 없습니다. 두고 보세요, 조금 있으면 사람들이 서로 죽이기 시작할 거예요."]

지난달 29일 정부가 휘발유와 경유값을 40%가까이 올리자, 국민들은 기름값을 감당하기 힘들다며 한숨을 내쉽니다.

[아마르 니콜라스/베이루트 시민 : "저 긴 줄을 좀 보세요. 정치인들에게 이 상황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요. 신에게 도와달라고 할 수 밖에 없네요."]

먹고 사는 문제도 심각합니다.

레바논 북부 도시 트리폴리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타하 리즈씨는 지난 5월부터 한 달에 3일만 문을 엽니다.

외화 부족으로 밀가루 수입이 크게 준데다 값이 급등하면서 더 이상 빵을 만들기가 어렵게 됐습니다.

진열대는 텅 비었고 종업원들도 거의 떠났습니다.

[타하 리즈/빵가게 주인 : "종업원이 여기 한 명, 여기, 여기, 여기에도 한 명, 저기에도 있었죠. 작업대와 계산대가 이 곳에 꽉 들어 찼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장사가 힘들어 다 줄였죠."]

생활이 갈수록 빠듯해지면서 도로가의 철제 맨홀 뚜껑까지 훔쳐가는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돈이 되는 것이라면 닥치는대로 가져가는 게 일상화되다시피 했습니다.

[부자르 호사/'케어 인터네셔널 컨트리' 대표 : "불행히도 북부 레바논 지역이 다른 곳보다 훨씬 더 심각합니다. 상황이 하루하루 나빠지고 있어요."]

밤이 되면 레바논의 도시는 암흑으로 변합니다.

기름 부족으로 두세 시간 정도만 전력을 공급할 수 밖에 없는 형편입니다.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한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왔고, 이들은 타이어와 쓰레기를 불태우며 정부를 성토했습니다.

[알리 스웨이드/시위대 : "모두 배가 고파요. 먹을 게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집에는 전기도 없죠. 그 누구도 아이에게 우유를 사 먹일 여력이 없어요. 그래서 여기 나온겁니다."]

빠듯한 재정난에 동물들도 수난을 겪고 있습니다.

먹이를 제대로 먹지 못한 맹수들은 기진맥진해 온종일 누워만 지냅니다.

이 동물원에서만 호랑이와 사자 등 250마리의 동물들이 이미 해외로 보금자리를 옮겼습니다

[제이슨 미어/'레바논의 동물들'대표 : "이 정도 규모의 동물원에서 입장료만으로는 동물들을 제대로 돌볼 수 없습니다."]

레바논의 경제 위기는 화폐가치 급락으로 이어졌습니다.

레바논 파운드화 가치가 2년여 만에 90%가까이 폭락하면서, 인구 600만 명의 절반이 빈곤층인 레바논 국민의 삶은 한계상황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사디 라바비디/16살·학교 중퇴 : "어느날 일어나 보니 가난해져 있더라고요. 지금 모든 게 비싸고 달러 값도 급등했어요. 이젠 놀이공원도, 해변에도 놀러 갈 수가 없습니다."]

극심한 재정위기 속에 레바논 군도 위험에 처했습니다.

조셉 아운 육군참모총장은 경제 상황이 악화되면 군대도 무너질 것이라며,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했습니다.

급기야 레바논 공군은 자체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군용 헬기를 여행 상품으로 내놓기까지 했습니다.

레바논은 지난해 대폭발 참사로 총리와 내각이 총사퇴한 이후 1년이 다 되도록 새 내각을 구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산적한 사회,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구심점이 없는 상황에서 국민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세계은행 (IBRD)은 최근 "레바논이 1850년대 이후 세계역사에서 가장 심각하고 장기적인 불황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레바논 정부가 이 총체적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을 지, 아니면 이대로 회복불능 상태에 빠질 지.. 레바논은 지금 국가 존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두바이에서 우수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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