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팀장] “내가 노는 게 아니잖아요”…직업 두고 다투다 어머니 살해

입력 2021.07.14 (19:28) 수정 2021.07.14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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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사고의 뒷이야기를 자세히 풀어보는 사건팀장 시간입니다.

성용희 사건팀장, 오늘은 어떤 사건입니까?

[기자]

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죠.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인식이 좋지 않은 직업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창 3D 업종 기피 현상이 문제가 됐던 것처럼 특히 우리나라에서 이런 경향이 심해 때로는 직업을 두고 심한 갈등을 빚는 가정도 있는데요.

오늘은 자신의 직업을 두고 어머니와 갈등을 빚다가 결국, 어머니를 살해한 아들과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앵커]

성 기자 말 대로 자녀 진로를 두고 갈등을 겪는 경우는 종종 있는 일이고 직업도 마찬가지인데, 어쩌다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진 건가요?

[기자]

네, 서울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내던 26살 강 모 씨는 3년 전, 서울보다 집값이 비교적 저렴한 대전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러면서 대전 동구에 있는 한 식품업체에 취직해 돼지를 도축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홀로 있던 강 씨 어머니는 강 씨가 일을 시작하고 1년쯤 뒤 아파트 전세 기간이 끝나면서 대전으로 내려와 모자가 단둘이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갈등은 이때부터였습니다.

강 씨 스스로도 비교적 젊은 나이에 도축 일을 하는 것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에게서 "언제까지 그런 일을 할 거냐", "나한테 미안한 줄 알아라" 이런 본인의 직업에 대한 불만을 듣게 된 겁니다.

이 말을 듣고 강 씨는 경기도 부천에 있는 육류가공업체로 직장을 옮겼지만, 이전 직장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대전으로 돌아왔는데 그 뒤로 자주 직장 문제로 어머니와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앵커]

아들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도 이해가 되고, 또 이런 소리를 계속 듣게 되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아들의 입장도 이해가 되는데요.

모자의 갈등이 이대로 계속 깊어졌던 거군요?

[기자]

네, 강 씨는 대전으로 돌아온 뒤에 가구 공장이나 식재료 공장을 전전했습니다.

이런 아들에게 어머니는 "왜 진득하게 일을 못 하고 방황하느냐"며 나무랐고, 강 씨는 자신이 노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면서 다퉜습니다.

심지어 올해 초, 한 병원에서 구급차 운전을 하고 있을 때는 이런 다툼 때문에 결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2월, 설 명절을 앞둔 주말 모자가 함께 식사를 하던 중 결국,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강 씨가 병원 일을 앞으로 열심히 해보겠다고 했지만, 또다시 말다툼이 시작됐고 급기야 반복된 다툼에 화가 난 강 씨는 "차를 몰고 나가 목숨을 끊겠다"는 말을 내뱉었습니다.

이에 화가 난 어머니가 나가서 그렇게 하라고 말을 했는데, 이에 격분한 강 씨는 장롱 안에 보관 중이던 흉기로 어머니를 수차례 찔러 숨지게 했습니다.

[앵커]

아무리 화가 난다지만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군요.

범행 이후에 강 씨는 어떻게 됐습니까?

[기자]

네, 강 씨는 곧바로 스스로 경찰에 신고해 자수했습니다.

그리고 존속살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1심 법원 재판부는 강 씨가 자수를 한 점과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 점, 범죄전력이 없는 점을 참작했습니다.

특히 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면서 다툼이 있었지만 강 씨가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였고, 우발적인 범행으로 보이는 점을 유리한 정황으로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길러준 어머니를 여러 차례 흉기로 찔러 살해한 범행은 이유가 어찌 됐든 용납될 수 없는 패륜적이고 반사회적인 범죄라고 판시했습니다.

또 다른 가족들이 평생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충격을 입은 점을 고려하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강 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습니다.

[앵커]

징역 15년이면 가볍지 않은 죗값을 받게 된 건데, 검찰이 청구한 보호관찰 명령은 기각됐다고요?

[기자]

네, 검찰은 강 씨가 같은 살인 범죄를 다시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며 보호관찰 명령도 청구했습니다.

그러니까 강 씨가 형을 다 살고 사회에 나와도 일정한 감독과 지도가 필요하다는 건데요.

재판부는 검찰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강 씨에 대한 재범 위험성을 평가했는데 '중간' 수준으로 평가됐고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다는 점, 또 이 사건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근거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처분을 떠나 직업 때문에 빚어진 갈등으로 사람이 목숨을 잃는 참극까지 벌어진 게 이 사건의 핵심인데요.

우리 사회가 아직 '평생직장'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또 직업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경향도 있는 게 사실이죠.

이번 사건이 이런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씁쓸한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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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건팀장] “내가 노는 게 아니잖아요”…직업 두고 다투다 어머니 살해
    • 입력 2021-07-14 19:28:40
    • 수정2021-07-14 19:56:01
    뉴스7(대전)
[앵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사건·사고의 뒷이야기를 자세히 풀어보는 사건팀장 시간입니다.

성용희 사건팀장, 오늘은 어떤 사건입니까?

[기자]

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죠.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인식이 좋지 않은 직업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한창 3D 업종 기피 현상이 문제가 됐던 것처럼 특히 우리나라에서 이런 경향이 심해 때로는 직업을 두고 심한 갈등을 빚는 가정도 있는데요.

오늘은 자신의 직업을 두고 어머니와 갈등을 빚다가 결국, 어머니를 살해한 아들과 이에 대한 법원의 판단을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앵커]

성 기자 말 대로 자녀 진로를 두고 갈등을 겪는 경우는 종종 있는 일이고 직업도 마찬가지인데, 어쩌다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진 건가요?

[기자]

네, 서울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내던 26살 강 모 씨는 3년 전, 서울보다 집값이 비교적 저렴한 대전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러면서 대전 동구에 있는 한 식품업체에 취직해 돼지를 도축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 홀로 있던 강 씨 어머니는 강 씨가 일을 시작하고 1년쯤 뒤 아파트 전세 기간이 끝나면서 대전으로 내려와 모자가 단둘이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갈등은 이때부터였습니다.

강 씨 스스로도 비교적 젊은 나이에 도축 일을 하는 것에 회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에게서 "언제까지 그런 일을 할 거냐", "나한테 미안한 줄 알아라" 이런 본인의 직업에 대한 불만을 듣게 된 겁니다.

이 말을 듣고 강 씨는 경기도 부천에 있는 육류가공업체로 직장을 옮겼지만, 이전 직장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대전으로 돌아왔는데 그 뒤로 자주 직장 문제로 어머니와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앵커]

아들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도 이해가 되고, 또 이런 소리를 계속 듣게 되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는 아들의 입장도 이해가 되는데요.

모자의 갈등이 이대로 계속 깊어졌던 거군요?

[기자]

네, 강 씨는 대전으로 돌아온 뒤에 가구 공장이나 식재료 공장을 전전했습니다.

이런 아들에게 어머니는 "왜 진득하게 일을 못 하고 방황하느냐"며 나무랐고, 강 씨는 자신이 노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면서 다퉜습니다.

심지어 올해 초, 한 병원에서 구급차 운전을 하고 있을 때는 이런 다툼 때문에 결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지난 2월, 설 명절을 앞둔 주말 모자가 함께 식사를 하던 중 결국,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강 씨가 병원 일을 앞으로 열심히 해보겠다고 했지만, 또다시 말다툼이 시작됐고 급기야 반복된 다툼에 화가 난 강 씨는 "차를 몰고 나가 목숨을 끊겠다"는 말을 내뱉었습니다.

이에 화가 난 어머니가 나가서 그렇게 하라고 말을 했는데, 이에 격분한 강 씨는 장롱 안에 보관 중이던 흉기로 어머니를 수차례 찔러 숨지게 했습니다.

[앵커]

아무리 화가 난다지만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군요.

범행 이후에 강 씨는 어떻게 됐습니까?

[기자]

네, 강 씨는 곧바로 스스로 경찰에 신고해 자수했습니다.

그리고 존속살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1심 법원 재판부는 강 씨가 자수를 한 점과 잘못을 반성하고 있는 점, 범죄전력이 없는 점을 참작했습니다.

특히 어머니와 함께 거주하면서 다툼이 있었지만 강 씨가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였고, 우발적인 범행으로 보이는 점을 유리한 정황으로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길러준 어머니를 여러 차례 흉기로 찔러 살해한 범행은 이유가 어찌 됐든 용납될 수 없는 패륜적이고 반사회적인 범죄라고 판시했습니다.

또 다른 가족들이 평생 씻을 수 없는 정신적 충격을 입은 점을 고려하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며 강 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습니다.

[앵커]

징역 15년이면 가볍지 않은 죗값을 받게 된 건데, 검찰이 청구한 보호관찰 명령은 기각됐다고요?

[기자]

네, 검찰은 강 씨가 같은 살인 범죄를 다시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며 보호관찰 명령도 청구했습니다.

그러니까 강 씨가 형을 다 살고 사회에 나와도 일정한 감독과 지도가 필요하다는 건데요.

재판부는 검찰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강 씨에 대한 재범 위험성을 평가했는데 '중간' 수준으로 평가됐고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없다는 점, 또 이 사건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근거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처분을 떠나 직업 때문에 빚어진 갈등으로 사람이 목숨을 잃는 참극까지 벌어진 게 이 사건의 핵심인데요.

우리 사회가 아직 '평생직장'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또 직업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경향도 있는 게 사실이죠.

이번 사건이 이런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씁쓸한 사례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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