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한반도] 북중 우호조약 60주년…美 보란 듯 밀착 과시

입력 2021.07.17 (08:33) 수정 2021.07.17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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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남북의 창 시작하겠습니다.

북·중 우호조약이 체결된 지 60주년을 맞았습니다.

상대국이 무력 침공을 받으면 전쟁에 자동 개입하는 조항을 담고 있어서 이른바‘혈맹’을 상징하는 조약인데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친서를 교환하면서 대내외에 결속을 과시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 동안 북·중 양국 관계는 정세 변화에 따라 부침을 겪기도 했는데요.

북·중 밀착 행보의 배경과 의도, <이슈 앤 한반도>에서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화면 보시고 전문가와 함께 이어가겠습니다.

[리포트]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1일 방영한 중국 영화‘건당위업’. 중국과 홍콩의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는 이 영화는 1921년 중국 공산당이 성립되기까지 파란만장한 과정을 그렸습니다.

["저는 전력을 다하여 중화민국을 강대한 나라로 만들겠습니다."]

북한 TV는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인 지난 1일부터 중국 영화와 드라마를 잇달아 편성하며 북·중 우호 관계를 부각했습니다.

양국의 밀착 과시가 최고조에 달한 건 북·중 우호조약 체결 60주년이 된 지난 11일...

[조선중앙TV/김정은 위원장 친서 대독 : "적대 세력들의 도전과 방해 책동이 보다 악랄해지고 있는 오늘 (북·중은) 더욱 강한 생활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친서를 교환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중국 관영 CCTV도 양국 정상의 친서 교환 소식을 메인뉴스에서 머리기사로 다뤘고,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도 1면에 해당 소식을 대대적으로 알렸습니다.

[중국 관영 CCTV 보도/7월 11일 : "(시진핑 주석은 축전에서)‘중조 우호조약’을 체결해서 양국 인민의 피로 맺어진 전투적 우의를 공고히 하고 양국의 지속적인 우호 합작을 촉진하는 중요한 정치 법률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밝혔습니다. "]

10년 전 북·중 우호조약 체결 50주년 때는 서로 대표단을 보내며 성대하게 기념했던 북한과 중국.

올해는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북한 주재 리진쥔 중국대사를 초청해 연회를 열었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정례 브리핑에서 북·중 우호조약을 연장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자오리젠/中 외교부 대변인/7월 12일 :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중조 우호조약 규정에 따라 이 조약은 쌍방이 개정을 하거나 종료에 합의할 때까지 유효합니다."]

북·중 양국은 우호조약 체결 60주년을 맞아 당초 점쳐졌던 고위급 교류는 하지 않았습니다.

북·중 우호조약은 1961년 김일성 주석과 저우언라이 총리가 체결했는데요.

이른바 혈맹으로 불리는 북·중 관계도 과거 우여곡절을 겪으며 경색됐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1961년 7월 11일 김일성 주석이 베이징을 방문해 저우언라이 당시 중국 총리와 체결한 북·중 우호조약..

양국 중 한 나라가 외부의 무력 침공을 받으면 상대방 국가도 전쟁에 자동 개입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박원곤/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 "1960년대부터 중국과 소련 당시 소련이 갈등을 시작했습니다. 북한으로선 어떻게든지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이런 조약을 체결했다고 판단되고요. 중국이 그런 판단을 하게 된 건 소련보단 좀 더 북한에 유리한 우호적인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했다..."]

1982년 당시에는 덩샤오핑 주석과 후야오방 총서기가 방북해 김일성 주석의 70회 생일을 축하했고, 김 주석도 여러 차례 중국을 찾았습니다.

김정일 시대에도 북·중 외교는 북한 외교의 중요한 축이었습니다.

[北 기록영화 ‘위대한 김정일 동지는 세계 정치의 원로이시다’ : "사회주의 나라들과의 친선 단결을 더욱 강화하기 위하여 1983년 6월 역사적인 중국 방문의 길에 오르신 위대한 장군님..."]

하지만 냉전이 종식되고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서면서 양국 관계는 급속히 얼어붙었습니다.

급기야 1992년 8월 한중 양국의 수교는 북한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고영환/前 북한 외교관 : "한중 수교 그때 당시 김정일의 표현에 의하면 중국 사람들이 우리 등에 칼을 꽂았다. 고난의 행군이라는 거 있지 않았습니까, 그때 중국에 지원을 요청도 안 했고 중국도 지원을 안 했고...그래서 최소 30만 최대 300만 명이 굶어 죽는 상황에서도 중국이 지원을 안 해줬거든요."]

삐걱대던 북·중 관계는 김정은 위원장 집권 초중반에 더욱 악화됐습니다.

[KBS 뉴스/2012년 12월 :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 13시간 만에 발사 장면을 공개했습니다."]

국제사회의 압박에 중국은 결국 대북 제재 결의안 채택에도 참여하게 됐습니다.

[실비 루카스/유엔안보리 순회 의장/2014년 3월 : "안보리 이사국들은 안보리 결의 1718호, 1874호, 2087호, 2094호를 위반한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했습니다."]

냉랭하던 북·중 관계는 2015년 중국 전승절 기념 열병식에서도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각별한 예우를 받았던 한국, 러시아 정상과는 달리 북한 대표 자격으로 참석한 최룡해는 대열 맨 끝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깊어가던 북·중 갈등은 2018년을 기점으로 반전을 맞았습니다. 2018년 3월을 시작으로 김정은 위원장은 이듬해까지 연달아 네 차례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시진핑 주석도 2019년 중국 최고지도자로서는 14년 만에 북한을 방문하는 등 북·중 관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감지됐습니다.

[박원곤/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 "이런 일련의 상황을 보면 역시 북한도 이념을 강조하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실리죠. 국가 이익을 먼저 추구하는 모습이 전통적인 혈맹이라고 불리는 북·중 간에도 이뤄지고 있다고 볼 여지가 크고요."]

미국의 대화 제안을 거부한 북한은 최근 중국과 대면 외교를 재개했습니다.

양국 대사가 서로의 기관지에 나란히 기고문을 싣는 등 밀착 행보를 한층 강화하는 모양새입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유엔 국제회의 보고서에서 식량난을 처음으로 인정했습니다.

한 달 전 김정은 위원장이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식량난을 거론하긴 했지만, 북한이 국제무대에서 어려움을 호소한 건 이례적인데요.

북한은 연이은 제재와 국경봉쇄가 경제난의 주된 이유라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유엔 화상회의를 통해 자발적 국가별 검토 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북한의 식량 사정. 보고서는 2018년 북한의 곡물 생산량이 495만 톤으로, 최근 10년 사이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코로나19와 태풍 피해가 겹친 지난해엔 552만 톤의 곡물을 생산했습니다.

[김성/주유엔 북한대표부 대사/현지시간 7월 13일 : "우리가 보고서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북한에 대한 지속적인 제재와 자연재해 위기는 장애물입니다."]

일각에선 북한이 국제사회의 지원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경봉쇄로 인한 고립이 계속되면서 북한은 중국과 밀착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는 모양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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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7-17 08:33:51
    • 수정2021-07-17 08:5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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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남북의 창 시작하겠습니다.

북·중 우호조약이 체결된 지 60주년을 맞았습니다.

상대국이 무력 침공을 받으면 전쟁에 자동 개입하는 조항을 담고 있어서 이른바‘혈맹’을 상징하는 조약인데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친서를 교환하면서 대내외에 결속을 과시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 동안 북·중 양국 관계는 정세 변화에 따라 부침을 겪기도 했는데요.

북·중 밀착 행보의 배경과 의도, <이슈 앤 한반도>에서 짚어보겠습니다.

먼저 화면 보시고 전문가와 함께 이어가겠습니다.

[리포트]

북한 조선중앙TV가 지난 1일 방영한 중국 영화‘건당위업’. 중국과 홍콩의 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는 이 영화는 1921년 중국 공산당이 성립되기까지 파란만장한 과정을 그렸습니다.

["저는 전력을 다하여 중화민국을 강대한 나라로 만들겠습니다."]

북한 TV는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인 지난 1일부터 중국 영화와 드라마를 잇달아 편성하며 북·중 우호 관계를 부각했습니다.

양국의 밀착 과시가 최고조에 달한 건 북·중 우호조약 체결 60주년이 된 지난 11일...

[조선중앙TV/김정은 위원장 친서 대독 : "적대 세력들의 도전과 방해 책동이 보다 악랄해지고 있는 오늘 (북·중은) 더욱 강한 생활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이 친서를 교환했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중국 관영 CCTV도 양국 정상의 친서 교환 소식을 메인뉴스에서 머리기사로 다뤘고,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도 1면에 해당 소식을 대대적으로 알렸습니다.

[중국 관영 CCTV 보도/7월 11일 : "(시진핑 주석은 축전에서)‘중조 우호조약’을 체결해서 양국 인민의 피로 맺어진 전투적 우의를 공고히 하고 양국의 지속적인 우호 합작을 촉진하는 중요한 정치 법률의 기초를 마련했다고 밝혔습니다. "]

10년 전 북·중 우호조약 체결 50주년 때는 서로 대표단을 보내며 성대하게 기념했던 북한과 중국.

올해는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북한 주재 리진쥔 중국대사를 초청해 연회를 열었습니다.

중국 외교부는 정례 브리핑에서 북·중 우호조약을 연장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자오리젠/中 외교부 대변인/7월 12일 :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중조 우호조약 규정에 따라 이 조약은 쌍방이 개정을 하거나 종료에 합의할 때까지 유효합니다."]

북·중 양국은 우호조약 체결 60주년을 맞아 당초 점쳐졌던 고위급 교류는 하지 않았습니다.

북·중 우호조약은 1961년 김일성 주석과 저우언라이 총리가 체결했는데요.

이른바 혈맹으로 불리는 북·중 관계도 과거 우여곡절을 겪으며 경색됐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1961년 7월 11일 김일성 주석이 베이징을 방문해 저우언라이 당시 중국 총리와 체결한 북·중 우호조약..

양국 중 한 나라가 외부의 무력 침공을 받으면 상대방 국가도 전쟁에 자동 개입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박원곤/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 "1960년대부터 중국과 소련 당시 소련이 갈등을 시작했습니다. 북한으로선 어떻게든지 중국과 소련 사이에서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이런 조약을 체결했다고 판단되고요. 중국이 그런 판단을 하게 된 건 소련보단 좀 더 북한에 유리한 우호적인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했다..."]

1982년 당시에는 덩샤오핑 주석과 후야오방 총서기가 방북해 김일성 주석의 70회 생일을 축하했고, 김 주석도 여러 차례 중국을 찾았습니다.

김정일 시대에도 북·중 외교는 북한 외교의 중요한 축이었습니다.

[北 기록영화 ‘위대한 김정일 동지는 세계 정치의 원로이시다’ : "사회주의 나라들과의 친선 단결을 더욱 강화하기 위하여 1983년 6월 역사적인 중국 방문의 길에 오르신 위대한 장군님..."]

하지만 냉전이 종식되고 중국이 개혁개방에 나서면서 양국 관계는 급속히 얼어붙었습니다.

급기야 1992년 8월 한중 양국의 수교는 북한에 큰 충격을 안겼습니다.

[고영환/前 북한 외교관 : "한중 수교 그때 당시 김정일의 표현에 의하면 중국 사람들이 우리 등에 칼을 꽂았다. 고난의 행군이라는 거 있지 않았습니까, 그때 중국에 지원을 요청도 안 했고 중국도 지원을 안 했고...그래서 최소 30만 최대 300만 명이 굶어 죽는 상황에서도 중국이 지원을 안 해줬거든요."]

삐걱대던 북·중 관계는 김정은 위원장 집권 초중반에 더욱 악화됐습니다.

[KBS 뉴스/2012년 12월 : "북한이 장거리 로켓 발사 13시간 만에 발사 장면을 공개했습니다."]

국제사회의 압박에 중국은 결국 대북 제재 결의안 채택에도 참여하게 됐습니다.

[실비 루카스/유엔안보리 순회 의장/2014년 3월 : "안보리 이사국들은 안보리 결의 1718호, 1874호, 2087호, 2094호를 위반한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했습니다."]

냉랭하던 북·중 관계는 2015년 중국 전승절 기념 열병식에서도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각별한 예우를 받았던 한국, 러시아 정상과는 달리 북한 대표 자격으로 참석한 최룡해는 대열 맨 끝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깊어가던 북·중 갈등은 2018년을 기점으로 반전을 맞았습니다. 2018년 3월을 시작으로 김정은 위원장은 이듬해까지 연달아 네 차례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시진핑 주석도 2019년 중국 최고지도자로서는 14년 만에 북한을 방문하는 등 북·중 관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감지됐습니다.

[박원곤/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 : "이런 일련의 상황을 보면 역시 북한도 이념을 강조하긴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실리죠. 국가 이익을 먼저 추구하는 모습이 전통적인 혈맹이라고 불리는 북·중 간에도 이뤄지고 있다고 볼 여지가 크고요."]

미국의 대화 제안을 거부한 북한은 최근 중국과 대면 외교를 재개했습니다.

양국 대사가 서로의 기관지에 나란히 기고문을 싣는 등 밀착 행보를 한층 강화하는 모양새입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유엔 국제회의 보고서에서 식량난을 처음으로 인정했습니다.

한 달 전 김정은 위원장이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식량난을 거론하긴 했지만, 북한이 국제무대에서 어려움을 호소한 건 이례적인데요.

북한은 연이은 제재와 국경봉쇄가 경제난의 주된 이유라고 밝혔습니다.

북한이 유엔 화상회의를 통해 자발적 국가별 검토 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북한의 식량 사정. 보고서는 2018년 북한의 곡물 생산량이 495만 톤으로, 최근 10년 사이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고 밝혔습니다.

코로나19와 태풍 피해가 겹친 지난해엔 552만 톤의 곡물을 생산했습니다.

[김성/주유엔 북한대표부 대사/현지시간 7월 13일 : "우리가 보고서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북한에 대한 지속적인 제재와 자연재해 위기는 장애물입니다."]

일각에선 북한이 국제사회의 지원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경봉쇄로 인한 고립이 계속되면서 북한은 중국과 밀착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는 모양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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