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영원히 증언할게”…‘AI’ 위안부 할머니와의 대화

입력 2021.08.14 (12: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14일)은 고 김학순 할머니가 국내에서 위안부의 존재를 처음 증언한 지 꼭 30년 되는 날입니다.

할머니의 '증언'은 침묵을 깨는 기폭제가 됐습니다. 많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게 했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습니다. 정부에 등록된 피해 할머니 240명 중 생존자는 14명뿐입니다.

할머니들에게 묻고 들을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피해 할머니들 모두 고령인데다 코로나19 확산 탓에 예전처럼 할머니들이 사람들 앞에 서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 할머니들과 영상 통화하듯...'영원한 증언' 프로젝트

지난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에 이용수 할머니와 이옥선 할머니를 만나러 갔습니다. 할머니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 드리니 할머니들은 "반갑습니다"하고 맞아주셨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이 좋지 않은데 고령의 할머니들을 어떻게 만났을까요. 제가 만난 건 미리 녹화된 할머니들의 증언 영상입니다. 하지만 실제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 못지 않게 실감이 났습니다.

성인 여자 키만한 대형 화면에 녹화된 할머니가 나오고, 할머니들과 영상 통화하듯 묻고 답할 수 있었습니다.

이옥선 할머니에게 안부 인사를 건네자, 할머니는 허허 웃으며 근황을 이야기했습니다.


Q. 코로나가 심한데 괜찮으세요?
A. 지금은 외국을 다니지 못하고 찾아오는 손님이 없으니 증언도 못 하니 심심하잖아요. 밥 먹고 화투 쳐요.

얼굴을 맞대고 묻기 어려운 질문도 했습니다. 이옥선 할머니는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하지만 분명하게 이야기했습니다.


Q. 위안소에서는 어떤 일을 당했나요.
A. 일본 사람들이 잘한 일이 없어요. 우리 나이 어린 한국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 간 게 없다, 그러는데 보세요. 11살도 끌고 갔어요. 11살이 무엇을 압니까. 11살이 핏덩인데. 11살, 12살, 13살, 14살, 15살 이런 것만 끌고 갔거든요.
끌어가서 다 모아서 뭘 했겠어요. 다 죽였죠. 그러고 12살, 13살짜리는 자기들 말을 안 듣는다고 마구 치고 한 대만 맞아도 쓰러지는데. 발길로 차고 때리고 하니까 쓰러지지요. 쓰러지면 깔고 앉아서 칼로 가슴을 째요. 째면 거기서 뭐가 나옵니까. 그러면 피 밖에 나올 게 없죠. 그런데다가 강간을 해요.

서강대학교 김주섭 교수팀이 제작하고 있는 '영원한 증언' 프로젝트로, 미리 녹화된 할머니들의 증언 영상에 인공지능 대화 기술을 결합해 관람자가 영상 속 할머니와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김 교수팀은 지난해 8월 말 이용수 할머니, 이옥선 할머니와 3~4일 동안 함께 하며 1,000여 개의 증언 영상을 녹화했습니다. 증언집 등 문헌 연구와 설문조사 등을 통해 만든 500개 이상의 질문이 기반이 됐습니다.

질문은 총 7개 주제로 할머니의 유년 시절, 가족 이야기부터 위안소에서의 생활, 그 이후 생활 등이 포함됐습니다.

■ 이용수 할머니 "여기서 영원히 증언할게."


A. 분명히 밤에 와서 불러내서 끌려간 역사의 산증인 이용수가 있습니다. 중국 어디가 아닌 대만 신죽 특공대 가미카제 부대로 갔습니다.

이용수 할머니는 대만 위안소로 강제로 끌려간 14살 당시를 떠올리면서도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이용수 할머니에게 '증언하기 어려우셨나요?'라고 묻자, 할머니는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A. 묻는 사람도 그냥 묻지마는 이 이야기를 하면 피가 끓어요. 참 많이 울고 많이 그랬지만은..제가 맹세를 했어요. 혼자 앉아가지고 용수야, 너 증언하면서 울지 말아라. 자존심 상하게 왜 우노. 하지만...그 얘기를 하면 가슴이 무너져요. 죽지 않고 살아 나오는 것만 해도 그런데...평생을 그때 일을 이렇게 얘기할 때마다 상처는 너무너무 커요. 그러면 그때 그게 되살아 나 가지고 그때 그때 당하는 그런거..마음이 너무 괴로워요.

증언할 때마다 가슴이 무너지지만, 그럼에도 할머니는 다짐합니다.


A . 내가 여기 남아서 영원히 증언하고 있을게.

이옥선 할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Q. 증언하는 건 힘들지 않으세요?"
A. 아베가 먼저 죽는가, 내가 먼저 죽는가 한 번 해보자구요.

■ 할머니들이 남긴 '영원한 증언'

김주섭 교수는 "이용수 할머니가 증언 촬영을 다 하신 다음에 속이 너무 후련하다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는다"라며 "할머니들이 본인의 아픈 경험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고, 계속 증언하는 게 힘든데 대신 해주는 게 생겨 좋다고 하셨다."라고 말했습니다.

김주섭 서강대 교수는 "생존자가 육성으로 증언하기 어려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고, 그 시대를 준비하는 프로젝트"라며 "대중매체에서 접하는 역사적 사건 속 일부분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인격적으로 만나 그분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개인적인 경험으로 기억했으면 하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 교수팀은 오는 11월 말까지 서울 서강대학교와 대구 희움 역사관 등 2곳에서 베타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대화형 콘텐츠이다 보니 많은 이들이 해보고 오류를 수집하는 게 중요합니다. 오류를 수집하고 수정을 거쳐, 이르면 내년 미국과 한국에서 본 전시를 할 계획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여기서 영원히 증언할게”…‘AI’ 위안부 할머니와의 대화
    • 입력 2021-08-14 12:00:29
    취재K

오늘(14일)은 고 김학순 할머니가 국내에서 위안부의 존재를 처음 증언한 지 꼭 30년 되는 날입니다.

할머니의 '증언'은 침묵을 깨는 기폭제가 됐습니다. 많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게 했습니다. 그로부터 30년이 흘렀습니다. 정부에 등록된 피해 할머니 240명 중 생존자는 14명뿐입니다.

할머니들에게 묻고 들을 기회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피해 할머니들 모두 고령인데다 코로나19 확산 탓에 예전처럼 할머니들이 사람들 앞에 서기도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 할머니들과 영상 통화하듯...'영원한 증언' 프로젝트

지난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강대학교에 이용수 할머니와 이옥선 할머니를 만나러 갔습니다. 할머니께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 드리니 할머니들은 "반갑습니다"하고 맞아주셨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이 좋지 않은데 고령의 할머니들을 어떻게 만났을까요. 제가 만난 건 미리 녹화된 할머니들의 증언 영상입니다. 하지만 실제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 못지 않게 실감이 났습니다.

성인 여자 키만한 대형 화면에 녹화된 할머니가 나오고, 할머니들과 영상 통화하듯 묻고 답할 수 있었습니다.

이옥선 할머니에게 안부 인사를 건네자, 할머니는 허허 웃으며 근황을 이야기했습니다.


Q. 코로나가 심한데 괜찮으세요?
A. 지금은 외국을 다니지 못하고 찾아오는 손님이 없으니 증언도 못 하니 심심하잖아요. 밥 먹고 화투 쳐요.

얼굴을 맞대고 묻기 어려운 질문도 했습니다. 이옥선 할머니는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하지만 분명하게 이야기했습니다.


Q. 위안소에서는 어떤 일을 당했나요.
A. 일본 사람들이 잘한 일이 없어요. 우리 나이 어린 한국 여성들을 강제로 끌고 간 게 없다, 그러는데 보세요. 11살도 끌고 갔어요. 11살이 무엇을 압니까. 11살이 핏덩인데. 11살, 12살, 13살, 14살, 15살 이런 것만 끌고 갔거든요.
끌어가서 다 모아서 뭘 했겠어요. 다 죽였죠. 그러고 12살, 13살짜리는 자기들 말을 안 듣는다고 마구 치고 한 대만 맞아도 쓰러지는데. 발길로 차고 때리고 하니까 쓰러지지요. 쓰러지면 깔고 앉아서 칼로 가슴을 째요. 째면 거기서 뭐가 나옵니까. 그러면 피 밖에 나올 게 없죠. 그런데다가 강간을 해요.

서강대학교 김주섭 교수팀이 제작하고 있는 '영원한 증언' 프로젝트로, 미리 녹화된 할머니들의 증언 영상에 인공지능 대화 기술을 결합해 관람자가 영상 속 할머니와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김 교수팀은 지난해 8월 말 이용수 할머니, 이옥선 할머니와 3~4일 동안 함께 하며 1,000여 개의 증언 영상을 녹화했습니다. 증언집 등 문헌 연구와 설문조사 등을 통해 만든 500개 이상의 질문이 기반이 됐습니다.

질문은 총 7개 주제로 할머니의 유년 시절, 가족 이야기부터 위안소에서의 생활, 그 이후 생활 등이 포함됐습니다.

■ 이용수 할머니 "여기서 영원히 증언할게."


A. 분명히 밤에 와서 불러내서 끌려간 역사의 산증인 이용수가 있습니다. 중국 어디가 아닌 대만 신죽 특공대 가미카제 부대로 갔습니다.

이용수 할머니는 대만 위안소로 강제로 끌려간 14살 당시를 떠올리면서도 또박또박 말했습니다.

이용수 할머니에게 '증언하기 어려우셨나요?'라고 묻자, 할머니는 울먹이며 말했습니다.


A. 묻는 사람도 그냥 묻지마는 이 이야기를 하면 피가 끓어요. 참 많이 울고 많이 그랬지만은..제가 맹세를 했어요. 혼자 앉아가지고 용수야, 너 증언하면서 울지 말아라. 자존심 상하게 왜 우노. 하지만...그 얘기를 하면 가슴이 무너져요. 죽지 않고 살아 나오는 것만 해도 그런데...평생을 그때 일을 이렇게 얘기할 때마다 상처는 너무너무 커요. 그러면 그때 그게 되살아 나 가지고 그때 그때 당하는 그런거..마음이 너무 괴로워요.

증언할 때마다 가슴이 무너지지만, 그럼에도 할머니는 다짐합니다.


A . 내가 여기 남아서 영원히 증언하고 있을게.

이옥선 할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Q. 증언하는 건 힘들지 않으세요?"
A. 아베가 먼저 죽는가, 내가 먼저 죽는가 한 번 해보자구요.

■ 할머니들이 남긴 '영원한 증언'

김주섭 교수는 "이용수 할머니가 증언 촬영을 다 하신 다음에 속이 너무 후련하다고 말씀하신 게 기억에 남는다"라며 "할머니들이 본인의 아픈 경험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고, 계속 증언하는 게 힘든데 대신 해주는 게 생겨 좋다고 하셨다."라고 말했습니다.

김주섭 서강대 교수는 "생존자가 육성으로 증언하기 어려운 시대가 다가오고 있고, 그 시대를 준비하는 프로젝트"라며 "대중매체에서 접하는 역사적 사건 속 일부분이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인격적으로 만나 그분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개인적인 경험으로 기억했으면 하는 취지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 교수팀은 오는 11월 말까지 서울 서강대학교와 대구 희움 역사관 등 2곳에서 베타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대화형 콘텐츠이다 보니 많은 이들이 해보고 오류를 수집하는 게 중요합니다. 오류를 수집하고 수정을 거쳐, 이르면 내년 미국과 한국에서 본 전시를 할 계획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