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3월 26일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100대 기업은 상반기 신입 채용을 지난해보다 25% 늘렸습니다", "상반기 채용 인원은 대우 2,600명, 삼성 1,500명, 럭키 1,100명입니다"
오늘의 뉴스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아쉽게도 1994년 3월의 KBS 뉴스9 보도 내용입니다.
한 세대 전 주요 그룹은 정기 공채로 해마다 수천 명씩 뽑았습니다. 심지어 IMF 구제 금융 사태를 겪고도 정기 공채는 꾸준히 이어졌는데 최근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 5대 그룹 중 4곳, 최근 2년 새 정기 공채 폐지
최근 2년 새 현대차를 시작으로 LG와 롯데가 잇따라 공채를 폐지했고 SK는 마지막 정기 공채 원서 접수를 8일 마감합니다.
불과 2년 만에 5대 그룹 중 4곳에 정기 공채를 폐지했고 삼성 한 곳이 남은 셈입니다. 삼성은 조만간 공채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보입니다.
13대 그룹으로 넓혀 보더라도 공채를 유지하는 회사는 포스코와 신세계, CJ 정도만 남았습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조사한 결과도 2년간 정기 공채 비율이 50%에서 36%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 IMF 사태도 견뎠는데…코로나19가 없앤 정기 공채?
업계에서는 일단 '코로나19'를 원인으로 봅니다. 코로나19로 기업의 기존 사업계획 상당수는 무기한 보류 상태로 남게 돼 인력 충원의 수요가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비대면 경제가 부상하면서 IT와 인공지능 전문가가 많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런 전문가는 정기 공채로 뽑기 어렵습니다. '즉시 투입 인력'이 필요한데 수시 채용으로 뽑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코로나19 에도 우리 수출 대기업들의 실적은 호조입니다. 경영난 때문만은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서 정기 공채가 낡은 방식이었다는 진단도 나옵니다. 세계적으로 일본과 우리나라 외에 유례를 찾기 힘듭니다. 국내는 1956년 LG화학의 전신인 락희화학공업사가 공채를 한 것을 시초로 보고 있습니다.
■ "진작부터 공채 폐지 준비…코로나는 계기일 뿐"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이던 시절에는 교육에 대한 기대도 낮았습니다. 공채로 일단 많이 뽑은 다음 일은 가르치면 된다는 생각을 많은 기업이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학력 수준도 높아졌고 글로벌 경쟁도 치열합니다. 긴 사내 교육 기간이 기업에 비용 부담이라는 것입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수시 채용을 준비해왔다"면서 " 코로나19는 진작부터 필요했던 변화를 위한 하나의 계기일 뿐" 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리하여 IMF 구제금융사태와 세계금융위기도 버텼던 정기 공채 문화가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 공채 폐지 이후 정규직 줄어든 현대차·LG전자
문제는 공채를 기다렸던 구직자입니다. 채용 규모가 줄어들 것이 걱정입니다. 기업들은 공채가 사라져도 수시 채용으로 비슷한 규모를 뽑겠다고 말은 하지만 약속을 지킬지 의문입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공채 폐지 이후 2년간 정규직원의 수가 400여 명 줄었고 LG전자는 1년 만에 1,600여 명이 급감했습니다.
두 회사 모두 사업재편이나 고령자 퇴직 때문이라지만, 채용 규모를 숫자로 확인하기 어렵게 된 상황에서 과연 전처럼 뽑을지 의문입니다.
또, 학교를 마치고 처음 사회에 진출할 구직자들이 기업이 원하는 이른바 '즉시 전력'이 될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가도 문제입니다.
특히 인문계 학과 졸업생의 경우에는 수시 채용에서 본인을 홍보할만한 기술을 내세우기 어렵습니다. 서울의 한 대학생은 “학원 가서 코딩 배우는 인문계 대학생도 드물지 않다”고 말합니다.
“정규 공채를 적게 뽑으면서 구직자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애매하다. 인문계 학생을 위한 취업자리가 많지 않고 전공을 살리기 힘들다 보니 취업 자리가 열려있는 코딩이나 기술 쪽으로 진로를 많이들 트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 수시 채용, 채용 청탁의 통로 될까 우려도
2014년과 2015년 공채에서 채용 청탁을 들어준 LG전자 임원 등 8명이 최근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암암리에 있었던 채용 청탁이, 감시의 눈길이 덜한 수시 채용을 통해서 더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옵니다.
변화한 시대에 맞춰 대학 교육이나 구직자의 준비도 바뀌어야겠지만, 기업도 공정한 절차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 마련을 단단히 해야겠습니다.
LG전자 채용청탁 사건에서 법원이 판단한 것처럼, 청탁을 받아들이는 일은 공정한 채용을 방해하는 업무방해죄로 처벌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주주에 대한 배임이 될 소지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인턴 기회 확충이나 일부 기업이 시행 중인 비전공자를 위한 기술 교육도 중요합니다. 구직자의 전문성을 길러주는 일일 뿐 아니라 기업 입장에서도 준비된 최고의 인재를 선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인포그래픽: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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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지는 기업 공채…좁아진 채용문에 구직자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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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1-09-07 07:00:14
"100대 기업은 상반기 신입 채용을 지난해보다 25% 늘렸습니다", "상반기 채용 인원은 대우 2,600명, 삼성 1,500명, 럭키 1,100명입니다"
오늘의 뉴스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아쉽게도 1994년 3월의 KBS 뉴스9 보도 내용입니다.
한 세대 전 주요 그룹은 정기 공채로 해마다 수천 명씩 뽑았습니다. 심지어 IMF 구제 금융 사태를 겪고도 정기 공채는 꾸준히 이어졌는데 최근 급격하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 5대 그룹 중 4곳, 최근 2년 새 정기 공채 폐지
최근 2년 새 현대차를 시작으로 LG와 롯데가 잇따라 공채를 폐지했고 SK는 마지막 정기 공채 원서 접수를 8일 마감합니다.
불과 2년 만에 5대 그룹 중 4곳에 정기 공채를 폐지했고 삼성 한 곳이 남은 셈입니다. 삼성은 조만간 공채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보입니다.
13대 그룹으로 넓혀 보더라도 공채를 유지하는 회사는 포스코와 신세계, CJ 정도만 남았습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조사한 결과도 2년간 정기 공채 비율이 50%에서 36%로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 IMF 사태도 견뎠는데…코로나19가 없앤 정기 공채?
업계에서는 일단 '코로나19'를 원인으로 봅니다. 코로나19로 기업의 기존 사업계획 상당수는 무기한 보류 상태로 남게 돼 인력 충원의 수요가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비대면 경제가 부상하면서 IT와 인공지능 전문가가 많이 필요해졌습니다. 이런 전문가는 정기 공채로 뽑기 어렵습니다. '즉시 투입 인력'이 필요한데 수시 채용으로 뽑는 것이 훨씬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코로나19 에도 우리 수출 대기업들의 실적은 호조입니다. 경영난 때문만은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서 정기 공채가 낡은 방식이었다는 진단도 나옵니다. 세계적으로 일본과 우리나라 외에 유례를 찾기 힘듭니다. 국내는 1956년 LG화학의 전신인 락희화학공업사가 공채를 한 것을 시초로 보고 있습니다.
■ "진작부터 공채 폐지 준비…코로나는 계기일 뿐"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이던 시절에는 교육에 대한 기대도 낮았습니다. 공채로 일단 많이 뽑은 다음 일은 가르치면 된다는 생각을 많은 기업이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학력 수준도 높아졌고 글로벌 경쟁도 치열합니다. 긴 사내 교육 기간이 기업에 비용 부담이라는 것입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코로나19 이전부터 수시 채용을 준비해왔다"면서 " 코로나19는 진작부터 필요했던 변화를 위한 하나의 계기일 뿐" 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리하여 IMF 구제금융사태와 세계금융위기도 버텼던 정기 공채 문화가 사라지게 된 것입니다.
■ 공채 폐지 이후 정규직 줄어든 현대차·LG전자
문제는 공채를 기다렸던 구직자입니다. 채용 규모가 줄어들 것이 걱정입니다. 기업들은 공채가 사라져도 수시 채용으로 비슷한 규모를 뽑겠다고 말은 하지만 약속을 지킬지 의문입니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공채 폐지 이후 2년간 정규직원의 수가 400여 명 줄었고 LG전자는 1년 만에 1,600여 명이 급감했습니다.
두 회사 모두 사업재편이나 고령자 퇴직 때문이라지만, 채용 규모를 숫자로 확인하기 어렵게 된 상황에서 과연 전처럼 뽑을지 의문입니다.
또, 학교를 마치고 처음 사회에 진출할 구직자들이 기업이 원하는 이른바 '즉시 전력'이 될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가도 문제입니다.
특히 인문계 학과 졸업생의 경우에는 수시 채용에서 본인을 홍보할만한 기술을 내세우기 어렵습니다. 서울의 한 대학생은 “학원 가서 코딩 배우는 인문계 대학생도 드물지 않다”고 말합니다.
“정규 공채를 적게 뽑으면서 구직자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애매하다. 인문계 학생을 위한 취업자리가 많지 않고 전공을 살리기 힘들다 보니 취업 자리가 열려있는 코딩이나 기술 쪽으로 진로를 많이들 트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 수시 채용, 채용 청탁의 통로 될까 우려도
2014년과 2015년 공채에서 채용 청탁을 들어준 LG전자 임원 등 8명이 최근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암암리에 있었던 채용 청탁이, 감시의 눈길이 덜한 수시 채용을 통해서 더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옵니다.
변화한 시대에 맞춰 대학 교육이나 구직자의 준비도 바뀌어야겠지만, 기업도 공정한 절차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 마련을 단단히 해야겠습니다.
LG전자 채용청탁 사건에서 법원이 판단한 것처럼, 청탁을 받아들이는 일은 공정한 채용을 방해하는 업무방해죄로 처벌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주주에 대한 배임이 될 소지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인턴 기회 확충이나 일부 기업이 시행 중인 비전공자를 위한 기술 교육도 중요합니다. 구직자의 전문성을 길러주는 일일 뿐 아니라 기업 입장에서도 준비된 최고의 인재를 선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인포그래픽: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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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기 기자 waiti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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