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 직전 휴대전화 초기화한 검사…경찰은 왜 구속영장 포기했나

입력 2021.09.07 (11:19) 수정 2021.09.0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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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짜 수산업자 체포 직후 휴대전화 교체…압수수색 앞두고 초기화 정황

수산업자를 사칭한 김 모 씨가 사기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건 지난 3월 말입니다. 김 씨가 체포된 직후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로 재직 중이던 이 모 검사는 김 씨의 변호인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습니다. 이 검사는 그 직후 자신의 휴대전화를 교체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6월, 경찰은 김 씨에게서 각종 금품을 받은 혐의로 이 검사의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해 이 검사의 휴대전화를 확보했습니다. 새 휴대전화였습니다. 경찰은 이 검사가 이전에 쓰던 휴대전화도 확보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어렵사리 확보한 이 검사의 새 휴대전화를 열어보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 검사가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결국 두 달 여만에 휴대전화 암호를 풀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어렵게 비밀번호를 푼 휴대전화 안에는 수사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거의 없었습니다. 이 검사가 압수수색 직전에 자신의 새 휴대전화마저 '초기화'를 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입니다.

■ 2천만 원 대 금품 수수 정황…혐의 대부분 부인

이 검사는 박영수 전 특검에게서 '자칭 수산업자' 김 모 씨를 소개받았습니다. 박 전 특검의 특검팀에서 파견근무를 했던 이 검사가 검찰에 복귀해 경북 포항에서 근무하게 되자, 박 특검이 이 지역의 유력 사업가로 행세한 김 씨를 연결해준 겁니다. 이후 이 검사는 김 씨와 수차례 만났고, 김 씨에게서 각종 금품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이 파악한 이 검사의 금품 수수 규모는 약 2천만 원 대라고 합니다. 청탁금지법상 처벌 기준인 연간 3백만 원을 크게 웃도는 액수입니다. 명품 시계, 고급 수입차, 자녀 학원비, 현금 등 다양한 형태로 제공된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검사는 자신의 금품 수수 혐의를 대부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경찰, 이 검사에게 구속영장 신청 검토했다가 철회…이유는?

경찰 수사팀은 이 검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했습니다. 이 검사가 여러 정황 증거에도 불구하고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데다, 휴대전화를 바꾸고 초기화를 하는 등 증거를 인멸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내부 논의 끝에 구속영장 신청은 없던 일이 됐습니다.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만 구속영장이 발부된 전례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조금 더 복잡한 사정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함께 입건된 전 포항 남부경찰서장 배모 총경에 대한 신병 처리 문제가 변수가 됐다고 합니다. 배 총경 역시 수산업자 김 씨로부터 명품 벨트와 넥타이, 수산물 선물 등을 받았는데, 가액을 꼼꼼히 따져보니 청탁금지법상 처벌 가능 액수에 조금 못 미쳤습니다.

알고 보니 수산업자를 사칭한 김 씨의 비서가 금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금품 일부를 빼돌리는 이른바 '배달 사고'를 낸 것으로 조사된 겁니다. 덕분에 배 총경은 다른 입건자들과 달리 유일하게 불송치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큰 상태입니다.

경찰인 배 총경은 불송치하면서, 검찰 소속인 이 검사에 대해선 구속영장을 신청한다면 '제 식구만 감싼다'라는 비난 여론이 제기될 것이 우려됐다고 경찰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털어놨습니다.

■ "과도한 여론 살피기" 지적도

그런데 이런 경찰의 '여론 살피기'가 과연 옳으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대상자의 신분이 어떻든 구속영장 신청이 필요하다면 원칙대로 신청하고, 조사 결과 불송치 대상이 맞는다면 역시 법대로 불송치하면 그만인데 경찰이 정무적으로 판단하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경찰은 수사 결과 보고서를 최종 검토한 뒤 이르면 이번 주중 이 검사와 박영수 전 특검,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엄성섭 TV조선 전 앵커, 이모 중앙일보 전 논설위원, 정모 TV조선 기자, 이들에게 금품을 건넨 혐의를 받는 수산업자 김 씨를 검찰에 넘길 예정입니다. 김 씨에게서 고가 수입차를 빌려 탄 의혹이 있는 김무성 전 의원에 대해선 금전 거래 내역 등을 계속 수사한다는 방침입니다.

이번 수사를 하면서 경찰은 '사상 최초' 행진을 이어왔습니다. 경찰청 개청 이래 최초로 현직 검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특별검찰에 대해서도 전례 없는 소환 조사를 감행했습니다. 경찰로서는 이미 수사 진행 과정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그 '역대급 수사'를 어느 정도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에 접어들었습니다. 경찰이 좌고우면하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납득할 수 있는 수사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지 관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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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압수 직전 휴대전화 초기화한 검사…경찰은 왜 구속영장 포기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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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1-09-07 11:48:24
    취재K

■ 가짜 수산업자 체포 직후 휴대전화 교체…압수수색 앞두고 초기화 정황

수산업자를 사칭한 김 모 씨가 사기 혐의로 경찰에 체포된 건 지난 3월 말입니다. 김 씨가 체포된 직후 서울남부지검 부장검사로 재직 중이던 이 모 검사는 김 씨의 변호인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습니다. 이 검사는 그 직후 자신의 휴대전화를 교체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6월, 경찰은 김 씨에게서 각종 금품을 받은 혐의로 이 검사의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해 이 검사의 휴대전화를 확보했습니다. 새 휴대전화였습니다. 경찰은 이 검사가 이전에 쓰던 휴대전화도 확보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어렵사리 확보한 이 검사의 새 휴대전화를 열어보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이 검사가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결국 두 달 여만에 휴대전화 암호를 풀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어렵게 비밀번호를 푼 휴대전화 안에는 수사에 도움이 될 만한 정보가 거의 없었습니다. 이 검사가 압수수색 직전에 자신의 새 휴대전화마저 '초기화'를 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입니다.

■ 2천만 원 대 금품 수수 정황…혐의 대부분 부인

이 검사는 박영수 전 특검에게서 '자칭 수산업자' 김 모 씨를 소개받았습니다. 박 전 특검의 특검팀에서 파견근무를 했던 이 검사가 검찰에 복귀해 경북 포항에서 근무하게 되자, 박 특검이 이 지역의 유력 사업가로 행세한 김 씨를 연결해준 겁니다. 이후 이 검사는 김 씨와 수차례 만났고, 김 씨에게서 각종 금품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경찰이 파악한 이 검사의 금품 수수 규모는 약 2천만 원 대라고 합니다. 청탁금지법상 처벌 기준인 연간 3백만 원을 크게 웃도는 액수입니다. 명품 시계, 고급 수입차, 자녀 학원비, 현금 등 다양한 형태로 제공된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검사는 자신의 금품 수수 혐의를 대부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 경찰, 이 검사에게 구속영장 신청 검토했다가 철회…이유는?

경찰 수사팀은 이 검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방안을 검토했습니다. 이 검사가 여러 정황 증거에도 불구하고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데다, 휴대전화를 바꾸고 초기화를 하는 등 증거를 인멸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결국 내부 논의 끝에 구속영장 신청은 없던 일이 됐습니다.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만 구속영장이 발부된 전례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조금 더 복잡한 사정이 숨어 있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함께 입건된 전 포항 남부경찰서장 배모 총경에 대한 신병 처리 문제가 변수가 됐다고 합니다. 배 총경 역시 수산업자 김 씨로부터 명품 벨트와 넥타이, 수산물 선물 등을 받았는데, 가액을 꼼꼼히 따져보니 청탁금지법상 처벌 가능 액수에 조금 못 미쳤습니다.

알고 보니 수산업자를 사칭한 김 씨의 비서가 금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금품 일부를 빼돌리는 이른바 '배달 사고'를 낸 것으로 조사된 겁니다. 덕분에 배 총경은 다른 입건자들과 달리 유일하게 불송치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큰 상태입니다.

경찰인 배 총경은 불송치하면서, 검찰 소속인 이 검사에 대해선 구속영장을 신청한다면 '제 식구만 감싼다'라는 비난 여론이 제기될 것이 우려됐다고 경찰 관계자는 취재진에게 털어놨습니다.

■ "과도한 여론 살피기" 지적도

그런데 이런 경찰의 '여론 살피기'가 과연 옳으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대상자의 신분이 어떻든 구속영장 신청이 필요하다면 원칙대로 신청하고, 조사 결과 불송치 대상이 맞는다면 역시 법대로 불송치하면 그만인데 경찰이 정무적으로 판단하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경찰은 수사 결과 보고서를 최종 검토한 뒤 이르면 이번 주중 이 검사와 박영수 전 특검, 이동훈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 엄성섭 TV조선 전 앵커, 이모 중앙일보 전 논설위원, 정모 TV조선 기자, 이들에게 금품을 건넨 혐의를 받는 수산업자 김 씨를 검찰에 넘길 예정입니다. 김 씨에게서 고가 수입차를 빌려 탄 의혹이 있는 김무성 전 의원에 대해선 금전 거래 내역 등을 계속 수사한다는 방침입니다.

이번 수사를 하면서 경찰은 '사상 최초' 행진을 이어왔습니다. 경찰청 개청 이래 최초로 현직 검사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특별검찰에 대해서도 전례 없는 소환 조사를 감행했습니다. 경찰로서는 이미 수사 진행 과정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이제는 그 '역대급 수사'를 어느 정도 마무리해야 하는 시점에 접어들었습니다. 경찰이 좌고우면하지 않고 법과 원칙에 따라 납득할 수 있는 수사 결과를 내놓을 수 있을지 관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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