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IN] 9·11 그날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
입력 2021.09.10 (10:49)
수정 2021.09.1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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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20년 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을 비행기 두 대가 잇달아 들이받았습니다.
3천 명 가까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9·11테러의 시작이었는데요.
20년 전의 일이지만 어제 일처럼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구촌인>에서 만나보시죠.
[리포트]
지난달 뉴욕에 사는 니키아 모건 씨는 경찰로부터 20년 전 실종된 어머니의 유해가 확인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니키아 모건/9·11 희생자 가족 : "정말 놀랐습니다. 놀랐어요. 정말, 그 말 밖에는 안 나와요. 정말 놀랐습니다."]
뉴욕 세계무역센터에서 근무했던 모건 씨의 어머니는 2001년 9월 11일 테러 당시 실종됐습니다.
다른 희생자들과 함께 건물 잔해 속으로 사라졌는데요.
최근 도입된 DNA 분석 기술 덕분에 모건 씨 어머니와 또 한 명의 신원이 확인됐습니다.
이로써 희생자 2,753명 가운데 1,647명의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마크 디자이어/뉴욕시 검시관실 부책임자 : "과학과 데이터 분석 기술을 발전시키는 이유입니다. 그래야 20년 전 유족과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습니다."]
뉴욕시 검시관실은 유족들을 위해 신원 확인 작업을 계속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여전히 희생자 유해의 40%는 신원이 확인되지 못한 상태기 때문인데요.
테러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 로버트 월리스 씨도 그중 한 명입니다.
그는 소방관 일을 자랑스러워하고 자녀들에겐 한없이 다정한 아빠였는데요.
현장에 출동한 뒤 40층에서 마지막 연락이 닿았고, 20년째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닌 월리스/희생자 딸 : "모든 것을 앗아간 날이죠. 아빠는 제가 사랑한 첫 번째 남자였고, 제 영웅이었습니다."]
모든 911테러 희생자 가족들은 여전히 그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브라이트와이저 씨는 결혼 5년 차, 태어난 딸이 2살 되던 해 여느 날처럼 출근했던 남편과의 마지막 통화를 잊지 못합니다.
[크리스틴 브라이트와이저/희생자 아내 : "사랑한다고 말하고 전화는 끊고, 3분쯤 지났을 때, 남편이 저와 통화하며 앉아있던 건물이 폭발하는 걸 봤습니다. 머리가 쪼개지는 것 같았죠."]
마자 씨 부부는 첫 휴가를 앞두고 즐거워하던 딸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여전히 온 집안은 딸의 사진으로 가득한데요.
경찰이었던 딸은 테러 현장으로 출동한 뒤,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로즈 마자/희생자 엄마 : "그날은 매일 여기 있습니다. 그날 아침은 매일의 아침이죠. 매일 기억합니다. 무덤에 가는 날까지 그럴 거예요."]
그날을 잊지 못하는 건 테러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도 마찬가집니다.
윌 지메노 씨는 다리를 심하게 다친 채 테러 현장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지난 20년간 신체적 고통보다 더 그를 괴롭힌 건, 눈을 감으면 나타나는 죽은 동료들의 모습과 살아남은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었습니다.
[윌 지메노/생존자 : "9·11은 매일 저와 함께 삽니다. 그날 그곳에 있었던 우리는 잊을 수 없습니다. 여전히 꿈같은 환영을 봅니다. 하얀 가운에 갈색 머리를 한 얼굴 없는 사람이 제게 걸어옵니다."]
911테러로 시작된 아프간 전쟁은 지난달 미군이 철수하며 20년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유족과 생존자들은 여전히 20년 전 그날을 잊지 못하는데요.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은 슬픔은 잊혀지지도 잊을 수도 없는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20년 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을 비행기 두 대가 잇달아 들이받았습니다.
3천 명 가까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9·11테러의 시작이었는데요.
20년 전의 일이지만 어제 일처럼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구촌인>에서 만나보시죠.
[리포트]
지난달 뉴욕에 사는 니키아 모건 씨는 경찰로부터 20년 전 실종된 어머니의 유해가 확인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니키아 모건/9·11 희생자 가족 : "정말 놀랐습니다. 놀랐어요. 정말, 그 말 밖에는 안 나와요. 정말 놀랐습니다."]
뉴욕 세계무역센터에서 근무했던 모건 씨의 어머니는 2001년 9월 11일 테러 당시 실종됐습니다.
다른 희생자들과 함께 건물 잔해 속으로 사라졌는데요.
최근 도입된 DNA 분석 기술 덕분에 모건 씨 어머니와 또 한 명의 신원이 확인됐습니다.
이로써 희생자 2,753명 가운데 1,647명의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마크 디자이어/뉴욕시 검시관실 부책임자 : "과학과 데이터 분석 기술을 발전시키는 이유입니다. 그래야 20년 전 유족과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습니다."]
뉴욕시 검시관실은 유족들을 위해 신원 확인 작업을 계속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여전히 희생자 유해의 40%는 신원이 확인되지 못한 상태기 때문인데요.
테러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 로버트 월리스 씨도 그중 한 명입니다.
그는 소방관 일을 자랑스러워하고 자녀들에겐 한없이 다정한 아빠였는데요.
현장에 출동한 뒤 40층에서 마지막 연락이 닿았고, 20년째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닌 월리스/희생자 딸 : "모든 것을 앗아간 날이죠. 아빠는 제가 사랑한 첫 번째 남자였고, 제 영웅이었습니다."]
모든 911테러 희생자 가족들은 여전히 그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브라이트와이저 씨는 결혼 5년 차, 태어난 딸이 2살 되던 해 여느 날처럼 출근했던 남편과의 마지막 통화를 잊지 못합니다.
[크리스틴 브라이트와이저/희생자 아내 : "사랑한다고 말하고 전화는 끊고, 3분쯤 지났을 때, 남편이 저와 통화하며 앉아있던 건물이 폭발하는 걸 봤습니다. 머리가 쪼개지는 것 같았죠."]
마자 씨 부부는 첫 휴가를 앞두고 즐거워하던 딸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여전히 온 집안은 딸의 사진으로 가득한데요.
경찰이었던 딸은 테러 현장으로 출동한 뒤,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로즈 마자/희생자 엄마 : "그날은 매일 여기 있습니다. 그날 아침은 매일의 아침이죠. 매일 기억합니다. 무덤에 가는 날까지 그럴 거예요."]
그날을 잊지 못하는 건 테러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도 마찬가집니다.
윌 지메노 씨는 다리를 심하게 다친 채 테러 현장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지난 20년간 신체적 고통보다 더 그를 괴롭힌 건, 눈을 감으면 나타나는 죽은 동료들의 모습과 살아남은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었습니다.
[윌 지메노/생존자 : "9·11은 매일 저와 함께 삽니다. 그날 그곳에 있었던 우리는 잊을 수 없습니다. 여전히 꿈같은 환영을 봅니다. 하얀 가운에 갈색 머리를 한 얼굴 없는 사람이 제게 걸어옵니다."]
911테러로 시작된 아프간 전쟁은 지난달 미군이 철수하며 20년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유족과 생존자들은 여전히 20년 전 그날을 잊지 못하는데요.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은 슬픔은 잊혀지지도 잊을 수도 없는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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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20년 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을 비행기 두 대가 잇달아 들이받았습니다.
3천 명 가까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9·11테러의 시작이었는데요.
20년 전의 일이지만 어제 일처럼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구촌인>에서 만나보시죠.
[리포트]
지난달 뉴욕에 사는 니키아 모건 씨는 경찰로부터 20년 전 실종된 어머니의 유해가 확인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니키아 모건/9·11 희생자 가족 : "정말 놀랐습니다. 놀랐어요. 정말, 그 말 밖에는 안 나와요. 정말 놀랐습니다."]
뉴욕 세계무역센터에서 근무했던 모건 씨의 어머니는 2001년 9월 11일 테러 당시 실종됐습니다.
다른 희생자들과 함께 건물 잔해 속으로 사라졌는데요.
최근 도입된 DNA 분석 기술 덕분에 모건 씨 어머니와 또 한 명의 신원이 확인됐습니다.
이로써 희생자 2,753명 가운데 1,647명의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마크 디자이어/뉴욕시 검시관실 부책임자 : "과학과 데이터 분석 기술을 발전시키는 이유입니다. 그래야 20년 전 유족과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습니다."]
뉴욕시 검시관실은 유족들을 위해 신원 확인 작업을 계속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여전히 희생자 유해의 40%는 신원이 확인되지 못한 상태기 때문인데요.
테러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 로버트 월리스 씨도 그중 한 명입니다.
그는 소방관 일을 자랑스러워하고 자녀들에겐 한없이 다정한 아빠였는데요.
현장에 출동한 뒤 40층에서 마지막 연락이 닿았고, 20년째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닌 월리스/희생자 딸 : "모든 것을 앗아간 날이죠. 아빠는 제가 사랑한 첫 번째 남자였고, 제 영웅이었습니다."]
모든 911테러 희생자 가족들은 여전히 그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브라이트와이저 씨는 결혼 5년 차, 태어난 딸이 2살 되던 해 여느 날처럼 출근했던 남편과의 마지막 통화를 잊지 못합니다.
[크리스틴 브라이트와이저/희생자 아내 : "사랑한다고 말하고 전화는 끊고, 3분쯤 지났을 때, 남편이 저와 통화하며 앉아있던 건물이 폭발하는 걸 봤습니다. 머리가 쪼개지는 것 같았죠."]
마자 씨 부부는 첫 휴가를 앞두고 즐거워하던 딸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여전히 온 집안은 딸의 사진으로 가득한데요.
경찰이었던 딸은 테러 현장으로 출동한 뒤,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로즈 마자/희생자 엄마 : "그날은 매일 여기 있습니다. 그날 아침은 매일의 아침이죠. 매일 기억합니다. 무덤에 가는 날까지 그럴 거예요."]
그날을 잊지 못하는 건 테러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도 마찬가집니다.
윌 지메노 씨는 다리를 심하게 다친 채 테러 현장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지난 20년간 신체적 고통보다 더 그를 괴롭힌 건, 눈을 감으면 나타나는 죽은 동료들의 모습과 살아남은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었습니다.
[윌 지메노/생존자 : "9·11은 매일 저와 함께 삽니다. 그날 그곳에 있었던 우리는 잊을 수 없습니다. 여전히 꿈같은 환영을 봅니다. 하얀 가운에 갈색 머리를 한 얼굴 없는 사람이 제게 걸어옵니다."]
911테러로 시작된 아프간 전쟁은 지난달 미군이 철수하며 20년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유족과 생존자들은 여전히 20년 전 그날을 잊지 못하는데요.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은 슬픔은 잊혀지지도 잊을 수도 없는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20년 전 9월 11일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건물을 비행기 두 대가 잇달아 들이받았습니다.
3천 명 가까운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9·11테러의 시작이었는데요.
20년 전의 일이지만 어제 일처럼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구촌인>에서 만나보시죠.
[리포트]
지난달 뉴욕에 사는 니키아 모건 씨는 경찰로부터 20년 전 실종된 어머니의 유해가 확인됐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니키아 모건/9·11 희생자 가족 : "정말 놀랐습니다. 놀랐어요. 정말, 그 말 밖에는 안 나와요. 정말 놀랐습니다."]
뉴욕 세계무역센터에서 근무했던 모건 씨의 어머니는 2001년 9월 11일 테러 당시 실종됐습니다.
다른 희생자들과 함께 건물 잔해 속으로 사라졌는데요.
최근 도입된 DNA 분석 기술 덕분에 모건 씨 어머니와 또 한 명의 신원이 확인됐습니다.
이로써 희생자 2,753명 가운데 1,647명의 유해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습니다.
[마크 디자이어/뉴욕시 검시관실 부책임자 : "과학과 데이터 분석 기술을 발전시키는 이유입니다. 그래야 20년 전 유족과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습니다."]
뉴욕시 검시관실은 유족들을 위해 신원 확인 작업을 계속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여전히 희생자 유해의 40%는 신원이 확인되지 못한 상태기 때문인데요.
테러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관 로버트 월리스 씨도 그중 한 명입니다.
그는 소방관 일을 자랑스러워하고 자녀들에겐 한없이 다정한 아빠였는데요.
현장에 출동한 뒤 40층에서 마지막 연락이 닿았고, 20년째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닌 월리스/희생자 딸 : "모든 것을 앗아간 날이죠. 아빠는 제가 사랑한 첫 번째 남자였고, 제 영웅이었습니다."]
모든 911테러 희생자 가족들은 여전히 그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브라이트와이저 씨는 결혼 5년 차, 태어난 딸이 2살 되던 해 여느 날처럼 출근했던 남편과의 마지막 통화를 잊지 못합니다.
[크리스틴 브라이트와이저/희생자 아내 : "사랑한다고 말하고 전화는 끊고, 3분쯤 지났을 때, 남편이 저와 통화하며 앉아있던 건물이 폭발하는 걸 봤습니다. 머리가 쪼개지는 것 같았죠."]
마자 씨 부부는 첫 휴가를 앞두고 즐거워하던 딸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여전히 온 집안은 딸의 사진으로 가득한데요.
경찰이었던 딸은 테러 현장으로 출동한 뒤,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로즈 마자/희생자 엄마 : "그날은 매일 여기 있습니다. 그날 아침은 매일의 아침이죠. 매일 기억합니다. 무덤에 가는 날까지 그럴 거예요."]
그날을 잊지 못하는 건 테러 현장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도 마찬가집니다.
윌 지메노 씨는 다리를 심하게 다친 채 테러 현장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지난 20년간 신체적 고통보다 더 그를 괴롭힌 건, 눈을 감으면 나타나는 죽은 동료들의 모습과 살아남은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었습니다.
[윌 지메노/생존자 : "9·11은 매일 저와 함께 삽니다. 그날 그곳에 있었던 우리는 잊을 수 없습니다. 여전히 꿈같은 환영을 봅니다. 하얀 가운에 갈색 머리를 한 얼굴 없는 사람이 제게 걸어옵니다."]
911테러로 시작된 아프간 전쟁은 지난달 미군이 철수하며 20년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유족과 생존자들은 여전히 20년 전 그날을 잊지 못하는데요.
사랑하는 누군가를 잃은 슬픔은 잊혀지지도 잊을 수도 없는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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