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로 21년 만에 기소했지만 면소 판결…발목 잡은 ‘공소시효’

입력 2021.09.17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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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분석 기술이 발달하면서 미제로 묻힐 뻔한 사건의 피의자가 뒤늦게 붙잡히기도 합니다.

성폭행·살인 사건 피의자로 지목돼 뒤늦게 재판에 넘겨진 50대 남성 A 씨가 그랬습니다.

A 씨는 1999년 7월 서울 대치동의 한 골프 연습장에서 20대 여성을 성폭행한 뒤 살해한 혐의로 사건 발생 21년 만인 지난해 11월 기소됐습니다.

사건 발생 당시 경찰은 피해자가 숨진 데다 유일한 목격자 진술도 불분명해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고 사건은 장기 미제로 남았습니다.

그러던 지난 2017년 다른 범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던 A 씨의 DNA가, 숨진 피해 여성의 신체에서 채취한 DNA와 일치하는 걸로 확인되면서 사건은 반전을 맞았습니다.

■ 21년 만에 기소했지만 '면소'…"혐의 입증 부족하고 공소시효 지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김창형 부장판사)는 성폭력처벌법상 강간 등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씨에 대해 "여러 사정을 비춰볼 때 A 씨가 피해자를 강간하고 살해한 것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든다"면서도 '면소'를 선고했습니다.

면소란 공소시효 완성 등을 이유로 공소제기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재판을 종결시키는 것입니다.

재판부는 "A 씨의 성폭력처벌법상 강간 등 살인 혐의는 아직 공소시효가 남아있다"면서도 "자신이 살해하지 않았다는 A 씨의 일관된 진술과 모호한 목격자 진술 등을 종합하면, A 씨가 고의로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숨진 피해 여성의 몸 안에서 A 씨의 DNA가 검출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A 씨가 피해 여성을 살해했다는 것까지 입증하지는 못한다고도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이어 "(혐의로 인정할 수 있는) 형법상 특수강간 등 혐의는 이미 시효가 완성된 만큼, 무죄가 아닌 면소를 선고한다"고 설명했습니다.

■ 유일한 목격자의 초창기 '진술 조서'는 분실

재판부 판단에는 유일한 목격자 김 모 씨의 사건 직후 진술 조서가 분실된 것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2014년도에 목격자 진술 조서가 유실된 걸로 추정된다"며 "사건 기록이 남아있던 강남경찰서의 이전 과정에서 없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사실은 2016년에 알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김 씨가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하기는 했지만, 재판부는 "김 씨의 진술 자체가 모호할 뿐 아니라 20여 년이 지나 대부분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김 씨의 진술만으로는 '살해하지 않았다'는 A 씨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봤습니다.

판결 직후, 검찰 측은 "거의 재수사에 가깝게 3년 가까이 수사하며, 현장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범행을 저지른 사람은 A 씨 말고는 없다고 판단했다"며 "합리적인 의심의 기준을 높게 보고 판단한 이번 법원의 판결이 많이 아쉽다"고 밝혔습니다.

■ 대구 여대생 사건도 '공소시효'가 발목…부실수사 배상 책임은 인정

대구에서도 A 씨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1998년 대학생 정 모 씨가 대구의 한 고속도로에서 25톤 덤프트럭에 치여 숨졌고 당시 사고 현장에서 30m 떨어진 곳에서 정 씨의 속옷이 발견됐지만,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로 판단해 수사를 종결했습니다.

그러나 2011년 청소년에게 성매매를 권유한 혐의로 붙잡힌 스리랑카인 B 씨의 DNA가 정 씨 속옷에서 발견된 DNA와 일치한다는 감정 결과가 나오면서 수사가 재개됐고, 검찰은 특수강도강간 혐의 등을 적용해 B 씨를 재판에 넘겼습니다.

대법원은 2017년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 등을 들어 B 씨에게 면소 판결을 확정했고, 결국 B 씨는 처벌을 면하게 됐습니다.

대구 여대생 사망 사건 피의자 스리랑카인 B 씨대구 여대생 사망 사건 피의자 스리랑카인 B 씨

정 씨 부모님은 "경찰의 미흡한 사건 처리로 결국 범인을 처벌하지 못했다"며 6억여 원의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2심인 서울고법 민사15부는 "정 씨 부모에게 각각 3천만 원, 정 씨의 형제 3명에게 각각 500만 원씩 총 7천5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2심의 배상 금액은 1심보다 2천만 원 늘었는데, 앞서 1심 법원은 "이 사건은 경찰이 사건 발생 직후 교통사고로 성급히 판단해 증거를 수집하지 않고 부실하게 초동수사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초동 수사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강조되는 사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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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NA로 21년 만에 기소했지만 면소 판결…발목 잡은 ‘공소시효’
    • 입력 2021-09-17 18:35:39
    취재K

DNA 분석 기술이 발달하면서 미제로 묻힐 뻔한 사건의 피의자가 뒤늦게 붙잡히기도 합니다.

성폭행·살인 사건 피의자로 지목돼 뒤늦게 재판에 넘겨진 50대 남성 A 씨가 그랬습니다.

A 씨는 1999년 7월 서울 대치동의 한 골프 연습장에서 20대 여성을 성폭행한 뒤 살해한 혐의로 사건 발생 21년 만인 지난해 11월 기소됐습니다.

사건 발생 당시 경찰은 피해자가 숨진 데다 유일한 목격자 진술도 불분명해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고 사건은 장기 미제로 남았습니다.

그러던 지난 2017년 다른 범죄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 중이던 A 씨의 DNA가, 숨진 피해 여성의 신체에서 채취한 DNA와 일치하는 걸로 확인되면서 사건은 반전을 맞았습니다.

■ 21년 만에 기소했지만 '면소'…"혐의 입증 부족하고 공소시효 지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김창형 부장판사)는 성폭력처벌법상 강간 등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씨에 대해 "여러 사정을 비춰볼 때 A 씨가 피해자를 강간하고 살해한 것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든다"면서도 '면소'를 선고했습니다.

면소란 공소시효 완성 등을 이유로 공소제기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해 재판을 종결시키는 것입니다.

재판부는 "A 씨의 성폭력처벌법상 강간 등 살인 혐의는 아직 공소시효가 남아있다"면서도 "자신이 살해하지 않았다는 A 씨의 일관된 진술과 모호한 목격자 진술 등을 종합하면, A 씨가 고의로 피해자를 살해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숨진 피해 여성의 몸 안에서 A 씨의 DNA가 검출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 A 씨가 피해 여성을 살해했다는 것까지 입증하지는 못한다고도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이어 "(혐의로 인정할 수 있는) 형법상 특수강간 등 혐의는 이미 시효가 완성된 만큼, 무죄가 아닌 면소를 선고한다"고 설명했습니다.

■ 유일한 목격자의 초창기 '진술 조서'는 분실

재판부 판단에는 유일한 목격자 김 모 씨의 사건 직후 진술 조서가 분실된 것이 크게 작용했습니다.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2014년도에 목격자 진술 조서가 유실된 걸로 추정된다"며 "사건 기록이 남아있던 강남경찰서의 이전 과정에서 없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사실은 2016년에 알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김 씨가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하기는 했지만, 재판부는 "김 씨의 진술 자체가 모호할 뿐 아니라 20여 년이 지나 대부분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현재 김 씨의 진술만으로는 '살해하지 않았다'는 A 씨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봤습니다.

판결 직후, 검찰 측은 "거의 재수사에 가깝게 3년 가까이 수사하며, 현장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범행을 저지른 사람은 A 씨 말고는 없다고 판단했다"며 "합리적인 의심의 기준을 높게 보고 판단한 이번 법원의 판결이 많이 아쉽다"고 밝혔습니다.

■ 대구 여대생 사건도 '공소시효'가 발목…부실수사 배상 책임은 인정

대구에서도 A 씨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1998년 대학생 정 모 씨가 대구의 한 고속도로에서 25톤 덤프트럭에 치여 숨졌고 당시 사고 현장에서 30m 떨어진 곳에서 정 씨의 속옷이 발견됐지만,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로 판단해 수사를 종결했습니다.

그러나 2011년 청소년에게 성매매를 권유한 혐의로 붙잡힌 스리랑카인 B 씨의 DNA가 정 씨 속옷에서 발견된 DNA와 일치한다는 감정 결과가 나오면서 수사가 재개됐고, 검찰은 특수강도강간 혐의 등을 적용해 B 씨를 재판에 넘겼습니다.

대법원은 2017년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 등을 들어 B 씨에게 면소 판결을 확정했고, 결국 B 씨는 처벌을 면하게 됐습니다.

대구 여대생 사망 사건 피의자 스리랑카인 B 씨
정 씨 부모님은 "경찰의 미흡한 사건 처리로 결국 범인을 처벌하지 못했다"며 6억여 원의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2심인 서울고법 민사15부는 "정 씨 부모에게 각각 3천만 원, 정 씨의 형제 3명에게 각각 500만 원씩 총 7천5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2심의 배상 금액은 1심보다 2천만 원 늘었는데, 앞서 1심 법원은 "이 사건은 경찰이 사건 발생 직후 교통사고로 성급히 판단해 증거를 수집하지 않고 부실하게 초동수사한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초동 수사의 중요성이 다시 한번 강조되는 사건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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