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 대량 학살 실체 드러난 ‘골령골’ 앞으로 과제는?

입력 2021.09.23 (19:31) 수정 2021.09.23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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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집중취재 시간입니다.

골령골 유해발굴 현장을 취재한 정재훈 기자와 조금 더 자세한 얘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정 기자, 산내 골령골 유해 발굴이 지난 2007년부터 시작된 뒤 중단됐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이뤄졌잖아요.

그동안 발굴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설명 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기자]

산내 학살 사건은 골령골 골짜기를 따라 모두 7개 지역에서 벌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먼저 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2007년 3학살지와 5학살지 등에서 34구의 유해를 수습했습니다.

이후 유족회와 민간 차원에서 18구를 더 수습했는데요.

52구의 유해만을 수습한 채 발굴사업이 종료됐다가 지난해인 2020년부터 평화공원 조성을 위해 발굴이 재개됐습니다.

지난해에는 1학살지에서 모두 234구가 수습됐는데요.

올해 발굴도 지난해에 이어 1학살지에서 진행됐는데 이곳에서 무려 1,000여 구의 유해가 발굴됐습니다.

[앵커]

희생자들의 유품도 나왔죠?

주로 어떤 유품이 많이 나왔나요?

[기자]

대전형무소 수형자들이 많이 희생됐다보니 죄수복과 고무신, 단추 등 1,500여 점의 유품이 나왔습니다.

이밖에 일반인 복장과 가죽신도 함께 나왔는데요.

발굴조사단은 보도연맹원이거나 부역혐의로 끌려와 처형당한 민간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 당시 국군과 경찰이 사용한 M1 소총의 탄두와 탄피, 탄창 클립, 경찰이 쓴 칼빈 소총류 탄알이 상당수 나오면서 학살이 주로 총살로 이뤄진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군과 경찰 간부급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45구경 권총의 탄알도 발굴된 희생자의 두개골 내부에서 발굴됐습니다.

[앵커]

정 기자, 대전형무소 수형자들이 많이 희생됐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이분들은 주로 어떤 죄를 짓고 감옥에 있었던 거죠?

[기자]

진실화해위원회가 발간한 정부보고서에는 대전형무소 수감자 대부분이 정치사상범이라고 나와 있었는데요.

특히 전쟁 전인 1948년 제주도에서 벌어진 제주 4·3사건에 연루된 제주도민들이 많이 수감돼 있었습니다.

또, 제주 4·3 진압명령을 거부한 국군 제14연대 소속 군인과 여순사건에 연루된 여수, 순천지역 시민들도 상당수 포함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사보고서에는 부역 혐의자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육군본부 정보국 이른바 CIC 방첩대가 고문과 가혹 행위를 일삼았다고 나와 있었는데요.

보고서에는 '당시 CIC의 무고와 고문은 전율과 공포의 상징이었다'고 적혀있었고, 상당수 보도연맹원과 부역혐의자들이 이른바 마구잡이식 실적 쌓기로 동원돼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앵커]

정 기자, 이처럼 대량 학살의 실체가 발굴을 통해 드러났잖아요.

앞으로 발굴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기자]

일단 가장 유력한 발굴지역이 더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발굴조사단은 올해 남아있는 시간 동안 무허가 교회와 추가 학살지 등에 대한 시굴작업을 마칠 예정입니다.

유족들은 골령골 희생자 모두가 하루 빨리 세상의 빛을 다시 보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전미경/대전산내사건 희생자유족회장 : "아직도 빛을 못 보신 분들, 지하에서 그 무릎 꿇린 채로 총 탄알을 머리, 가슴에 안고 계신 분들을 위해서 앞으로 발굴을 빨리 좀 정부에서 진행해서 한 분도 빠짐없이 모시고 같이 추모의 공원으로 가기를 우리 유족들은 그게 소원이에요."]

내년에도 추가 발굴이 진행될 예정인데, 이 정도 발굴 속도라면 최대 4천여 구의 유해가 나올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유해발굴이 종료돼야 골령골에 추모공원이 설립되는 만큼 앞으로 남은 시간 발굴에 속도가 더 붙을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정기자 수고하셨습니다.

촬영기자:박평안/영상편집:임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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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중취재] 대량 학살 실체 드러난 ‘골령골’ 앞으로 과제는?
    • 입력 2021-09-23 19:31:56
    • 수정2021-09-23 19:34:27
    뉴스7(대전)
[앵커]

집중취재 시간입니다.

골령골 유해발굴 현장을 취재한 정재훈 기자와 조금 더 자세한 얘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정 기자, 산내 골령골 유해 발굴이 지난 2007년부터 시작된 뒤 중단됐다가 지난해부터 다시 이뤄졌잖아요.

그동안 발굴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설명 좀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기자]

산내 학살 사건은 골령골 골짜기를 따라 모두 7개 지역에서 벌어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먼저 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2007년 3학살지와 5학살지 등에서 34구의 유해를 수습했습니다.

이후 유족회와 민간 차원에서 18구를 더 수습했는데요.

52구의 유해만을 수습한 채 발굴사업이 종료됐다가 지난해인 2020년부터 평화공원 조성을 위해 발굴이 재개됐습니다.

지난해에는 1학살지에서 모두 234구가 수습됐는데요.

올해 발굴도 지난해에 이어 1학살지에서 진행됐는데 이곳에서 무려 1,000여 구의 유해가 발굴됐습니다.

[앵커]

희생자들의 유품도 나왔죠?

주로 어떤 유품이 많이 나왔나요?

[기자]

대전형무소 수형자들이 많이 희생됐다보니 죄수복과 고무신, 단추 등 1,500여 점의 유품이 나왔습니다.

이밖에 일반인 복장과 가죽신도 함께 나왔는데요.

발굴조사단은 보도연맹원이거나 부역혐의로 끌려와 처형당한 민간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 당시 국군과 경찰이 사용한 M1 소총의 탄두와 탄피, 탄창 클립, 경찰이 쓴 칼빈 소총류 탄알이 상당수 나오면서 학살이 주로 총살로 이뤄진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군과 경찰 간부급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45구경 권총의 탄알도 발굴된 희생자의 두개골 내부에서 발굴됐습니다.

[앵커]

정 기자, 대전형무소 수형자들이 많이 희생됐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이분들은 주로 어떤 죄를 짓고 감옥에 있었던 거죠?

[기자]

진실화해위원회가 발간한 정부보고서에는 대전형무소 수감자 대부분이 정치사상범이라고 나와 있었는데요.

특히 전쟁 전인 1948년 제주도에서 벌어진 제주 4·3사건에 연루된 제주도민들이 많이 수감돼 있었습니다.

또, 제주 4·3 진압명령을 거부한 국군 제14연대 소속 군인과 여순사건에 연루된 여수, 순천지역 시민들도 상당수 포함됐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사보고서에는 부역 혐의자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육군본부 정보국 이른바 CIC 방첩대가 고문과 가혹 행위를 일삼았다고 나와 있었는데요.

보고서에는 '당시 CIC의 무고와 고문은 전율과 공포의 상징이었다'고 적혀있었고, 상당수 보도연맹원과 부역혐의자들이 이른바 마구잡이식 실적 쌓기로 동원돼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앵커]

정 기자, 이처럼 대량 학살의 실체가 발굴을 통해 드러났잖아요.

앞으로 발굴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기자]

일단 가장 유력한 발굴지역이 더 남아있는 상태입니다.

발굴조사단은 올해 남아있는 시간 동안 무허가 교회와 추가 학살지 등에 대한 시굴작업을 마칠 예정입니다.

유족들은 골령골 희생자 모두가 하루 빨리 세상의 빛을 다시 보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전미경/대전산내사건 희생자유족회장 : "아직도 빛을 못 보신 분들, 지하에서 그 무릎 꿇린 채로 총 탄알을 머리, 가슴에 안고 계신 분들을 위해서 앞으로 발굴을 빨리 좀 정부에서 진행해서 한 분도 빠짐없이 모시고 같이 추모의 공원으로 가기를 우리 유족들은 그게 소원이에요."]

내년에도 추가 발굴이 진행될 예정인데, 이 정도 발굴 속도라면 최대 4천여 구의 유해가 나올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유해발굴이 종료돼야 골령골에 추모공원이 설립되는 만큼 앞으로 남은 시간 발굴에 속도가 더 붙을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정기자 수고하셨습니다.

촬영기자:박평안/영상편집:임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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