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하는 기자들Q] 모습은 ‘가짜’ 신뢰는 ‘진짜’…가상인간의 우려와 한계
입력 2021.10.23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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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앞에서 나를 보며 웃고 노래하며, 때로는 질문에 답도 해주는 누군가가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공포 영화 속 귀신 얘기가 아니라, 이미 우리 세상 깊숙이 들어와 있는 가상인간 얘기입니다.
■ 미디어를 장악해가는 '가상' 인간들
가수 겸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브라질계 미국인 릴 미켈라는 SNS 팔로워 수만 308만 명에 이릅니다. 이미 2018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25인에 선정됐습니다. 중국 칭화대학생인 화즈빙은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으로 중국의 국민 여동생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집안에서의 일상을 소재로 한 광고가 호평을 얻으며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일본인 이마도 있습니다.
모두 버츄얼 휴먼, 가상인간들입니다.
우리나라엔 로지가 있습니다. 세상에 나온 지 이제 두 달을 조금 넘겼을 뿐이지만, 이미 스무 건 넘는 광고 계약을 맺고 팬들과 소통하며 영향력 있는 사람, 이른바 인플루언서로 활약 중입니다. 로지는 다양한 광고뿐 아니라, SNS를 통해 팬들과 친절히 소통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기자 역시 로지의 SNS를 통해 인터뷰를 요청한 뒤 로지의 제작사 대표를 만났습니다.
물론 로지에게 받은 SNS 답변과 관련 글들은 이른바 '로지팀'으로 통용되는 제작사 직원들이 남긴 것입니다. 하지만 로지에게 환호하는 팬들은 해당 글을 로지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고 해서, 이를 '가짜'로 치부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로지는 이른바 MZ 세대가 선호하는 외모와 스타일을 구현해 만들어진 데다, 로지 이름으로 글을 쓰는 제작사 직원들이 로지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존재들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로지가 MZ 세대의 가치관과 이미지를 투영해 만들어진 가상인물인 것이겠지요.
■ 진짜 같은 가짜? 가짜 같은 진짜?
로지가 등장한 TV 광고를 여러 차례 접한 사람들 가운데도, 로지가 가상인간인 것을 뒤늦게 알고 놀랐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픽 기술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 보는 것만으로 가상 인간과 진짜 인간을 구별해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상 인간이 실제로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이를 단순한 가짜로 보기보단 엄연히 실존하는 별도의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이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로지를 제작한 싸이더스 엑스 백승엽 대표는 "우리가 미키마우스를 가짜 쥐라고 한다든지 펭수를 가짜 펭귄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로지와 같은 버츄얼 휴먼 자체도 그냥 또 다른 종류의 인간 캐릭터로 보는 것이 현재 진행 중인 추세"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가상인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세대별로 차이를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상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낯설어하는 기성 세대 상당수는 가상인간을 놓고 '징그럽다' '섬뜩하다'는 표현까지 사용합니다.
반면 어느 정도 가상인간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은 현실 세계에서 주저하게 되는 다양한 행동과 표현을 가상 인간이 대신 표출해준다는 면에서 해방감을 느낄 때가 있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 가상인간을 바라보는 우려와 한계
가상인간들의 영향력 확대가 거스를 수 없는 추세가 되었다고 해도, 이를 둘러싼 우려 역시 불가피합니다.
인간이 만들어내고 있는 가상인간의 이미지 자체가 현실 세계의 여성과 관련한 고정 관념 등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은 흔합니다. 가상인간을 다루는 언론 보도 역시 이들이 남기고 있는 수익 등 효용성에 집중하거나 인간과 대비되는 존재의 신기함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범죄에 악용될 우려도 상당합니다. 누군가 가상인간을 미디어의 영향력과 결합 시켜 사람들을 현혹한 뒤, 거짓 투자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금전적 피해를 주고 처벌을 피하려 들 수 있습니다. 연인 관계를 미끼로 돈을 챙겨 달아나는 이른바 로맨스 스캠 역시 더 교묘해질 수 있습니다.
가상 인플루언서에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하는 기술 역시 현재도 이미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난해 20대 대학생을 표방하던 챗봇 '이루다' 가 성 소수자와 여성 등에 대해 차별적 시선을 드러냈다가 논란을 빚었던 사례들에 비추어 볼 때 업체들도 관련 기술을 적용해 가상 인간을 만드는데 주저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명주 서울여자대학교 정보보호학과장은 "챗봇 기반으로 가상 인플루언서들이 본격적인 활동하기 시작하면 다양한 혼란이 따를 수 있다. 가상 인플루언서의 특정 발언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존재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영향력 있는 가상인간이 인간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법적인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지부터 고민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인간이 만든 신기술은 결국, 인간에게 유리해야 한다는 덴 모두가 동의합니다. 이미 시작된 흐름 속에서 고민의 지점은 한 둘이 아닙니다.
<질문하는기자들Q> 25번째 순서는 24일(일) 밤 10시 35분에 KBS 1TV에서 방영될 예정입니다. 다시 보기는 KBS 홈페이지와 유튜브 계정에서 가능합니다.
▲ 프로그램 홈페이지: news.kbs.co.kr/vod/program.do?bcd=0193
▲ 유튜브 계정 <질문하는 기자들 Q>: www.youtube.com/c/질문하는기자들Q/featu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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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하는 기자들Q] 모습은 ‘가짜’ 신뢰는 ‘진짜’…가상인간의 우려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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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1-10-23 11:01:03
내 앞에서 나를 보며 웃고 노래하며, 때로는 질문에 답도 해주는 누군가가 나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면 어떨까요? 공포 영화 속 귀신 얘기가 아니라, 이미 우리 세상 깊숙이 들어와 있는 가상인간 얘기입니다.
■ 미디어를 장악해가는 '가상' 인간들
가수 겸 광고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브라질계 미국인 릴 미켈라는 SNS 팔로워 수만 308만 명에 이릅니다. 이미 2018년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인터넷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25인에 선정됐습니다. 중국 칭화대학생인 화즈빙은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모습으로 중국의 국민 여동생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집안에서의 일상을 소재로 한 광고가 호평을 얻으며 유명세를 타고 있는 일본인 이마도 있습니다.
모두 버츄얼 휴먼, 가상인간들입니다.
우리나라엔 로지가 있습니다. 세상에 나온 지 이제 두 달을 조금 넘겼을 뿐이지만, 이미 스무 건 넘는 광고 계약을 맺고 팬들과 소통하며 영향력 있는 사람, 이른바 인플루언서로 활약 중입니다. 로지는 다양한 광고뿐 아니라, SNS를 통해 팬들과 친절히 소통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기자 역시 로지의 SNS를 통해 인터뷰를 요청한 뒤 로지의 제작사 대표를 만났습니다.
물론 로지에게 받은 SNS 답변과 관련 글들은 이른바 '로지팀'으로 통용되는 제작사 직원들이 남긴 것입니다. 하지만 로지에게 환호하는 팬들은 해당 글을 로지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고 해서, 이를 '가짜'로 치부하지 않습니다.
애초에 로지는 이른바 MZ 세대가 선호하는 외모와 스타일을 구현해 만들어진 데다, 로지 이름으로 글을 쓰는 제작사 직원들이 로지와 세계관을 공유하는 존재들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로지가 MZ 세대의 가치관과 이미지를 투영해 만들어진 가상인물인 것이겠지요.
■ 진짜 같은 가짜? 가짜 같은 진짜?
로지가 등장한 TV 광고를 여러 차례 접한 사람들 가운데도, 로지가 가상인간인 것을 뒤늦게 알고 놀랐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픽 기술이 워낙 뛰어나다 보니 보는 것만으로 가상 인간과 진짜 인간을 구별해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가상 인간이 실제로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이를 단순한 가짜로 보기보단 엄연히 실존하는 별도의 존재로 바라보는 시각이 늘고 있다는 점입니다.
로지를 제작한 싸이더스 엑스 백승엽 대표는 "우리가 미키마우스를 가짜 쥐라고 한다든지 펭수를 가짜 펭귄이라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로지와 같은 버츄얼 휴먼 자체도 그냥 또 다른 종류의 인간 캐릭터로 보는 것이 현재 진행 중인 추세"라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가상인간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세대별로 차이를 보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상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낯설어하는 기성 세대 상당수는 가상인간을 놓고 '징그럽다' '섬뜩하다'는 표현까지 사용합니다.
반면 어느 정도 가상인간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은 현실 세계에서 주저하게 되는 다양한 행동과 표현을 가상 인간이 대신 표출해준다는 면에서 해방감을 느낄 때가 있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 가상인간을 바라보는 우려와 한계
가상인간들의 영향력 확대가 거스를 수 없는 추세가 되었다고 해도, 이를 둘러싼 우려 역시 불가피합니다.
인간이 만들어내고 있는 가상인간의 이미지 자체가 현실 세계의 여성과 관련한 고정 관념 등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은 흔합니다. 가상인간을 다루는 언론 보도 역시 이들이 남기고 있는 수익 등 효용성에 집중하거나 인간과 대비되는 존재의 신기함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범죄에 악용될 우려도 상당합니다. 누군가 가상인간을 미디어의 영향력과 결합 시켜 사람들을 현혹한 뒤, 거짓 투자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금전적 피해를 주고 처벌을 피하려 들 수 있습니다. 연인 관계를 미끼로 돈을 챙겨 달아나는 이른바 로맨스 스캠 역시 더 교묘해질 수 있습니다.
가상 인플루언서에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하는 기술 역시 현재도 이미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다만, 지난해 20대 대학생을 표방하던 챗봇 '이루다' 가 성 소수자와 여성 등에 대해 차별적 시선을 드러냈다가 논란을 빚었던 사례들에 비추어 볼 때 업체들도 관련 기술을 적용해 가상 인간을 만드는데 주저하고 있는 것입니다.
김명주 서울여자대학교 정보보호학과장은 "챗봇 기반으로 가상 인플루언서들이 본격적인 활동하기 시작하면 다양한 혼란이 따를 수 있다. 가상 인플루언서의 특정 발언에 피해를 보는 사람이 존재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영향력 있는 가상인간이 인간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법적인 책임을 누구에게 물을 것인지부터 고민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인간이 만든 신기술은 결국, 인간에게 유리해야 한다는 덴 모두가 동의합니다. 이미 시작된 흐름 속에서 고민의 지점은 한 둘이 아닙니다.
<질문하는기자들Q> 25번째 순서는 24일(일) 밤 10시 35분에 KBS 1TV에서 방영될 예정입니다. 다시 보기는 KBS 홈페이지와 유튜브 계정에서 가능합니다.
▲ 프로그램 홈페이지: news.kbs.co.kr/vod/program.do?bcd=0193
▲ 유튜브 계정 <질문하는 기자들 Q>: www.youtube.com/c/질문하는기자들Q/featu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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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나 기자 nan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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