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학살 벌어진 골령골 ‘유해 962구’ 71년 만에 봉안

입력 2021.11.02 (21:41) 수정 2021.11.02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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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6·25 전쟁 당시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는 대전 형무소 수감자와 주민 등 수천 명이 국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 학살됐는데요.

골령골에서 발굴된 희생자 유해 천250 구 가운데 9백60여 구가 71년 만에 유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시 봉안됐습니다.

정재훈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굴착기로 3~4m 파 내려간 땅 속.

조심스레 호미로 흙을 걷어내자 두개골에서부터 허벅지 뼈, 정강이뼈까지.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유해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골령골 일대에서 수습된 유해는 지금까지 천2백 50구.

제주 4·3사건과 여수·순천 사건, 보도연맹사건 등에 연루됐다며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28일부터 1951년 초까지 군과 경찰 등 국가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유해입니다.

대부분 대전형무소 수감자와 주민들입니다.

71년 만에 발굴된 가족 유해 앞에 선 백발의 유족들.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고통 속에 살아온 오랜 세월만큼 만감이 교차합니다.

DNA 검사마저 늦어지면서 유해 신원이 대부분 밝혀지지 않아 유족의 마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서영균/제주4·3희생자유족회 대전위원장 : "아버지를 찾았으면, 제가 고향으로 모셔서우리 가족묘지에 안치시키는 게 좋을 텐데 마음처럼 안돼 여기 올 때마다 괴롭습니다."]

앞으로 더 발굴해야 할 유해만 최소 6천여 구.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골령골 집단학살에 대한 추가 조사를 벌일 방침입니다.

[정근식/2기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 "1950년 9월 (서울) 수복 이후에 이른바 부역 혐의자 처형도 이 장소에서 이뤄진 것이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묻혔던 역사의 진실이 드러나고 있는 골령골.

희생자들의 유해는 세종 추모의 집에 임시 안치된 후 골령골 진실과 화해의 숲이 조성되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영면에 들 예정입니다.

KBS 뉴스 정재훈입니다.

촬영기자:박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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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단학살 벌어진 골령골 ‘유해 962구’ 71년 만에 봉안
    • 입력 2021-11-02 21:41:33
    • 수정2021-11-02 22:11:19
    뉴스9(대전)
[앵커]

6·25 전쟁 당시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는 대전 형무소 수감자와 주민 등 수천 명이 국군과 경찰에 의해 집단 학살됐는데요.

골령골에서 발굴된 희생자 유해 천250 구 가운데 9백60여 구가 71년 만에 유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시 봉안됐습니다.

정재훈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굴착기로 3~4m 파 내려간 땅 속.

조심스레 호미로 흙을 걷어내자 두개골에서부터 허벅지 뼈, 정강이뼈까지.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유해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골령골 일대에서 수습된 유해는 지금까지 천2백 50구.

제주 4·3사건과 여수·순천 사건, 보도연맹사건 등에 연루됐다며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28일부터 1951년 초까지 군과 경찰 등 국가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유해입니다.

대부분 대전형무소 수감자와 주민들입니다.

71년 만에 발굴된 가족 유해 앞에 선 백발의 유족들.

시신조차 찾지 못한 채 고통 속에 살아온 오랜 세월만큼 만감이 교차합니다.

DNA 검사마저 늦어지면서 유해 신원이 대부분 밝혀지지 않아 유족의 마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서영균/제주4·3희생자유족회 대전위원장 : "아버지를 찾았으면, 제가 고향으로 모셔서우리 가족묘지에 안치시키는 게 좋을 텐데 마음처럼 안돼 여기 올 때마다 괴롭습니다."]

앞으로 더 발굴해야 할 유해만 최소 6천여 구.

2기 진실화해위원회는 골령골 집단학살에 대한 추가 조사를 벌일 방침입니다.

[정근식/2기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 : "1950년 9월 (서울) 수복 이후에 이른바 부역 혐의자 처형도 이 장소에서 이뤄진 것이 아닌가 (보고 있습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묻혔던 역사의 진실이 드러나고 있는 골령골.

희생자들의 유해는 세종 추모의 집에 임시 안치된 후 골령골 진실과 화해의 숲이 조성되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영면에 들 예정입니다.

KBS 뉴스 정재훈입니다.

촬영기자:박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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