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성 쓰려면 이혼해야 가능?…현행법 한계는?

[앵커]

자녀에게 아빠 성 대신 엄마 성을 물려준다.

아직 우리에겐 꽤 낯선 이야기인데요.

당연하게 여겨지던 관행에 맞서, 엄마 성을 대신 물려준 가족들이 있다고 합니다.

최근 법원이 혼인 중인 부부의 자녀 성본 변경 청구를 받아들이기도 했는데요.

이 문제 취재한 최유경 기자와 자세히 짚어 보겠습니다.

최 기자, 우선 자녀에게 엄마 성을 물려주는 것이 지금 우리 법으로 가능한 겁니까?

[기자]

네, 아직 모르는 분들도 많을 수 있는데요.

현행 민법 781조 1항을 보면 원칙은 다들 아는 것처럼 아빠의 성과 본을 따르는 겁니다.

하지만 예외가 있습니다.

혼인신고를 할 때 부모가 협의한 경우에는 엄마의 성과 본을 쓸 수 있습니다.

2005년에 호주제가 폐지되면서 이런 단서 조항이 생긴 건데요.

제가 지금 가지고 나온 혼인신고서를 보면 4번에 '자녀의 성·본을 모의 성·본으로 하는 협의를 하였습니까?'라는 문항이 있거든요.

여기에 '예'라고 표시하고 이렇게 별도의 협의서를 쓸 경우에는 엄마 성을 쓸 수 있습니다.

[앵커]

근데 이걸 혼인신고 때 딱 정해두기가 쉽지 않을 거 같은데요?

[기자]

맞습니다.

사실 결혼을 할 때 자녀계획까지 다 세워두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취재하면서 만난 부부도 결혼 당시에는 자녀를 낳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가, 결혼 8년 만에 생각이 바뀌면서 아이를 갖게 됐는데요.

이때 딸에게 엄마 성을 물려주려고 하니 이미 늦은 게 돼버렸던 거죠.

방법은 두 가지였습니다.

서류상 이혼을 한 다음에 다시 혼인신고를 하면서 엄마 성을 쓰겠다고 표시하거나, 아니면 법원에 성본 변경 청구를 하는 방법이었는데요.

이 부부의 얘기 들어보시겠습니다.

[정민구 :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이혼 후에 다시 혼인신고를 하고 거기에 엄마 성 쓰기를 체크하는 거더라고요. 그런데 막상 하려고 하니까 이게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아무리 서류적인 거라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해서 할 일인가?'라는 생각도 들고 그래서 성본변경 신청을 하게 됐습니다."]

[앵커]

그래서 법원에 청구했군요.

결론은 어떻게 났습니까?

[기자]

네, 이 부부가 9월 9일에 청구서를 냈는데 한 달만인 10월 13일에 엄마 성으로 바꾸는 허가 결정이 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왜 성본 변경을 원하는지 스무 쪽에 가까운 청구서를 내기도 했고요.

이번 결정을 계기로 다른 가족들도 좀 더 편하게 성본 변경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얘기했습니다.

들어보시겠습니다.

[김지예 : "한 번에 받아들여 져서 되게 기쁘게 생각하고 있어요. 저희 같은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다 보면 그런 감수할 것들도 많이 줄어들게 될 테니까 조금 앞선 사람들로서 좀 버텨주셨으면 좋겠다.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앵커]

네, 사실 번거로운 절차가 없어지려면 관련 법 조항을 개정해야 할 것 같은데요.

어떤 움직임이 있습니까?

[기자]

네, 여성단체 등에선 앞서 얘기한 민법 781조 1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부모 중 누구의 성과 본을 따를지를 혼인신고 때가 아니라 아이 출생신고 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해야 실효성이 생긴다는 건데요.

논의는 벌써 시작됐습니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실시한 '가족다양성 국민인식조사'에 따르면 "자녀 출생신고 시 부모가 협의해 성과 본을 정할 수 있도록 개선하자"는 응답이 73.1%나 됐는데요.

이 때문에 여가부는 올해 발표한 5개년 계획에서 방금 말한 민법 조항을 개정해서 '부성우선주의' 대신 '부모협의' 원칙을 적용하는 방안을 법무부와 협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법무부는 아직 구체적으로 추진한 건 없고, 법 개정 필요성을 검토하고 있는 단계라는 입장이고요.

21대 국회에도 관련 민법 개정안이 3건 발의돼 있습니다.

[앵커]

법 개정이 쉽지는 않을 거 같은데, 해외는 어떤지 궁금하네요.

[기자]

성을 물려주는 부분은 사실 나라마다 문화적 차이가 크다 보니까 전문가들은 단순 비교는 쉽지 않다, 이런 입장인데요.

일단 독일이나 프랑스, 중국 같은 경우 법적으로 출생신고 때 엄마 성을 선택할 수 있게 돼 있습니다.

특히 독일과 프랑스는 부모의 성을 원하는 순서대로 조합한 성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픽:최민영 최창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