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당분간 긴장 속 ‘현상유지’?…화상 대면한 미·중 정상
입력 2021.11.17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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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6일(미국 현지시간은 15일)첫 화상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지난 1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뒤 10개월이 지나서야 미·중 정상이 만난 셈이죠. 기후변화와 코로나 19 대응에서 전에 없이 국제적 연대를 강조해온 두 나라의 지도자가 '이제서야' 만난 것입니다. 아무래도 '대면 정상회담'보다는 조금 더 쉬워 보였는데도 말이죠.
그만큼, 서로에 대한 탐색과 내부 전열 정비, 그리고 전략마련을 위한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요.
미·중 정상 간의 만남이 세계의 이목을 끈 것은 진작 만났어야 할 두 나라가 시간을 끈 뒤 만난 만큼, 과연 어떤 성과가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패권을 다투는 두 나라가 과연 협력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도 있었기 때문이겠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통상 정상회담이 끝나면 공동발표문을 내거나 아니면 공동 기자회견을 합니다. 두 나라의 발표문을 유심히 살펴보면 각각 강조점이 다르고, 심지어 '공동발표문'이라 하더라도 세부적인 단어나 문구가 절묘하게 다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정상회담 전에 양국 고위 당국자들이 만나서 사전 조율을 하고 또 발표될 문구 하나 갖고도 치열한 기 싸움을 벌이기 때문에, 정상들이 서로 만나 웃으면서 악수할 때쯤이면 실무 외교당국자들은 그야말로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곤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과정이 '표면적으로는' 생략됐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회담 뒤 공동성명이나 발표문은 나오지 않았고 기자들을 상대로 한 브리핑도 없었습니다. 대신 워싱턴과 베이징은 각각 정상회담에서 어떤 내용을 얘기했다는 식의 '설명자료 발표'만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두 나라의 발표 내용을 보면 양측이 원칙적인 면에서 공감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도 분명 있는데요.
미국 현지시간으로 15일 미국 백악관에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취임후 처음으로 화상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모습 (화면 AP)
바로 '갈등과 충돌의 확산만은 막자'라는데는 의견의 일치를 봤다고 하겠습니다.
이와 함께 '당장은 현상 변경을 추구하지 않는다' 는 데도 두 나라가 공감대를 이뤘다는 것 역시 핵심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말해 당분간 '현상유지(Status Quo)' 를 하자는 입장을 서로 확인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간주하고 있는 타이완 문제와 관련해 ""미국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장기적으로 일관되게 시행해왔고 타이완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더 나아가 "미국은 중국의 체제 전환을 추구하지 않으며, 동맹 관계 강화를 통해 중국을 반대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으며, 중국과 충돌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도 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새로운 시기에 중국과 미국은 공존을 위한 세 가지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면서 "첫 번째는 상호 존중, 두 번째는 평화 공존, 세 번째는 협력 및 상생"이라며 '네가 손해면 내가 이익'이라는 식의 "제로섬 게임을 하지 말자"고 말했습니다.
더 나아가 "중국과 미국은 바다에서 항행하는 2개의 거대함선"이라며 "풍랑 속에 같이 나아가기 위해 양국은 키를 꼭 잡고 항로 이탈이나 속도 상실, 충돌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대면 정상회담이라면 하기 어려워 보이는 말들도 오갔습니다. 중국은 특히 타이완에 대한 미국의 개입확대를 경계하며 격한 표현까지 썼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타이완 해협정세에 새로운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면서 "타이완 독립·분열 세력이 레드라인을 돌파하면 부득불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무력을 사용을 하겠다는 뜻도 내비쳤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첫 화상 정상회담에서 미국과의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타이완 문제에 대해선
그러면서 "이런 추세는 매우 위험"하고 "불장난을 하는 것이며, 불장난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 불에 타 죽는다"고 말했습니다. 정상회담에서는 이례적인 수위의 격한 표현입니다.
바이든 대통령도 불공정한 무역관행과 인도 태평양 지역은 물론 남중국해 등에서의 '항행의 자유'는 물론, 중국이 내정간섭이라며 언급 자체를 꺼려하는 신장 위구르 지역의 인권문제까지 제기했습니다.
중국이 유난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타이완 해협 문제와 관련해서도 '현상을 변경하거나 평화와 안정을 훼손하는 일방적 행동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서로 할 말은 다 한 셈이라 하겠습니다. 극한 대결 양상으로 격화되는 것은 피하면서도, 눈에 띌만한 협력의 새 장도 열지 못한 것이죠. 그렇게 10개월 만의 미·중 정상회담은 끝이 났습니다.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의 입장에서 이번 회담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무엇이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거인들을 다소 결론이 뻔해 보이는 대화의 장으로 이끈 것일까요?
크게 세 가지로 나눠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첫째 전략적 요인, 둘째 경제적 요인, 셋째 내부정치적 요인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 처음 열린 미국과 중국의 화상 정상회담에 배석한 미국 측 관료들. 왼쪽부터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 커트 캠벨 백악관 NSC 인도 태평양 조정관 (화면 AP)
미국은 물론 중국도 이번 회담에 앞서 나름대로 동맹 관계나 전략적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한 뒤에 만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 들어 지난 3월 '쿼드(QUAD)', 즉 미국과 일본 호주 인도 등 네 나라의 정상들이 화상회의를 하면서 '안보전략 협의'는 물론 외연을 확대하는 문제까지 논의했었죠.
지난 9월에는 핵추진 잠수함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던 호주를 끌어들여 미국 영국 호주가 새로운 안보동맹체 '오커스(AUKUS)' 를 출범시켰습니다.
여기에 일본과의 해상훈련을 부쩍 강화하면서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인도 태평양 지역 여러 나라와 대규모 합동 해상 훈련을 하면서 동맹과 협력관계를 대폭 강화해 왔습니다.
그럼 그동안 중국은 가만히 있었을까요? 중국은 최근까지도 '동맹'을 '냉전의 유산'으로 규정하면서 미국과 서방세계를 비난해 왔습니다.
북한과 군사동맹 수준의 조약을 체결한 것을 제외하면 안보동맹 관계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 견해를 보여왔습니다. 사실상 1961년 북한과 체결한 우호조약을 빼고는 군사적으로 나라 간 밀접한 관계를 맺는데는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여왔었죠.
하지만 지금은 변화가 엿보입니다.
미국과 영국 호주가 새로운 안보 동맹 '오커스'를 발표할 즈음,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주도적 역할을 맡고 있는 '상하이 협력기구(SCO)'에 이란을 전격적으로 가입시켰습니다.
카자흐스탄, 키르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에 인도와 파키스탄까지를 아우르는 8개 나라의 협의체였는데요, 여기에 이란까지 합류시킨 것이죠.
15년 동안 가입을 희망해 왔던 이란으로서는 숙원사업을 이룬 셈이었죠. 이란과 미국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생각해보면 이란이 중국 주도의 정치 경제 안보협의체에 가입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중국에 불리할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중국은 또 지난달 러시아와 합동 해상훈련을 하면서 동해로 올라와 일본 홋카이도와 혼슈 사이 쓰가루 해협 등을 통과하며 미군과 일본 해상자위대를 긴장시키기도 했었죠.
국제법적으로 공해상이라고는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함대가 함께 훈련 목적으로 쓰가루 해협을 통과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 주도의 다국적 연합 해상훈련에 맞선 대응으로 간주 됐었습니다. 중국은 또 지난 7월에는 북한과의 북·중 우호조약 체결 60년을 맞아 북한과의 전략적 협력 관계 역시 강화해 나갈 것임을 천명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미국과 중국 두 나라 정상의 화상 만남은 이렇게 외교적 협력기반을 다진 뒤에 이뤄졌습니다.
두 나라와 각각 새로운 관계설정을 마쳤거나 우호협력 관계를 다진 나라들로서는 미·중 두 나라 정상의 이번 만남이 그저 남의 나라 정상 간의 만남이 아닌 이유이고, 각별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주요 사안'이었던 셈이죠.
미·중 회담 정상회담이 열리던 시점에 한미일 세 나라 차관회의 참석차 외교부 1차관이 방미 중이었던 만큼 한국 정부로서도 각별한 관심을 갖고 지켜봤으리라 생각됩니다.
둘째 경제적 요인으로 이번 회담을 보면, 미·중 두 나라 모두 코로나19의 재확산 문제가 여전하고
인플레이션과 원자재 공급 문제, 부실기업의 파산과 연쇄적인 충격 우려가 있는 시점에서 갈등과 파국으로 상황을 몰고 가는 것보다는 협력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자국은 물론 전 세계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을 내린 듯해 보입니다.
현재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전략가인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커트 캠벨 NSC 인도 태평양 조정관은 지난 2019년 9월과 10월호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중국을 냉전 시대 소련과 전혀 다른 경쟁국가로 규정하면서 냉전시대의 봉쇄 (Containment)전략으로는 중국을 꺾기 힘들고, 두 나라 간 상호의존도 역시 매우 크다는 점을 역설한 바 있습니다.
'재앙 없는 경쟁'이란 제목의 이 기고문은 "소련과 달리 중국은 세계와 깊이 통합돼 있으며 미국 경제와도 얽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도전은 소련보다 더 강력하고 ,이에 대응하는 미국의 전략수립과 집행은 더 험난하고 힘든 여정이 될 것임을 시사한 것이었죠.
이렇게 볼 때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첫 정상회담은 경제적인 '상호의존의 굴레' 가 촉매제 역할을 해 가능하게 됐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세번째로 미국과 중국의 국내정치적 요인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취임 10개월이 지난 바이든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코로나 19로 휘청거렸던 경제를 회생시켜야 할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증시가 사상 유례없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일반인들이 체감할 수 있는 고용 등 경제지표의 회복세가 뚜렷하다고 하기에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원자재 공급 불안과 인플레이션, 예상되는 금리 인상 충격 등 극복하여야 할 과제가 산적한데, 현재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40퍼센트 초반에 머물러 있는 상황입니다.
12년간 민주당이 내리 승리했던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도 공화당 후보가 승리하면서 타격을 입었고요. 국내정치 상황이 녹녹지 않은 가운데, 대외적으로 중국과도 파국으로 치달을 경우 바이든 대통령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1일 중국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 6중 전회)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사진 연합뉴스)
시진핑 주석 역시 미·중 정상회담 직전 중요한 국내정치 일정을 마쳤죠. 중국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6중전회)를 통해서 자신을 마오쩌둥, 덩샤오핑에 버금가는 반열의 지도자로 격상시키는 중국 공산당 100년 역사상 세 번째 '역사 결의'를 이끌어 냈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장기집권을 위한 권력 기반이 탄탄해졌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역사적 위상'에 걸맞는 '업적'도 남겨야 하는 부담 역시 동시에 갖게 됐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막았지만, 갈등은 여전했다'는 평가를 뒤로하고, 바이든과 시진핑의 첫 화상회담은 막을 내렸습니다.
이를 주시했던 세계는 일단 한숨을 돌리며 당분간 '어제와 별다름이 없는 오늘'을 맞이하겠지만, 정상회담 전 갖추어진 '틀'이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이며 언젠가 요동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국제정세의 변화무쌍한 추이를 늘 주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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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1-11-17 07:01:04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6일(미국 현지시간은 15일)첫 화상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지난 1월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뒤 10개월이 지나서야 미·중 정상이 만난 셈이죠. 기후변화와 코로나 19 대응에서 전에 없이 국제적 연대를 강조해온 두 나라의 지도자가 '이제서야' 만난 것입니다. 아무래도 '대면 정상회담'보다는 조금 더 쉬워 보였는데도 말이죠.
그만큼, 서로에 대한 탐색과 내부 전열 정비, 그리고 전략마련을 위한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일까요.
미·중 정상 간의 만남이 세계의 이목을 끈 것은 진작 만났어야 할 두 나라가 시간을 끈 뒤 만난 만큼, 과연 어떤 성과가 있을지 궁금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패권을 다투는 두 나라가 과연 협력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도 있었기 때문이겠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통상 정상회담이 끝나면 공동발표문을 내거나 아니면 공동 기자회견을 합니다. 두 나라의 발표문을 유심히 살펴보면 각각 강조점이 다르고, 심지어 '공동발표문'이라 하더라도 세부적인 단어나 문구가 절묘하게 다른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정상회담 전에 양국 고위 당국자들이 만나서 사전 조율을 하고 또 발표될 문구 하나 갖고도 치열한 기 싸움을 벌이기 때문에, 정상들이 서로 만나 웃으면서 악수할 때쯤이면 실무 외교당국자들은 그야말로 기진맥진한 상태가 되곤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과정이 '표면적으로는' 생략됐습니다.
그래서일까요? 회담 뒤 공동성명이나 발표문은 나오지 않았고 기자들을 상대로 한 브리핑도 없었습니다. 대신 워싱턴과 베이징은 각각 정상회담에서 어떤 내용을 얘기했다는 식의 '설명자료 발표'만을 내놨습니다.
하지만 두 나라의 발표 내용을 보면 양측이 원칙적인 면에서 공감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도 분명 있는데요.
바로 '갈등과 충돌의 확산만은 막자'라는데는 의견의 일치를 봤다고 하겠습니다.
이와 함께 '당장은 현상 변경을 추구하지 않는다' 는 데도 두 나라가 공감대를 이뤘다는 것 역시 핵심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말해 당분간 '현상유지(Status Quo)' 를 하자는 입장을 서로 확인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간주하고 있는 타이완 문제와 관련해 ""미국은 '하나의 중국' 정책을 장기적으로 일관되게 시행해왔고 타이완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더 나아가 "미국은 중국의 체제 전환을 추구하지 않으며, 동맹 관계 강화를 통해 중국을 반대하는 것을 추구하지 않으며, 중국과 충돌할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도 했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새로운 시기에 중국과 미국은 공존을 위한 세 가지 원칙을 견지해야 한다"면서 "첫 번째는 상호 존중, 두 번째는 평화 공존, 세 번째는 협력 및 상생"이라며 '네가 손해면 내가 이익'이라는 식의 "제로섬 게임을 하지 말자"고 말했습니다.
더 나아가 "중국과 미국은 바다에서 항행하는 2개의 거대함선"이라며 "풍랑 속에 같이 나아가기 위해 양국은 키를 꼭 잡고 항로 이탈이나 속도 상실, 충돌이 없도록 노력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대면 정상회담이라면 하기 어려워 보이는 말들도 오갔습니다. 중국은 특히 타이완에 대한 미국의 개입확대를 경계하며 격한 표현까지 썼습니다.
시진핑 주석은 "타이완 해협정세에 새로운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면서 "타이완 독립·분열 세력이 레드라인을 돌파하면 부득불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무력을 사용을 하겠다는 뜻도 내비쳤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추세는 매우 위험"하고 "불장난을 하는 것이며, 불장난을 하는 사람은 스스로 불에 타 죽는다"고 말했습니다. 정상회담에서는 이례적인 수위의 격한 표현입니다.
바이든 대통령도 불공정한 무역관행과 인도 태평양 지역은 물론 남중국해 등에서의 '항행의 자유'는 물론, 중국이 내정간섭이라며 언급 자체를 꺼려하는 신장 위구르 지역의 인권문제까지 제기했습니다.
중국이 유난히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타이완 해협 문제와 관련해서도 '현상을 변경하거나 평화와 안정을 훼손하는 일방적 행동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서로 할 말은 다 한 셈이라 하겠습니다. 극한 대결 양상으로 격화되는 것은 피하면서도, 눈에 띌만한 협력의 새 장도 열지 못한 것이죠. 그렇게 10개월 만의 미·중 정상회담은 끝이 났습니다.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의 입장에서 이번 회담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무엇이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거인들을 다소 결론이 뻔해 보이는 대화의 장으로 이끈 것일까요?
크게 세 가지로 나눠서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첫째 전략적 요인, 둘째 경제적 요인, 셋째 내부정치적 요인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은 물론 중국도 이번 회담에 앞서 나름대로 동맹 관계나 전략적 협력 관계를 공고히 한 뒤에 만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 들어 지난 3월 '쿼드(QUAD)', 즉 미국과 일본 호주 인도 등 네 나라의 정상들이 화상회의를 하면서 '안보전략 협의'는 물론 외연을 확대하는 문제까지 논의했었죠.
지난 9월에는 핵추진 잠수함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던 호주를 끌어들여 미국 영국 호주가 새로운 안보동맹체 '오커스(AUKUS)' 를 출범시켰습니다.
여기에 일본과의 해상훈련을 부쩍 강화하면서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인도 태평양 지역 여러 나라와 대규모 합동 해상 훈련을 하면서 동맹과 협력관계를 대폭 강화해 왔습니다.
그럼 그동안 중국은 가만히 있었을까요? 중국은 최근까지도 '동맹'을 '냉전의 유산'으로 규정하면서 미국과 서방세계를 비난해 왔습니다.
북한과 군사동맹 수준의 조약을 체결한 것을 제외하면 안보동맹 관계에 소극적이거나 부정적 견해를 보여왔습니다. 사실상 1961년 북한과 체결한 우호조약을 빼고는 군사적으로 나라 간 밀접한 관계를 맺는데는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보여왔었죠.
하지만 지금은 변화가 엿보입니다.
미국과 영국 호주가 새로운 안보 동맹 '오커스'를 발표할 즈음, 중국은 러시아와 함께 주도적 역할을 맡고 있는 '상하이 협력기구(SCO)'에 이란을 전격적으로 가입시켰습니다.
카자흐스탄, 키르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국가에 인도와 파키스탄까지를 아우르는 8개 나라의 협의체였는데요, 여기에 이란까지 합류시킨 것이죠.
15년 동안 가입을 희망해 왔던 이란으로서는 숙원사업을 이룬 셈이었죠. 이란과 미국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생각해보면 이란이 중국 주도의 정치 경제 안보협의체에 가입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중국에 불리할 것이 없어 보였습니다.
중국은 또 지난달 러시아와 합동 해상훈련을 하면서 동해로 올라와 일본 홋카이도와 혼슈 사이 쓰가루 해협 등을 통과하며 미군과 일본 해상자위대를 긴장시키기도 했었죠.
국제법적으로 공해상이라고는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함대가 함께 훈련 목적으로 쓰가루 해협을 통과한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미국 주도의 다국적 연합 해상훈련에 맞선 대응으로 간주 됐었습니다. 중국은 또 지난 7월에는 북한과의 북·중 우호조약 체결 60년을 맞아 북한과의 전략적 협력 관계 역시 강화해 나갈 것임을 천명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미국과 중국 두 나라 정상의 화상 만남은 이렇게 외교적 협력기반을 다진 뒤에 이뤄졌습니다.
두 나라와 각각 새로운 관계설정을 마쳤거나 우호협력 관계를 다진 나라들로서는 미·중 두 나라 정상의 이번 만남이 그저 남의 나라 정상 간의 만남이 아닌 이유이고, 각별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주요 사안'이었던 셈이죠.
미·중 회담 정상회담이 열리던 시점에 한미일 세 나라 차관회의 참석차 외교부 1차관이 방미 중이었던 만큼 한국 정부로서도 각별한 관심을 갖고 지켜봤으리라 생각됩니다.
둘째 경제적 요인으로 이번 회담을 보면, 미·중 두 나라 모두 코로나19의 재확산 문제가 여전하고
인플레이션과 원자재 공급 문제, 부실기업의 파산과 연쇄적인 충격 우려가 있는 시점에서 갈등과 파국으로 상황을 몰고 가는 것보다는 협력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자국은 물론 전 세계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을 내린 듯해 보입니다.
현재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전략가인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커트 캠벨 NSC 인도 태평양 조정관은 지난 2019년 9월과 10월호 <포린어페어스> 기고문에서 중국을 냉전 시대 소련과 전혀 다른 경쟁국가로 규정하면서 냉전시대의 봉쇄 (Containment)전략으로는 중국을 꺾기 힘들고, 두 나라 간 상호의존도 역시 매우 크다는 점을 역설한 바 있습니다.
'재앙 없는 경쟁'이란 제목의 이 기고문은 "소련과 달리 중국은 세계와 깊이 통합돼 있으며 미국 경제와도 얽혀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도전은 소련보다 더 강력하고 ,이에 대응하는 미국의 전략수립과 집행은 더 험난하고 힘든 여정이 될 것임을 시사한 것이었죠.
이렇게 볼 때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첫 정상회담은 경제적인 '상호의존의 굴레' 가 촉매제 역할을 해 가능하게 됐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세번째로 미국과 중국의 국내정치적 요인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취임 10개월이 지난 바이든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코로나 19로 휘청거렸던 경제를 회생시켜야 할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증시가 사상 유례없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일반인들이 체감할 수 있는 고용 등 경제지표의 회복세가 뚜렷하다고 하기에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원자재 공급 불안과 인플레이션, 예상되는 금리 인상 충격 등 극복하여야 할 과제가 산적한데, 현재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40퍼센트 초반에 머물러 있는 상황입니다.
12년간 민주당이 내리 승리했던 버지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도 공화당 후보가 승리하면서 타격을 입었고요. 국내정치 상황이 녹녹지 않은 가운데, 대외적으로 중국과도 파국으로 치달을 경우 바이든 대통령에게도 부담이 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시진핑 주석 역시 미·중 정상회담 직전 중요한 국내정치 일정을 마쳤죠. 중국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6중전회)를 통해서 자신을 마오쩌둥, 덩샤오핑에 버금가는 반열의 지도자로 격상시키는 중국 공산당 100년 역사상 세 번째 '역사 결의'를 이끌어 냈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장기집권을 위한 권력 기반이 탄탄해졌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역사적 위상'에 걸맞는 '업적'도 남겨야 하는 부담 역시 동시에 갖게 됐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막았지만, 갈등은 여전했다'는 평가를 뒤로하고, 바이든과 시진핑의 첫 화상회담은 막을 내렸습니다.
이를 주시했던 세계는 일단 한숨을 돌리며 당분간 '어제와 별다름이 없는 오늘'을 맞이하겠지만, 정상회담 전 갖추어진 '틀'이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이며 언젠가 요동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국제정세의 변화무쌍한 추이를 늘 주시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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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철영 기자 cyku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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