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이대로라면 파산”…흔들리는 ‘천년 고도’

입력 2021.11.20 (22:18) 수정 2021.11.20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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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본의 대표적인 역사·관광의 도시 하면 떠오르는 곳, 바로 '교토'인데요.

코로나19 사태 이전 한 해 5천만 명이 다녀갔던 이 곳이 지금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합니다.

교토 시장은 '이대로라면 10년 안에 파산할 수도 있다'고까지 말했는데요.

교토에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박원기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1,200년 전통을 자랑하는 교토의 유명 사찰 기요미즈데라.

주변 곳곳에 울긋불긋한 단풍이 늦가을 정취를 더해 줍니다.

에도시대 상인들로 붐볐을 좁은 골목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하나 둘 이어집니다. 타니구치 유키코/기념품점 대표 [인터뷰] 손님 수도 줄고 힘든 상황이었어요. 모든 분들이 외출하고 여행하시면 기쁘겠습니다.

하지만 호텔 쇼핑 시설 등이 있는 시내는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코로나 사태 이전 한 해 관광객 5천만 명이 찾았던 부산함은 이젠 찾기 어렵습니다.

3대에 걸쳐 70년 넘게 운영 중인 이 전통 숙박시설 료칸엔 서른 개 객실이 모두 텅 비었습니다.

[기타하라 타츠마/전통숙박업소 대표 : "올해도 지금까지 매상이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2019년과 비교하면 10% 이하 밖에 안 돼요."]

코로나 사태 전부터 천년고도 교토의 어깨를 짓누른 건 따로 있습니다.

바로 매년 수천억 원씩 발생하고 있는 재정 적자입니다.

[카도카와/교토시장/6월 : "이대로라면 10년 안에 교토시 재정은 파탄이 날 우려가 있습니다."]

교토시가 따져 보니, 올해부터 2025년까지 매년 5,6천억 원씩, 적자가 총 2조9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교토시는 적자를 메우기 위해 2005년부터 우리의 마이너스 통장과 비슷한 개념인 '공채 상환기금'에도 손을 댔는데, 이 기금도 수 년 안에 바닥 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오가사와라 스스무/교토시 재정과장 : "앞으로 5년 간을 예상해보면 매년 5천억원에서 6천억원 정도의 재원 부족이 발생합니다. 이것을 기금으로 메우면 기금이 없어져 버린다고…."]

이렇게 되면 결국 재정 재생단체, 즉, 홋카이도 유바리시처럼 파산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재정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이 지하철입니다.

이른바 거품 경제기에 비싸게 지어놨는데 애초 예상보다 이용객 수가 현저히 적어 만성 적자를 보고 있습니다.

1997년 개통돼 시가 운영하고 있는 교토 지하철 도자이센, 유동인구가 많을 법한 시청앞역인데도 승객이 거의 없습니다.

건설 당시 예상했던 하루 승객 18만 명에는 한 번도 이른 적이 없습니다.

승객 예측에 실패해 지금까지 1조원 넘는 적자를 시 재정으로 꾸역꾸역 메워왔습니다.

타 지역보다 월등한 보육료 지원, 노인 경로 승차권 제도 등 교토시 만의 후한 복지 지출도 적자를 키운 요인입니다.

[코지마 신타로/교토시의원 : "단기간 효과를 볼 수 있는 재정적 조치를 취해야 할 상황에 처했습니다. 복지, 시민서비스, 돈 많이 드는 곳에 개혁의 메스를 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습니다."]

결국 교토시는 특단의 대책을 내놨습니다.

우선 시청 직원 급여를 최대 6% 삭감하고, 직원 550명을 줄이기로 했습니다.

또 보육원에 보조금 지원은 줄이고, 학부모의 보육원 비용 부담은 높이기로 했습니다.

70살 이상 노인이 거의 무료로 버스와 전철을 이용할 수 있는 경로 승차권도, 75살 이상으로 대상을 축소합니다.

즉, 인위적인 구조 조정과 복지 서비스 대폭 축소가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데 불만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급여 삭감과 실직의 공포를 한꺼번에 떠안게 된 공무원들부터 반발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미나미 히로유키/교토시노조 부위원장 : "반성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확실히 제시되지 않은 데다 재정이 심각하다고 하고 (시민 부담이 가중되는 점 등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일부 노인들도 손 댈 곳이 고작 경로 승차권이냐며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다부치 케이코/시민/73살 : "(노인들이) 조그만 일이라도 밖으로 나와서 쇼핑하고 마을을 활기차게 하는데, 그런 것도 못 하게 되면 교토시가 죽어버립니다."]

수십만 원의 보육료 인상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보육 서비스도 휘청이게 됐습니다.

[쓰지 도요코/보육원장 : "(보육원 보내는 대신)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해서 집에 있는 게 좋을까 고민하는 엄마들이 많습니다. 실제 여기 오는 엄마들도 '(보육료가) 올라가나요?' 라고 물어 오고 있어요."]

적자 재정이 한 두 해 된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20년 가까이 사태를 악화시켜 온 건, 초기에 반발을 두려워해 개혁을 외면하고 미뤄온 지역 정치권 탓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모리 히로유키/ 리츠메이칸대 정책과학대학원 교수 : "정치가 재정 개혁의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교토시의 재정 위기는) 그 결과입니다. 미루게 되면 상처가 깊어지고, 빨리 그 구조가 보일 때 용기를 내서 정치·행정이 주민 서비스를 검토해야 한다는데 (교훈이 있습니다)."]

메이지유신 이전까지 천 년 넘게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

파산의 기로에 선 천년 고도가 과연 어느 쪽으로 나아갈지 일본 안팎의 시선은 그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교토에서 박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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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토, 이대로라면 파산”…흔들리는 ‘천년 고도’
    • 입력 2021-11-20 22:18:45
    • 수정2021-11-20 22:3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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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대표적인 역사·관광의 도시 하면 떠오르는 곳, 바로 '교토'인데요.

코로나19 사태 이전 한 해 5천만 명이 다녀갔던 이 곳이 지금 심각한 재정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합니다.

교토 시장은 '이대로라면 10년 안에 파산할 수도 있다'고까지 말했는데요.

교토에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박원기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1,200년 전통을 자랑하는 교토의 유명 사찰 기요미즈데라.

주변 곳곳에 울긋불긋한 단풍이 늦가을 정취를 더해 줍니다.

에도시대 상인들로 붐볐을 좁은 골목엔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하나 둘 이어집니다. 타니구치 유키코/기념품점 대표 [인터뷰] 손님 수도 줄고 힘든 상황이었어요. 모든 분들이 외출하고 여행하시면 기쁘겠습니다.

하지만 호텔 쇼핑 시설 등이 있는 시내는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코로나 사태 이전 한 해 관광객 5천만 명이 찾았던 부산함은 이젠 찾기 어렵습니다.

3대에 걸쳐 70년 넘게 운영 중인 이 전통 숙박시설 료칸엔 서른 개 객실이 모두 텅 비었습니다.

[기타하라 타츠마/전통숙박업소 대표 : "올해도 지금까지 매상이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2019년과 비교하면 10% 이하 밖에 안 돼요."]

코로나 사태 전부터 천년고도 교토의 어깨를 짓누른 건 따로 있습니다.

바로 매년 수천억 원씩 발생하고 있는 재정 적자입니다.

[카도카와/교토시장/6월 : "이대로라면 10년 안에 교토시 재정은 파탄이 날 우려가 있습니다."]

교토시가 따져 보니, 올해부터 2025년까지 매년 5,6천억 원씩, 적자가 총 2조9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교토시는 적자를 메우기 위해 2005년부터 우리의 마이너스 통장과 비슷한 개념인 '공채 상환기금'에도 손을 댔는데, 이 기금도 수 년 안에 바닥 날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오가사와라 스스무/교토시 재정과장 : "앞으로 5년 간을 예상해보면 매년 5천억원에서 6천억원 정도의 재원 부족이 발생합니다. 이것을 기금으로 메우면 기금이 없어져 버린다고…."]

이렇게 되면 결국 재정 재생단체, 즉, 홋카이도 유바리시처럼 파산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재정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이 지하철입니다.

이른바 거품 경제기에 비싸게 지어놨는데 애초 예상보다 이용객 수가 현저히 적어 만성 적자를 보고 있습니다.

1997년 개통돼 시가 운영하고 있는 교토 지하철 도자이센, 유동인구가 많을 법한 시청앞역인데도 승객이 거의 없습니다.

건설 당시 예상했던 하루 승객 18만 명에는 한 번도 이른 적이 없습니다.

승객 예측에 실패해 지금까지 1조원 넘는 적자를 시 재정으로 꾸역꾸역 메워왔습니다.

타 지역보다 월등한 보육료 지원, 노인 경로 승차권 제도 등 교토시 만의 후한 복지 지출도 적자를 키운 요인입니다.

[코지마 신타로/교토시의원 : "단기간 효과를 볼 수 있는 재정적 조치를 취해야 할 상황에 처했습니다. 복지, 시민서비스, 돈 많이 드는 곳에 개혁의 메스를 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됐습니다."]

결국 교토시는 특단의 대책을 내놨습니다.

우선 시청 직원 급여를 최대 6% 삭감하고, 직원 550명을 줄이기로 했습니다.

또 보육원에 보조금 지원은 줄이고, 학부모의 보육원 비용 부담은 높이기로 했습니다.

70살 이상 노인이 거의 무료로 버스와 전철을 이용할 수 있는 경로 승차권도, 75살 이상으로 대상을 축소합니다.

즉, 인위적인 구조 조정과 복지 서비스 대폭 축소가 핵심이라고 볼 수 있는데 불만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급여 삭감과 실직의 공포를 한꺼번에 떠안게 된 공무원들부터 반발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미나미 히로유키/교토시노조 부위원장 : "반성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확실히 제시되지 않은 데다 재정이 심각하다고 하고 (시민 부담이 가중되는 점 등에) 분노하고 있습니다."]

일부 노인들도 손 댈 곳이 고작 경로 승차권이냐며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입니다.

[다부치 케이코/시민/73살 : "(노인들이) 조그만 일이라도 밖으로 나와서 쇼핑하고 마을을 활기차게 하는데, 그런 것도 못 하게 되면 교토시가 죽어버립니다."]

수십만 원의 보육료 인상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보육 서비스도 휘청이게 됐습니다.

[쓰지 도요코/보육원장 : "(보육원 보내는 대신) 출산휴가나 육아휴직을 해서 집에 있는 게 좋을까 고민하는 엄마들이 많습니다. 실제 여기 오는 엄마들도 '(보육료가) 올라가나요?' 라고 물어 오고 있어요."]

적자 재정이 한 두 해 된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20년 가까이 사태를 악화시켜 온 건, 초기에 반발을 두려워해 개혁을 외면하고 미뤄온 지역 정치권 탓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모리 히로유키/ 리츠메이칸대 정책과학대학원 교수 : "정치가 재정 개혁의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교토시의 재정 위기는) 그 결과입니다. 미루게 되면 상처가 깊어지고, 빨리 그 구조가 보일 때 용기를 내서 정치·행정이 주민 서비스를 검토해야 한다는데 (교훈이 있습니다)."]

메이지유신 이전까지 천 년 넘게 일본의 수도였던 교토.

파산의 기로에 선 천년 고도가 과연 어느 쪽으로 나아갈지 일본 안팎의 시선은 그 곳을 향하고 있습니다.

교토에서 박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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