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소설] 지독한 사랑과 고독의 서사…이승우 ‘식물들의 사생활’

입력 2021.11.22 (06:58) 수정 2021.11.2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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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 시대를 빛낸 소설 50편을 차례로 만나보는 시간.

오늘은 2000년에 발표된 이승우 작가의 장편소설 '식물들의 사생활'을 만나보겠습니다.

두 세대에 걸친 가족사를 통해 진정한 사랑과 행복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이 묵직한 작품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특히 프랑스 문단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정연욱 기자입니다.

[리포트]

소나무를 덩굴처럼 감싼 때죽나무.

서로를 끌어안은 연인을 닮은 이 두 나무를 산책길에서 목격한 작가는 아름답고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이승우/소설가 : "아주 대조적인 질감을 가진 어떤 인격이 결합해 있는 느낌이 있어서."]

화자인 '나'는 형의 연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질투와 증오를 경험하지만 자신의 실수로 강제 징집된 형이 사고로 두 다리를 잃자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휠체어에 탄 채 잃어버린 사랑을 닮은 두 나무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형.

그 옆에서 형의 사랑을 동경하면서도 동시에 연민을 느끼는 동생.

산책길 풍경은 이렇게 소설 속에 녹아들었습니다.

[이승우/소설가 : "(나무의)내면도 정말 그렇게 고요할까. 고요한 사람의 내면에 수근거림 같은 것을 제가 들은 거예요."]

형제들의 부모에게도 복잡한 사연이 있습니다.

첫 아이를 갖게 했던, 짧고 강렬한 옛사랑을 가슴에 품고 사는 아내와 그 아내를 묵묵히 지켜보며 기다리는 남편의 대화 없는 일상을 통해, 우리 삶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나는 사랑, 그 뒤에 숨은 내밀한 소유욕과 죄의식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승우/소설가 : "도대체 인간이 무엇인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인간이 육체를 갖고 있다는 것. 사랑이라고 흔히 하나의 단어로 말해버리는 사랑 안에 들어 있는 엄청나게 다양한 요소들..."]

우리 소설에서 보기 드문 충격적인 상황과 묘사가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지만 반대로 작가에게는 집필 기간 내내 극심한 고통이 됐습니다.

[이승우/소설가 : "장애가 있는 아들의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 사창가로 아이를 업고 정기적으로 사창가를 드나드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실제 이야기를 누구한테 들은 거예요."]

신학대학교를 졸업한 독특한 이력을 안고 1981년 등단한 작가는 기독교 세계관을 투영한 관념적인 작품들을 주로 발표해 왔습니다.

'식물들의 사생활'은 처음으로 대중을 의식해 '사랑'이란 주제를 정면으로 다룬 대표작으로 출간 9년 뒤인 2009년, 국내 작가로는 처음으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출판사 갈리마르의 세계명작총서에 포함됐습니다.

[이승우/소설가 : "독자들과 좀 더 직접 소통하는 글을 쓰고 싶다. 내 소설이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이 예컨대 평론가라든지 다소 전문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 의해서 통과해서 전달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해외에서의 명성과 달리 국내 독자들과의 소통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고백하면서도, 인간의 내면을 치열하게 파고드는 깊이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고 소설가 이승우는 단언합니다.

[이승우/소설가 : "그 한결같음이 매너리즘으로 되지 않기 위한 정신무장? 이런 게 필요할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KBS 뉴스 정연욱입니다.

촬영기자:김상하 박장빈/그래픽:한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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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1-11-22 07: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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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 시대를 빛낸 소설 50편을 차례로 만나보는 시간.

오늘은 2000년에 발표된 이승우 작가의 장편소설 '식물들의 사생활'을 만나보겠습니다.

두 세대에 걸친 가족사를 통해 진정한 사랑과 행복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이 묵직한 작품은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 특히 프랑스 문단에서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정연욱 기자입니다.

[리포트]

소나무를 덩굴처럼 감싼 때죽나무.

서로를 끌어안은 연인을 닮은 이 두 나무를 산책길에서 목격한 작가는 아름답고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이승우/소설가 : "아주 대조적인 질감을 가진 어떤 인격이 결합해 있는 느낌이 있어서."]

화자인 '나'는 형의 연인을 사랑하게 되면서 질투와 증오를 경험하지만 자신의 실수로 강제 징집된 형이 사고로 두 다리를 잃자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휠체어에 탄 채 잃어버린 사랑을 닮은 두 나무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형.

그 옆에서 형의 사랑을 동경하면서도 동시에 연민을 느끼는 동생.

산책길 풍경은 이렇게 소설 속에 녹아들었습니다.

[이승우/소설가 : "(나무의)내면도 정말 그렇게 고요할까. 고요한 사람의 내면에 수근거림 같은 것을 제가 들은 거예요."]

형제들의 부모에게도 복잡한 사연이 있습니다.

첫 아이를 갖게 했던, 짧고 강렬한 옛사랑을 가슴에 품고 사는 아내와 그 아내를 묵묵히 지켜보며 기다리는 남편의 대화 없는 일상을 통해, 우리 삶에서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나는 사랑, 그 뒤에 숨은 내밀한 소유욕과 죄의식이 날 것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승우/소설가 : "도대체 인간이 무엇인가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인간이 육체를 갖고 있다는 것. 사랑이라고 흔히 하나의 단어로 말해버리는 사랑 안에 들어 있는 엄청나게 다양한 요소들..."]

우리 소설에서 보기 드문 충격적인 상황과 묘사가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지만 반대로 작가에게는 집필 기간 내내 극심한 고통이 됐습니다.

[이승우/소설가 : "장애가 있는 아들의 성욕을 해결하기 위해 사창가로 아이를 업고 정기적으로 사창가를 드나드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실제 이야기를 누구한테 들은 거예요."]

신학대학교를 졸업한 독특한 이력을 안고 1981년 등단한 작가는 기독교 세계관을 투영한 관념적인 작품들을 주로 발표해 왔습니다.

'식물들의 사생활'은 처음으로 대중을 의식해 '사랑'이란 주제를 정면으로 다룬 대표작으로 출간 9년 뒤인 2009년, 국내 작가로는 처음으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출판사 갈리마르의 세계명작총서에 포함됐습니다.

[이승우/소설가 : "독자들과 좀 더 직접 소통하는 글을 쓰고 싶다. 내 소설이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과정이 예컨대 평론가라든지 다소 전문적인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 의해서 통과해서 전달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해외에서의 명성과 달리 국내 독자들과의 소통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고백하면서도, 인간의 내면을 치열하게 파고드는 깊이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고 소설가 이승우는 단언합니다.

[이승우/소설가 : "그 한결같음이 매너리즘으로 되지 않기 위한 정신무장? 이런 게 필요할 뿐이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KBS 뉴스 정연욱입니다.

촬영기자:김상하 박장빈/그래픽:한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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