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반란으로 집권, 5.18 유혈진압하고 부정축재

입력 2021.11.23 (09:57) 수정 2021.11.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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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두환 씨는 12.12 군사 반란을 시작으로 권력을 찬탈하고,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유혈진압했습니다.

퇴임 뒤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지만, 특별 사면으로 풀려날 때까지 수감 기간은 2년에 그쳤습니다.

박혜진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전두환 씨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건 1979년입니다.

국군보안사령관으로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의 수사를 맡은 뒤 12월 12일 군사 반란을 일으켜 순식간에 정국을 장악합니다.

[전두환/79년 12.12 직후 : "여기 정의감에 불타는 모든 서울 주변에 있는 지휘관들이 즉각 본 사령관을 지지해주고, 또 임무 수행에 뒷받침이 돼줬기 때문에…"]

민주화 열망이 가득했던 1980년 '서울의 봄'을 짓밟았고, 광주에는 공수 부대를 투입해,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했습니다.

스스로 대통령 자리에 오르기 위한 수순이었습니다.

[전두환/1980년 제11대 대통령 취임식 : "이 국가적 일대 전환기에 대통령의 책무를 맡게 된 데 대하여 무거운 사명감을 느낍니다."]

전두환 씨는 집권 기간 학원자율화나 통행금지 폐지같은 유화책을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저달러, 저유가, 저금리의 이른바 '3저 호황' 덕에 경제 성적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박종철 고문 치사, 이한열 사망, 삼청교육대, 언론사 통폐합 등본질은 철권 통치였습니다.

군사 정권의 안정적인 연장을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직선제 개헌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전두환/1987년 4.13 호헌조치 : "본인은 온 국민의 정치적 결단으로 탄생된 이 헌법을 끝까지 준수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결국 퇴임 뒤 5.18과 12.12, 수천 억 원의 비자금 조성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지만 1997년, 수감 2년만에 특별사면으로 석방됐습니다.

[전두환/97년 12월 석방 : "교도소 생활이라는 게, 여러분들은 교도소 가지 마시오. 그것만 내가 얘기하고 싶습니다."]

전 씨가 다시 뉴스에 등장한 건 2019년, 회고록에서 5.18 관련 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다시 재판정에 서야 했습니다.

[전두환 씨/2019년 재판 출석 : "(발포 명령 부인합니까?) 이거 왜 이래! (광주 시민들한테 사과할 생각 없으세요?)……."]

전 씨는 재판을 받으며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KBS 뉴스 박혜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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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사반란으로 집권, 5.18 유혈진압하고 부정축재
    • 입력 2021-11-23 09:57:50
    • 수정2021-11-23 10: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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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전두환 씨는 12.12 군사 반란을 시작으로 권력을 찬탈하고, 5.18 광주민주화 운동을 유혈진압했습니다.

퇴임 뒤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지만, 특별 사면으로 풀려날 때까지 수감 기간은 2년에 그쳤습니다.

박혜진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리포트]

전두환 씨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건 1979년입니다.

국군보안사령관으로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의 수사를 맡은 뒤 12월 12일 군사 반란을 일으켜 순식간에 정국을 장악합니다.

[전두환/79년 12.12 직후 : "여기 정의감에 불타는 모든 서울 주변에 있는 지휘관들이 즉각 본 사령관을 지지해주고, 또 임무 수행에 뒷받침이 돼줬기 때문에…"]

민주화 열망이 가득했던 1980년 '서울의 봄'을 짓밟았고, 광주에는 공수 부대를 투입해,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했습니다.

스스로 대통령 자리에 오르기 위한 수순이었습니다.

[전두환/1980년 제11대 대통령 취임식 : "이 국가적 일대 전환기에 대통령의 책무를 맡게 된 데 대하여 무거운 사명감을 느낍니다."]

전두환 씨는 집권 기간 학원자율화나 통행금지 폐지같은 유화책을 내세우기도 했습니다.

저달러, 저유가, 저금리의 이른바 '3저 호황' 덕에 경제 성적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박종철 고문 치사, 이한열 사망, 삼청교육대, 언론사 통폐합 등본질은 철권 통치였습니다.

군사 정권의 안정적인 연장을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직선제 개헌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전두환/1987년 4.13 호헌조치 : "본인은 온 국민의 정치적 결단으로 탄생된 이 헌법을 끝까지 준수하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이…"]

결국 퇴임 뒤 5.18과 12.12, 수천 억 원의 비자금 조성 혐의 등으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됐지만 1997년, 수감 2년만에 특별사면으로 석방됐습니다.

[전두환/97년 12월 석방 : "교도소 생활이라는 게, 여러분들은 교도소 가지 마시오. 그것만 내가 얘기하고 싶습니다."]

전 씨가 다시 뉴스에 등장한 건 2019년, 회고록에서 5.18 관련 故 조비오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다시 재판정에 서야 했습니다.

[전두환 씨/2019년 재판 출석 : "(발포 명령 부인합니까?) 이거 왜 이래! (광주 시민들한테 사과할 생각 없으세요?)……."]

전 씨는 재판을 받으며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KBS 뉴스 박혜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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