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야구 학폭 잔혹사’…무너진 유망주의 꿈

입력 2021.12.03 (10:19) 수정 2021.12.0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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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구의 한 고교 야구부에서 학교폭력이 발생했다. 그리고 2년 가까이 지난 지금, 유망주들이 잇따라 야구를 포기하고 있다. 그동안 이 야구부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야구 방망이로 후배 머리 내려친 선배

유난히 날이 추웠던 지난해 1월. 대구의 한 고등학교 운동장에 긴장감이 감돕니다. 야구부 주장 A 군이 후배들을 집합시킨 겁니다. A 군은 아직 중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은 예비 신입생들을 일렬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기합이 부족하다'며 머리 박기를 시켰습니다.

해당 학교 아구부 운동장. 선수들이 훈련 중이다.해당 학교 아구부 운동장. 선수들이 훈련 중이다.

하지만 후배 B 군은 허리가 좋지 않았습니다. "선배 저는 머리 박기를 못 하겠습니다."

까마득한 후배가 자기 말을 거역한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선배 A 군은 B 군을 샤워장으로 끌고 갔습니다. 몇 차례 말이 오고 갔습니다. "내가 너 죽일 수도 있다." 이윽고 A 군은 B 군을 마구 폭행했습니다.

B 군 어머니

"'내가 너 죽일 수 있다'면서 손과 발로 온몸을 때린거죠.
'맞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고…."

A 군의 폭행은 이틀 뒤에도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투수 후배들이 대상이었습니다.

A 군은 후배들에게 어깨동무 상태에서 머리 박기를 시켰습니다. 그리고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집니다. 야구 방망이로 후배들의 머리를 강하게 내려치기 시작한 겁니다. 확인된 피해자만 6명, 심지어 한 학생은 머리에 피를 흘려 병원에서 MRI 검사까지 받았습니다.


피해학생 학부모

"방망이로 애들 머리를 아주 세게 내려쳤다니까요. 보통 힘으로 때리는 게 아니고 아주 세게."

명백한 특수 폭행입니다. 위험한 물건으로 신체에 폭행을 가할 경우에는 가중 처벌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한 학교 측은, 피해 학생들에게 진술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당연히 '학폭위'가 열려야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학교는 그 대신, 학부모들을 한 곳에 불러모으고 이런 말을 건넸습니다.

학교 관계자

"최근 학생들 사이에서 조금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학폭위보다는 그냥 학교에서 자체해결했으면 합니다. 동의서를 써주십시오."

학교는 학생들의 피해 사실을 파악하고도 부모들에게 전혀 알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체해결을 하게 동의서를 써달라고 했습니다. 경미한 학교 폭력의 경우, 학폭위 대신 자체적으로 학생 갈등을 봉합하도록 한 '학교장 자체해결제도'를 악용한 겁니다.

이 정도 사안의 학교폭력 사건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 감독과 교장 등 학교 관계자들의 책임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는 부분입니다.

학부모들은 동의서에 사인을 했습니다. 답답했지만, 자식 운동을 계속 시키려면 학교 말을 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학교 측은 주요 사건을 누락시킨채  자체 해결 보고서를 작성했다.학교 측은 주요 사건을 누락시킨채 자체 해결 보고서를 작성했다.

결국, 학교는 대구시교육청에 '가벼운 학교폭력'이 발생했다고 보고하고, 모든 사건을 마무리했습니다. 가해자 A 군은 처벌 대신, '동계훈련 금지'라는 처분만 받았습니다.

당연히 학생 관리 책임이 있는 감독과 교사들 역시, 징계 대상에서 빠지게 됐고, 피해 학생들의 상처만 남게 됐습니다.

■ '학교 감싸주려 했나?' … 대구시교육청의 수상한 조사

'야구 방망이로 머리와 엉덩이를 맞았고, 어깨동무를 한 채 머리까지 박았다.'

-피해 학생 진술서 中

사건 당시 피해 선수가 쓴 진술서입니다. 학교는 이 진술서를 무시했고, 학생들을 방치했습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학부모들은 지난 6월 대구시교육청에 진상 조사를 요구했습니다. 최소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피해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피해 학생이 쓴 진술서.피해 학생이 쓴 진술서.

피해학생 학부모

"학교가 자기들 책임 안 지려고 사건을 은폐하고 조작했잖아요.
그래서 교육청에 진상조사를 요구했죠."

'아무 문제 없음'

그런데 조사를 마친 대구시교육청 학교폭력담당 공무원은 학교가 매뉴얼대로 적절한 조치를 했다며 오히려 학교를 두둔했습니다. 학부모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재차 조사를 요구했지만, 장학사들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학교가 법 테두리 안에서 할 일을 했다는 겁니다.

결국, 학부모 중 한 명이 강은희 교육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감사'를 요청했습니다. 학교의 허술한 사건 처리와 장학사의 부실조사를 감사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윽고 감사가 시작됐습니다.

석 달간의 감사 결과, 학부모 주장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학교 측이 심각한 학교 폭력을 보고서에 기록하지 않았고, 심지어 학부모에게 알리지도 않았는데, 장학사들이 이를 문제 삼지 않은 게 확인된 겁니다.

교육청 감사 결과, 장학사가 학교의 부실한 대처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교육청 감사 결과, 장학사가 학교의 부실한 대처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감사실이 내린 처분은 경징계가 전부였습니다. 폭력 사실을 숨긴 게 아니라,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판단했다는 겁니다.

대구시교육청 감사관

"학교가 사건 보고서를 잘못 작성한 사실은 확인됐지만, 의도적이라기보다는 미비한 점이 있었고, 장학사들 역시 실수를 했다."

'학교가 잘못했다. 교육청 장학사들도 잘못했다. 그런데 실수다.'

이것이 교육청 감사실 입장입니다. 학교폭력에 대한 교육 공무원들의 안일한 대처가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황당한 일이 또 발생합니다. 감사관들 역시 감사 도중에 피해 학생들이 방망이로 폭행당했다며 재차 진술을 들었는데, 이를 관계기관에 신고하지 않고 그냥 넘겨버린 겁니다. 이는 학교폭력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은 누구든지 즉시 관계기관에 신고하도록 한 학교폭력예방법을 위반한 것입니다.

대구시교육청 감사관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다. 별도로 피해 학생들을 보호 조치할 필요를 못 느꼈다."

결과적으로 학교와 시교육청, 게다가 감사실까지 모두가 학교폭력과 그 피해자들을 방치한 셈입니다. 피해 학생들은 사건 2년이 다 되어가도록, 여전히 아무런 보호조치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 학폭 가해자 누명에 10년 야구 물거품

정말 안타까운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합니다.

이 학교 야구부에서 타자로 활약하던 윤정훈 군. 고3 시즌을 앞두고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대한야구협회가 윤 군을 '지난 학폭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이라며 선수 자격 정지 1년을 통보한 겁니다.

타자로 활약하던 윤정훈 군. 억울하게 가해자로 분류돼 야구를 그만뒀다.타자로 활약하던 윤정훈 군. 억울하게 가해자로 분류돼 야구를 그만뒀다.

어찌 된 일인지 살펴보니, 학교 측이 윤 군도 모르게 윤 군을 A 군과 함께 가해자 중 한 명으로 분류해 자체 보고서에 기재했던 겁니다.

(대한야구협회는 학교가 작성한 보고서를 입수해 자체 심의를 거쳐 A 군과 윤 군에게 자격 정지통보를 내렸다.)

윤 군은 황당했습니다. 가해학생 A 군이 사건을 일으킬 당시, 자신은 아무런 일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피해 학생들이 윤 군은 가해자가 아니라고 탄원서를 썼습니다. 그러나 징계는 번복되지 않았습니다.

윤정훈/대구 00고 야구부

"저는 아무런 학교 폭력을 저지른 적이 없습니다.
만약 저를 가해자로 기재하려면, 학교가 저를 불러서 조사했었어야죠.
어떠한 사실 확인도, 소명 절차도 없이 저를 가해자로 기재한 게 너무 억울합니다."

최근 교육청 감사에서 실제 윤 군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학교가 서둘러 사건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사실 확인도 없이 윤 군을 가해자로 잘못 기재한 것이었습니다. 즉, 학교의 심의 결과 보고서가 아예 잘못 작성됐다는 겁니다.

그러나 윤 군은 이미 야구를 그만뒀습니다. 교육청이 진상 조사를 허술하게 하는 사이, 선수 자격 정지 1년 징계가 확정됐기 때문입니다. 한 야구 유망주가 10년 동안 키워온 프로선수의 꿈을 접고 말았습니다.

윤정훈 군 아버지

"학교가 사건을 조작하면서 우리 아들이 피를 봤습니다.
우리 애 인생 누가 책임집니까. 너무 억울합니다."

학생들의 피해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다른 2차 피해도 현재 잇따르고 있습니다. 학교가 사건 축소를 위해 특정 선수만 경기에 출전시켰다는 의혹이 제기 되고 있는 겁니다.

사건 당시, 많은 학생들이 투수 B 군이 방망이로 머리를 맞아 피가 난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학교에 문제 제기했는데요.

그런데 며칠 뒤, 학교에서 B 군의 부상은 야구 방망이 폭행과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린 이후에 B 군이 경기에 집중적으로 출전하게 됐다는 겁니다.

선수 기용은 단순히 감독의 재량 아니냐고 생각하실 분 많으실텐데요. 기록을 보면 의구심이 생기실 겁니다. 실제 B 군과 다른 고3 투수들과의 등판 이닝 수가 많게는 16배 넘게 차이가 벌어진 겁니다.


문제는 출전 경기 수가 대학 입시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야구부가 있는 4년제 대학의 경우, 투수는 대개 10이닝 이상의 출전을 조건으로 두고 있는데, 나머지 학생들은 규정 이닝을 채우지 못해 대학 원서조차 제출하지 못한 겁니다.
피해학생 아버지

"학교가 학폭 사건을 무마시키고 조작하려고 특정 학생만 밀어주고,
나머지 애들은 전혀 던질 기회를 안 줬습니다.
대학 원서를 써낼 조건이 아예 안 됩니다. 야구 인생 망친 거에요"

규정 이닝을 못 채운 선수들은 모두 대구와 부산, 충청 지역에서 각 지역 대표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던 터라 더욱 안타까움이 커지는 상황입니다.

이에 대해 학교와 감독 측은 사실 여부 확인을 요청했지만, 끝내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야구 유망주들의 꿈이 이렇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야구는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스포츠입니다. 그동안 팬들의 응원 덕분에 한국 야구는 크게 성장했죠. 그만큼 선수들은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받고 있는데요. 그런데 선수들을 배출하는 아마 야구에서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어른들의 무책임한 행태에 피해를 본 윤정훈 군과 다른 유망주 학생들에게 한 줄기 따뜻한 빛이 비치길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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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교 야구 학폭 잔혹사’…무너진 유망주의 꿈
    • 입력 2021-12-03 10:19:51
    • 수정2021-12-03 14:08:15
    취재K

지난해 대구의 한 고교 야구부에서 학교폭력이 발생했다. 그리고 2년 가까이 지난 지금, 유망주들이 잇따라 야구를 포기하고 있다. 그동안 이 야구부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야구 방망이로 후배 머리 내려친 선배

유난히 날이 추웠던 지난해 1월. 대구의 한 고등학교 운동장에 긴장감이 감돕니다. 야구부 주장 A 군이 후배들을 집합시킨 겁니다. A 군은 아직 중학교를 졸업하지도 않은 예비 신입생들을 일렬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기합이 부족하다'며 머리 박기를 시켰습니다.

해당 학교 아구부 운동장. 선수들이 훈련 중이다.
하지만 후배 B 군은 허리가 좋지 않았습니다. "선배 저는 머리 박기를 못 하겠습니다."

까마득한 후배가 자기 말을 거역한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선배 A 군은 B 군을 샤워장으로 끌고 갔습니다. 몇 차례 말이 오고 갔습니다. "내가 너 죽일 수도 있다." 이윽고 A 군은 B 군을 마구 폭행했습니다.

B 군 어머니

"'내가 너 죽일 수 있다'면서 손과 발로 온몸을 때린거죠.
'맞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다고…."

A 군의 폭행은 이틀 뒤에도 이어집니다. 이번에는 투수 후배들이 대상이었습니다.

A 군은 후배들에게 어깨동무 상태에서 머리 박기를 시켰습니다. 그리고 믿기 힘든 일이 벌어집니다. 야구 방망이로 후배들의 머리를 강하게 내려치기 시작한 겁니다. 확인된 피해자만 6명, 심지어 한 학생은 머리에 피를 흘려 병원에서 MRI 검사까지 받았습니다.


피해학생 학부모

"방망이로 애들 머리를 아주 세게 내려쳤다니까요. 보통 힘으로 때리는 게 아니고 아주 세게."

명백한 특수 폭행입니다. 위험한 물건으로 신체에 폭행을 가할 경우에는 가중 처벌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한 학교 측은, 피해 학생들에게 진술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당연히 '학폭위'가 열려야했습니다.

아니었습니다. 학교는 그 대신, 학부모들을 한 곳에 불러모으고 이런 말을 건넸습니다.

학교 관계자

"최근 학생들 사이에서 조금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학폭위보다는 그냥 학교에서 자체해결했으면 합니다. 동의서를 써주십시오."

학교는 학생들의 피해 사실을 파악하고도 부모들에게 전혀 알리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체해결을 하게 동의서를 써달라고 했습니다. 경미한 학교 폭력의 경우, 학폭위 대신 자체적으로 학생 갈등을 봉합하도록 한 '학교장 자체해결제도'를 악용한 겁니다.

이 정도 사안의 학교폭력 사건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 감독과 교장 등 학교 관계자들의 책임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는 부분입니다.

학부모들은 동의서에 사인을 했습니다. 답답했지만, 자식 운동을 계속 시키려면 학교 말을 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학교 측은 주요 사건을 누락시킨채  자체 해결 보고서를 작성했다.
결국, 학교는 대구시교육청에 '가벼운 학교폭력'이 발생했다고 보고하고, 모든 사건을 마무리했습니다. 가해자 A 군은 처벌 대신, '동계훈련 금지'라는 처분만 받았습니다.

당연히 학생 관리 책임이 있는 감독과 교사들 역시, 징계 대상에서 빠지게 됐고, 피해 학생들의 상처만 남게 됐습니다.

■ '학교 감싸주려 했나?' … 대구시교육청의 수상한 조사

'야구 방망이로 머리와 엉덩이를 맞았고, 어깨동무를 한 채 머리까지 박았다.'

-피해 학생 진술서 中

사건 당시 피해 선수가 쓴 진술서입니다. 학교는 이 진술서를 무시했고, 학생들을 방치했습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학부모들은 지난 6월 대구시교육청에 진상 조사를 요구했습니다. 최소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피해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피해 학생이 쓴 진술서.
피해학생 학부모

"학교가 자기들 책임 안 지려고 사건을 은폐하고 조작했잖아요.
그래서 교육청에 진상조사를 요구했죠."

'아무 문제 없음'

그런데 조사를 마친 대구시교육청 학교폭력담당 공무원은 학교가 매뉴얼대로 적절한 조치를 했다며 오히려 학교를 두둔했습니다. 학부모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재차 조사를 요구했지만, 장학사들의 태도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학교가 법 테두리 안에서 할 일을 했다는 겁니다.

결국, 학부모 중 한 명이 강은희 교육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감사'를 요청했습니다. 학교의 허술한 사건 처리와 장학사의 부실조사를 감사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윽고 감사가 시작됐습니다.

석 달간의 감사 결과, 학부모 주장이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학교 측이 심각한 학교 폭력을 보고서에 기록하지 않았고, 심지어 학부모에게 알리지도 않았는데, 장학사들이 이를 문제 삼지 않은 게 확인된 겁니다.

교육청 감사 결과, 장학사가 학교의 부실한 대처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데 감사실이 내린 처분은 경징계가 전부였습니다. 폭력 사실을 숨긴 게 아니라, 실수로 빠뜨린 것으로 판단했다는 겁니다.

대구시교육청 감사관

"학교가 사건 보고서를 잘못 작성한 사실은 확인됐지만, 의도적이라기보다는 미비한 점이 있었고, 장학사들 역시 실수를 했다."

'학교가 잘못했다. 교육청 장학사들도 잘못했다. 그런데 실수다.'

이것이 교육청 감사실 입장입니다. 학교폭력에 대한 교육 공무원들의 안일한 대처가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황당한 일이 또 발생합니다. 감사관들 역시 감사 도중에 피해 학생들이 방망이로 폭행당했다며 재차 진술을 들었는데, 이를 관계기관에 신고하지 않고 그냥 넘겨버린 겁니다. 이는 학교폭력 사실을 알게 된 사람은 누구든지 즉시 관계기관에 신고하도록 한 학교폭력예방법을 위반한 것입니다.

대구시교육청 감사관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다. 별도로 피해 학생들을 보호 조치할 필요를 못 느꼈다."

결과적으로 학교와 시교육청, 게다가 감사실까지 모두가 학교폭력과 그 피해자들을 방치한 셈입니다. 피해 학생들은 사건 2년이 다 되어가도록, 여전히 아무런 보호조치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 학폭 가해자 누명에 10년 야구 물거품

정말 안타까운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합니다.

이 학교 야구부에서 타자로 활약하던 윤정훈 군. 고3 시즌을 앞두고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대한야구협회가 윤 군을 '지난 학폭 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이라며 선수 자격 정지 1년을 통보한 겁니다.

타자로 활약하던 윤정훈 군. 억울하게 가해자로 분류돼 야구를 그만뒀다.
어찌 된 일인지 살펴보니, 학교 측이 윤 군도 모르게 윤 군을 A 군과 함께 가해자 중 한 명으로 분류해 자체 보고서에 기재했던 겁니다.

(대한야구협회는 학교가 작성한 보고서를 입수해 자체 심의를 거쳐 A 군과 윤 군에게 자격 정지통보를 내렸다.)

윤 군은 황당했습니다. 가해학생 A 군이 사건을 일으킬 당시, 자신은 아무런 일을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피해 학생들이 윤 군은 가해자가 아니라고 탄원서를 썼습니다. 그러나 징계는 번복되지 않았습니다.

윤정훈/대구 00고 야구부

"저는 아무런 학교 폭력을 저지른 적이 없습니다.
만약 저를 가해자로 기재하려면, 학교가 저를 불러서 조사했었어야죠.
어떠한 사실 확인도, 소명 절차도 없이 저를 가해자로 기재한 게 너무 억울합니다."

최근 교육청 감사에서 실제 윤 군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학교가 서둘러 사건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사실 확인도 없이 윤 군을 가해자로 잘못 기재한 것이었습니다. 즉, 학교의 심의 결과 보고서가 아예 잘못 작성됐다는 겁니다.

그러나 윤 군은 이미 야구를 그만뒀습니다. 교육청이 진상 조사를 허술하게 하는 사이, 선수 자격 정지 1년 징계가 확정됐기 때문입니다. 한 야구 유망주가 10년 동안 키워온 프로선수의 꿈을 접고 말았습니다.

윤정훈 군 아버지

"학교가 사건을 조작하면서 우리 아들이 피를 봤습니다.
우리 애 인생 누가 책임집니까. 너무 억울합니다."

학생들의 피해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다른 2차 피해도 현재 잇따르고 있습니다. 학교가 사건 축소를 위해 특정 선수만 경기에 출전시켰다는 의혹이 제기 되고 있는 겁니다.

사건 당시, 많은 학생들이 투수 B 군이 방망이로 머리를 맞아 피가 난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학교에 문제 제기했는데요.

그런데 며칠 뒤, 학교에서 B 군의 부상은 야구 방망이 폭행과 무관하다는 결론을 내린 이후에 B 군이 경기에 집중적으로 출전하게 됐다는 겁니다.

선수 기용은 단순히 감독의 재량 아니냐고 생각하실 분 많으실텐데요. 기록을 보면 의구심이 생기실 겁니다. 실제 B 군과 다른 고3 투수들과의 등판 이닝 수가 많게는 16배 넘게 차이가 벌어진 겁니다.


문제는 출전 경기 수가 대학 입시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야구부가 있는 4년제 대학의 경우, 투수는 대개 10이닝 이상의 출전을 조건으로 두고 있는데, 나머지 학생들은 규정 이닝을 채우지 못해 대학 원서조차 제출하지 못한 겁니다.
피해학생 아버지

"학교가 학폭 사건을 무마시키고 조작하려고 특정 학생만 밀어주고,
나머지 애들은 전혀 던질 기회를 안 줬습니다.
대학 원서를 써낼 조건이 아예 안 됩니다. 야구 인생 망친 거에요"

규정 이닝을 못 채운 선수들은 모두 대구와 부산, 충청 지역에서 각 지역 대표 에이스로 이름을 날렸던 터라 더욱 안타까움이 커지는 상황입니다.

이에 대해 학교와 감독 측은 사실 여부 확인을 요청했지만, 끝내 답변을 거부했습니다. 야구 유망주들의 꿈이 이렇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야구는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스포츠입니다. 그동안 팬들의 응원 덕분에 한국 야구는 크게 성장했죠. 그만큼 선수들은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받고 있는데요. 그런데 선수들을 배출하는 아마 야구에서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어른들의 무책임한 행태에 피해를 본 윤정훈 군과 다른 유망주 학생들에게 한 줄기 따뜻한 빛이 비치길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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