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키면 시키는 대로”…현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입력 2021.12.10 (12:34) 수정 2021.12.10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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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고 김용균 씨 3주기 추모가 이번 주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났지만 현장의 하청 노동자들은 달라진 게 거의 없다고 말합니다.

왜 그런 건지, 최근 사례를 통해 그 이유를 살펴봤습니다.

김지숙 기자입니다.

[리포트]

부산 화력발전소의 하청 노동자 이승주 씨.

넉달 전, 원청으로부터 해수 설비 밸브를 점검하라는 호출을 받았습니다.

유해 가스가 유출될 위험이 있었지만 위험한 작업이란 안내도 없었습니다.

[이승주/발전소 하청 노동자 : “그냥 밸브만 확인만 하면 되는 줄 알고 갔었습니다. 볼트 세 개를 풀자 가스가 저한테 확 올라와서 흡입을 해버렸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가스는 염산이었습니다.

보호 장구도 없어서 염산을 얼굴에 뒤집어 쓸 뻔한 겁니다.

이런 작업이 반복되면서 이 씨는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고 이제는 걷기 힘든 몸이 됐습니다.

[이승주 : “이런 식으로 대우를 받고 감당할 수 있을까? 이렇게라도 세상이 바뀔 수 있으려나 싶어서….”]

위험해서 못 한다고 항변해도 무시당하는 게 거의 일상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5월의 현장 상황입니다.

[한국남부발전 직원/음성변조 : “오늘 무조건 빼라 그랬잖아, 이거. (…….)”]

[한국남부발전 하청 노동자/음성변조 : “(배관 안에) 물이 있으니까요. (밸브) 못 뺀다니까요. (……).”]

[한국남부발전 직원/음성변조 : “빼시라고! (…….) 도장하려고 사람 불렀는 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자! 되나? 안 되 나?”]

남부발전 측은 계약상 무리한 지시를 할 수 없고 작업 지시 과정에도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승주 : “‘왜 우리가 해야 됩니까’ 이러면 ‘시키면 하라면 해야지…’ 무슨 일이든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되는 그런 관계인가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이승주 씨는 발전소 하청 노동자의 현실을 이 한마디로 표현했습니다.

2021년의 이승주를 2018년의 김용균으로 바꿔보면 상황은 달랐을까요?

토씨 하나까지 그대로였습니다.

[고 김용균 씨 이모부/2018년 12월 18일 : “왜 이렇게 위험한 작업을 컨베이어벨트 밑에 들어가서 할 수밖에 없었냐고 하니까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답니다. 얼마나 기가 찰 노릇입니까.”]

원청 발전소와 하청업체, 그리고 그 하청의 비정규직 노동자.

법이 바뀌고 돈이 투입돼도 이 도급의 구조와 관행 속에서 위험의 외주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해야 했던 김용균과 이승주.

3년이 지났지만 ‘발전소는 그대로’ 라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하는 이유입니다.

[김○○/이승주 씨 아내/음성변조 : “저희 신랑도 똑같은 상황이 될지는 저도 꿈에도 몰랐어요. 3주기인데도 불구하고 그 어떤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 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라는 것, 그게 가장 큰 거라고 생각해요.”]

KBS 뉴스 김지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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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키면 시키는 대로”…현장은 달라지지 않았다
    • 입력 2021-12-10 12:34:40
    • 수정2021-12-10 12:48:01
    뉴스 12
[앵커]

고 김용균 씨 3주기 추모가 이번 주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3년이 지났지만 현장의 하청 노동자들은 달라진 게 거의 없다고 말합니다.

왜 그런 건지, 최근 사례를 통해 그 이유를 살펴봤습니다.

김지숙 기자입니다.

[리포트]

부산 화력발전소의 하청 노동자 이승주 씨.

넉달 전, 원청으로부터 해수 설비 밸브를 점검하라는 호출을 받았습니다.

유해 가스가 유출될 위험이 있었지만 위험한 작업이란 안내도 없었습니다.

[이승주/발전소 하청 노동자 : “그냥 밸브만 확인만 하면 되는 줄 알고 갔었습니다. 볼트 세 개를 풀자 가스가 저한테 확 올라와서 흡입을 해버렸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가스는 염산이었습니다.

보호 장구도 없어서 염산을 얼굴에 뒤집어 쓸 뻔한 겁니다.

이런 작업이 반복되면서 이 씨는 결국 극단적 선택을 했고 이제는 걷기 힘든 몸이 됐습니다.

[이승주 : “이런 식으로 대우를 받고 감당할 수 있을까? 이렇게라도 세상이 바뀔 수 있으려나 싶어서….”]

위험해서 못 한다고 항변해도 무시당하는 게 거의 일상이라고 했습니다.

지난 5월의 현장 상황입니다.

[한국남부발전 직원/음성변조 : “오늘 무조건 빼라 그랬잖아, 이거. (…….)”]

[한국남부발전 하청 노동자/음성변조 : “(배관 안에) 물이 있으니까요. (밸브) 못 뺀다니까요. (……).”]

[한국남부발전 직원/음성변조 : “빼시라고! (…….) 도장하려고 사람 불렀는 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자! 되나? 안 되 나?”]

남부발전 측은 계약상 무리한 지시를 할 수 없고 작업 지시 과정에도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승주 : “‘왜 우리가 해야 됩니까’ 이러면 ‘시키면 하라면 해야지…’ 무슨 일이든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되는 그런 관계인가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이승주 씨는 발전소 하청 노동자의 현실을 이 한마디로 표현했습니다.

2021년의 이승주를 2018년의 김용균으로 바꿔보면 상황은 달랐을까요?

토씨 하나까지 그대로였습니다.

[고 김용균 씨 이모부/2018년 12월 18일 : “왜 이렇게 위험한 작업을 컨베이어벨트 밑에 들어가서 할 수밖에 없었냐고 하니까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답니다. 얼마나 기가 찰 노릇입니까.”]

원청 발전소와 하청업체, 그리고 그 하청의 비정규직 노동자.

법이 바뀌고 돈이 투입돼도 이 도급의 구조와 관행 속에서 위험의 외주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일해야 했던 김용균과 이승주.

3년이 지났지만 ‘발전소는 그대로’ 라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하는 이유입니다.

[김○○/이승주 씨 아내/음성변조 : “저희 신랑도 똑같은 상황이 될지는 저도 꿈에도 몰랐어요. 3주기인데도 불구하고 그 어떤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 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라는 것, 그게 가장 큰 거라고 생각해요.”]

KBS 뉴스 김지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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