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日 방화 용의자는 ‘평범한 시민’…범행 과정 속속 드러나

입력 2021.12.20 (11:53) 수정 2021.12.20 (13:5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021년 12월 17일 오전 방화로 24명이 숨진 일본 오사카시 번화가 8층 건물 (화면 가운데)   / NHK 화면 갈무리2021년 12월 17일 오전 방화로 24명이 숨진 일본 오사카시 번화가 8층 건물 (화면 가운데) / NHK 화면 갈무리

12월 17일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시에서 무려 24명을 숨지게 한 화재 사건의 진상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습니다.

당일 화재는 오사카시 번화가 8층 건물 4층에 있는 '니시우메다 마음과 몸 클리닉'에서 시작됐는데요. 현지 경찰은 통원 치료를 받던 61살 다니모토 모리오(谷本盛雄)를 살인·방화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용의자 역시 중태에 빠져 경찰이 직접 자세한 범행 동기나 경위를 캐지는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2021년 12월 18일 화재가 난 4층 정신과 의원에서 현장 검증을 벌이고 있는 경찰과 소방대원.    NHK 화면 갈무리2021년 12월 18일 화재가 난 4층 정신과 의원에서 현장 검증을 벌이고 있는 경찰과 소방대원. NHK 화면 갈무리

■ 입구에서 라이터로 불 붙여

화재 이튿날인 18일 날이 밝자 경찰과 소방대원들은 현장감식을 벌였습니다. NHK방송 등에 따르면 정신과 의원 접수처 주변에서 타다 남은 기름 성분이 검출됐는데, 분석 결과 휘발유였습니다.

앞서 다니모토가 11월 하순 오사카 시내 한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구입한 사실이 파악됐는데요. 이에 따라 경찰은 다니모토가 범행을 사전에 계획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건물 내 CCTV엔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담겨 있었습니다. 다니모토가 종이가방에서 꺼낸 휘발유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모습이 찍혔던 것입니다. 다니모토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는 경찰도 알 수 없어 답답한 심정일 것 같습니다. 용의자 역시 화재 현장에서 연기를 들이마셔 중태에 빠진 상태니까요.

만약 이대로 숨질 경우 범행 동기나 경위는 그에게서 영영 듣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화재 30분 전엔 용의자의 집에서도 방화로 보이는 작은 화재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돼 경찰이 관련성을 조사 중입니다.

방화 용의자인 다니모토 모리오가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모습  / NHK 화면 갈무리방화 용의자인 다니모토 모리오가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모습 / NHK 화면 갈무리

■ "책임감·성실했다"…충격 더해

20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다니모토는 평범하게 사회 생활을 해 온 시민이었습니다. 1960년 오사카시에서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고요. 고교 졸업 후 함석 지붕 등을 만드는 판금 기술자로 오래 일해왔습니다.

2002년부터 그와 8년 간 일했던 판금 공장 사장(78살)은 이번 사건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자기가 봤던 다니모토는 "책임감 강하고, 맡긴 일은 완벽히 마무리했다. 직장 내에서 의견이 엇갈리면 얼굴이 붉어지긴 했지만 폭력을 휘두르는 일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던 타니모토는 결혼 후 아들 둘을 낳아 살고 있었는데 2008년 아내와 이혼한 뒤 집을 나와 혼자 살기 시작했습니다. 1년 뒤 재결합을 원했지만 거부당했고, 경마에 빠지는 등 생활이 엉망이 되면서 2010년부턴 공장 무단결근에 연락조차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타니모토의 친형은 "30여 년 전 부친 사망 이후부터 동생과 관계가 소원해졌다"면서 "많은 사람이 숨져 매우 유감스럽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유일한 대피로…용의자가 막았다"

화재가 난 8층 건물은 오사카역에서 불과 400m 떨어진 '기타신치(北新地)'라는 번화가에 있습니다.

KBS 취재진이 첫날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일대는 화재 여파로 통제가 되고 있었는데요. 경찰차·소방차에 퇴근길 인파까지 몰리면서 더욱 어수선했습니다. 1층 양복점, 2층 학원 위로 4층 창문엔 불에 그을린 흔적이 선명했는데, 딱 봐도 그리 넓지 않은 공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면적이 약 90㎡에 불과한 정신과 의원은 출입구와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안쪽으로 환자 대기실과 상담실, 진료실 등이 약 1m 폭의 복도로 연결돼 있었습니다. 대기실에는 창문이 있었지만 진료실 등엔 창문도 없었고 화재에 대비한 스프링클러도 없었습니다.

용의자가 불을 지른 뒤 출입구 앞에서 두 팔 벌려 서 있는 모습도 CCTV에 찍혔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는데요. 유일한 대피로인 계단이 막히면서 4층에 있던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연기를 그대로 들이마실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12월 18일 화재 참사 현장 앞에 희생자의 영혼을 위로하려는 시민이 꽃을 바치고 있다.   NHK 화면 갈무리12월 18일 화재 참사 현장 앞에 희생자의 영혼을 위로하려는 시민이 꽃을 바치고 있다. NHK 화면 갈무리

■ "원장 사망에 애도"…시민 추도 행렬

비극적인 건물 앞 보도엔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하나 둘 꽃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지나가던 시민들이 억울하게 숨진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바친 꽃입니다.

불이 난 '니시우메다 클리닉'은 업무 중 발생한 심신증이나 정신질환을 치료하거나 재활을 도와주는 곳인데요. 평소 환자를 헌신적으로 돌본 니시자와 고타로(西澤弘太郎) 원장의 사망 소식에 통원했던 환자들은 크게 애도했습니다.

3년 전부터 이 의원을 계속 다니고 있다는 한 40대 여성은 NHK방송에 "치료 덕에 반년 전부터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한 뒤, 편지와 꽃을 바친 뒤 1분 정도 기도를 드렸습니다.

자세한 이유와 경위를 떠나 시민들은 환자와 의료진의 공간인 병원이 범행 대상이 됐다는 점에 대해서도 큰 충격을 받은 모습입니다.

일본병원회 2018년 조사에서 103건의 병원 화재 가운데 가장 큰 원인이 바로 '방화(33건)'이었다는데요. 이른바 '묻지마 범죄'이거나, 병원 치료·환자 대우에 대한 불만 등이 발단이 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거리 앞에서 KBS 취재진과 만난 나카무라 가즈히코 "이런 일이 또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데,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나버렸다고 할까. 큰 사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 리포트] 日 방화 용의자는 ‘평범한 시민’…범행 과정 속속 드러나
    • 입력 2021-12-20 11:53:01
    • 수정2021-12-20 13:55:17
    특파원 리포트
2021년 12월 17일 오전 방화로 24명이 숨진 일본 오사카시 번화가 8층 건물 (화면 가운데)   / NHK 화면 갈무리
12월 17일 일본 '제2의 도시' 오사카시에서 무려 24명을 숨지게 한 화재 사건의 진상이 하나 둘 드러나고 있습니다.

당일 화재는 오사카시 번화가 8층 건물 4층에 있는 '니시우메다 마음과 몸 클리닉'에서 시작됐는데요. 현지 경찰은 통원 치료를 받던 61살 다니모토 모리오(谷本盛雄)를 살인·방화 용의자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용의자 역시 중태에 빠져 경찰이 직접 자세한 범행 동기나 경위를 캐지는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2021년 12월 18일 화재가 난 4층 정신과 의원에서 현장 검증을 벌이고 있는 경찰과 소방대원.    NHK 화면 갈무리
■ 입구에서 라이터로 불 붙여

화재 이튿날인 18일 날이 밝자 경찰과 소방대원들은 현장감식을 벌였습니다. NHK방송 등에 따르면 정신과 의원 접수처 주변에서 타다 남은 기름 성분이 검출됐는데, 분석 결과 휘발유였습니다.

앞서 다니모토가 11월 하순 오사카 시내 한 주유소에서 휘발유를 구입한 사실이 파악됐는데요. 이에 따라 경찰은 다니모토가 범행을 사전에 계획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건물 내 CCTV엔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담겨 있었습니다. 다니모토가 종이가방에서 꺼낸 휘발유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는 모습이 찍혔던 것입니다. 다니모토가 왜 이런 짓을 했는지는 경찰도 알 수 없어 답답한 심정일 것 같습니다. 용의자 역시 화재 현장에서 연기를 들이마셔 중태에 빠진 상태니까요.

만약 이대로 숨질 경우 범행 동기나 경위는 그에게서 영영 듣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화재 30분 전엔 용의자의 집에서도 방화로 보이는 작은 화재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돼 경찰이 관련성을 조사 중입니다.

방화 용의자인 다니모토 모리오가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던 모습  / NHK 화면 갈무리
■ "책임감·성실했다"…충격 더해

20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다니모토는 평범하게 사회 생활을 해 온 시민이었습니다. 1960년 오사카시에서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고요. 고교 졸업 후 함석 지붕 등을 만드는 판금 기술자로 오래 일해왔습니다.

2002년부터 그와 8년 간 일했던 판금 공장 사장(78살)은 이번 사건에 대해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합니다. 자기가 봤던 다니모토는 "책임감 강하고, 맡긴 일은 완벽히 마무리했다. 직장 내에서 의견이 엇갈리면 얼굴이 붉어지긴 했지만 폭력을 휘두르는 일은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던 타니모토는 결혼 후 아들 둘을 낳아 살고 있었는데 2008년 아내와 이혼한 뒤 집을 나와 혼자 살기 시작했습니다. 1년 뒤 재결합을 원했지만 거부당했고, 경마에 빠지는 등 생활이 엉망이 되면서 2010년부턴 공장 무단결근에 연락조차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타니모토의 친형은 "30여 년 전 부친 사망 이후부터 동생과 관계가 소원해졌다"면서 "많은 사람이 숨져 매우 유감스럽다"고 고개를 숙였습니다.


■"유일한 대피로…용의자가 막았다"

화재가 난 8층 건물은 오사카역에서 불과 400m 떨어진 '기타신치(北新地)'라는 번화가에 있습니다.

KBS 취재진이 첫날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일대는 화재 여파로 통제가 되고 있었는데요. 경찰차·소방차에 퇴근길 인파까지 몰리면서 더욱 어수선했습니다. 1층 양복점, 2층 학원 위로 4층 창문엔 불에 그을린 흔적이 선명했는데, 딱 봐도 그리 넓지 않은 공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면적이 약 90㎡에 불과한 정신과 의원은 출입구와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안쪽으로 환자 대기실과 상담실, 진료실 등이 약 1m 폭의 복도로 연결돼 있었습니다. 대기실에는 창문이 있었지만 진료실 등엔 창문도 없었고 화재에 대비한 스프링클러도 없었습니다.

용의자가 불을 지른 뒤 출입구 앞에서 두 팔 벌려 서 있는 모습도 CCTV에 찍혔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는데요. 유일한 대피로인 계단이 막히면서 4층에 있던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연기를 그대로 들이마실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습니다.

12월 18일 화재 참사 현장 앞에 희생자의 영혼을 위로하려는 시민이 꽃을 바치고 있다.   NHK 화면 갈무리
■ "원장 사망에 애도"…시민 추도 행렬

비극적인 건물 앞 보도엔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하나 둘 꽃이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지나가던 시민들이 억울하게 숨진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바친 꽃입니다.

불이 난 '니시우메다 클리닉'은 업무 중 발생한 심신증이나 정신질환을 치료하거나 재활을 도와주는 곳인데요. 평소 환자를 헌신적으로 돌본 니시자와 고타로(西澤弘太郎) 원장의 사망 소식에 통원했던 환자들은 크게 애도했습니다.

3년 전부터 이 의원을 계속 다니고 있다는 한 40대 여성은 NHK방송에 "치료 덕에 반년 전부터 다른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한 뒤, 편지와 꽃을 바친 뒤 1분 정도 기도를 드렸습니다.

자세한 이유와 경위를 떠나 시민들은 환자와 의료진의 공간인 병원이 범행 대상이 됐다는 점에 대해서도 큰 충격을 받은 모습입니다.

일본병원회 2018년 조사에서 103건의 병원 화재 가운데 가장 큰 원인이 바로 '방화(33건)'이었다는데요. 이른바 '묻지마 범죄'이거나, 병원 치료·환자 대우에 대한 불만 등이 발단이 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거리 앞에서 KBS 취재진과 만난 나카무라 가즈히코 "이런 일이 또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데, 일어나선 안 될 일이 일어나버렸다고 할까. 큰 사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