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타이완 ‘N번방 사건’…1심 뒤집고 내린 중형은?
입력 2021.12.23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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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말, 여학생 A는 같은 반 친구에게 충격적인 말을 듣습니다.
"인터넷에서 너 나체 사진이 떠도는 걸 봤어."
A는 자신이 사진을 보냈던 한 오빠를 떠올렸습니다.
린허쥔이 한 미성년 피해자와 나눈 대화 내용 (출처: 이저우칸)
시작은 사회관계망서비스, SNS였습니다.
대화를 나누자며 접근한 '오빠'의 대문 사진은 연예인처럼 잘생긴 모습이었습니다.
친해지자 오빠는 '노출 사진'을 요구하기 시작했는데요.
타이완 국립 의대 영상의학 관련 연구소 합격자 명단에 린허쥔 이름이 적혀있다. (출처: TVBS 뉴스)
우리도 낯익은 이 수법, 타이완판 N번방 사건은 A의 신고로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경찰은 먼저 IP 추적 등을 통해 사진을 유포한 6명을 붙잡았습니다.
신고 6개월여 뒤에 최초 유포자, '오빠'도 특정됐습니다.
경찰 수사 결과 '오빠'는 A와 또래가 아닌 타이완 모 과기대를 졸업한 학생이었습니다.
곧 타이완 국립대학교 의료기자재 및 의학영상연구소 석사과정 입학도 앞두고 있었습니다.
2017년 린씨 체포과정에서 발견된 컴퓨터 파일들 (출처: TVBS 뉴스)
의학영상 연구소 예비 입학생 22살 린허쥔.
'착실하고 평범했다'는 린허쥔의 컴퓨터에서는 피해자들의 성 착취 사진과 동영상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120기가 바이트(GB) 용량 분량입니다.
100명 이상의 미성년자들 사진과 동영상이 발견됐습니다. 가장 나이가 어린 피해자는 8살이었습니다.
1인당 평균 1기가 바이트의 파일이 피해자 학교와 학년, 인터넷 아이디 등과 함께 폴더별로 정리돼 있었습니다.
페이스북, 라인 등 SNS에 잘생긴 남자나 또래의 사진을 이용해 접근한 뒤 피해자들로부터 빼낸 것들입니다. 한번 성 착취 사진을 전송받고 나면, 이걸 공개하겠다고 협박해 더 많은 사진을 제공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영상과 사진을 인터넷상에 유포하기도 했습니다.
린허쥔은 그렇게, 2014년 5월부터 2017년 7월까지 3년 넘게 범죄를 이어갔습니다.
■'N번방 사건'과 닮았지만, 형량은 달랐다
하지만 타이완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린허쥔은, 얼마 안 돼 웃으며 걸어 나옵니다.
검찰 조사가 끝난 뒤 보석금을 내고 나온 건데요.
보석으로 풀려나면서 웃고 있는 린허쥔 (출처: 타이완 ET투데이)
1심 타이완 재판부의 판결도 타이완 네티즌들을 들끓게 했습니다. 린허쥔에게 내려진 1심 형량이 징역 3년 4개월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항소했습니다.
2017년 린씨가 경찰에 의해 이송되는 현장 (출처: TVBS 뉴스)
그리고 12월 21일, 타이완 고등법원은 3년 4개월의 30배가 훨씬 넘는 형을 선고합니다.
106년 10개월.
한 타이완 방송사가 린씨 형량이 어떻게 계산됐는지 설명하고 있다 (출처: TVBS 뉴스)
우선 타이완 고법은 "피고인에 대한 1심 판결이 너무 관대하게 내려졌다."고 못 박았습니다.
그러면서 린씨가 오랜 시간에 걸쳐 피해 미성년자들을 협박해 성 착취 사진이나 동영상을 요구했고 신체적·정신적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중형 선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그래서 피해 혐의 1건당 형을 정하는 방식으로 전체 형량을 결정했습니다.
먼저 미성년자를 속여서 성 착취 사진 촬영을 유도한 혐의 등 83건 가운데 60건에 대해서는 한 건당 징역 1년 4개월을 선고했습니다. 나머지 23건 범죄에 대해서는 한 건당 징역 1년 2개월씩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합산해 나온 형량이 106년 10개월입니다.
■실제 집행 형량은?
그렇다면 최종심에서 106년 10개월 징역이 확정되면 린허쥔은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될까요?
경찰이 린씨를 이송하는 모습 (출처: 자유시보)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타이완 형법상 징역 한도가 30년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106년 10개월 징역형이 선고돼도 실제로는 최대 30년까지만 징역생활을 하게 된다는 뜻인데요.
더불어 린씨는 현재 또 다른 혐의로 별도의 재판부에서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이 혐의 역시 유죄로 확정되고 형이 결정되면 이것까지 고려해서 집행 형량이 최종 확정되게 됩니다.
한편 린씨는 고법 심리에서 2만 2000 타이완 달러, 우리 돈 약 94만 원의 월급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를 부양하고 있다며 집행유예 선처를 해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타이완 네티즌들은 "마침내 고등법원에서 좋은 검사와 판사를 볼 수 있게 됐다.", "오래도록 가둬달라." 등의 반응을 보이며 대부분 이번 판결을 반기고 있습니다.
106년 10개월, 실제 집행될 형량은 아니지만 '미성년자 관련 성범죄에 용서는 없다'는 경고를 날렸다는 점에서 숫자 그 자체 크기만큼이나 사회적 울림도 크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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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파원 리포트] 타이완 ‘N번방 사건’…1심 뒤집고 내린 중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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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1-12-23 07:01:26
2016년 말, 여학생 A는 같은 반 친구에게 충격적인 말을 듣습니다.
"인터넷에서 너 나체 사진이 떠도는 걸 봤어."
A는 자신이 사진을 보냈던 한 오빠를 떠올렸습니다.
시작은 사회관계망서비스, SNS였습니다.
대화를 나누자며 접근한 '오빠'의 대문 사진은 연예인처럼 잘생긴 모습이었습니다.
친해지자 오빠는 '노출 사진'을 요구하기 시작했는데요.
우리도 낯익은 이 수법, 타이완판 N번방 사건은 A의 신고로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경찰은 먼저 IP 추적 등을 통해 사진을 유포한 6명을 붙잡았습니다.
신고 6개월여 뒤에 최초 유포자, '오빠'도 특정됐습니다.
경찰 수사 결과 '오빠'는 A와 또래가 아닌 타이완 모 과기대를 졸업한 학생이었습니다.
곧 타이완 국립대학교 의료기자재 및 의학영상연구소 석사과정 입학도 앞두고 있었습니다.
의학영상 연구소 예비 입학생 22살 린허쥔.
'착실하고 평범했다'는 린허쥔의 컴퓨터에서는 피해자들의 성 착취 사진과 동영상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120기가 바이트(GB) 용량 분량입니다.
100명 이상의 미성년자들 사진과 동영상이 발견됐습니다. 가장 나이가 어린 피해자는 8살이었습니다.
1인당 평균 1기가 바이트의 파일이 피해자 학교와 학년, 인터넷 아이디 등과 함께 폴더별로 정리돼 있었습니다.
페이스북, 라인 등 SNS에 잘생긴 남자나 또래의 사진을 이용해 접근한 뒤 피해자들로부터 빼낸 것들입니다. 한번 성 착취 사진을 전송받고 나면, 이걸 공개하겠다고 협박해 더 많은 사진을 제공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영상과 사진을 인터넷상에 유포하기도 했습니다.
린허쥔은 그렇게, 2014년 5월부터 2017년 7월까지 3년 넘게 범죄를 이어갔습니다.
■'N번방 사건'과 닮았지만, 형량은 달랐다
하지만 타이완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린허쥔은, 얼마 안 돼 웃으며 걸어 나옵니다.
검찰 조사가 끝난 뒤 보석금을 내고 나온 건데요.
1심 타이완 재판부의 판결도 타이완 네티즌들을 들끓게 했습니다. 린허쥔에게 내려진 1심 형량이 징역 3년 4개월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검찰은 항소했습니다.
그리고 12월 21일, 타이완 고등법원은 3년 4개월의 30배가 훨씬 넘는 형을 선고합니다.
106년 10개월.
우선 타이완 고법은 "피고인에 대한 1심 판결이 너무 관대하게 내려졌다."고 못 박았습니다.
그러면서 린씨가 오랜 시간에 걸쳐 피해 미성년자들을 협박해 성 착취 사진이나 동영상을 요구했고 신체적·정신적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중형 선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그래서 피해 혐의 1건당 형을 정하는 방식으로 전체 형량을 결정했습니다.
먼저 미성년자를 속여서 성 착취 사진 촬영을 유도한 혐의 등 83건 가운데 60건에 대해서는 한 건당 징역 1년 4개월을 선고했습니다. 나머지 23건 범죄에 대해서는 한 건당 징역 1년 2개월씩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합산해 나온 형량이 106년 10개월입니다.
■실제 집행 형량은?
그렇다면 최종심에서 106년 10개월 징역이 확정되면 린허쥔은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될까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타이완 형법상 징역 한도가 30년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106년 10개월 징역형이 선고돼도 실제로는 최대 30년까지만 징역생활을 하게 된다는 뜻인데요.
더불어 린씨는 현재 또 다른 혐의로 별도의 재판부에서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이 혐의 역시 유죄로 확정되고 형이 결정되면 이것까지 고려해서 집행 형량이 최종 확정되게 됩니다.
한편 린씨는 고법 심리에서 2만 2000 타이완 달러, 우리 돈 약 94만 원의 월급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를 부양하고 있다며 집행유예 선처를 해달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타이완 네티즌들은 "마침내 고등법원에서 좋은 검사와 판사를 볼 수 있게 됐다.", "오래도록 가둬달라." 등의 반응을 보이며 대부분 이번 판결을 반기고 있습니다.
106년 10개월, 실제 집행될 형량은 아니지만 '미성년자 관련 성범죄에 용서는 없다'는 경고를 날렸다는 점에서 숫자 그 자체 크기만큼이나 사회적 울림도 크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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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 기자 herb@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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