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치료제, 제때 공급될까…예고된 수급난

입력 2021.12.29 (07:00) 수정 2021.12.29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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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가 27일 미국 화이자 사의 먹는 코로나19 치료제 팍스로비드의 긴급사용을 승인했습니다.
먹는 치료제는 2년째 지속된 코로나 대유행을 저지할 수 있는 이른바 '게임체인저'로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화이자의 팍스로비드는 임상시험에서 확진자가 입원하거나 사망에 이를 확률을 89%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각국의 의료체계가 한계에 이른 상황에서 팍스로비드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팍스로비드가 기대만큼 순조롭게 공급될지, 공급 속도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물량 확보 경쟁이 치열한데다, 팍스로비드의 생산 자체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또 복용방식의 특성상 신속한 검사와 진단, 배송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됩니다.

■ 미국 1천만 명 분, 영국 275만명 분 선구매…한국 36만 2천명 분 확보

화이자의 먹는 치료제를 가장 많이 확보한 나라는 미국입니다. 미국의 코로나19 누적확진자는 28일 월드오미터 기준으로 5,378만 명에 달해 전세계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자국의 FDA가 팍스로비드를 승인하기 전인 18일, 화이자와 팍스로비드 1,000만 명 분의 공급을 위한 협약을 맺었습니다. 1,000만 명 분을 선구매하는데 52억 9500만 달러가 투입됐습니다.

유럽의약품청은 아직 팍스로비드의 긴급사용을 승인하지 않았지만, 오미크론 확산세가 거센 유럽 각국도 선구매 계약에 나섰습니다. 영국은 미국보다 앞서 팍스로비드 25만 명 분을 선구매 계약한 데 이어, 22일 250만 명 분의 추가 계약을 맺었습니다.

프랑스는 MSD 사의 먹는 치료제 몰루피라비르의 효과가 30% 수준에 그치자 계약을 취소하고 대신 화이자에 팍스로비드 구매를 타진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5만 명 분의 계약을 진행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일본은 200만 명 분, 캐나다는 100만 명 분의 팍스로비드를 구매하기로 했고, 아직 팍스로비드의 사용 승인을 내지 않은 호주 정부도 50만 명분의 공급 계약을 화이자와 맺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나프탈리 베네트 총리가 앨버트 부를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와 통화해 10만 명 분을 확보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한국은 화이자의 팍스로비드 36만 2천 명 분 계약을 체결했고, MSD의 몰루피라비르 24만 2천 명분을 포함해 모두 60만 4천 명 분의 먹는 치료제를 계약한 상태입니다.


■ "팍스로비드 생산에 9개월"…미국도 예고된 수급난

문제는 공급입니다. 화이자가 올해 출하할 수 있는 팍스로비드 물량은 18만 명 분입니다. 이 가운데 미국에 처음 공급하는 초도물량은 6만 5천 명 분입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는 하루 평균 20만 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화이자는 내년 1월에야 25만 명 분을 추가 공급할 계획입니다. 가장 많은 팍스로비드 계약 물량을 확보한 미국조차, 실제로 공급되는 물량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공급이 느린 이유는 팍스로비드 생산에 9개월이나 걸리기 때문입니다. 화이자는 내년에는 생산 기간을 절반으로 줄여, 여름부터 공급 속도를 높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팍스로비드의 내년 공급량은 8천만 명 분인데, 상반기에는 3천만 명 분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겁니다.

다만 화이자는 전세계 약 100개 국에서 공급 요청이 쇄도하자, 내년도 생산 계획을 1억 2천만 명 분으로 높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증상 발현 5일 내 복용해야…신속한 진단, 처방 필요

팍스로비드의 복용법도 기대 수준을 낮추게 합니다. 팍스로비드는 코로나 증상이 나타난 뒤 5일 이내에 복용을 시작해 12시간마다 5일간 복용하는 것을 기준으로 임상 효과가 측정됐습니다. 즉, 신속한 검사와 진단을 받고 약 처방과 수급, 복용이 5일 내에 가능해야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 자가진단키트의 수급에서도 어려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검사와 진단이 원활하지 않아, 먹는 치료제의 도입도 추세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보건안전센터의 아메쉬 아달자 박사는 "팍스로비드의 승인은 코로나19를 관리할 수 있는 질병으로 만드는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팍스로비드는 한동안 공급이 충분하지 못하고, 신속한 검사와 진단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치료제는커녕 백신 수급조차 원활하지 않은 저개발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화이자는 국제 비영리기구 '의약품 특허 풀(Medicines Patent Pool)'을 통해 전세계 인구의 53%, 100개 국 이상이 해당하는 중·저개발국가에는 먹는 치료제의 복제약을 생산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블룸버그 통신은 복제약 생산 업체를 정하는 등 필요한 절차를 거치려면 저개발국가에서 복제약 생산이 본격화하는 시기가 2023년으로 예상된다고 전문가를 인용해 분석했습니다.

윌리엄 헤이셀틴 전 하버드 의대 교수는 포브스에 기고한 글에서 "전지구적인 백신 불평등과 똑같은 실수를 범할 위험이 있다."면서 먹는 치료제에서도 불평등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앞서 쓰디쓴 경험에서 배운 것과 같이, 세계화된 상황에서는 모두가 안전하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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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먹는 치료제, 제때 공급될까…예고된 수급난
    • 입력 2021-12-29 07:00:45
    • 수정2021-12-29 07:02:07
    취재K

식약처가 27일 미국 화이자 사의 먹는 코로나19 치료제 팍스로비드의 긴급사용을 승인했습니다.
먹는 치료제는 2년째 지속된 코로나 대유행을 저지할 수 있는 이른바 '게임체인저'로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특히 화이자의 팍스로비드는 임상시험에서 확진자가 입원하거나 사망에 이를 확률을 89%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각국의 의료체계가 한계에 이른 상황에서 팍스로비드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팍스로비드가 기대만큼 순조롭게 공급될지, 공급 속도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세계 각국의 물량 확보 경쟁이 치열한데다, 팍스로비드의 생산 자체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또 복용방식의 특성상 신속한 검사와 진단, 배송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도 한계로 지적됩니다.

■ 미국 1천만 명 분, 영국 275만명 분 선구매…한국 36만 2천명 분 확보

화이자의 먹는 치료제를 가장 많이 확보한 나라는 미국입니다. 미국의 코로나19 누적확진자는 28일 월드오미터 기준으로 5,378만 명에 달해 전세계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합니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자국의 FDA가 팍스로비드를 승인하기 전인 18일, 화이자와 팍스로비드 1,000만 명 분의 공급을 위한 협약을 맺었습니다. 1,000만 명 분을 선구매하는데 52억 9500만 달러가 투입됐습니다.

유럽의약품청은 아직 팍스로비드의 긴급사용을 승인하지 않았지만, 오미크론 확산세가 거센 유럽 각국도 선구매 계약에 나섰습니다. 영국은 미국보다 앞서 팍스로비드 25만 명 분을 선구매 계약한 데 이어, 22일 250만 명 분의 추가 계약을 맺었습니다.

프랑스는 MSD 사의 먹는 치료제 몰루피라비르의 효과가 30% 수준에 그치자 계약을 취소하고 대신 화이자에 팍스로비드 구매를 타진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5만 명 분의 계약을 진행중이라고 밝혔습니다.

일본은 200만 명 분, 캐나다는 100만 명 분의 팍스로비드를 구매하기로 했고, 아직 팍스로비드의 사용 승인을 내지 않은 호주 정부도 50만 명분의 공급 계약을 화이자와 맺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나프탈리 베네트 총리가 앨버트 부를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와 통화해 10만 명 분을 확보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한국은 화이자의 팍스로비드 36만 2천 명 분 계약을 체결했고, MSD의 몰루피라비르 24만 2천 명분을 포함해 모두 60만 4천 명 분의 먹는 치료제를 계약한 상태입니다.


■ "팍스로비드 생산에 9개월"…미국도 예고된 수급난

문제는 공급입니다. 화이자가 올해 출하할 수 있는 팍스로비드 물량은 18만 명 분입니다. 이 가운데 미국에 처음 공급하는 초도물량은 6만 5천 명 분입니다.

그런데 최근 미국에서는 하루 평균 20만 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화이자는 내년 1월에야 25만 명 분을 추가 공급할 계획입니다. 가장 많은 팍스로비드 계약 물량을 확보한 미국조차, 실제로 공급되는 물량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공급이 느린 이유는 팍스로비드 생산에 9개월이나 걸리기 때문입니다. 화이자는 내년에는 생산 기간을 절반으로 줄여, 여름부터 공급 속도를 높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팍스로비드의 내년 공급량은 8천만 명 분인데, 상반기에는 3천만 명 분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겁니다.

다만 화이자는 전세계 약 100개 국에서 공급 요청이 쇄도하자, 내년도 생산 계획을 1억 2천만 명 분으로 높이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증상 발현 5일 내 복용해야…신속한 진단, 처방 필요

팍스로비드의 복용법도 기대 수준을 낮추게 합니다. 팍스로비드는 코로나 증상이 나타난 뒤 5일 이내에 복용을 시작해 12시간마다 5일간 복용하는 것을 기준으로 임상 효과가 측정됐습니다. 즉, 신속한 검사와 진단을 받고 약 처방과 수급, 복용이 5일 내에 가능해야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경우 자가진단키트의 수급에서도 어려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미크론 확산으로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검사와 진단이 원활하지 않아, 먹는 치료제의 도입도 추세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옵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보건안전센터의 아메쉬 아달자 박사는 "팍스로비드의 승인은 코로나19를 관리할 수 있는 질병으로 만드는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하면서도 "팍스로비드는 한동안 공급이 충분하지 못하고, 신속한 검사와 진단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치료제는커녕 백신 수급조차 원활하지 않은 저개발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화이자는 국제 비영리기구 '의약품 특허 풀(Medicines Patent Pool)'을 통해 전세계 인구의 53%, 100개 국 이상이 해당하는 중·저개발국가에는 먹는 치료제의 복제약을 생산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블룸버그 통신은 복제약 생산 업체를 정하는 등 필요한 절차를 거치려면 저개발국가에서 복제약 생산이 본격화하는 시기가 2023년으로 예상된다고 전문가를 인용해 분석했습니다.

윌리엄 헤이셀틴 전 하버드 의대 교수는 포브스에 기고한 글에서 "전지구적인 백신 불평등과 똑같은 실수를 범할 위험이 있다."면서 먹는 치료제에서도 불평등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앞서 쓰디쓴 경험에서 배운 것과 같이, 세계화된 상황에서는 모두가 안전하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안전하지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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