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후] 14년 믿고 맡겼는데…치매 독거노인 재산 가로챈 ‘간 큰’ 간병인
입력 2022.01.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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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부터 A 씨(당시 만 81살)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해온 B 씨(당시 만 54살, 중국 국적).
B 씨는 A 씨가 2010년 경기도의 한 실버타운으로 이사하자 함께 거주하면서 가사도우미에 간병인 역할까지 맡게 됐습니다. B 씨의 근무는 2020년 12월 11일 A 씨가 사망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1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뭔가 석연찮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매월 19일 또는 20일로 추정되는 월급일마다 2007년부터 2010년에는 월 150만 원, 2011년부터 2015년까지는 월 250만 원이 찍혔던 B 씨의 통장에 2015년 이후부터는 매달 500만 원이 찍혔습니다.
그리고 한 번에 적게는 500만 원에서 많게는 억 원에 이르는 거액의 돈이 A 씨로부터 B 씨의 계좌로 지속적으로 입금됐습니다.
모두 A 씨와 B 씨가 머물렀던 실버타운에 있는 모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를 통해 이체됐는데, 2014년 9월 초 A 씨의 계좌에서 B 씨의 계좌로 500만 원이 이체된 것을 시작으로 2017년 2월 말까지 8차례에 걸쳐 4,000만 원이 옮겨졌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2015년 5월 말에는 1억 원이 무통장 이체되는 등 2017년 11월 중순까지 5차례에 걸쳐 A 씨로부터 B 씨에게 2억 3천만 원이 송금됐습니다.
특히 A 씨의 건강이 뚜렷이 악화된 2018년부터는 B 씨의 아들 C 씨(당시 만 38살)의 계좌 등으로도 돈이 집중적으로 이체됐습니다. 2019년 1월 같은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를 통해 500만 원이 이체된 뒤로 2020년 12월 12일까지 모두 218회에 걸쳐 아들 C 씨나 C 씨가 알려준 다른 사람의 계좌로 10억 9,100만 원이 이체됐습니다.
급기야 A 씨의 사망 다음 날인 2020년 12월 12일에도 A 씨의 은행 계좌에서 B 씨의 계좌로 3,000만 원이 이체되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A 씨의 조카는 B 씨에게 해명을 요구했습니다.
B 씨는 A 씨의 조카에게 "A 씨가 재산을 다른 동생들에게 주고 싶어하지 않았다, 000에게 주려고 했는데 증여세 문제로 2020년부터 매달 몇천만 원 씩 모두 4억 원을 이체했고 이 돈으로 상품권을 구매해 2억 5천만 원을 환전했다. 내 아들 C 씨가 입원해 있어 당장 돈을 찾을 수 없다. A 씨가 생전에 자신에게 재산을 다 준다는 유언을 녹음한 것이 있지만, A 씨 형제들이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재산권을 주장할 생각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A 씨의 상태를 생각해 보면, 의심스러운 부분이 적지 않았습니다.
1927년 출생인 A 씨는 만 84살이었던 2010년 실버타운에 들어가기 전부터 치매 증상이 시작돼 2013년엔 밥을 먹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가 되어 치매 진단을 받았습니다. 일 년 뒤인 2014년 여름엔 자신의 생일과 직업, 학력 같은 기본 신상 정보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로 악화됐고 몇 달 뒤엔 B 씨를 자신의 여동생으로 착각할 정도로 치매 증상은 심각해졌습니다.
게다가 이 무렵 A 씨는 황반변성으로 오른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왼쪽 시력도 거의 잃어 글자를 쓰는데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018년부터는 폐렴과 요로감염 등으로 여러 차례 병원 입원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습니다.
고령에 치매까지 오면서 스스로 재산을 관리하기 힘들어진 A 씨는 더군다나 독신이었습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배우자나 자녀가 맡았겠지만, A 씨에겐 자신을 대신해 재산을 관리해줄 사람이 딱히 없었습니다.
한데, 이런 A 씨의 계좌에서 2014년부터 B 씨의 계좌로 정기적으로 제공되는 월급 말고도 거액의 돈이 계속해서 입금됐던 것입니다.
혼자인 A 씨의 가족의 빈 자리를 대신해왔던 B 씨가 직접 A 씨의 체크카드를 사용해서 직접 비밀번호를 입력하며 이체한 것이었습니다.
이들 B와 C 씨 모자가 혼자 살던 치매 노인 A 씨의 계좌에서 몰래 빼내 챙긴 돈만 7년간 13억 7,100만 원에 이르렀습니다. B 씨와 C 씨는 A 씨의 예금을 자신들의 계좌로 옮겨 위안화로 환전하거나 제3의 계좌로 이체했습니다.
이렇게 7년간 이어진 길고 긴 B, C 씨 모자의 사기 행각은 A 씨의 사망 뒤 이들을 의심한 A 씨의 동생과 조카 등 친척들에 의해 꼬리를 밟혔습니다.
법원(수원지법 제15형사부)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B 씨(현재 68살·중국 국적)에게는 징역 4년을, 아들 C 씨(현재 41살·중국 국적)에게는 징역 3년을 선고했습니다.
B 씨는 경찰의 수사 단계에서 돈을 빼낸 범죄사실을 시인했지만 "A 씨가 생전에 자신에게 정당하게 지급하거나 증여한 돈"이라며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B 씨는 "A 씨가 자신의 전세자금과 C 씨의 학자금으로 사용하라고 목돈을 준 적이 있다. 2020년 5월쯤부터는 A 씨가 직접 C 씨에게 이체해주라고 했다"고 말했고, 무통장 이체 건 등 일부에 대해선 '평소에 내가 고생했으니 돈을 달라'는 취지의 B 씨의 말에 A 씨가 송금했다고 말했습니다.
B 씨는 경찰 조사에 앞서 A 씨가 "B 씨에게 전 재산 관리를 죽을 때까지 맡기고 죽으면 전 재산을 준다"는 내용으로 2015년에 유서를 작성했다면서 "B 씨가 너무 잘하니까 억대를 줘도 아깝지 않으니 너희들이 말하지 마라"는 A 씨의 녹음파일 녹취서와 함께 경찰에 제출하기도 했는데, 이 유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필체 감정 결과 감정 불능으로 나왔습니다.
같이 기소된 아들 C 씨는 "돈 일부를 송금받거나 사용한 사실은 있지만, A 씨가 심신장애 상태임을 알지 못했고 엄마 B 씨가 정당하게 받은 돈으로 생각했을 뿐 범죄를 공모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A 씨의 치매 질환 정도를 보면 2014년부터 정상적으로 재산상 처분행위를 할 수 없는 심신장애 상태에서 B 씨의 유혹에 따라 거액을 송금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B와 C 씨가 A 씨의 심신장애 상태를 이용해 돈을 이체받아 재산상 이득을 취득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C 씨에 대해선 "B 씨와 수시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A 씨의 건강 상태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도 했으므로 간접적으로나마 A 씨의 심신장애 상태를 충분히 인지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C 씨가 환전 계좌를 이용해 송금 과정에서 역할 분담을 한 것이 드러나고 이 돈을 전적으로 관리하거나 사용해 범행으로 취득한 이익을 직접 향유했다"라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또한 "A 씨가 전적으로 B 씨를 의지하며 신뢰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장기간에 걸쳐 범행을 저질러 비난 가능성이 크다"며 "피해 금액도 13억 7000만 원에 이르러 죄책이 무거운데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그러나 B 씨가 평소 A 씨를 성실히 간병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했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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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01-13 07:00:07
2007년부터 A 씨(당시 만 81살)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해온 B 씨(당시 만 54살, 중국 국적).
B 씨는 A 씨가 2010년 경기도의 한 실버타운으로 이사하자 함께 거주하면서 가사도우미에 간병인 역할까지 맡게 됐습니다. B 씨의 근무는 2020년 12월 11일 A 씨가 사망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1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뭔가 석연찮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매월 19일 또는 20일로 추정되는 월급일마다 2007년부터 2010년에는 월 150만 원, 2011년부터 2015년까지는 월 250만 원이 찍혔던 B 씨의 통장에 2015년 이후부터는 매달 500만 원이 찍혔습니다.
그리고 한 번에 적게는 500만 원에서 많게는 억 원에 이르는 거액의 돈이 A 씨로부터 B 씨의 계좌로 지속적으로 입금됐습니다.
모두 A 씨와 B 씨가 머물렀던 실버타운에 있는 모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를 통해 이체됐는데, 2014년 9월 초 A 씨의 계좌에서 B 씨의 계좌로 500만 원이 이체된 것을 시작으로 2017년 2월 말까지 8차례에 걸쳐 4,000만 원이 옮겨졌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2015년 5월 말에는 1억 원이 무통장 이체되는 등 2017년 11월 중순까지 5차례에 걸쳐 A 씨로부터 B 씨에게 2억 3천만 원이 송금됐습니다.
특히 A 씨의 건강이 뚜렷이 악화된 2018년부터는 B 씨의 아들 C 씨(당시 만 38살)의 계좌 등으로도 돈이 집중적으로 이체됐습니다. 2019년 1월 같은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를 통해 500만 원이 이체된 뒤로 2020년 12월 12일까지 모두 218회에 걸쳐 아들 C 씨나 C 씨가 알려준 다른 사람의 계좌로 10억 9,100만 원이 이체됐습니다.
급기야 A 씨의 사망 다음 날인 2020년 12월 12일에도 A 씨의 은행 계좌에서 B 씨의 계좌로 3,000만 원이 이체되자, 이를 이상하게 여긴 A 씨의 조카는 B 씨에게 해명을 요구했습니다.
B 씨는 A 씨의 조카에게 "A 씨가 재산을 다른 동생들에게 주고 싶어하지 않았다, 000에게 주려고 했는데 증여세 문제로 2020년부터 매달 몇천만 원 씩 모두 4억 원을 이체했고 이 돈으로 상품권을 구매해 2억 5천만 원을 환전했다. 내 아들 C 씨가 입원해 있어 당장 돈을 찾을 수 없다. A 씨가 생전에 자신에게 재산을 다 준다는 유언을 녹음한 것이 있지만, A 씨 형제들이 나눠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재산권을 주장할 생각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A 씨의 상태를 생각해 보면, 의심스러운 부분이 적지 않았습니다.
1927년 출생인 A 씨는 만 84살이었던 2010년 실버타운에 들어가기 전부터 치매 증상이 시작돼 2013년엔 밥을 먹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할 정도가 되어 치매 진단을 받았습니다. 일 년 뒤인 2014년 여름엔 자신의 생일과 직업, 학력 같은 기본 신상 정보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로 악화됐고 몇 달 뒤엔 B 씨를 자신의 여동생으로 착각할 정도로 치매 증상은 심각해졌습니다.
게다가 이 무렵 A 씨는 황반변성으로 오른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었고 왼쪽 시력도 거의 잃어 글자를 쓰는데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2018년부터는 폐렴과 요로감염 등으로 여러 차례 병원 입원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습니다.
고령에 치매까지 오면서 스스로 재산을 관리하기 힘들어진 A 씨는 더군다나 독신이었습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배우자나 자녀가 맡았겠지만, A 씨에겐 자신을 대신해 재산을 관리해줄 사람이 딱히 없었습니다.
한데, 이런 A 씨의 계좌에서 2014년부터 B 씨의 계좌로 정기적으로 제공되는 월급 말고도 거액의 돈이 계속해서 입금됐던 것입니다.
혼자인 A 씨의 가족의 빈 자리를 대신해왔던 B 씨가 직접 A 씨의 체크카드를 사용해서 직접 비밀번호를 입력하며 이체한 것이었습니다.
이들 B와 C 씨 모자가 혼자 살던 치매 노인 A 씨의 계좌에서 몰래 빼내 챙긴 돈만 7년간 13억 7,100만 원에 이르렀습니다. B 씨와 C 씨는 A 씨의 예금을 자신들의 계좌로 옮겨 위안화로 환전하거나 제3의 계좌로 이체했습니다.
이렇게 7년간 이어진 길고 긴 B, C 씨 모자의 사기 행각은 A 씨의 사망 뒤 이들을 의심한 A 씨의 동생과 조카 등 친척들에 의해 꼬리를 밟혔습니다.
법원(수원지법 제15형사부)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B 씨(현재 68살·중국 국적)에게는 징역 4년을, 아들 C 씨(현재 41살·중국 국적)에게는 징역 3년을 선고했습니다.
B 씨는 경찰의 수사 단계에서 돈을 빼낸 범죄사실을 시인했지만 "A 씨가 생전에 자신에게 정당하게 지급하거나 증여한 돈"이라며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B 씨는 "A 씨가 자신의 전세자금과 C 씨의 학자금으로 사용하라고 목돈을 준 적이 있다. 2020년 5월쯤부터는 A 씨가 직접 C 씨에게 이체해주라고 했다"고 말했고, 무통장 이체 건 등 일부에 대해선 '평소에 내가 고생했으니 돈을 달라'는 취지의 B 씨의 말에 A 씨가 송금했다고 말했습니다.
B 씨는 경찰 조사에 앞서 A 씨가 "B 씨에게 전 재산 관리를 죽을 때까지 맡기고 죽으면 전 재산을 준다"는 내용으로 2015년에 유서를 작성했다면서 "B 씨가 너무 잘하니까 억대를 줘도 아깝지 않으니 너희들이 말하지 마라"는 A 씨의 녹음파일 녹취서와 함께 경찰에 제출하기도 했는데, 이 유서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필체 감정 결과 감정 불능으로 나왔습니다.
같이 기소된 아들 C 씨는 "돈 일부를 송금받거나 사용한 사실은 있지만, A 씨가 심신장애 상태임을 알지 못했고 엄마 B 씨가 정당하게 받은 돈으로 생각했을 뿐 범죄를 공모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A 씨의 치매 질환 정도를 보면 2014년부터 정상적으로 재산상 처분행위를 할 수 없는 심신장애 상태에서 B 씨의 유혹에 따라 거액을 송금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B와 C 씨가 A 씨의 심신장애 상태를 이용해 돈을 이체받아 재산상 이득을 취득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C 씨에 대해선 "B 씨와 수시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A 씨의 건강 상태에 대해 대화를 나누기도 했으므로 간접적으로나마 A 씨의 심신장애 상태를 충분히 인지했을 것으로 보인다"며 "C 씨가 환전 계좌를 이용해 송금 과정에서 역할 분담을 한 것이 드러나고 이 돈을 전적으로 관리하거나 사용해 범행으로 취득한 이익을 직접 향유했다"라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또한 "A 씨가 전적으로 B 씨를 의지하며 신뢰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장기간에 걸쳐 범행을 저질러 비난 가능성이 크다"며 "피해 금액도 13억 7000만 원에 이르러 죄책이 무거운데 범행을 부인하며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그러나 B 씨가 평소 A 씨를 성실히 간병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고려했다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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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란 기자 rann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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