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난민들을 만나다

입력 2022.01.15 (23:16) 수정 2022.01.15 (23:3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다음달이면 미얀마 쿠데타 1년입니다.

국경지대를 중심으로 미얀마 군부와 소수민족 반군간의 교전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는데요.

이를 피해 고향을 떠나 산으로 들어온 난민들의 행렬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파원보고는 미얀마 군부가 취재비자를 발급하지 않는 상황에서 국경을 넘어 이들을 취재할 것인가 고민했고, 인도주의 차원에서 이들을 취재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습니다.

김원장특파원이 인도주의 구호단체들과 함께 국경을 넘어 미얀마땅에서 이들 소수민족 난민들을 직접 만났습니다.

[리포트]

미얀마군의 공습 헬기가 여전히 상공을 선회합니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

급히 챙겨온 등짐 하나 들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이 강만 건너면 태국입니다.

지난달부터 미얀마 군이 남부 카렌주 마을 여러곳을 공습했습니다.

태국 북부 매솟에는 이달초부터 이들 난민들을 위한 난민 수용소가 세워졌습니다.

이미 4천여 명의 미얀마 난민들이 수용돼 있습니다.

[난민 수용소 관계자 : "어제까지 700명은 다시 고향(미얀마)으로 갔어요. 태국 군이 보내줬어요."]

하지만 아직 국경을 넘어오지 못한 난민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태국 국경수비 군인 : "이제 못 넘어옵니다. 며칠전에 전투가 끝나서... (넘어오면 돌려보냅니까?) 다 돌려 보냈습니다."]

인도주의 구호단체들과 함께 미얀마 국경을 넘었습니다.

불과 한두시간만에 숲속에서 수백여 가구의 난민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가방에 옷가지만 들고 나왔어요."]

보따리 몇개와 가족들 손만 잡고 집을 떠난지 벌써 한달이 다 돼 갑니다.

["다들 '마 와키'나 '따블루', '리키 꼬' 쪽에서 왔어요. 우리 모두 300가족쯤 됩니다."]

이 남성은 지난달 25일 갑자기 떨어진 포탄에 집을 잃었습니다.

["밤이 아니라 낮에... 포탄이 카렌반군쪽이 아니라 우리 마을쪽으로 떨어졌어요."]

["(당신은 기독교 신자시죠?) 네. (그런데 크리스마스에 집이 부서졌군요?) 네 같은날... 크리스마스네요."]

남부 퓨에 지방의 한 카렌족 마을, 미얀마군이 들어닥친다는 말에 마을은 텅 비었습니다.

불과 며칠전까지 수업을 했던 초등학교에는 교과서 몇 권만 남았습니다.

카렌족은 대부분 기독교도입니다.

교회도 굳게 문을 닫았습니다.

정글 깊숙히 위치한 카렌민족해방군 KNDO의 반군 캠프.

중화기로 무장한 반군 캠프에도 갈곳없는 난민들이 계속 들어옵니다.

["한 달 전에 (집을 떠나) 리키코에 머물다가 2주전에 이 캠프에 왔어요. 어떤 사람은 총에 맞았어요."]

내전을 치르는 반군 캠프에 여성과 아이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이들이 비라도 피할 수 있도록 서둘러 움막을 짓는 손길도 분주해졌습니다.

카렌민족해방군의 훈련 캠프입니다.

태국 국경과 불과 1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미얀마군의 공습이 어려운 곳입니다.

그래서 더 많은 난민들이 이곳 캠프로 밀려들고 있습니다.

[소 포 비/KNDO 장교 : "지금까지 (난민) 500명 정도가 우리 캠프로 왔습니다. (이 캠프에만요?) 네. 다른 곳에도 '리키 꼬'에서 수천여 명이 넘어왔다고 들었습니다."]

쿠데타 군부와 싸우겠다며 저 멀리 대도시에서 찾아온 대학생들.

어제 도착해 머리를 깍습니다.

앳띤 얼굴 뒤로 전쟁에 대한 긴장과 두려움이 배여있습니다.

["(이중에서 군부에 의해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사람 있어요?) 까야(지방)에서 PDF(시민방위대)로 있던 사촌형이 헬기 사격에 죽었어요."]

내전은 어린 10대들을 전쟁으로 내몹니다.

["(여기서 제일 어린 사람이?) 16살요."]

한국 취재진이 왔다고 하자 한 대학생이 찾아왔습니다.

수학을 전공한다는 이 여성은 유창한 한국말로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쿠데타가 싫어요.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잡혀가는 거예요. 잡혀가고 때리고 죽이고, 저는 너무 슬프고 화가나고 억울하고 그래서 여기 왔고 죽어서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뭐든지 할 수 있고..."]

쿠데타가 내전으로 치달으면서, 소수민족 반군의 게릴라식 공격과 미얀마 군부의 보복 공습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공습 전과 공습 뒤 불타버린 마을의 모습이 위성 사진으로도 확인됩니다.

할아버지의 주검을 확인한 손녀가 울부짖습니다.

비무장한 시민들을 상대로 한 미얀마군부의 테러도 계속됩니다.

지난달 24일, 동부 까야주에선 35명의 주민들이 불에 탄채 발견됐습니다.

대부분 손이 묶여 있었습니다.

국경 지역 곳곳에서 포격 소리는 점점 더 커지는데...

[이장 : "(미얀마군이) 저 언덕 넘어서 사찰앞까지 들어왔어요."]

국제사회의 도움의 손길은 너무 멀리있습니다.

쿠데타 11개월.

유엔과 강대국들의 공허한 성명만 계속되는 가운데 미얀마 난민들의 피난길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습니다.

미얀마에서 김원장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미얀마 난민들을 만나다
    • 입력 2022-01-15 23:16:33
    • 수정2022-01-15 23:33:48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앵커]

다음달이면 미얀마 쿠데타 1년입니다.

국경지대를 중심으로 미얀마 군부와 소수민족 반군간의 교전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는데요.

이를 피해 고향을 떠나 산으로 들어온 난민들의 행렬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파원보고는 미얀마 군부가 취재비자를 발급하지 않는 상황에서 국경을 넘어 이들을 취재할 것인가 고민했고, 인도주의 차원에서 이들을 취재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습니다.

김원장특파원이 인도주의 구호단체들과 함께 국경을 넘어 미얀마땅에서 이들 소수민족 난민들을 직접 만났습니다.

[리포트]

미얀마군의 공습 헬기가 여전히 상공을 선회합니다.

고향을 떠난 사람들.

급히 챙겨온 등짐 하나 들고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이 강만 건너면 태국입니다.

지난달부터 미얀마 군이 남부 카렌주 마을 여러곳을 공습했습니다.

태국 북부 매솟에는 이달초부터 이들 난민들을 위한 난민 수용소가 세워졌습니다.

이미 4천여 명의 미얀마 난민들이 수용돼 있습니다.

[난민 수용소 관계자 : "어제까지 700명은 다시 고향(미얀마)으로 갔어요. 태국 군이 보내줬어요."]

하지만 아직 국경을 넘어오지 못한 난민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태국 국경수비 군인 : "이제 못 넘어옵니다. 며칠전에 전투가 끝나서... (넘어오면 돌려보냅니까?) 다 돌려 보냈습니다."]

인도주의 구호단체들과 함께 미얀마 국경을 넘었습니다.

불과 한두시간만에 숲속에서 수백여 가구의 난민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가방에 옷가지만 들고 나왔어요."]

보따리 몇개와 가족들 손만 잡고 집을 떠난지 벌써 한달이 다 돼 갑니다.

["다들 '마 와키'나 '따블루', '리키 꼬' 쪽에서 왔어요. 우리 모두 300가족쯤 됩니다."]

이 남성은 지난달 25일 갑자기 떨어진 포탄에 집을 잃었습니다.

["밤이 아니라 낮에... 포탄이 카렌반군쪽이 아니라 우리 마을쪽으로 떨어졌어요."]

["(당신은 기독교 신자시죠?) 네. (그런데 크리스마스에 집이 부서졌군요?) 네 같은날... 크리스마스네요."]

남부 퓨에 지방의 한 카렌족 마을, 미얀마군이 들어닥친다는 말에 마을은 텅 비었습니다.

불과 며칠전까지 수업을 했던 초등학교에는 교과서 몇 권만 남았습니다.

카렌족은 대부분 기독교도입니다.

교회도 굳게 문을 닫았습니다.

정글 깊숙히 위치한 카렌민족해방군 KNDO의 반군 캠프.

중화기로 무장한 반군 캠프에도 갈곳없는 난민들이 계속 들어옵니다.

["한 달 전에 (집을 떠나) 리키코에 머물다가 2주전에 이 캠프에 왔어요. 어떤 사람은 총에 맞았어요."]

내전을 치르는 반군 캠프에 여성과 아이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이들이 비라도 피할 수 있도록 서둘러 움막을 짓는 손길도 분주해졌습니다.

카렌민족해방군의 훈련 캠프입니다.

태국 국경과 불과 1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미얀마군의 공습이 어려운 곳입니다.

그래서 더 많은 난민들이 이곳 캠프로 밀려들고 있습니다.

[소 포 비/KNDO 장교 : "지금까지 (난민) 500명 정도가 우리 캠프로 왔습니다. (이 캠프에만요?) 네. 다른 곳에도 '리키 꼬'에서 수천여 명이 넘어왔다고 들었습니다."]

쿠데타 군부와 싸우겠다며 저 멀리 대도시에서 찾아온 대학생들.

어제 도착해 머리를 깍습니다.

앳띤 얼굴 뒤로 전쟁에 대한 긴장과 두려움이 배여있습니다.

["(이중에서 군부에 의해 가족이나 친구를 잃은 사람 있어요?) 까야(지방)에서 PDF(시민방위대)로 있던 사촌형이 헬기 사격에 죽었어요."]

내전은 어린 10대들을 전쟁으로 내몹니다.

["(여기서 제일 어린 사람이?) 16살요."]

한국 취재진이 왔다고 하자 한 대학생이 찾아왔습니다.

수학을 전공한다는 이 여성은 유창한 한국말로 인터뷰에 응했습니다.

["쿠데타가 싫어요. 우리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잡혀가는 거예요. 잡혀가고 때리고 죽이고, 저는 너무 슬프고 화가나고 억울하고 그래서 여기 왔고 죽어서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뭐든지 할 수 있고..."]

쿠데타가 내전으로 치달으면서, 소수민족 반군의 게릴라식 공격과 미얀마 군부의 보복 공습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공습 전과 공습 뒤 불타버린 마을의 모습이 위성 사진으로도 확인됩니다.

할아버지의 주검을 확인한 손녀가 울부짖습니다.

비무장한 시민들을 상대로 한 미얀마군부의 테러도 계속됩니다.

지난달 24일, 동부 까야주에선 35명의 주민들이 불에 탄채 발견됐습니다.

대부분 손이 묶여 있었습니다.

국경 지역 곳곳에서 포격 소리는 점점 더 커지는데...

[이장 : "(미얀마군이) 저 언덕 넘어서 사찰앞까지 들어왔어요."]

국제사회의 도움의 손길은 너무 멀리있습니다.

쿠데타 11개월.

유엔과 강대국들의 공허한 성명만 계속되는 가운데 미얀마 난민들의 피난길은 점점 더 길어지고 있습니다.

미얀마에서 김원장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