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폭한 세계를 지탱하는 ‘조심하는 마음’…황정은 ‘백의 그림자’
입력 2022.02.06 (21:25)
수정 2022.02.09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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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KBS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함께 선정한 소설 전해드리는 시간이죠.
오늘(6일)은 황정은 작가의 <백의 그림자>를 만나보겠습니다.
갈수록 삭막해져 가는 도시에서 인물들은 서로 조심스럽게 마음을 이어가는데요.
작가가 그리는 따뜻한 연대와 사랑, 이유민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재개발이 진행 중인 오래된 전자상가.
낡은 건물 안엔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류재용/세운상가 상인 : "6월 되면 쫓겨나요. 집주인이 나가래요. 안타깝다고 하나, 아깝다고 하나…."]
황정은의 첫 장편소설 '백의 그림자'는 바로 이런 공간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황정은/소설가 : "한 사회가 '슬럼'이라는 말로 자꾸 지워버리려고 하는, 구석으로 몰아내서 지워버리려고 하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정든 상가가 철거되는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음향기기 수리사, 빚에 시달리던 가장, 산업재해로 남편을 잃은 아내….
저마다의 사연으로 절망하는 소설 속 인물들은 어느 날 '그림자가 일어서는' 낯선 경험을 하게 됩니다.
[작가 낭독/황정은 ‘백의 그림자’ 中 : "묵묵히 생각에 잠긴 무재씨의 뒤꿈치로부터 짙은 빛깔로 늘어진 그림자가 주변의 것들과는 다른 기색으로 곧장 벌판을 향해 뻗어 있었다."]
[황정은/소설가 : "절망스럽고 무력감을 느낄 때, 무기력할 때, 그럴 때 '그림자가 일어서야 한다'라고 저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 뉴스 : "경찰은 사방에서 물대포를 쏘며 철거민들을 압박해 나갑니다."]
소설을 쓰던 2009년, 용산 참사 현장을 목격한 작가가 떠올린 건, 역설적이게도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조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황정은/소설가 : "현장의 참혹함을 대하는 조심스러운 마음,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마음, 이라는 걸 세상에 보태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소설을 열심히 썼습니다."]
멀리서 온 손님에게 전구 하나를 덤으로 얹어주는 전구가게 '오무사' 주인처럼, 폭력적인 세상을 향해 분노나 적개심을 드러내는 대신, 순정한 마음으로 다가가는 소설 속 인물들.
주인공 '은교'와 '무재'도 버거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돌보며 조심스럽게 사랑을 키워갑니다.
[내레이션/황정은 ‘백의 그림자’ 中 :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씨를요.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정홍수/문학평론가 : "'은교'와 '무재'의 대화를 보고 있으면 이 사람들의 사랑을 우리가 응원하고 싶고, 이 사람들의 사랑이 가능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죠. 그런 면에서 아마 최고의 사랑 소설, 그런 소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섬에서 길을 잃고 '노래할까요'하며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두 사람.
소설이 세상에 나온 지 13년이 흐른 지금도 세상은 별로 달라진 게 없지만, 작가는 여전히 사랑과 연대의 가능성을 믿고 있습니다.
[황정은/소설가 : "(두 사람은 누군가를 만났을까요?) 네, 지금의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 밤길에서 이 두 사람의 얼굴을 목격했을 것이고,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는 믿음이 아직 저한테 있습니다."]
KBS 뉴스 이유민입니다.
촬영기자:김상민 박장빈/문자그래픽:임희수
KBS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함께 선정한 소설 전해드리는 시간이죠.
오늘(6일)은 황정은 작가의 <백의 그림자>를 만나보겠습니다.
갈수록 삭막해져 가는 도시에서 인물들은 서로 조심스럽게 마음을 이어가는데요.
작가가 그리는 따뜻한 연대와 사랑, 이유민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재개발이 진행 중인 오래된 전자상가.
낡은 건물 안엔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류재용/세운상가 상인 : "6월 되면 쫓겨나요. 집주인이 나가래요. 안타깝다고 하나, 아깝다고 하나…."]
황정은의 첫 장편소설 '백의 그림자'는 바로 이런 공간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황정은/소설가 : "한 사회가 '슬럼'이라는 말로 자꾸 지워버리려고 하는, 구석으로 몰아내서 지워버리려고 하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정든 상가가 철거되는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음향기기 수리사, 빚에 시달리던 가장, 산업재해로 남편을 잃은 아내….
저마다의 사연으로 절망하는 소설 속 인물들은 어느 날 '그림자가 일어서는' 낯선 경험을 하게 됩니다.
[작가 낭독/황정은 ‘백의 그림자’ 中 : "묵묵히 생각에 잠긴 무재씨의 뒤꿈치로부터 짙은 빛깔로 늘어진 그림자가 주변의 것들과는 다른 기색으로 곧장 벌판을 향해 뻗어 있었다."]
[황정은/소설가 : "절망스럽고 무력감을 느낄 때, 무기력할 때, 그럴 때 '그림자가 일어서야 한다'라고 저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 뉴스 : "경찰은 사방에서 물대포를 쏘며 철거민들을 압박해 나갑니다."]
소설을 쓰던 2009년, 용산 참사 현장을 목격한 작가가 떠올린 건, 역설적이게도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조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황정은/소설가 : "현장의 참혹함을 대하는 조심스러운 마음,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마음, 이라는 걸 세상에 보태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소설을 열심히 썼습니다."]
멀리서 온 손님에게 전구 하나를 덤으로 얹어주는 전구가게 '오무사' 주인처럼, 폭력적인 세상을 향해 분노나 적개심을 드러내는 대신, 순정한 마음으로 다가가는 소설 속 인물들.
주인공 '은교'와 '무재'도 버거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돌보며 조심스럽게 사랑을 키워갑니다.
[내레이션/황정은 ‘백의 그림자’ 中 :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씨를요.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정홍수/문학평론가 : "'은교'와 '무재'의 대화를 보고 있으면 이 사람들의 사랑을 우리가 응원하고 싶고, 이 사람들의 사랑이 가능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죠. 그런 면에서 아마 최고의 사랑 소설, 그런 소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섬에서 길을 잃고 '노래할까요'하며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두 사람.
소설이 세상에 나온 지 13년이 흐른 지금도 세상은 별로 달라진 게 없지만, 작가는 여전히 사랑과 연대의 가능성을 믿고 있습니다.
[황정은/소설가 : "(두 사람은 누군가를 만났을까요?) 네, 지금의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 밤길에서 이 두 사람의 얼굴을 목격했을 것이고,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는 믿음이 아직 저한테 있습니다."]
KBS 뉴스 이유민입니다.
촬영기자:김상민 박장빈/문자그래픽:임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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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02-06 21:25:17
- 수정2022-02-09 17:28:42
[앵커]
KBS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함께 선정한 소설 전해드리는 시간이죠.
오늘(6일)은 황정은 작가의 <백의 그림자>를 만나보겠습니다.
갈수록 삭막해져 가는 도시에서 인물들은 서로 조심스럽게 마음을 이어가는데요.
작가가 그리는 따뜻한 연대와 사랑, 이유민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재개발이 진행 중인 오래된 전자상가.
낡은 건물 안엔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류재용/세운상가 상인 : "6월 되면 쫓겨나요. 집주인이 나가래요. 안타깝다고 하나, 아깝다고 하나…."]
황정은의 첫 장편소설 '백의 그림자'는 바로 이런 공간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황정은/소설가 : "한 사회가 '슬럼'이라는 말로 자꾸 지워버리려고 하는, 구석으로 몰아내서 지워버리려고 하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정든 상가가 철거되는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음향기기 수리사, 빚에 시달리던 가장, 산업재해로 남편을 잃은 아내….
저마다의 사연으로 절망하는 소설 속 인물들은 어느 날 '그림자가 일어서는' 낯선 경험을 하게 됩니다.
[작가 낭독/황정은 ‘백의 그림자’ 中 : "묵묵히 생각에 잠긴 무재씨의 뒤꿈치로부터 짙은 빛깔로 늘어진 그림자가 주변의 것들과는 다른 기색으로 곧장 벌판을 향해 뻗어 있었다."]
[황정은/소설가 : "절망스럽고 무력감을 느낄 때, 무기력할 때, 그럴 때 '그림자가 일어서야 한다'라고 저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 뉴스 : "경찰은 사방에서 물대포를 쏘며 철거민들을 압박해 나갑니다."]
소설을 쓰던 2009년, 용산 참사 현장을 목격한 작가가 떠올린 건, 역설적이게도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조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황정은/소설가 : "현장의 참혹함을 대하는 조심스러운 마음,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마음, 이라는 걸 세상에 보태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소설을 열심히 썼습니다."]
멀리서 온 손님에게 전구 하나를 덤으로 얹어주는 전구가게 '오무사' 주인처럼, 폭력적인 세상을 향해 분노나 적개심을 드러내는 대신, 순정한 마음으로 다가가는 소설 속 인물들.
주인공 '은교'와 '무재'도 버거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돌보며 조심스럽게 사랑을 키워갑니다.
[내레이션/황정은 ‘백의 그림자’ 中 :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씨를요.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정홍수/문학평론가 : "'은교'와 '무재'의 대화를 보고 있으면 이 사람들의 사랑을 우리가 응원하고 싶고, 이 사람들의 사랑이 가능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죠. 그런 면에서 아마 최고의 사랑 소설, 그런 소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섬에서 길을 잃고 '노래할까요'하며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두 사람.
소설이 세상에 나온 지 13년이 흐른 지금도 세상은 별로 달라진 게 없지만, 작가는 여전히 사랑과 연대의 가능성을 믿고 있습니다.
[황정은/소설가 : "(두 사람은 누군가를 만났을까요?) 네, 지금의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 밤길에서 이 두 사람의 얼굴을 목격했을 것이고,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는 믿음이 아직 저한테 있습니다."]
KBS 뉴스 이유민입니다.
촬영기자:김상민 박장빈/문자그래픽:임희수
KBS와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함께 선정한 소설 전해드리는 시간이죠.
오늘(6일)은 황정은 작가의 <백의 그림자>를 만나보겠습니다.
갈수록 삭막해져 가는 도시에서 인물들은 서로 조심스럽게 마음을 이어가는데요.
작가가 그리는 따뜻한 연대와 사랑, 이유민 기자가 소개합니다.
[리포트]
재개발이 진행 중인 오래된 전자상가.
낡은 건물 안엔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류재용/세운상가 상인 : "6월 되면 쫓겨나요. 집주인이 나가래요. 안타깝다고 하나, 아깝다고 하나…."]
황정은의 첫 장편소설 '백의 그림자'는 바로 이런 공간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황정은/소설가 : "한 사회가 '슬럼'이라는 말로 자꾸 지워버리려고 하는, 구석으로 몰아내서 지워버리려고 하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정든 상가가 철거되는 과정을 지켜봐야 하는 음향기기 수리사, 빚에 시달리던 가장, 산업재해로 남편을 잃은 아내….
저마다의 사연으로 절망하는 소설 속 인물들은 어느 날 '그림자가 일어서는' 낯선 경험을 하게 됩니다.
[작가 낭독/황정은 ‘백의 그림자’ 中 : "묵묵히 생각에 잠긴 무재씨의 뒤꿈치로부터 짙은 빛깔로 늘어진 그림자가 주변의 것들과는 다른 기색으로 곧장 벌판을 향해 뻗어 있었다."]
[황정은/소설가 : "절망스럽고 무력감을 느낄 때, 무기력할 때, 그럴 때 '그림자가 일어서야 한다'라고 저는 생각을 했어요."]
[당시 뉴스 : "경찰은 사방에서 물대포를 쏘며 철거민들을 압박해 나갑니다."]
소설을 쓰던 2009년, 용산 참사 현장을 목격한 작가가 떠올린 건, 역설적이게도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조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황정은/소설가 : "현장의 참혹함을 대하는 조심스러운 마음, 사람과 사람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마음, 이라는 걸 세상에 보태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소설을 열심히 썼습니다."]
멀리서 온 손님에게 전구 하나를 덤으로 얹어주는 전구가게 '오무사' 주인처럼, 폭력적인 세상을 향해 분노나 적개심을 드러내는 대신, 순정한 마음으로 다가가는 소설 속 인물들.
주인공 '은교'와 '무재'도 버거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서로의 마음을 돌보며 조심스럽게 사랑을 키워갑니다.
[내레이션/황정은 ‘백의 그림자’ 中 : "나는 쇄골이 반듯한 사람이 좋습니다. (그렇군요.) 좋아합니다. (쇄골을요?) 은교씨를요. (나는 쇄골이 하나도 반듯하지 않은데요.) 반듯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좋은 거지요."]
[정홍수/문학평론가 : "'은교'와 '무재'의 대화를 보고 있으면 이 사람들의 사랑을 우리가 응원하고 싶고, 이 사람들의 사랑이 가능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하죠. 그런 면에서 아마 최고의 사랑 소설, 그런 소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섬에서 길을 잃고 '노래할까요'하며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두 사람.
소설이 세상에 나온 지 13년이 흐른 지금도 세상은 별로 달라진 게 없지만, 작가는 여전히 사랑과 연대의 가능성을 믿고 있습니다.
[황정은/소설가 : "(두 사람은 누군가를 만났을까요?) 네, 지금의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 밤길에서 이 두 사람의 얼굴을 목격했을 것이고,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라는 믿음이 아직 저한테 있습니다."]
KBS 뉴스 이유민입니다.
촬영기자:김상민 박장빈/문자그래픽:임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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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민 기자 reaso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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