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황정은 작가 “소설은 작가가 세상을 골똘히 생각한 결과물”
입력 2022.02.06 (21:3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황정은 / 소설가
Q. 13년 전, 어떤 마음으로 <백의 그림자>를 썼나?
해가 있는 동안에는 집에서 소설을 쓰고, 저녁 무렵 오후 네 시 다섯 시 그즈음에는 전철을 타고 용산 참사 현장이었던 남일당으로 갔는데요. 거길 오가면서 쓴 소설이에요. 현장의 참혹함을 대하는 조심스러운 마음, 사람과 사랑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마음이라는 걸 세상에 보태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소설을 열심히 썼습니다.
Q. 인물들이 폭력적인 세계에 강하게 대항하지 않는데?
이 소설 쓰기 자체가 저한테는 일종의 파이팅이었기 때문에, 소설 안에서 이 사람들이 어떤 구체적인 싸움을 하는 장면을 넣고 싶지는 않았어요. 쓰기 자체가 싸움이라서. 가급적 이 사람들의 대화를 부드러운 노래처럼 읽는 사람들한테 전달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그렇게 썼습니다.
Q. 사라지는 것들에 주목한 이유는?
사라지기 직전의 공간인데 그것도 아주 난폭한 방식으로 사라지기 직전의 공간, 그리고 한 사회가 '슬럼'이라는 말로 자꾸 지워버리려고 하는 구석으로 몰아내서 지워버리려고 하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Q. '그림자'가 일어서는 낯선 경험은 어떤 의미?
다들 그림자가 있잖아요. 세상에 존재하면 그림자를 존재 조건으로 항상 거느리고 사는데, 저는 그게 절망이나 슬픔, 단념 이런 것들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없을 수가 없는. 그 그림자에 끌려갈 때, 일어설 수는 있는데 너무 사람이 절망적이고, 절망스럽고 무력감을 느낄 때, 무기력할 때 그럴 때 그림자가 일어선다고 저는 생각을 했어요.
Q. 본인의 그림자가 일어선 적이 있나?
최근에는 에세이를 쓰고 나서, 책이 나오고 나서 그랬던 것 같아요. 에세이를 써야 할 필요가 있었고 저한테는, 그래서 그 작업을 했고, 그래서 나름 제 개인적인 상처나 이런 것들도 적어서 냈는데, 그게 소설 작업들하고는 좀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더 내가 노출된 채로, 더 내 껍데기가 벗겨진 채로 세상에 노출돼버린 그런 기분을 느꼈고 그래서 한동안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Q. '연애소설'이나 '사회비판 소설'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백의 그림자>는 '조심하는 소설'입니다. 읽는 분에 따라서 연애 소설로도 읽을 수 있고, '전야'를 말하려는 재개발에 관련된 소설로 읽을 수가 있지만 저는 '조심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는 소설을 쓰고 싶었고, 그게 저한테는 조심하는 마음이었고, 그래서 저는 그 소설을 '조심하는 소설'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Q. 이 소설에서 한 문장만 남긴다면?
한 문장을 남긴다면 저는 마지막 문장을 남길 것 같습니다. '노래할까요'라는 문장이고 그 소설 자체가 그 마지막 문장을 향해서 쓴 소설이기 때문에 그 문장을 쓰려고 그 소설을 쓴 거나 다름없어요. 그래서 마지막 문장을 남길 것 같습니다.
Q. 왜 그 문장을 향해 달렸나?
대화의 궁극이 저는 결국 노래인 것 같았고, 이 두 사람이 계속 나누는 대화가 일종의 돌림 노래처럼, 서로의 말을 주고받는 돌림 노래처럼 대화를 계속 썼거든요. 그래서 마지막에는 노래로 소설을 끝내고 싶었어요.
Q.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 두 주인공은 누군가를 만났을까?
지금의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백의 그림자>를 쓰고 나서 그 이후로도 계속 경험과 시간을 쌓아오면서 아주 많은 얼굴들을 만났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많은 얼굴들을 만난 것처럼 은교 씨와 무재 씨도 누군가의 얼굴을 그 밤길에서 만났을 것이고 또 누군가가 그 밤길에서 이 두 사람의 얼굴을 목격했을 것이고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는 믿음이 아직 저한테 있습니다.
Q. 여전히 난폭한 세계에서 소설의 역할은?
작가들이 세상을 골똘히 생각한 결과가 책 한 권이거든요. 소설도 그렇고. 열심히 자기가 속한 세상하고 자기가 만나는 사람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 사람들과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한 결과물이 소설인데, 그 소설이 책의 형태로 세상에 나왔을 때 세상에 이미 있는 사람들이 그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여기 이렇게 있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고, '누군가가 저기 저렇게 있구나' 생각할 수 있고 '당신이 그렇게 있었구나'를 생각할 수 있고. 어떻게 있었는지, 어떻게 있는지 그것도 생각할 수 있잖아요.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걸로 저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Q. 13년 전, 어떤 마음으로 <백의 그림자>를 썼나?
해가 있는 동안에는 집에서 소설을 쓰고, 저녁 무렵 오후 네 시 다섯 시 그즈음에는 전철을 타고 용산 참사 현장이었던 남일당으로 갔는데요. 거길 오가면서 쓴 소설이에요. 현장의 참혹함을 대하는 조심스러운 마음, 사람과 사랑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마음이라는 걸 세상에 보태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소설을 열심히 썼습니다.
Q. 인물들이 폭력적인 세계에 강하게 대항하지 않는데?
이 소설 쓰기 자체가 저한테는 일종의 파이팅이었기 때문에, 소설 안에서 이 사람들이 어떤 구체적인 싸움을 하는 장면을 넣고 싶지는 않았어요. 쓰기 자체가 싸움이라서. 가급적 이 사람들의 대화를 부드러운 노래처럼 읽는 사람들한테 전달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그렇게 썼습니다.
Q. 사라지는 것들에 주목한 이유는?
사라지기 직전의 공간인데 그것도 아주 난폭한 방식으로 사라지기 직전의 공간, 그리고 한 사회가 '슬럼'이라는 말로 자꾸 지워버리려고 하는 구석으로 몰아내서 지워버리려고 하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Q. '그림자'가 일어서는 낯선 경험은 어떤 의미?
다들 그림자가 있잖아요. 세상에 존재하면 그림자를 존재 조건으로 항상 거느리고 사는데, 저는 그게 절망이나 슬픔, 단념 이런 것들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없을 수가 없는. 그 그림자에 끌려갈 때, 일어설 수는 있는데 너무 사람이 절망적이고, 절망스럽고 무력감을 느낄 때, 무기력할 때 그럴 때 그림자가 일어선다고 저는 생각을 했어요.
Q. 본인의 그림자가 일어선 적이 있나?
최근에는 에세이를 쓰고 나서, 책이 나오고 나서 그랬던 것 같아요. 에세이를 써야 할 필요가 있었고 저한테는, 그래서 그 작업을 했고, 그래서 나름 제 개인적인 상처나 이런 것들도 적어서 냈는데, 그게 소설 작업들하고는 좀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더 내가 노출된 채로, 더 내 껍데기가 벗겨진 채로 세상에 노출돼버린 그런 기분을 느꼈고 그래서 한동안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Q. '연애소설'이나 '사회비판 소설'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백의 그림자>는 '조심하는 소설'입니다. 읽는 분에 따라서 연애 소설로도 읽을 수 있고, '전야'를 말하려는 재개발에 관련된 소설로 읽을 수가 있지만 저는 '조심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는 소설을 쓰고 싶었고, 그게 저한테는 조심하는 마음이었고, 그래서 저는 그 소설을 '조심하는 소설'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Q. 이 소설에서 한 문장만 남긴다면?
한 문장을 남긴다면 저는 마지막 문장을 남길 것 같습니다. '노래할까요'라는 문장이고 그 소설 자체가 그 마지막 문장을 향해서 쓴 소설이기 때문에 그 문장을 쓰려고 그 소설을 쓴 거나 다름없어요. 그래서 마지막 문장을 남길 것 같습니다.
Q. 왜 그 문장을 향해 달렸나?
대화의 궁극이 저는 결국 노래인 것 같았고, 이 두 사람이 계속 나누는 대화가 일종의 돌림 노래처럼, 서로의 말을 주고받는 돌림 노래처럼 대화를 계속 썼거든요. 그래서 마지막에는 노래로 소설을 끝내고 싶었어요.
Q.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 두 주인공은 누군가를 만났을까?
지금의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백의 그림자>를 쓰고 나서 그 이후로도 계속 경험과 시간을 쌓아오면서 아주 많은 얼굴들을 만났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많은 얼굴들을 만난 것처럼 은교 씨와 무재 씨도 누군가의 얼굴을 그 밤길에서 만났을 것이고 또 누군가가 그 밤길에서 이 두 사람의 얼굴을 목격했을 것이고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는 믿음이 아직 저한테 있습니다.
Q. 여전히 난폭한 세계에서 소설의 역할은?
작가들이 세상을 골똘히 생각한 결과가 책 한 권이거든요. 소설도 그렇고. 열심히 자기가 속한 세상하고 자기가 만나는 사람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 사람들과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한 결과물이 소설인데, 그 소설이 책의 형태로 세상에 나왔을 때 세상에 이미 있는 사람들이 그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여기 이렇게 있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고, '누군가가 저기 저렇게 있구나' 생각할 수 있고 '당신이 그렇게 있었구나'를 생각할 수 있고. 어떻게 있었는지, 어떻게 있는지 그것도 생각할 수 있잖아요.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걸로 저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인터뷰] 황정은 작가 “소설은 작가가 세상을 골똘히 생각한 결과물”
-
- 입력 2022-02-06 21:32:26

황정은 / 소설가
Q. 13년 전, 어떤 마음으로 <백의 그림자>를 썼나?
해가 있는 동안에는 집에서 소설을 쓰고, 저녁 무렵 오후 네 시 다섯 시 그즈음에는 전철을 타고 용산 참사 현장이었던 남일당으로 갔는데요. 거길 오가면서 쓴 소설이에요. 현장의 참혹함을 대하는 조심스러운 마음, 사람과 사랑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마음이라는 걸 세상에 보태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소설을 열심히 썼습니다.
Q. 인물들이 폭력적인 세계에 강하게 대항하지 않는데?
이 소설 쓰기 자체가 저한테는 일종의 파이팅이었기 때문에, 소설 안에서 이 사람들이 어떤 구체적인 싸움을 하는 장면을 넣고 싶지는 않았어요. 쓰기 자체가 싸움이라서. 가급적 이 사람들의 대화를 부드러운 노래처럼 읽는 사람들한테 전달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그렇게 썼습니다.
Q. 사라지는 것들에 주목한 이유는?
사라지기 직전의 공간인데 그것도 아주 난폭한 방식으로 사라지기 직전의 공간, 그리고 한 사회가 '슬럼'이라는 말로 자꾸 지워버리려고 하는 구석으로 몰아내서 지워버리려고 하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Q. '그림자'가 일어서는 낯선 경험은 어떤 의미?
다들 그림자가 있잖아요. 세상에 존재하면 그림자를 존재 조건으로 항상 거느리고 사는데, 저는 그게 절망이나 슬픔, 단념 이런 것들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없을 수가 없는. 그 그림자에 끌려갈 때, 일어설 수는 있는데 너무 사람이 절망적이고, 절망스럽고 무력감을 느낄 때, 무기력할 때 그럴 때 그림자가 일어선다고 저는 생각을 했어요.
Q. 본인의 그림자가 일어선 적이 있나?
최근에는 에세이를 쓰고 나서, 책이 나오고 나서 그랬던 것 같아요. 에세이를 써야 할 필요가 있었고 저한테는, 그래서 그 작업을 했고, 그래서 나름 제 개인적인 상처나 이런 것들도 적어서 냈는데, 그게 소설 작업들하고는 좀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더 내가 노출된 채로, 더 내 껍데기가 벗겨진 채로 세상에 노출돼버린 그런 기분을 느꼈고 그래서 한동안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Q. '연애소설'이나 '사회비판 소설'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백의 그림자>는 '조심하는 소설'입니다. 읽는 분에 따라서 연애 소설로도 읽을 수 있고, '전야'를 말하려는 재개발에 관련된 소설로 읽을 수가 있지만 저는 '조심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는 소설을 쓰고 싶었고, 그게 저한테는 조심하는 마음이었고, 그래서 저는 그 소설을 '조심하는 소설'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Q. 이 소설에서 한 문장만 남긴다면?
한 문장을 남긴다면 저는 마지막 문장을 남길 것 같습니다. '노래할까요'라는 문장이고 그 소설 자체가 그 마지막 문장을 향해서 쓴 소설이기 때문에 그 문장을 쓰려고 그 소설을 쓴 거나 다름없어요. 그래서 마지막 문장을 남길 것 같습니다.
Q. 왜 그 문장을 향해 달렸나?
대화의 궁극이 저는 결국 노래인 것 같았고, 이 두 사람이 계속 나누는 대화가 일종의 돌림 노래처럼, 서로의 말을 주고받는 돌림 노래처럼 대화를 계속 썼거든요. 그래서 마지막에는 노래로 소설을 끝내고 싶었어요.
Q.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 두 주인공은 누군가를 만났을까?
지금의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백의 그림자>를 쓰고 나서 그 이후로도 계속 경험과 시간을 쌓아오면서 아주 많은 얼굴들을 만났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많은 얼굴들을 만난 것처럼 은교 씨와 무재 씨도 누군가의 얼굴을 그 밤길에서 만났을 것이고 또 누군가가 그 밤길에서 이 두 사람의 얼굴을 목격했을 것이고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는 믿음이 아직 저한테 있습니다.
Q. 여전히 난폭한 세계에서 소설의 역할은?
작가들이 세상을 골똘히 생각한 결과가 책 한 권이거든요. 소설도 그렇고. 열심히 자기가 속한 세상하고 자기가 만나는 사람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 사람들과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한 결과물이 소설인데, 그 소설이 책의 형태로 세상에 나왔을 때 세상에 이미 있는 사람들이 그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여기 이렇게 있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고, '누군가가 저기 저렇게 있구나' 생각할 수 있고 '당신이 그렇게 있었구나'를 생각할 수 있고. 어떻게 있었는지, 어떻게 있는지 그것도 생각할 수 있잖아요.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걸로 저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Q. 13년 전, 어떤 마음으로 <백의 그림자>를 썼나?
해가 있는 동안에는 집에서 소설을 쓰고, 저녁 무렵 오후 네 시 다섯 시 그즈음에는 전철을 타고 용산 참사 현장이었던 남일당으로 갔는데요. 거길 오가면서 쓴 소설이에요. 현장의 참혹함을 대하는 조심스러운 마음, 사람과 사랑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대하는 마음이라는 걸 세상에 보태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소설을 열심히 썼습니다.
Q. 인물들이 폭력적인 세계에 강하게 대항하지 않는데?
이 소설 쓰기 자체가 저한테는 일종의 파이팅이었기 때문에, 소설 안에서 이 사람들이 어떤 구체적인 싸움을 하는 장면을 넣고 싶지는 않았어요. 쓰기 자체가 싸움이라서. 가급적 이 사람들의 대화를 부드러운 노래처럼 읽는 사람들한테 전달을 하고 싶었고 그래서 그렇게 썼습니다.
Q. 사라지는 것들에 주목한 이유는?
사라지기 직전의 공간인데 그것도 아주 난폭한 방식으로 사라지기 직전의 공간, 그리고 한 사회가 '슬럼'이라는 말로 자꾸 지워버리려고 하는 구석으로 몰아내서 지워버리려고 하는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죠.
Q. '그림자'가 일어서는 낯선 경험은 어떤 의미?
다들 그림자가 있잖아요. 세상에 존재하면 그림자를 존재 조건으로 항상 거느리고 사는데, 저는 그게 절망이나 슬픔, 단념 이런 것들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없을 수가 없는. 그 그림자에 끌려갈 때, 일어설 수는 있는데 너무 사람이 절망적이고, 절망스럽고 무력감을 느낄 때, 무기력할 때 그럴 때 그림자가 일어선다고 저는 생각을 했어요.
Q. 본인의 그림자가 일어선 적이 있나?
최근에는 에세이를 쓰고 나서, 책이 나오고 나서 그랬던 것 같아요. 에세이를 써야 할 필요가 있었고 저한테는, 그래서 그 작업을 했고, 그래서 나름 제 개인적인 상처나 이런 것들도 적어서 냈는데, 그게 소설 작업들하고는 좀 많이 달랐던 것 같아요. 더 내가 노출된 채로, 더 내 껍데기가 벗겨진 채로 세상에 노출돼버린 그런 기분을 느꼈고 그래서 한동안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Q. '연애소설'이나 '사회비판 소설'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백의 그림자>는 '조심하는 소설'입니다. 읽는 분에 따라서 연애 소설로도 읽을 수 있고, '전야'를 말하려는 재개발에 관련된 소설로 읽을 수가 있지만 저는 '조심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도 다치게 하지 않는 소설을 쓰고 싶었고, 그게 저한테는 조심하는 마음이었고, 그래서 저는 그 소설을 '조심하는 소설'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Q. 이 소설에서 한 문장만 남긴다면?
한 문장을 남긴다면 저는 마지막 문장을 남길 것 같습니다. '노래할까요'라는 문장이고 그 소설 자체가 그 마지막 문장을 향해서 쓴 소설이기 때문에 그 문장을 쓰려고 그 소설을 쓴 거나 다름없어요. 그래서 마지막 문장을 남길 것 같습니다.
Q. 왜 그 문장을 향해 달렸나?
대화의 궁극이 저는 결국 노래인 것 같았고, 이 두 사람이 계속 나누는 대화가 일종의 돌림 노래처럼, 서로의 말을 주고받는 돌림 노래처럼 대화를 계속 썼거든요. 그래서 마지막에는 노래로 소설을 끝내고 싶었어요.
Q.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 두 주인공은 누군가를 만났을까?
지금의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백의 그림자>를 쓰고 나서 그 이후로도 계속 경험과 시간을 쌓아오면서 아주 많은 얼굴들을 만났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많은 얼굴들을 만난 것처럼 은교 씨와 무재 씨도 누군가의 얼굴을 그 밤길에서 만났을 것이고 또 누군가가 그 밤길에서 이 두 사람의 얼굴을 목격했을 것이고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는 믿음이 아직 저한테 있습니다.
Q. 여전히 난폭한 세계에서 소설의 역할은?
작가들이 세상을 골똘히 생각한 결과가 책 한 권이거든요. 소설도 그렇고. 열심히 자기가 속한 세상하고 자기가 만나는 사람들,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그 사람들과 자기 자신에 대해서 골똘히 생각한 결과물이 소설인데, 그 소설이 책의 형태로 세상에 나왔을 때 세상에 이미 있는 사람들이 그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여기 이렇게 있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고, '누군가가 저기 저렇게 있구나' 생각할 수 있고 '당신이 그렇게 있었구나'를 생각할 수 있고. 어떻게 있었는지, 어떻게 있는지 그것도 생각할 수 있잖아요.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걸로 저는 만족하고 있습니다.
-
-
이유민 기자 reason@kbs.co.kr
이유민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