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출신 화가 작품의 운명은?​…“한국에 전시 중인 미술품 반환해라”

입력 2022.03.17 (08:56) 수정 2022.03.17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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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미술관 "한국에 빌려 간 미술품, 전시 중단하고 돌려달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정치적인 상황'을 이유로 들어, 국내에서 전시 중인 러시아 미술품을 조기에 반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러시아가 문제삼은 전시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입니다. 전시를 주최하고 있는 한국일보사는 "작품을 대여해준 러시아 미술관으로부터 4월 17일까지 예정된 전시를 4월 3일에 종료하고 작품을 조기 반환해달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전시에는 세계적인 미술가 칸딘스키와 말레비치를 포함한 러시아 출신 작가의 작품 75점이 출품됐습니다. 작품을 대여해준 곳은 국립미술관을 포함한 러시아 미술관 4곳으로, 대여료를 받고 해외 전시 업체에 대여해준 미술품에 대해 일방적인 조기 반환을 요구한 것입니다.

■ 이탈리아 미술관에도 같은 통보…"미술품 반환은 러시아 정부의 명령"
러시아 미술관 측은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직후인 지난달 말에 처음 이메일을 보내, 조기 반환을 요구했습니다. 이때 러시아 측이 이유로 든 것은 '어려운 정치적 상황'(the difficult political situation)이었습니다. 국내 전시업체가 계약 조건을 들어 난색을 표하자, 미술관 측은 "작품의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보안을 강화하고 반환 일정을 지켜달라"고 한발 물러섰습니다. 그런데 러시아 미술관 측이 최근 두 번째 이메일을 보내 "러시아 정부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면서 다시 반환을 요구한 겁니다. 러시아는 한국뿐 아니라 이탈리아에도 같은 요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외신들은 현지시각 10일, 러시아 정부가 이탈리아 미술관 2곳에 대여한 러시아 미술품을 조기 반환할 것을 통보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앞서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문화예술계에서도 러시아를 배제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러시아도 맞대응을 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입니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러시아에서 가장 비싼 화가’ 말레비치의 ‘절대주의’(1915)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러시아에서 가장 비싼 화가’ 말레비치의 ‘절대주의’(1915)

■ '러시아에서 가장 비싼 화가'…우크라이나 출신 말레비치의 기구한 운명
한국 전시에는 잘 알려진 칸딘스키 외에, 20세기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작품도 나와 있습니다. 말레비치의 작품은 2018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8,580만 달러, 현재 환율로는 천억 원이 넘는 가격에 팔려 러시아 출신 화가의 작품으로는 가장 비싸게 팔린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20세기 초에 활동한 말레비치는 풍경이나 정물 같은 구체적인 형상이 아닌, 선과 도형 등 기하학적인 형태로 구성된 작품을 선보이고 스스로 '절대주의'라 이름 붙였습니다. 미술은 외부 세계의 모방이 아니라 화가의 정신 세계를 담아야 한다는 말레비치의 선언은 이후 서유럽은 물론, 세계 미술계의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말레비치는 1879년 당시 러시아 제국의 영토였던 키이우에서 태어났습니다. 현재 전쟁의 참화를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수도가 말레비치의 고향입니다. 세계 미술의 중심지 프랑스 파리에 활동하기도 했던 말레비치는 1915년 화폭에 검은 사각형만을 그린 작품으로 '절대주의'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에도 국가의 지원을 받기도 하며 작품활동을 하던 말레비치는 스탈린 정권에서 추상미술이 국가 이념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습니다. 교수직이 박탈되고 작품과 관련 원고를 압수당한 말레비치는 감옥에 투옥되기까지 합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작품 활동을 금지당한 말레비치는 암에 걸려 1935년 56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9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역시 정치적인 이유로 자신의 작품이 관심을 받게 된 상황을, 키이우 출신의 화가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2018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천억 원이 넘는 가격에 팔린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구성’(1916). 크리스티 제공.2018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천억 원이 넘는 가격에 팔린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구성’(1916). 크리스티 제공.

■ 모스크바 항공편도 중단…말레비치의 작품은 어떻게?
러시아 측의 일방적인 요구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국내 전시는 지난해 말에 시작됐고, 미술품들은 그보다 앞서 대한항공의 인천-모스크바 노선을 이용해 국내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해당 항공편의 운항이 중단된 상황입니다. 한국일보사 측은 "당초 계약 조건대로 전시 일정을 마쳐야 한다"는 입장이라면서 "설령 러시아의 요구를 들어준다고 해도 운송을 어떻게 할지는 러시아 측에서도 언급이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국내 전시 일정은 4월 17일까지입니다.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야 하겠지만, 우크라이나의 상황만큼 한국에 온 키이우 출신 화가의 작품의 상황도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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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크라이나 출신 화가 작품의 운명은?​…“한국에 전시 중인 미술품 반환해라”
    • 입력 2022-03-17 08:56:20
    • 수정2022-03-17 08:56:41
    취재K

■ 러시아 미술관 "한국에 빌려 간 미술품, 전시 중단하고 돌려달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정치적인 상황'을 이유로 들어, 국내에서 전시 중인 러시아 미술품을 조기에 반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러시아가 문제삼은 전시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입니다. 전시를 주최하고 있는 한국일보사는 "작품을 대여해준 러시아 미술관으로부터 4월 17일까지 예정된 전시를 4월 3일에 종료하고 작품을 조기 반환해달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전시에는 세계적인 미술가 칸딘스키와 말레비치를 포함한 러시아 출신 작가의 작품 75점이 출품됐습니다. 작품을 대여해준 곳은 국립미술관을 포함한 러시아 미술관 4곳으로, 대여료를 받고 해외 전시 업체에 대여해준 미술품에 대해 일방적인 조기 반환을 요구한 것입니다.

■ 이탈리아 미술관에도 같은 통보…"미술품 반환은 러시아 정부의 명령"
러시아 미술관 측은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직후인 지난달 말에 처음 이메일을 보내, 조기 반환을 요구했습니다. 이때 러시아 측이 이유로 든 것은 '어려운 정치적 상황'(the difficult political situation)이었습니다. 국내 전시업체가 계약 조건을 들어 난색을 표하자, 미술관 측은 "작품의 안전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보안을 강화하고 반환 일정을 지켜달라"고 한발 물러섰습니다. 그런데 러시아 미술관 측이 최근 두 번째 이메일을 보내 "러시아 정부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면서 다시 반환을 요구한 겁니다. 러시아는 한국뿐 아니라 이탈리아에도 같은 요구를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외신들은 현지시각 10일, 러시아 정부가 이탈리아 미술관 2곳에 대여한 러시아 미술품을 조기 반환할 것을 통보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앞서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문화예술계에서도 러시아를 배제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러시아도 맞대응을 하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입니다.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러시아에서 가장 비싼 화가’ 말레비치의 ‘절대주의’(1915)
■ '러시아에서 가장 비싼 화가'…우크라이나 출신 말레비치의 기구한 운명
한국 전시에는 잘 알려진 칸딘스키 외에, 20세기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작품도 나와 있습니다. 말레비치의 작품은 2018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8,580만 달러, 현재 환율로는 천억 원이 넘는 가격에 팔려 러시아 출신 화가의 작품으로는 가장 비싸게 팔린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20세기 초에 활동한 말레비치는 풍경이나 정물 같은 구체적인 형상이 아닌, 선과 도형 등 기하학적인 형태로 구성된 작품을 선보이고 스스로 '절대주의'라 이름 붙였습니다. 미술은 외부 세계의 모방이 아니라 화가의 정신 세계를 담아야 한다는 말레비치의 선언은 이후 서유럽은 물론, 세계 미술계의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말레비치는 1879년 당시 러시아 제국의 영토였던 키이우에서 태어났습니다. 현재 전쟁의 참화를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수도가 말레비치의 고향입니다. 세계 미술의 중심지 프랑스 파리에 활동하기도 했던 말레비치는 1915년 화폭에 검은 사각형만을 그린 작품으로 '절대주의'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에도 국가의 지원을 받기도 하며 작품활동을 하던 말레비치는 스탈린 정권에서 추상미술이 국가 이념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탄압을 받습니다. 교수직이 박탈되고 작품과 관련 원고를 압수당한 말레비치는 감옥에 투옥되기까지 합니다. 정치적인 이유로 작품 활동을 금지당한 말레비치는 암에 걸려 1935년 56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9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뒤, 역시 정치적인 이유로 자신의 작품이 관심을 받게 된 상황을, 키이우 출신의 화가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2018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천억 원이 넘는 가격에 팔린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구성’(1916). 크리스티 제공.
■ 모스크바 항공편도 중단…말레비치의 작품은 어떻게?
러시아 측의 일방적인 요구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국내 전시는 지난해 말에 시작됐고, 미술품들은 그보다 앞서 대한항공의 인천-모스크바 노선을 이용해 국내로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해당 항공편의 운항이 중단된 상황입니다. 한국일보사 측은 "당초 계약 조건대로 전시 일정을 마쳐야 한다"는 입장이라면서 "설령 러시아의 요구를 들어준다고 해도 운송을 어떻게 할지는 러시아 측에서도 언급이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국내 전시 일정은 4월 17일까지입니다.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야 하겠지만, 우크라이나의 상황만큼 한국에 온 키이우 출신 화가의 작품의 상황도 혼란스러운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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