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미군정 희생자 ‘형 집행’ 문서 첫 입수

입력 2022.03.29 (06:52) 수정 2022.03.29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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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제주 4·3 당시 수형인과 희생자들에 대한 재심이 이어지면서 명예 회복이 이뤄지고 있는데요.

당시 재판부의 기록이 재심의 중요 자료가 됩니다.

하지만, 미 군정 재판부로부터 형을 선고받은 희생자의 경우 기록을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한 희생자의 미 군정 문서를 KBS가 처음으로 입수했습니다.

문준영 기자입니다.

[리포트]

아흔을 앞둔 이순천 할아버지가 친형 이경천 씨를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70여 년 전인 1947년 4월입니다.

당시 22살의 교사였던 친형은 3·1절 기념식에 참석했다는 이유 등으로 미 군정 재판부로부터 형을 선고받고 목포형무소에 수감된 뒤 행방불명됐습니다.

[이순천/이경천 씨 동생 : "어머님이 아마 참석을 했던 모양이야. 재판하는데. 형님 얼굴도 봤대, (체포 이후) 처음으로..."]

미 군정 재판이었기에 국가기록원에 판결문도 없는 상황.

유일한 기록은 당시 지역 신문기사뿐이었습니다.

KBS는 재판과 관련한 기록을 입증할 미 군정 문서를 입수했습니다.

당시 조선주둔미군군정청 제주군정재판소가 목포형무소장에게 보낸 문서입니다.

영어로 적힌 이경천 씨 이름과 이 씨가 살던 북제주군의 주소가 명시됐습니다.

포고령 제2호 위반, 징역 8월 선고까지 당시 기사 내용과 일치합니다.

제주 4·3 당시 일반 재판부에서 형을 선고받은 희생자의 유족은 당시 판결문으로 재심을 청구하고 있습니다.

판결문이 아닌 미 군정의 이번 '형 집행' 문서는 시민단체와 변호인의 도움으로 국가기록원에서 어렵게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법원이 미 군정 재판부의 희생자로는 처음으로 재심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김세은/재심 담당 변호인 : "이러한 자료가 현재 국가기록원에 남아있다라는 것들이 확인됐기 때문에 추후 미군에 의한 재판을 받으셨던 분들이 (재심 때) 더 수월하게 자료를 확인하고..."]

이 씨와 같은 미 군정 재판부의 희생자 수는 관련 기록이 없거나 찾아내지 못해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KBS 뉴스 문준영입니다.

촬영기자:신비오/그래픽:조하연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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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4·3 미군정 희생자 ‘형 집행’ 문서 첫 입수
    • 입력 2022-03-29 06:52:01
    • 수정2022-03-29 06:57:44
    뉴스광장 1부
[앵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제주 4·3 당시 수형인과 희생자들에 대한 재심이 이어지면서 명예 회복이 이뤄지고 있는데요.

당시 재판부의 기록이 재심의 중요 자료가 됩니다.

하지만, 미 군정 재판부로부터 형을 선고받은 희생자의 경우 기록을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한 희생자의 미 군정 문서를 KBS가 처음으로 입수했습니다.

문준영 기자입니다.

[리포트]

아흔을 앞둔 이순천 할아버지가 친형 이경천 씨를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70여 년 전인 1947년 4월입니다.

당시 22살의 교사였던 친형은 3·1절 기념식에 참석했다는 이유 등으로 미 군정 재판부로부터 형을 선고받고 목포형무소에 수감된 뒤 행방불명됐습니다.

[이순천/이경천 씨 동생 : "어머님이 아마 참석을 했던 모양이야. 재판하는데. 형님 얼굴도 봤대, (체포 이후) 처음으로..."]

미 군정 재판이었기에 국가기록원에 판결문도 없는 상황.

유일한 기록은 당시 지역 신문기사뿐이었습니다.

KBS는 재판과 관련한 기록을 입증할 미 군정 문서를 입수했습니다.

당시 조선주둔미군군정청 제주군정재판소가 목포형무소장에게 보낸 문서입니다.

영어로 적힌 이경천 씨 이름과 이 씨가 살던 북제주군의 주소가 명시됐습니다.

포고령 제2호 위반, 징역 8월 선고까지 당시 기사 내용과 일치합니다.

제주 4·3 당시 일반 재판부에서 형을 선고받은 희생자의 유족은 당시 판결문으로 재심을 청구하고 있습니다.

판결문이 아닌 미 군정의 이번 '형 집행' 문서는 시민단체와 변호인의 도움으로 국가기록원에서 어렵게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법원이 미 군정 재판부의 희생자로는 처음으로 재심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김세은/재심 담당 변호인 : "이러한 자료가 현재 국가기록원에 남아있다라는 것들이 확인됐기 때문에 추후 미군에 의한 재판을 받으셨던 분들이 (재심 때) 더 수월하게 자료를 확인하고..."]

이 씨와 같은 미 군정 재판부의 희생자 수는 관련 기록이 없거나 찾아내지 못해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KBS 뉴스 문준영입니다.

촬영기자:신비오/그래픽:조하연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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