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우크라이나 취재기① ‘2박 3일’의 전쟁 취재와 외교부의 후진적 언론관
입력 2022.04.05 (16:00)
수정 2022.04.06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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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파리특파원인 나는 SBS팀과 함께 ‘명예롭게도’ 한국에서 가장 먼저 우크라이나에 들어가 취재하고 방송한 기자가 됐다. 외교부 장관의 이른바 ‘예외적 여권사용 허가’ 덕분에 우크라이나 입국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 취재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짧은 ‘2박 3일’의 취재 허가 기간을 마치고, 도망치듯 빠져나온 종군기자(?)라는 ‘불명예’를 함께 얻었다. 우크라이나 취재를 통해 경험한 건 전쟁 상황보다 외교부 ‘예외적 여권 사용’ 제도의 허술함과 답답함이다.
외교부가 배포한 ‘예외적 여권 사용’ 신청 안내문
■ 경호업체와 숙박시설 계약서를 미리 제출하라고?
KBS가 최초로 우크라이나 입국 취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외교부의 온라인 사이트인 ‘영사민원 24’를 통해 ‘예외적 여권 사용’ 신청을 가장 먼저 접수했기 때문이다. 위에 발췌한 것처럼 대한민국 법령은 콕 집어서 ‘공익을 위한 취재와 보도’의 경우 예외적 여권사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물론 외교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KBS의 신청이 들어간 이후에 외교부는 출입기자들에게 ‘예외적 여권 사용’이 필요하면 신청하라고 공지했다. 물론 그 안에는 언론의 기능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소조항(① 3일 이내 ② 4명 이내 ③ 우크라이나 체르니우치 지역 내 ④ 외교부 출입 언론사만 가능)들이 들어 있지만.
온라인 민원신청 과정은 쉽지 않았다. 특히 해외에서 생업을 위해 남겠다는 일반 서민들은 이런 걸 과연 준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선 가장 큰 걸림돌은 ‘경호업체’ 계약과 ‘숙박시설’ 예약 증명서였다. 온라인 사이트에는 이게 없으면 서류 접수가 불가할 수 있다는 경고(?) 문구도 있다.
예외적 여권사용 구비서류 중
우크라이나도 처음 가보는 데 이건 ‘뭥미’? (전쟁 중인 나라에서 경호 능력이 있는 사람이면 빨리 총 들고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한국인은 안 될테고 그럼 제3국의 경호업체를 섭외해야 하는 건가?) 첫 번째 좌절이었다.
그래도 취재는 해야 하니까 일단 방송사가 해외출장을 갈 때 도움을 주는 코디네이터(안내 및 통역)의 이름과 사업체명을 경호업체로 등록할 수밖에 없었다. 계약서는 만들지 못했지만 필요하면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다음엔 숙박업소. 피란민으로 포화상태가 된 체르니우치 지역에 숙박업소는 남아 있지 않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숙박 예약사이트들에도 이 지역의 숙박 예약은 불가능이다. (전쟁 취재하러 가는 기자가 방이 없으면 차량에서라도 자면 될 일이지 왜 이런 걸 미리 보내라는 거야?)
허위 문서를 보낼 수는 없어 구글에서 찾은 그 지역 호텔명과 주소를 적어 보냈다. 그런데 전쟁 중인 나라에서 이런 걸 사전에 다 준비하라는 건 상식적인가.
경호업체나 숙박업소를 사전에 예약하라던 외교부가 최종적 입국 허가를 통보한 건 18일 새벽, 즉 입국 예정 당일이었다. 그것도 2박 3일.
좀 더 여유 있게 알려줬다면 오히려 현지인 안내인이 섭외되고 난 후 이것저것 사전에 필요한 일들을 처리할 수 있었을 텐데. 외교부는 입국해야 할 당일에서야 최종 입국허가를 내줬다. (그렇지, 갑질이란 이런 거야! 전쟁 중인 나라에 입국해야 할 사정이 있는 사람은 둘째고 칼자루 쥔 공무원의 시간표에 맞춰야 하는 게 대한민국이지.)
예외적 여권사용 허가서_발급일과 허가기간 시작일이 동일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여권법과 시행령, 시행규칙을 들여다 봤지만, 경호업체나 숙박 계약 같은 내용이 필수라는 조항은 없다. 과연 외교부 재외국민안전과가 무슨 근거로 그런 걸 요구해 사전 취재를 하기도 바쁜 기자를 혼란의 도가니 속으로 빠지게 한 건지 묻고 싶다.
■ 전쟁터 '2박 3일'...그것은 취재인가 견학인가!...외교부 처음 제안은 '1박 2일'
루마니아 접경에서 취재활동을 하면서 우크라이나 입국을 위한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기다리던 중에 본사 외교부 출입기자에게 연락이 왔다.
외교부는 ‘언론사 각 2명이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안전한 곳, 그래서 한국의 임시대사관이 피란 온 체르니우치 지역을, 2일 동안 취재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나는 취재할 시간의 절대적인 부족, 한국과의 시차 문제, 생방송을 하고 나면 오후에나 취재가 가능하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나서야 취재 허가 기간은 2박 3일로 하루 늘어났다. 이후 다른 언론사들도 모두 2박 3일의 취재만이 허용됐다.
외교부 직원들은 이번 전쟁의 의미와 파장을 내부에 보고할 때 2박 3일 파악해서 보고서 쓰냐고 묻고 싶었다.
이번 전쟁은 NATO의 확장, 구소련 해체 후 꾸준히 내리막길이었던 러시아의 반격, 중국의 부상으로 두 지역에서의 동시에 전쟁 수행이 힘들어진 미국, 그래서 신냉전의 신호탄? 이란 얘기가 나왔다. 게다가 지정학적으로 부침이 많았던 우크라이나의 현대사는 분단된 한국에 던지는 의미도 크다.
현대사에서 의미가 매우 큰 현장을 한국 기자들에겐 2박 3일의 취재만 허용된 것이다. 그것도 전쟁과는 가장 먼 평온한 지역에서. 언론사가 신청하면 순번을 정해서 취재 하란다. (맷돌에 손잡이가 없으면 ‘어이가 없다.’라고 했던가.) 말이 막히고 숨도 막혔다. (외교부 공무원들은 보통 그렇게 일을 하나 보지?)
<3월 18일/입국 첫날 취재 일지> 08시:루마니아 호텔 출발 - 09시:국경 검문소 1시간 만에 통과 - 10시:우크라이나 안내인 만남 이동 - 11시: 방송송출용 유심칩 구입 및 테스트 - 12시: 생방송 장소 섭외 및 주변 스케치 촬영 - 14시: 피란민 지원센터 취재 - 15시: 구호품 지원센터 취재 - 17시: 난민 숙소로 변한 학교 및 피란민 취재 - 18시: 저녁 식사 및 밤거리 스케치 촬영 - 20시: 체르니우치 주민 주택 빌려 쓰는 피란민 가족 취재-21시: 숙소 도착 - 22시: 통행금지 발효. |
입국 허가 첫날의 취재 일지다. 남이 보면 정말 열심히 취재했네? 할 수도 있겠지만, 언론 동업자 또는 나 스스로 볼 땐 ‘제대로 취재한 건 하나도 없네!’라는 증거기도 하다. 그나마 나머지 이틀은 <9시 뉴스> 시간인 오후 3시까지 방송을 하고, 해질 때까지 몇 군데를 더 취재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특히 학교에서 만난 한 피란민 여성은 인터뷰를 하다가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말이 통하는 우크라이나인 통역을 붙잡고 전쟁의 아픔을 토로했다. 나는 그 상황을 잠시 빠져나와 다른 시설과 피란민들을 촬영했다. 그런데도 통역사와 피란민의 대화는 끝나지 않았다. 불과 5분? 나는 통역에게 시간이 없으니 빨리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고 말하고 학교를 빠져나와야 했다.
3월 18일 오후/ 피란민 숙소로 바뀐 학교에서 인터뷰 중
취재를 하러 간 건지, 방송에서 ‘나 우크라이나에 들어왔어’라고 증명사진이라도 찍으러 들어온 건지 분간이 안 됐다.그러나 강대국 러시아와 전쟁 중인 약소국 우크라이나의 통역사와 운전사는 우크라이나 편(?)이 되어준 ‘한국 기자’의 말도 안 되는 하루 일정을 정말 필사적으로 도왔다.
2박 3일의 널뛰기 취재 후 도망치듯 우크라이나를 빠져나오는 나는 그 속에서 살고 있는 그들을 보기가 너무 미안했고, 어이없는 ‘한국 정부의 여권 허가제도’를 설명하면서 창피함을 모면하고자 했다. 대신 꼭 다시 돌아와 취재를 더 하겠노라고 약속했다.
3월 20일 ‘2박 3일’ 취재를 마치고 국경 검문소에서 헤어진 이리나(통역)와 유직(운전사)
■ 다시 도전한 우크라이나 취재 신청...외교부, ‘접수 처리할 수 없음’
프랑스 파리로 돌아온 뒤 예외적 여권사용 다시 신청했다. 장소는 지난번 들어갔던 체르니우치와 전 세계 언론인들이 모여 있는 리비우. 취재기간은 한 달(KBS 2팀이 교대로 취재). 그러나 신청 1주일 만에 돌아온 외교부의 답변은 ‘사전에 공지한 조건을 벗어나서 접수 처리할 수 없다’였다.
외교부에 확인해 봐야 하겠지만 ‘접수 처리를 할 수 없음’은 법적 절차인 ‘심사 과정’에 가지도 못하고 반려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외교부가 사전에 내놓은 조건이란 <1일 4명 이내, 3일 이내, 한국 임시대사관이 있는 체르니우치 지역>이라는 제한이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언론사가 한 달 이상 가장 중요한 뉴스로 보도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한국 언론사는 현장에서 제대로 취재해 보도하는 길이 막힌 것이다.
안녕하세요. 외교부 재외국민안전과입니다. 귀하께서 3.25.(금) 접수하신 아래 예외적 여권사용 등 허가 신청 건에 대하여 안내 드립니다. 이번에 신청하신 내용(체르니우치 이외에 르비우 포함, 4.1-4.30간 방문)의 경우 허가 검토 대상을 벗어나는 것으로서, 접수 처리할 수 없음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예외적 여권 사용 신청에 대한 외교부의 거절 회신 중> |
‘예외적 여권 사용’이라는 허가권을 쥔 외교부가 법률이나 시행령의 취지보다 더 엄격한 잣대로 언론의 기능을 제한하는 것은 아닌지. 과연 어떤 법적 권한을 갖고 헌법이 보장한 언론의 자유와 법률이 규정한 ‘공익적 목적의 취재 보도’를 막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외교부는 분명 ‘안전’을 고려한 조치라고 하겠지만, 도대체 하루 4명은 안전하고 10명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인지, 2박 3일이면 안전하고 한 달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인지(이번 입국 취재로 현지인 네트워크를 알게 됐고 오히려 오래 취재해 경험이 쌓이면 더 안전한 취재를 할 수 있다고 본다.) 묻지 않을 수 없다.
선진국 가운데 법적으로 ‘여행금지’ 국가를 선정하고, 여권사용을 금지 시키는 국가는 얼마나 되며,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공익적 목적의 언론 기능까지 막는 나라는 ‘독재국가’가 아니고서는 몇이나 될까?
러시아군에게 희생당한 브렌트 르노 전 NYT 기자/키이우 경찰서장 페이스북 캡처 사진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에서 러시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한 브렌트 르노 전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담아 애도를 표한다.그러나 나는 그 정도의 용기는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세계 각국의 언론사들이 평균적으로 누리는 취재의 자유는 보장받고 싶다. 한국이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했다는 대통령의 자랑이 한국의 언론 환경에서도 마찬가지이길 희망한다. 정부의 공무 수행의 방식도 선진국으로 향하길 기대한다. 한국 5.18 민주화 운동의 진실이 독일인 기자의 취재로 전세계에 알려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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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파원 리포트] 우크라이나 취재기① ‘2박 3일’의 전쟁 취재와 외교부의 후진적 언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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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22-04-06 17:39:01
KBS 파리특파원인 나는 SBS팀과 함께 ‘명예롭게도’ 한국에서 가장 먼저 우크라이나에 들어가 취재하고 방송한 기자가 됐다. 외교부 장관의 이른바 ‘예외적 여권사용 허가’ 덕분에 우크라이나 입국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쟁 취재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짧은 ‘2박 3일’의 취재 허가 기간을 마치고, 도망치듯 빠져나온 종군기자(?)라는 ‘불명예’를 함께 얻었다. 우크라이나 취재를 통해 경험한 건 전쟁 상황보다 외교부 ‘예외적 여권 사용’ 제도의 허술함과 답답함이다.
■ 경호업체와 숙박시설 계약서를 미리 제출하라고?
KBS가 최초로 우크라이나 입국 취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외교부의 온라인 사이트인 ‘영사민원 24’를 통해 ‘예외적 여권 사용’ 신청을 가장 먼저 접수했기 때문이다. 위에 발췌한 것처럼 대한민국 법령은 콕 집어서 ‘공익을 위한 취재와 보도’의 경우 예외적 여권사용이 가능하도록 했다. 물론 외교부 장관의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KBS의 신청이 들어간 이후에 외교부는 출입기자들에게 ‘예외적 여권 사용’이 필요하면 신청하라고 공지했다. 물론 그 안에는 언론의 기능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소조항(① 3일 이내 ② 4명 이내 ③ 우크라이나 체르니우치 지역 내 ④ 외교부 출입 언론사만 가능)들이 들어 있지만.
온라인 민원신청 과정은 쉽지 않았다. 특히 해외에서 생업을 위해 남겠다는 일반 서민들은 이런 걸 과연 준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선 가장 큰 걸림돌은 ‘경호업체’ 계약과 ‘숙박시설’ 예약 증명서였다. 온라인 사이트에는 이게 없으면 서류 접수가 불가할 수 있다는 경고(?) 문구도 있다.
우크라이나도 처음 가보는 데 이건 ‘뭥미’? (전쟁 중인 나라에서 경호 능력이 있는 사람이면 빨리 총 들고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한국인은 안 될테고 그럼 제3국의 경호업체를 섭외해야 하는 건가?) 첫 번째 좌절이었다.
그래도 취재는 해야 하니까 일단 방송사가 해외출장을 갈 때 도움을 주는 코디네이터(안내 및 통역)의 이름과 사업체명을 경호업체로 등록할 수밖에 없었다. 계약서는 만들지 못했지만 필요하면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다음엔 숙박업소. 피란민으로 포화상태가 된 체르니우치 지역에 숙박업소는 남아 있지 않다. 게다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숙박 예약사이트들에도 이 지역의 숙박 예약은 불가능이다. (전쟁 취재하러 가는 기자가 방이 없으면 차량에서라도 자면 될 일이지 왜 이런 걸 미리 보내라는 거야?)
허위 문서를 보낼 수는 없어 구글에서 찾은 그 지역 호텔명과 주소를 적어 보냈다. 그런데 전쟁 중인 나라에서 이런 걸 사전에 다 준비하라는 건 상식적인가.
경호업체나 숙박업소를 사전에 예약하라던 외교부가 최종적 입국 허가를 통보한 건 18일 새벽, 즉 입국 예정 당일이었다. 그것도 2박 3일.
좀 더 여유 있게 알려줬다면 오히려 현지인 안내인이 섭외되고 난 후 이것저것 사전에 필요한 일들을 처리할 수 있었을 텐데. 외교부는 입국해야 할 당일에서야 최종 입국허가를 내줬다. (그렇지, 갑질이란 이런 거야! 전쟁 중인 나라에 입국해야 할 사정이 있는 사람은 둘째고 칼자루 쥔 공무원의 시간표에 맞춰야 하는 게 대한민국이지.)
이번 일을 계기로 여권법과 시행령, 시행규칙을 들여다 봤지만, 경호업체나 숙박 계약 같은 내용이 필수라는 조항은 없다. 과연 외교부 재외국민안전과가 무슨 근거로 그런 걸 요구해 사전 취재를 하기도 바쁜 기자를 혼란의 도가니 속으로 빠지게 한 건지 묻고 싶다.
■ 전쟁터 '2박 3일'...그것은 취재인가 견학인가!...외교부 처음 제안은 '1박 2일'
루마니아 접경에서 취재활동을 하면서 우크라이나 입국을 위한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기다리던 중에 본사 외교부 출입기자에게 연락이 왔다.
외교부는 ‘언론사 각 2명이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안전한 곳, 그래서 한국의 임시대사관이 피란 온 체르니우치 지역을, 2일 동안 취재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나는 취재할 시간의 절대적인 부족, 한국과의 시차 문제, 생방송을 하고 나면 오후에나 취재가 가능하다는 불만을 제기하고 나서야 취재 허가 기간은 2박 3일로 하루 늘어났다. 이후 다른 언론사들도 모두 2박 3일의 취재만이 허용됐다.
외교부 직원들은 이번 전쟁의 의미와 파장을 내부에 보고할 때 2박 3일 파악해서 보고서 쓰냐고 묻고 싶었다.
이번 전쟁은 NATO의 확장, 구소련 해체 후 꾸준히 내리막길이었던 러시아의 반격, 중국의 부상으로 두 지역에서의 동시에 전쟁 수행이 힘들어진 미국, 그래서 신냉전의 신호탄? 이란 얘기가 나왔다. 게다가 지정학적으로 부침이 많았던 우크라이나의 현대사는 분단된 한국에 던지는 의미도 크다.
현대사에서 의미가 매우 큰 현장을 한국 기자들에겐 2박 3일의 취재만 허용된 것이다. 그것도 전쟁과는 가장 먼 평온한 지역에서. 언론사가 신청하면 순번을 정해서 취재 하란다. (맷돌에 손잡이가 없으면 ‘어이가 없다.’라고 했던가.) 말이 막히고 숨도 막혔다. (외교부 공무원들은 보통 그렇게 일을 하나 보지?)
<3월 18일/입국 첫날 취재 일지> 08시:루마니아 호텔 출발 - 09시:국경 검문소 1시간 만에 통과 - 10시:우크라이나 안내인 만남 이동 - 11시: 방송송출용 유심칩 구입 및 테스트 - 12시: 생방송 장소 섭외 및 주변 스케치 촬영 - 14시: 피란민 지원센터 취재 - 15시: 구호품 지원센터 취재 - 17시: 난민 숙소로 변한 학교 및 피란민 취재 - 18시: 저녁 식사 및 밤거리 스케치 촬영 - 20시: 체르니우치 주민 주택 빌려 쓰는 피란민 가족 취재-21시: 숙소 도착 - 22시: 통행금지 발효. |
입국 허가 첫날의 취재 일지다. 남이 보면 정말 열심히 취재했네? 할 수도 있겠지만, 언론 동업자 또는 나 스스로 볼 땐 ‘제대로 취재한 건 하나도 없네!’라는 증거기도 하다. 그나마 나머지 이틀은 <9시 뉴스> 시간인 오후 3시까지 방송을 하고, 해질 때까지 몇 군데를 더 취재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특히 학교에서 만난 한 피란민 여성은 인터뷰를 하다가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말이 통하는 우크라이나인 통역을 붙잡고 전쟁의 아픔을 토로했다. 나는 그 상황을 잠시 빠져나와 다른 시설과 피란민들을 촬영했다. 그런데도 통역사와 피란민의 대화는 끝나지 않았다. 불과 5분? 나는 통역에게 시간이 없으니 빨리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한다고 말하고 학교를 빠져나와야 했다.
취재를 하러 간 건지, 방송에서 ‘나 우크라이나에 들어왔어’라고 증명사진이라도 찍으러 들어온 건지 분간이 안 됐다.
그러나 강대국 러시아와 전쟁 중인 약소국 우크라이나의 통역사와 운전사는 우크라이나 편(?)이 되어준 ‘한국 기자’의 말도 안 되는 하루 일정을 정말 필사적으로 도왔다.
2박 3일의 널뛰기 취재 후 도망치듯 우크라이나를 빠져나오는 나는 그 속에서 살고 있는 그들을 보기가 너무 미안했고, 어이없는 ‘한국 정부의 여권 허가제도’를 설명하면서 창피함을 모면하고자 했다. 대신 꼭 다시 돌아와 취재를 더 하겠노라고 약속했다.
■ 다시 도전한 우크라이나 취재 신청...외교부, ‘접수 처리할 수 없음’
프랑스 파리로 돌아온 뒤 예외적 여권사용 다시 신청했다. 장소는 지난번 들어갔던 체르니우치와 전 세계 언론인들이 모여 있는 리비우. 취재기간은 한 달(KBS 2팀이 교대로 취재). 그러나 신청 1주일 만에 돌아온 외교부의 답변은 ‘사전에 공지한 조건을 벗어나서 접수 처리할 수 없다’였다.
외교부에 확인해 봐야 하겠지만 ‘접수 처리를 할 수 없음’은 법적 절차인 ‘심사 과정’에 가지도 못하고 반려했다는 뜻으로 읽힌다.
외교부가 사전에 내놓은 조건이란 <1일 4명 이내, 3일 이내, 한국 임시대사관이 있는 체르니우치 지역>이라는 제한이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언론사가 한 달 이상 가장 중요한 뉴스로 보도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한국 언론사는 현장에서 제대로 취재해 보도하는 길이 막힌 것이다.
안녕하세요. 외교부 재외국민안전과입니다. 귀하께서 3.25.(금) 접수하신 아래 예외적 여권사용 등 허가 신청 건에 대하여 안내 드립니다. 이번에 신청하신 내용(체르니우치 이외에 르비우 포함, 4.1-4.30간 방문)의 경우 허가 검토 대상을 벗어나는 것으로서, 접수 처리할 수 없음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예외적 여권 사용 신청에 대한 외교부의 거절 회신 중> |
‘예외적 여권 사용’이라는 허가권을 쥔 외교부가 법률이나 시행령의 취지보다 더 엄격한 잣대로 언론의 기능을 제한하는 것은 아닌지. 과연 어떤 법적 권한을 갖고 헌법이 보장한 언론의 자유와 법률이 규정한 ‘공익적 목적의 취재 보도’를 막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외교부는 분명 ‘안전’을 고려한 조치라고 하겠지만, 도대체 하루 4명은 안전하고 10명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인지, 2박 3일이면 안전하고 한 달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인지(이번 입국 취재로 현지인 네트워크를 알게 됐고 오히려 오래 취재해 경험이 쌓이면 더 안전한 취재를 할 수 있다고 본다.) 묻지 않을 수 없다.
선진국 가운데 법적으로 ‘여행금지’ 국가를 선정하고, 여권사용을 금지 시키는 국가는 얼마나 되며,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공익적 목적의 언론 기능까지 막는 나라는 ‘독재국가’가 아니고서는 몇이나 될까?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에서 러시아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한 브렌트 르노 전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담아 애도를 표한다.
그러나 나는 그 정도의 용기는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세계 각국의 언론사들이 평균적으로 누리는 취재의 자유는 보장받고 싶다. 한국이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했다는 대통령의 자랑이 한국의 언론 환경에서도 마찬가지이길 희망한다. 정부의 공무 수행의 방식도 선진국으로 향하길 기대한다. 한국 5.18 민주화 운동의 진실이 독일인 기자의 취재로 전세계에 알려진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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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원중 기자 io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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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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