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년 남·북한 유엔 가입 외교전…“동시 가입 이후 북한은 패자의식”

입력 2022.04.15 (17:50) 수정 2022.04.1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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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9월 17일 남한과 북한은 유엔에 함께 가입합니다.

우리나는 1948년 12월 유엔 총회 결의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인정받았고, 6.25 전쟁 당시에는 유엔군도 파병됐지만, 막상 이때까지 40년 넘게 유엔에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하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가진 중국과 소련의 반대였는데, 1991년 당시 최고의 외교적 성과로 꼽히는 유엔 가입을 둘러싼 외교전을 엿볼 수 있는 외교문서들이 공개됐습니다.

■ 한-소련 수교로 유엔 가입 한발 다가서…소련 통해 중국 설득 노력도

1990년 9월 우리나라는 구소련과 정식 수교관계를 맺으면서 유엔 가입에 한발 다가섭니다.

소련은 당초 남한과 북한이 각각 유엔에 가입하는 것은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것이라는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며, 우리나라의 유엔 가입을 반대해왔습니다.

하지만 1990년 우리나라와 정식 수교관계를 체결한 이후에는 입장이 바뀝니다.

외무부에서 주소련대사관에 보낸 전문(1991년 1월 15일)외무부에서 주소련대사관에 보낸 전문(1991년 1월 15일)

1991년 1월 정부가 제1차 한·소련 정책협의회를 가진 뒤 그 결과를 정리해 주소련대사관에 공유한 전문을 보면, 소련은 앞으로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지지하고, 남한 단독 가입도 반대하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북한에 더이상 신무기와 공격용 무기의 부품도 공급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덧붙였습니다.

한·소련 관계 진전으로 유엔 가입 가능성이 높아지자, 우리나라는 소련을 통해 중국과 북한의 입장을 바꾸려는 시도도 합니다.

이상옥 당시 외무부 장관은 1991년 4월에 한국을 찾은 로가초프 소련 외무차관을 만나 “소련이 북한에 대해 유엔 가입 문제에서 현실감각을 가질 수 있도록 설득해 주기 바란다”고 요청합니다.

이에 로가초프 차관은 “대북한 설득은 소련으로서도 매우 하기 어려운 과제”라고 어려움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소련 외에도 중국과 고위급 교류 계획이 있는 국가들을 찾아 정부 입장을 전달하기 위한 외교전을 펼칩니다.

외무부에서 동남아 공관에 보낸 전문(1991년 3월 15일)외무부에서 동남아 공관에 보낸 전문(1991년 3월 15일)

91년 6월 양상곤 중국 국가주석이 태국을 방문했는데, 당시 정부는 동남아시아 공관에 전문을 보내 양상곤 주석이 어느나라를 방문할 것인지 파악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주태국 대사를 통해서는 아난드 태국 수상에게 중국이 한국의 유엔 가입을 지지할 수 있도록 설득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 북한도 외교전…“남·북한이 하나의 의석으로 가입해야”

북한은 당시 남한과 북한이 각각 유엔에 가입하는 것에 반대하고, 남북한이 하나의 의석으로 가입할 것을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남한과 북한이 6개월씩 번갈아가며 회원국 지위를 맡자는 제안이었는데, 우리로선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지만 북한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외교전을 펼쳤습니다.

주노르웨이 대사가 보낸 전문(1991년 2월 28일)주노르웨이 대사가 보낸 전문(1991년 2월 28일)

주노르웨이 대사는 1991년 2월 27일 노르웨이 외무부 사무차관을 만났는데, “북한대사가 찾아와 유엔 문제에 대해 설명하는 기회가 있었다”고 전했고, 주예멘대사도 “최인섭 주예멘 북한대사가 예멘 외무성 관리들을 관저 만찬에 초청해 북한의 유엔 단일 의석 가입안을 설명했다”는 예멘외무성 당국자의 전언을 보고했습니다.

1991년 3월 14일에는 주리비아대사관이 북한 김영남 부총리 겸 외교부장이 3월 4일에서 7일까지 리비아를 방문해, 한국의 단독 가입에 반대하는 북한의 입장을 유엔과 비동맹회의에서 지지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보고했습니다.

하지만 남북한 동시 가입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가 높아지자, 북한은 그동안의 주장을 철회하고 우리나라보다 한달 빠른 7월에 유엔에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고, 9월 17일 제46차 유엔총회에서 남북한은 159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가입이 승인됩니다.

UNCTAD 77그룹 각료회의 참가 보고서(1991년 9월 16일)UNCTAD 77그룹 각료회의 참가 보고서(1991년 9월 16일)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은 당시 우리나라의 외교적 성과로 꼽힙니다.

유엔 가입이 사실상 확정된 9월 7일부터 12일까지 평양에서 UNCTAD 77그룹 아시아지역 각료회의가 개최됐는데, 우리 정부 대표단도 참석했습니다.

당시 대표단은 방북 이후 결과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UN 동시 가입 대해 여전히 패자의식을 갖고 있다고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 외교부, 30년 지나 비밀해제된 외교문서 40만 5천쪽 공개

외교부가 오늘(15일) 30년이 지나 비밀해제돼 공개한 외교문서는 모두 2466권, 40만 5천 쪽입니다.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위한 정부의 노력과, 이와 관련된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46차 유엔총회 참석, 미국·소련 등 주요국 순방, 1991년 걸프전 파병 결정 관련 내용 등이 담겨 있습니다.

1990년대 초 우리나라의 인권 상황에 대해 다른 나라에서 문제를 제기했던 내용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1967년 발효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 SOFA 관련 문서도 일부 추가로 공개됐는데, 외교부 당국자는 “1953년부터 생산된 관련 외교문서 가운데 현재까지 공개가 안 됐던 문서를 적극 심의해 현 상황에서 공개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판단된 것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 원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 열람실’에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외교부는 1994년부터 ‘외교문서 공개에 관한 규칙’에 따라, 생산된 지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는 검토를 거쳐 일반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모두 29차례에 걸쳐 3만2천 5백여 권, 463만 여쪽의 외교문서가 공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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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1년 남·북한 유엔 가입 외교전…“동시 가입 이후 북한은 패자의식”
    • 입력 2022-04-15 17:50:44
    • 수정2022-04-15 20:01:59
    취재K
1991년 9월 17일 남한과 북한은 유엔에 함께 가입합니다.

우리나는 1948년 12월 유엔 총회 결의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인정받았고, 6.25 전쟁 당시에는 유엔군도 파병됐지만, 막상 이때까지 40년 넘게 유엔에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하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유엔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가진 중국과 소련의 반대였는데, 1991년 당시 최고의 외교적 성과로 꼽히는 유엔 가입을 둘러싼 외교전을 엿볼 수 있는 외교문서들이 공개됐습니다.

■ 한-소련 수교로 유엔 가입 한발 다가서…소련 통해 중국 설득 노력도

1990년 9월 우리나라는 구소련과 정식 수교관계를 맺으면서 유엔 가입에 한발 다가섭니다.

소련은 당초 남한과 북한이 각각 유엔에 가입하는 것은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것이라는 북한의 주장에 동조하며, 우리나라의 유엔 가입을 반대해왔습니다.

하지만 1990년 우리나라와 정식 수교관계를 체결한 이후에는 입장이 바뀝니다.

외무부에서 주소련대사관에 보낸 전문(1991년 1월 15일)
1991년 1월 정부가 제1차 한·소련 정책협의회를 가진 뒤 그 결과를 정리해 주소련대사관에 공유한 전문을 보면, 소련은 앞으로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지지하고, 남한 단독 가입도 반대하지 않기로 약속했습니다.

북한에 더이상 신무기와 공격용 무기의 부품도 공급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덧붙였습니다.

한·소련 관계 진전으로 유엔 가입 가능성이 높아지자, 우리나라는 소련을 통해 중국과 북한의 입장을 바꾸려는 시도도 합니다.

이상옥 당시 외무부 장관은 1991년 4월에 한국을 찾은 로가초프 소련 외무차관을 만나 “소련이 북한에 대해 유엔 가입 문제에서 현실감각을 가질 수 있도록 설득해 주기 바란다”고 요청합니다.

이에 로가초프 차관은 “대북한 설득은 소련으로서도 매우 하기 어려운 과제”라고 어려움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소련 외에도 중국과 고위급 교류 계획이 있는 국가들을 찾아 정부 입장을 전달하기 위한 외교전을 펼칩니다.

외무부에서 동남아 공관에 보낸 전문(1991년 3월 15일)
91년 6월 양상곤 중국 국가주석이 태국을 방문했는데, 당시 정부는 동남아시아 공관에 전문을 보내 양상곤 주석이 어느나라를 방문할 것인지 파악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주태국 대사를 통해서는 아난드 태국 수상에게 중국이 한국의 유엔 가입을 지지할 수 있도록 설득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 북한도 외교전…“남·북한이 하나의 의석으로 가입해야”

북한은 당시 남한과 북한이 각각 유엔에 가입하는 것에 반대하고, 남북한이 하나의 의석으로 가입할 것을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남한과 북한이 6개월씩 번갈아가며 회원국 지위를 맡자는 제안이었는데, 우리로선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지만 북한은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외교전을 펼쳤습니다.

주노르웨이 대사가 보낸 전문(1991년 2월 28일)
주노르웨이 대사는 1991년 2월 27일 노르웨이 외무부 사무차관을 만났는데, “북한대사가 찾아와 유엔 문제에 대해 설명하는 기회가 있었다”고 전했고, 주예멘대사도 “최인섭 주예멘 북한대사가 예멘 외무성 관리들을 관저 만찬에 초청해 북한의 유엔 단일 의석 가입안을 설명했다”는 예멘외무성 당국자의 전언을 보고했습니다.

1991년 3월 14일에는 주리비아대사관이 북한 김영남 부총리 겸 외교부장이 3월 4일에서 7일까지 리비아를 방문해, 한국의 단독 가입에 반대하는 북한의 입장을 유엔과 비동맹회의에서 지지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보고했습니다.

하지만 남북한 동시 가입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가 높아지자, 북한은 그동안의 주장을 철회하고 우리나라보다 한달 빠른 7월에 유엔에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고, 9월 17일 제46차 유엔총회에서 남북한은 159개 회원국 만장일치로 가입이 승인됩니다.

UNCTAD 77그룹 각료회의 참가 보고서(1991년 9월 16일)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은 당시 우리나라의 외교적 성과로 꼽힙니다.

유엔 가입이 사실상 확정된 9월 7일부터 12일까지 평양에서 UNCTAD 77그룹 아시아지역 각료회의가 개최됐는데, 우리 정부 대표단도 참석했습니다.

당시 대표단은 방북 이후 결과 보고서를 통해, 북한이 UN 동시 가입 대해 여전히 패자의식을 갖고 있다고 보고하기도 했습니다.

■ 외교부, 30년 지나 비밀해제된 외교문서 40만 5천쪽 공개

외교부가 오늘(15일) 30년이 지나 비밀해제돼 공개한 외교문서는 모두 2466권, 40만 5천 쪽입니다.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을 위한 정부의 노력과, 이와 관련된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46차 유엔총회 참석, 미국·소련 등 주요국 순방, 1991년 걸프전 파병 결정 관련 내용 등이 담겨 있습니다.

1990년대 초 우리나라의 인권 상황에 대해 다른 나라에서 문제를 제기했던 내용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1967년 발효된 한미 주둔군지위협정, SOFA 관련 문서도 일부 추가로 공개됐는데, 외교부 당국자는 “1953년부터 생산된 관련 외교문서 가운데 현재까지 공개가 안 됐던 문서를 적극 심의해 현 상황에서 공개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판단된 것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 원문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 열람실’에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외교부는 1994년부터 ‘외교문서 공개에 관한 규칙’에 따라, 생산된 지 30년이 지난 외교문서는 검토를 거쳐 일반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모두 29차례에 걸쳐 3만2천 5백여 권, 463만 여쪽의 외교문서가 공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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