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대선 D-2…마르코스가 돌아왔다

입력 2022.05.07 (21:55) 수정 2022.05.08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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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86년,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은 독재와 부정축재로 분노한 시민들에게 쫓겨 미국으로 망명했죠.

우리는 그의 부인 이멜다여사가 남기고 간 수천 켤레 구두로 이 사건을 기억하는데요.

그런데 마르코스 부부의 아들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주니어'가 모레(9일) 치러지는 필리핀 대선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마닐라 현지에서 김원장 특파원 연결합니다.

지금 유세현장에 있는 거죠?

마르코스 주니어의 당선이 유력하다고요?

[기자]

네, 마지막 유세가 열리고 있습니다.

우리처럼 이곳 필리핀도 선거 전날은 유세가 없습니다.

마르코스 주니어 후보를 지지하는 수만 명의 시민들이 이곳 마닐라베이를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마르코스 주니어, 이곳에서는 '봉봉 마르코스'라고 부르는데, 마지막 여론조사에서도 2위 후보를 두 배 이상 크게 앞지르고 있습니다.

당선이 매우 유력해 보입니다.

[앵커]

쫓겨난 독재자의 아들에서 이제 다시 아버지를 이어 필리핀 대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요.

필리핀 국민들이 다시 마르코스 주니어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요?

[기자]

매우 친근한 이미지입니다.

선거운동도 거리 유세나 TV 토론보다 주로 SNS로 했습니다.

엘리트 정치가문에 열광하는 독특한 필리핀의 정치문화도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마르코스 주니어에 열광하는데 이들은 30여 년 전 아버지 마르코스 시대의 어두운 역사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 지난 30여 년 동안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면서 결국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옵니다.

필리핀 대선, 그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유세장으로 가는 길은 행사 서너 시간 전부터 붐볐습니다.

["마르코스(주니어)는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 유일한 후보니까요!"]

마르코스 주니어와 러닝메이트인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시민 수만 명이 타꿈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특히 10대와 20대 등 청년층이 대부분입니다.

이곳 필리핀은 40세 이하 유권자가 56%나 됩니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이들 청년층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데, 이들은 지난 30여 년 전에 필리핀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다른 후보들보다 정책이나 생각이 좋습니다. 그래서 지지합니다."]

기성 세대들도 오랜 경기 침체에 지쳤습니다.

차라리 그 시절이 살기 좋았다고 말합니다.

["아버지 마르코스가 과거 뭘 했는지는 벌써 잊혀졌어요. 지금은 우리 현재에 집중해야 돼요. 그게 진보죠."]

이곳 유세장에는 마르코스 주니어를 친근하게 '봉봉 마르코스' 또는 'BBM'으로 부르는 지지자들의 거대한 함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BBM! BBM! BBM!"]

이미 98년부터 주지사와 상하원 의원을 역임하며 입지를 다져 왔고, 경제성장과 하나의 필리핀을 앞세우며 대선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사라 두테르테!"]

여기에 현 두테르테 대통령의 딸인 '사라 두테르테'가 러닝메이트 부통령으로 출마하면서 현재의 권력과 과거의 권력이 하나가 됐습니다.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나온 여론조사에서도 56%의 지지율을 보여 23%의 지지율을 보인 '레니 로브레도' 현 부통령을 두 배 이상 앞서고 있습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 "만약 우리가 모든 것을 동의하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는 결국 필리핀을 사랑한다는 것으로 뭉칠 겁니다. 우리는 필리핀을 사랑합니다."]

로레타 로잘레스 전 의원, 지난 76년 민주화시위 중 체포돼 고문과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녀는 필리핀 국민들이 집단적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말합니다.

[로레타 로잘레스/전 하원 의원 : "(마르코스 정권에 대한) 정보가 없고, 또 마르코스의 독재를 이어 가는 정권들 때문에..."]

마르코스 정권을 무너뜨린 시민혁명을 기념하는 피플 파워 기념탑.

필리핀 정부가 마르코스 전 대통령 부부에게 몰수한 재산만 최소 2조 원어치에 달합니다.

하지만 이들 가족 누구도 사법처리를 받지 않았습니다.

마르코스 대통령의 정적으로 귀국길에 암살당한 아키노 전 상원 의원이나, 죽거나 고문당한 수천 명의 시민들에 대한 진상규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사이 마르코스 가문은 더 거대한 정치 명문가로 부활했습니다.

[리차드 헤이드리안/정치평론가 : "이 현상은 지난 86년 피플 파워 혁명이 추구했던 민주적인 이상들을 전혀 제도화하지 못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정치가 한 발짝도 앞으로 가지 못하면서 60년대 일본과 비슷했던 필리핀의 국민소득은 지금은 한국의 1/10로 추락했습니다.

올해 93살의 이멜다 마르코스, 아들 마르코스 주니어의 최대 후원자로 여전히 정치 무대를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멜다 마르코스 : "만약 신께서 저에게 건강을 주신다면 저는 살아 생전에 저의 모든 것을 필리핀에 바칠 겁니다."]

가는 곳마다 현금을 나눠주거나, 또는 값비싼 보석을 직접 선물로 건네줍니다.

[이멜다 마르코스 : "이 팔찌 당신이 가지세요. 이제 당신 거예요."]

마르코스 망명 이후 30여 년.

아들은 대통령 집무실인 말라카낭궁으로 다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멜다 여사의 일상은 여전히 화려하고, 필리핀 국민들의 삶은 여전히 팍팍합니다.

마닐라에서 김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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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리핀 대선 D-2…마르코스가 돌아왔다
    • 입력 2022-05-07 21:55:48
    • 수정2022-05-08 00:37:25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앵커]

지난 86년,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은 독재와 부정축재로 분노한 시민들에게 쫓겨 미국으로 망명했죠.

우리는 그의 부인 이멜다여사가 남기고 간 수천 켤레 구두로 이 사건을 기억하는데요.

그런데 마르코스 부부의 아들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주니어'가 모레(9일) 치러지는 필리핀 대선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마닐라 현지에서 김원장 특파원 연결합니다.

지금 유세현장에 있는 거죠?

마르코스 주니어의 당선이 유력하다고요?

[기자]

네, 마지막 유세가 열리고 있습니다.

우리처럼 이곳 필리핀도 선거 전날은 유세가 없습니다.

마르코스 주니어 후보를 지지하는 수만 명의 시민들이 이곳 마닐라베이를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마르코스 주니어, 이곳에서는 '봉봉 마르코스'라고 부르는데, 마지막 여론조사에서도 2위 후보를 두 배 이상 크게 앞지르고 있습니다.

당선이 매우 유력해 보입니다.

[앵커]

쫓겨난 독재자의 아들에서 이제 다시 아버지를 이어 필리핀 대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요.

필리핀 국민들이 다시 마르코스 주니어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요?

[기자]

매우 친근한 이미지입니다.

선거운동도 거리 유세나 TV 토론보다 주로 SNS로 했습니다.

엘리트 정치가문에 열광하는 독특한 필리핀의 정치문화도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 세대들이 마르코스 주니어에 열광하는데 이들은 30여 년 전 아버지 마르코스 시대의 어두운 역사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 지난 30여 년 동안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지 못하면서 결국 과거의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옵니다.

필리핀 대선, 그 현장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유세장으로 가는 길은 행사 서너 시간 전부터 붐볐습니다.

["마르코스(주니어)는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 유일한 후보니까요!"]

마르코스 주니어와 러닝메이트인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시민 수만 명이 타꿈 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웠습니다.

특히 10대와 20대 등 청년층이 대부분입니다.

이곳 필리핀은 40세 이하 유권자가 56%나 됩니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이들 청년층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는데, 이들은 지난 30여 년 전에 필리핀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다른 후보들보다 정책이나 생각이 좋습니다. 그래서 지지합니다."]

기성 세대들도 오랜 경기 침체에 지쳤습니다.

차라리 그 시절이 살기 좋았다고 말합니다.

["아버지 마르코스가 과거 뭘 했는지는 벌써 잊혀졌어요. 지금은 우리 현재에 집중해야 돼요. 그게 진보죠."]

이곳 유세장에는 마르코스 주니어를 친근하게 '봉봉 마르코스' 또는 'BBM'으로 부르는 지지자들의 거대한 함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BBM! BBM! BBM!"]

이미 98년부터 주지사와 상하원 의원을 역임하며 입지를 다져 왔고, 경제성장과 하나의 필리핀을 앞세우며 대선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사라 두테르테!"]

여기에 현 두테르테 대통령의 딸인 '사라 두테르테'가 러닝메이트 부통령으로 출마하면서 현재의 권력과 과거의 권력이 하나가 됐습니다.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나온 여론조사에서도 56%의 지지율을 보여 23%의 지지율을 보인 '레니 로브레도' 현 부통령을 두 배 이상 앞서고 있습니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 "만약 우리가 모든 것을 동의하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는 결국 필리핀을 사랑한다는 것으로 뭉칠 겁니다. 우리는 필리핀을 사랑합니다."]

로레타 로잘레스 전 의원, 지난 76년 민주화시위 중 체포돼 고문과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녀는 필리핀 국민들이 집단적 기억상실증에 걸렸다고 말합니다.

[로레타 로잘레스/전 하원 의원 : "(마르코스 정권에 대한) 정보가 없고, 또 마르코스의 독재를 이어 가는 정권들 때문에..."]

마르코스 정권을 무너뜨린 시민혁명을 기념하는 피플 파워 기념탑.

필리핀 정부가 마르코스 전 대통령 부부에게 몰수한 재산만 최소 2조 원어치에 달합니다.

하지만 이들 가족 누구도 사법처리를 받지 않았습니다.

마르코스 대통령의 정적으로 귀국길에 암살당한 아키노 전 상원 의원이나, 죽거나 고문당한 수천 명의 시민들에 대한 진상규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그사이 마르코스 가문은 더 거대한 정치 명문가로 부활했습니다.

[리차드 헤이드리안/정치평론가 : "이 현상은 지난 86년 피플 파워 혁명이 추구했던 민주적인 이상들을 전혀 제도화하지 못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정치가 한 발짝도 앞으로 가지 못하면서 60년대 일본과 비슷했던 필리핀의 국민소득은 지금은 한국의 1/10로 추락했습니다.

올해 93살의 이멜다 마르코스, 아들 마르코스 주니어의 최대 후원자로 여전히 정치 무대를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이멜다 마르코스 : "만약 신께서 저에게 건강을 주신다면 저는 살아 생전에 저의 모든 것을 필리핀에 바칠 겁니다."]

가는 곳마다 현금을 나눠주거나, 또는 값비싼 보석을 직접 선물로 건네줍니다.

[이멜다 마르코스 : "이 팔찌 당신이 가지세요. 이제 당신 거예요."]

마르코스 망명 이후 30여 년.

아들은 대통령 집무실인 말라카낭궁으로 다시 돌아갈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멜다 여사의 일상은 여전히 화려하고, 필리핀 국민들의 삶은 여전히 팍팍합니다.

마닐라에서 김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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