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키나와 반환 50년…멀어지는 ‘평화의 섬’

입력 2022.05.14 (22:33) 수정 2022.05.14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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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키나와가 일제 패망 후 미국 통치 아래 있다가 다시 일본에 반환된지 내일(15일)이면 정확히 50년이 됩니다.

반환 당시 전쟁의 비극을 이겨내고 평화의 섬이 되길 갈망했던 주민들의 소망은 과연 이뤄졌을까요.

박원기 특파원이 반환 50주년을 맞은 오키나와 현지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바닥이 보일 듯 맑고 투명한 바다.

짙푸른 아열대 원시림이 어우러진 해안선.

그 한 편에 대형트럭이 쉴새 없이 흙을 나르고, 그 흙으로 굴착기가 바다를 메웁니다.

후텐마 미군 기지를 이곳 헤노코로 옮기기 위한 매립 공사입니다.

중장비가 쉴 새 없이 흙을 퍼담고 있는 저 곳이 바로 기지 건설 예정지입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크고 작은 배 30여 척에 나눠 탄 채 해상 시위에 나섰습니다.

기지 경계를 나타내는 부표를 사이에 두고, 시위대와 해상보안청 관계자 사이에 거친 신경전도 오갑니다.

["신속히 구역 밖으로 물러나 주세요!"]

시위 참가자들은 환경 파괴와 소음 피해도 큰 문제지만, 평화의 섬 오키나와에 대규모 미군 기지가 자리를 옮겨 새로 들어선다는 점에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니시카와 마사오/시위 참가자 : "여기가 (기지로) 만들어지면 수백년 간 유지될 것입니다. 앞으로 오키나와가 어떻게 될 지…."]

1996년 미일 정부가 반환에 합의한지 26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 자리인 후텐마 기지로 가봤습니다.

주택가로 둘러쌓인 드넓은 기지 한가운데서 미군의 수직 이착륙기 '오스프리'가 굉음을 내며 뜨고 내립니다.

바로 옆 초등학교는 체육시간마다 마음을 졸입니다.

5년 전 학생 60여명이 모여 있던 운동장에 상공을 날던 미군 헬기 부품이 떨어졌던 그 학교입니다.

[고치 하지메/오키나와교원조합 위원장 : "우리에겐 생활의 문제입니다. 일본 헌법으로 보장받아야할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소음 피해는 말할 것도 없어, 피해 소송인단 모집에 6천 명 가까이 신청했습니다.

후텐마에서 헤노코로 기지를 옮긴들 달라지는 건 없다고 이들은 말합니다.

[아라가키 세이류/'후텐마미군기지 폭음을 없애는 소송단' 단장 : "지금도 후텐마에서 뜬 헬기와 오스프리는 헤노코 등까지 날아가서 훈련하고 저녁에 돌아옵니다. 오키나와현민에게 주는 위험성은 변함없어요."]

하지만 미중 대립의 최전선에서 중국의 해양진출을 견제하기 위해선 뾰족한 방도가 없다는 게 일본 정부 입장입니다.

[마쓰노 히로카즈/일본 관방장관 : "미일동맹의 억지력 유지와 위험성 제거를 생각해보면 (후텐마기지의) 헤노코 이전은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기지 문제로 몸살을 앓는 건 오키나와 본섬뿐만이 아닙니다.

비행기로 한 시간을 더 가야 하는 미야코 섬.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이 곳에 2년 전 육상자위대 미사일 부대가 들어섰습니다.

섬 한가운데 미사일부대가 창설되면서 자위대원 수는 700명대로 늘었고 유도탄이나 박격포 탄약을 보관할 탄약고도 하나 둘 늘어나고 있습니다.

섬이 점점 요새로 변해가는 모습에 주민들의 마음은 착잡합니다.

[시미즈 하야코/'미사일기지반대' 미야코섬 주민회 사무국장 : "평화롭고 평온한 삶이 위협받는다는 것이 (문제가) 가장 큽니다. 이런 군사시설이 갖춰져 유사시엔 공격 받는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1,200㎞에 걸친 남서부 도서에 미사일 부대, 전자전 부대를 속속 배치해 나가고 있습니다.

오키나와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이 벌어진 곳입니다.

주민 12만 명을 포함해 20만 명 넘는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일본 정부를 향해 오키나와의 아픈 역사는 안중에도 없냐는 비판이 그래서 나옵니다.

[이시가와 겐페이/반환 당시 오키나와 행정주석(지사)의 비서 : "(희생자 20만여명은) 한반도에서 강제연행된 사람까지 포함된 건데요. 어디서 얼마나 희생됐는지 (반환 당시 일본 정부가) 조사하기로 약속해 놓고 지금까지도 안 하고 있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낮은 소득과 교육 수준도 앞날에 시름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전국 평균과 비교하면 소득은 70%대에 그치고 있고, 대학진학률도 16%포인트 저조합니다.

고교중퇴율은 전국 최고 수준입니다.

빈곤 가정 자녀의 학업 포기를 막기 위해 지역마다 비영리단체들이 무료 교습이나 식사를 제공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따릅니다.

[호소다 미쓰오/아동지원단체 대표 : "실업자는 점점 늘고, 가게도 문을 닫는 곳이 많아졌습니다. 도움 요청이 오지만 충분히 응해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본토와 오키나와의 격차를 줄이겠다는 게 50년 전 일본 정부의 목표였는데, 기지 문제가 꼬여가며 해결의 실마리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마에도마리 히로모리/오키나와국제대 교수 : "기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50년이 지났어도 같은 숙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키나와의 반환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민들의 생존권과 국가 안보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오키나와의 현실.

오키나와가 반환된지 반세기란 세월이 흘렀지만 이곳 사람들이 희망하는 '본토 수준의 회복'은 과연 언제 될 수 있을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오키나와에서 박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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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키나와 반환 50년…멀어지는 ‘평화의 섬’
    • 입력 2022-05-14 22:33:50
    • 수정2022-05-14 22: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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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키나와가 일제 패망 후 미국 통치 아래 있다가 다시 일본에 반환된지 내일(15일)이면 정확히 50년이 됩니다.

반환 당시 전쟁의 비극을 이겨내고 평화의 섬이 되길 갈망했던 주민들의 소망은 과연 이뤄졌을까요.

박원기 특파원이 반환 50주년을 맞은 오키나와 현지를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바닥이 보일 듯 맑고 투명한 바다.

짙푸른 아열대 원시림이 어우러진 해안선.

그 한 편에 대형트럭이 쉴새 없이 흙을 나르고, 그 흙으로 굴착기가 바다를 메웁니다.

후텐마 미군 기지를 이곳 헤노코로 옮기기 위한 매립 공사입니다.

중장비가 쉴 새 없이 흙을 퍼담고 있는 저 곳이 바로 기지 건설 예정지입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크고 작은 배 30여 척에 나눠 탄 채 해상 시위에 나섰습니다.

기지 경계를 나타내는 부표를 사이에 두고, 시위대와 해상보안청 관계자 사이에 거친 신경전도 오갑니다.

["신속히 구역 밖으로 물러나 주세요!"]

시위 참가자들은 환경 파괴와 소음 피해도 큰 문제지만, 평화의 섬 오키나와에 대규모 미군 기지가 자리를 옮겨 새로 들어선다는 점에 크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니시카와 마사오/시위 참가자 : "여기가 (기지로) 만들어지면 수백년 간 유지될 것입니다. 앞으로 오키나와가 어떻게 될 지…."]

1996년 미일 정부가 반환에 합의한지 26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그 자리인 후텐마 기지로 가봤습니다.

주택가로 둘러쌓인 드넓은 기지 한가운데서 미군의 수직 이착륙기 '오스프리'가 굉음을 내며 뜨고 내립니다.

바로 옆 초등학교는 체육시간마다 마음을 졸입니다.

5년 전 학생 60여명이 모여 있던 운동장에 상공을 날던 미군 헬기 부품이 떨어졌던 그 학교입니다.

[고치 하지메/오키나와교원조합 위원장 : "우리에겐 생활의 문제입니다. 일본 헌법으로 보장받아야할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소음 피해는 말할 것도 없어, 피해 소송인단 모집에 6천 명 가까이 신청했습니다.

후텐마에서 헤노코로 기지를 옮긴들 달라지는 건 없다고 이들은 말합니다.

[아라가키 세이류/'후텐마미군기지 폭음을 없애는 소송단' 단장 : "지금도 후텐마에서 뜬 헬기와 오스프리는 헤노코 등까지 날아가서 훈련하고 저녁에 돌아옵니다. 오키나와현민에게 주는 위험성은 변함없어요."]

하지만 미중 대립의 최전선에서 중국의 해양진출을 견제하기 위해선 뾰족한 방도가 없다는 게 일본 정부 입장입니다.

[마쓰노 히로카즈/일본 관방장관 : "미일동맹의 억지력 유지와 위험성 제거를 생각해보면 (후텐마기지의) 헤노코 이전은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기지 문제로 몸살을 앓는 건 오키나와 본섬뿐만이 아닙니다.

비행기로 한 시간을 더 가야 하는 미야코 섬.

천혜의 자연환경을 자랑하는 이 곳에 2년 전 육상자위대 미사일 부대가 들어섰습니다.

섬 한가운데 미사일부대가 창설되면서 자위대원 수는 700명대로 늘었고 유도탄이나 박격포 탄약을 보관할 탄약고도 하나 둘 늘어나고 있습니다.

섬이 점점 요새로 변해가는 모습에 주민들의 마음은 착잡합니다.

[시미즈 하야코/'미사일기지반대' 미야코섬 주민회 사무국장 : "평화롭고 평온한 삶이 위협받는다는 것이 (문제가) 가장 큽니다. 이런 군사시설이 갖춰져 유사시엔 공격 받는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1,200㎞에 걸친 남서부 도서에 미사일 부대, 전자전 부대를 속속 배치해 나가고 있습니다.

오키나와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이 벌어진 곳입니다.

주민 12만 명을 포함해 20만 명 넘는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일본 정부를 향해 오키나와의 아픈 역사는 안중에도 없냐는 비판이 그래서 나옵니다.

[이시가와 겐페이/반환 당시 오키나와 행정주석(지사)의 비서 : "(희생자 20만여명은) 한반도에서 강제연행된 사람까지 포함된 건데요. 어디서 얼마나 희생됐는지 (반환 당시 일본 정부가) 조사하기로 약속해 놓고 지금까지도 안 하고 있습니다. 할 수 없었습니다."]

낮은 소득과 교육 수준도 앞날에 시름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전국 평균과 비교하면 소득은 70%대에 그치고 있고, 대학진학률도 16%포인트 저조합니다.

고교중퇴율은 전국 최고 수준입니다.

빈곤 가정 자녀의 학업 포기를 막기 위해 지역마다 비영리단체들이 무료 교습이나 식사를 제공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따릅니다.

[호소다 미쓰오/아동지원단체 대표 : "실업자는 점점 늘고, 가게도 문을 닫는 곳이 많아졌습니다. 도움 요청이 오지만 충분히 응해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본토와 오키나와의 격차를 줄이겠다는 게 50년 전 일본 정부의 목표였는데, 기지 문제가 꼬여가며 해결의 실마리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마에도마리 히로모리/오키나와국제대 교수 : "기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50년이 지났어도 같은 숙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키나와의 반환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민들의 생존권과 국가 안보가 첨예하게 부딪치는 오키나와의 현실.

오키나와가 반환된지 반세기란 세월이 흘렀지만 이곳 사람들이 희망하는 '본토 수준의 회복'은 과연 언제 될 수 있을지, 아득하기만 합니다.

오키나와에서 박원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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