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약 기록 삭제 지시 받았다”…간호사 면담 보고서 입수
입력 2022.05.17 (21:08)
수정 2022.05.17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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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제주대학교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숨진 13개월 유림이
제주대학교병원에서 발생한 13개월 영아 약물 과다 투약 사고와 관련해 당시 수간호사가 간호사들에게 의료 기록 삭제를 지시했다는 면담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KBS가 입수했습니다. 그동안 제기됐던 의무기록 은폐 의혹의 정황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 "'의사에게 보고 후 기록하자'며 삭제 지시"
KBS가 입수한 환자안전사고 보고서는 제주대병원이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중앙환자안전센터에 제출한 보고서로 당시 간호사들의 면담 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해당 보고서의 면담 내용을 보면, 13개월 유림이에게 기준치의 50배에 달하는 약물을 주입한 간호사 A 씨는 '수간호사의 지시로 기록을 삭제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담당 의사에게 투약 사고가 보고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고 이후 기록하자'며 수간호사가 삭제를 지시했다는 겁니다. 유림이를 담당했던 담당 간호사 B 씨도 같은 이유로 수간호사가 기록 삭제를 지시했다고 면담에서 진술했습니다. 앞서 경찰이 지난달 28일 확보한 의무기록에선 투약 사고와 관련한 기록이 수정되거나 삭제된 정황이 드러났는데, 수간호사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증언이 나온 겁니다.
하지만 수간호사는 기록 삭제와 같은 지시를 한 적이 없다며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수간호사는 투약사고를 뒤늦게 보고한 이유에 대해서는 환자 안전보다 직원에 대한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라고 보고서에 기록돼 있습니다.
■ 약물 과다 투약 삭제 정황 사실로
유림이는 3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제주대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유림이가 숨지기 하루 전인 3월 11일 오후 6시 58분 간호사가 작성한 의무기록에는 '환자가 숨을 가쁘게 쉬고, 울지 않는다'는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이후 의사가 기관지 확장과 심장 박동수 증가 등에 사용하는 약물인 '에피네프린 5mg'을 호흡기를 통해 흡입(네뷸라이저 방식)하도록 지시했지만, 간호사는 '주사기'로 투입했다고 기록돼 있었습니다.
호흡기로 주입해야 할 약물을 정맥주사로 잘못 주입하면서 결과적으로 적정량의 50배에 달하는 약물이 투입된 겁니다. 하지만 2시간 뒤 '에피네프린 5mg'을 주입했다는 내용이 기록에서 삭제됐습니다. 그리고 이튿날인 3월 12일 오후 6시 52분쯤 유림이가 사망하고, 2시간 뒤인 오후 9시 13분 이 기록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 응급처치하면서도 과다 투약 보고 안 해
약물 과다 투약 이후 유림이는 상태가 악화해 코로나 병동(42병동)에서 감염전문병동(43병동)으로 옮겨져 응급처치를 받았습니다. 수간호사는 이곳에서 담당 의사와 또 다른 소아·청소년과 교수, 간호사 등 5명과 유림이에게 응급 처치를 진행하면서도 이 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면담내용에 따르면, 수간호사는 '기관 내 삽관(intubation)을 시행하고 있어 보고하지 못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병원은 유림이가 사망한 뒤 사인을 심근염이라고 기재했습니다. 제주도 보건당국은 제주대병원의 보고를 근거로 코로나19에 걸린 영아가 숨졌다고 발표했고, 유족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이튿날 화장을 진행했습니다. 병원 측이 과다 투약 사실을 숨기고 뒤늦게 보고하면서 부검도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제주경찰청 의료·안전사고 전문 수사팀은 투약 사고 은폐 의혹을 비롯해 의료진이 정말 이 사실을 몰랐는지, 환자안전사고 보고서에 적힌 간호사들의 진술이 맞는지 등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 기본 원칙도 안 지켜
이번 투약 사고는 담당 간호사와 약물을 주입한 간호사가 달랐습니다. 약물(에피네프린)이 담겨있던 주사기에는 사고 예방을 위한 전용캡과 스티커도 부착되지 않았습니다. 투약 오류 예방을 위한 기본 원칙(5 Right)이 지켜지지 않은 겁니다. 5 Right는 정확한 환자(Right Patient), 의약품(Right Drug), 용량(Right Dose), 시간(Right Time), 투여경로(Right Route)를 말합니다.
환자안전사고 보고서에 따르면, 약물을 주입한 간호사는 보호자에게 투약에 대한 설명과 투약 후 모니터링을 하지 않았고, 담당 간호사는 과다 투약 사실을 인지하고도 환자안전사고보고시스템(EMR)에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미 지난해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이 투약 오류가 빈번하게 발생해 기본 원칙을 지켜 달라며 환자안전주의경보까지 발령했지만, 현장에선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던 겁니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은 제주대병원 투약 사고 이후 환자안전보고학습시스템 공지사항에 2018년 고지했던 '분무요법(Nebulizer Therapy) 투약 안내문'을 재차 공지하기도 했습니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이 환자안전보고학습시스템 공지사항에 올린 '분무요법(Nebulizer Therapy) 투약' 안내문
현재 경찰은 유족 측 고소에 따라 의사 2명과 간호사 9명 등 11명을 의료법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입건해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또 최근까지 두 차례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등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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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05-17 21: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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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대학교병원에서 발생한 13개월 영아 약물 과다 투약 사고와 관련해 당시 수간호사가 간호사들에게 의료 기록 삭제를 지시했다는 면담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KBS가 입수했습니다. 그동안 제기됐던 의무기록 은폐 의혹의 정황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습니다.
■ "'의사에게 보고 후 기록하자'며 삭제 지시"
KBS가 입수한 환자안전사고 보고서는 제주대병원이 의료기관평가인증원 중앙환자안전센터에 제출한 보고서로 당시 간호사들의 면담 내용이 기록돼 있습니다.
해당 보고서의 면담 내용을 보면, 13개월 유림이에게 기준치의 50배에 달하는 약물을 주입한 간호사 A 씨는 '수간호사의 지시로 기록을 삭제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담당 의사에게 투약 사고가 보고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고 이후 기록하자'며 수간호사가 삭제를 지시했다는 겁니다. 유림이를 담당했던 담당 간호사 B 씨도 같은 이유로 수간호사가 기록 삭제를 지시했다고 면담에서 진술했습니다. 앞서 경찰이 지난달 28일 확보한 의무기록에선 투약 사고와 관련한 기록이 수정되거나 삭제된 정황이 드러났는데, 수간호사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증언이 나온 겁니다.
하지만 수간호사는 기록 삭제와 같은 지시를 한 적이 없다며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수간호사는 투약사고를 뒤늦게 보고한 이유에 대해서는 환자 안전보다 직원에 대한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라고 보고서에 기록돼 있습니다.
■ 약물 과다 투약 삭제 정황 사실로
유림이는 3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제주대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유림이가 숨지기 하루 전인 3월 11일 오후 6시 58분 간호사가 작성한 의무기록에는 '환자가 숨을 가쁘게 쉬고, 울지 않는다'는 내용이 적혀있었습니다. 이후 의사가 기관지 확장과 심장 박동수 증가 등에 사용하는 약물인 '에피네프린 5mg'을 호흡기를 통해 흡입(네뷸라이저 방식)하도록 지시했지만, 간호사는 '주사기'로 투입했다고 기록돼 있었습니다.
호흡기로 주입해야 할 약물을 정맥주사로 잘못 주입하면서 결과적으로 적정량의 50배에 달하는 약물이 투입된 겁니다. 하지만 2시간 뒤 '에피네프린 5mg'을 주입했다는 내용이 기록에서 삭제됐습니다. 그리고 이튿날인 3월 12일 오후 6시 52분쯤 유림이가 사망하고, 2시간 뒤인 오후 9시 13분 이 기록 자체가 사라졌습니다.
■ 응급처치하면서도 과다 투약 보고 안 해
약물 과다 투약 이후 유림이는 상태가 악화해 코로나 병동(42병동)에서 감염전문병동(43병동)으로 옮겨져 응급처치를 받았습니다. 수간호사는 이곳에서 담당 의사와 또 다른 소아·청소년과 교수, 간호사 등 5명과 유림이에게 응급 처치를 진행하면서도 이 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면담내용에 따르면, 수간호사는 '기관 내 삽관(intubation)을 시행하고 있어 보고하지 못했다'고 진술했습니다.
병원은 유림이가 사망한 뒤 사인을 심근염이라고 기재했습니다. 제주도 보건당국은 제주대병원의 보고를 근거로 코로나19에 걸린 영아가 숨졌다고 발표했고, 유족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이튿날 화장을 진행했습니다. 병원 측이 과다 투약 사실을 숨기고 뒤늦게 보고하면서 부검도 진행하지 못했습니다.
제주경찰청 의료·안전사고 전문 수사팀은 투약 사고 은폐 의혹을 비롯해 의료진이 정말 이 사실을 몰랐는지, 환자안전사고 보고서에 적힌 간호사들의 진술이 맞는지 등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 기본 원칙도 안 지켜
이번 투약 사고는 담당 간호사와 약물을 주입한 간호사가 달랐습니다. 약물(에피네프린)이 담겨있던 주사기에는 사고 예방을 위한 전용캡과 스티커도 부착되지 않았습니다. 투약 오류 예방을 위한 기본 원칙(5 Right)이 지켜지지 않은 겁니다. 5 Right는 정확한 환자(Right Patient), 의약품(Right Drug), 용량(Right Dose), 시간(Right Time), 투여경로(Right Route)를 말합니다.
환자안전사고 보고서에 따르면, 약물을 주입한 간호사는 보호자에게 투약에 대한 설명과 투약 후 모니터링을 하지 않았고, 담당 간호사는 과다 투약 사실을 인지하고도 환자안전사고보고시스템(EMR)에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미 지난해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이 투약 오류가 빈번하게 발생해 기본 원칙을 지켜 달라며 환자안전주의경보까지 발령했지만, 현장에선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던 겁니다.
의료기관평가인증원은 제주대병원 투약 사고 이후 환자안전보고학습시스템 공지사항에 2018년 고지했던 '분무요법(Nebulizer Therapy) 투약 안내문'을 재차 공지하기도 했습니다.
현재 경찰은 유족 측 고소에 따라 의사 2명과 간호사 9명 등 11명을 의료법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등으로 입건해 수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또 최근까지 두 차례 압수수색을 진행하는 등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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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준영 기자 mj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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