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북 피해자 가족 등이 오늘(31일) ‘북한 강제실종 범죄 책임규명 촉구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고 있다.
■ 주한 대사들 "한국 '유엔 강제실종 협약' 가입해야"…정부 "국내 절차 진행 중"
북한인권시민연합과 서울 유엔인권사무소 등이 납북 피해자 현황을 보고하고 북한의 책임 규명을 요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오늘(31일)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프랑스와 아르헨티나, 네덜란드, 영국 등 4개국 주한 대사들이 참석했습니다. 이들은 납북 피해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한국의 '유엔 강제실종 협약(강제실종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협약)' 가입과 국회 비준을 촉구했습니다. 주한 외국대사들이 납북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나선 건 이례적입니다.
앞서 유엔은 2006년 국가에 의해 체포, 구금되는 것을 뜻하는 '강제실종'에 대응하기 위해 협약을 만들었습니다. 현재 68개국이 참여했지만, 우리나라는 빠져 있습니다. 당초 정부는 2018년에 가입을 추진했지만, 국내법상 강제 실종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법률이 없는 점 등을 들어 아직까지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외교부는 법 개정과 함께 협약 가입을 위한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현재 주무 부처인 법무부와 긴밀한 협력 하에 강제실종방지 협약 가입 관련 국내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어제(30일) '강제실종범죄 처벌, 강제실종의 방지 및 피해자 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33개 국내외 시민단체가 한국의 ‘유엔 강제실종 협약’ 가입을 촉구하는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 돌아오지 못한 납북자 516명…"노예처럼 생활"
주한 외국대사들이 납북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나선 건, 납북 피해자들의 어려운 처지 때문입니다. 이지윤 북한인권시민연합 팀장은 "한국과 일본에서 북한으로 강제 납치된 피해자들은 남한과 관련 있다는 이유만으로 피라미드 형식의 계급 사회인 북한에서 최하층 계급으로 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광산 지역에 거주하면서 노예처럼 노동착취를 당하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기자회견에서 관련 단체들이 공개한 현황을 보면, 6.25 전쟁 이후에도 북한에 강제로 끌려간 한국인 납북자는 약 4천여 명입니다. 이 가운데 516명이 아직까지 북한에 억류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최성용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대표에 따르면, 북한에 억류된 516명 중에는 어선원이 457명으로 가장 많습니다. 군·경이 30명, 1969년 대한항공(KAL) 여객기 납치 당시 억류된 사람이 11명, 그 외 학생과 목사도 납북자에 포함돼 있습니다. 최 대표는 평양시민 명부를 확인해 조사한 결과, 평양에 납북자 21명이 남아 있다고 밝혔습니다.
■ 북한 상대로 승소해도 배상받기는 어려워
납북 피해자의 고통도 크지만, 남아있는 유족·가족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납북 피해와 관련해 북한 당국에 배상을 청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실제 배상까지는 갈 길이 멉니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이 납북 피해자 유족 12명을 대리해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지난 20일 법원은 북한이 1인당 최대 3천만 원을 피해자 유족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처럼 2020년 이후 한국에서는 관련 소송의 승소 추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북한이 실제 배상에 응한 경우는 아직 없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에 음악과 그림 등의 저작권료를 지급하는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을 상대로 강제집행을 신청하는 등 간접적인 방법으로 배상을 받으려는 시도도 있지만, 이 역시 녹록지 않습니다.
국군 포로를 대리해 승소했던 엄태섭 법무법인 오킴스 변호사는 "강제집행을 신청해 인용됐지만 집행을 거부당했고, 추심금 청구 소송 1심에서도 패소했다"며 "북한 정부의 돈이 아니라 음악 등을 소유한 방송사 등에 지급할 돈이기 때문에 압류할 수 없다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역시 납북 피해를 입고 있는 일본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본인 납북 피해자와 가족을 대리해 소송 중인 겐지 후쿠다 일본 변호사는 공소시효 문제도 제기합니다. 일본에선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피해 사실이나 가해자의 신원을 알게 된 때부터 3년 내 청구해야 해, 소송 제기부터 쉽지 않다는 겁니다. 납북 피해자나 가족들은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경우 오랜 시간 소송에 매달려야 하고, 승소하더라도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금을 받아내기 어려운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 "정부 대책 마련해야" 33개 단체 공동 성명
납북 피해자와 가족들은 한 목소리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강철환 KAL기 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는 "방송사 PD였던 아버지가 53년이 되도록 북한에 억류돼 있지만,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납북 피해자 가족들의 노력 끝에 2010년에는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안'이 제정돼 공포되는 성과가 있었지만, 개인 보상을 유예하고 단체보상 내용만 들어가는 등 한계가 뚜렷하다는 평가입니다. 이성의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는 "10년 동안 3번에 걸쳐 법률 개정안 상정을 시도했는데 2번은 기각됐다"며, "국가적 재난이고 희생자가 많아 감당이 안 된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납북 피해자 가족단체와 국내외 시민단체 등 33개 단체는 오늘, 납북 피해자 책임 규명을 새 정부에 촉구하는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유엔 강제실종 협약' 가입·비준과 북한 정부에 우리 국민의 납북사실을 인정할 것을 촉구하고 진상규명을 요청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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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한 대사들, 납북 문제 규탄…정부 “유엔 협약 가입 추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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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05-31 21:04:43
■ 주한 대사들 "한국 '유엔 강제실종 협약' 가입해야"…정부 "국내 절차 진행 중"
북한인권시민연합과 서울 유엔인권사무소 등이 납북 피해자 현황을 보고하고 북한의 책임 규명을 요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오늘(31일) 주한 프랑스대사관에서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는 프랑스와 아르헨티나, 네덜란드, 영국 등 4개국 주한 대사들이 참석했습니다. 이들은 납북 피해에 대한 우려를 표하고, 한국의 '유엔 강제실종 협약(강제실종으로부터 모든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국제협약)' 가입과 국회 비준을 촉구했습니다. 주한 외국대사들이 납북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나선 건 이례적입니다.
앞서 유엔은 2006년 국가에 의해 체포, 구금되는 것을 뜻하는 '강제실종'에 대응하기 위해 협약을 만들었습니다. 현재 68개국이 참여했지만, 우리나라는 빠져 있습니다. 당초 정부는 2018년에 가입을 추진했지만, 국내법상 강제 실종을 불법으로 규정하는 법률이 없는 점 등을 들어 아직까지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외교부는 법 개정과 함께 협약 가입을 위한 절차를 추진하고 있다면서, "현재 주무 부처인 법무부와 긴밀한 협력 하에 강제실종방지 협약 가입 관련 국내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어제(30일) '강제실종범죄 처벌, 강제실종의 방지 및 피해자 구제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 돌아오지 못한 납북자 516명…"노예처럼 생활"
주한 외국대사들이 납북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나선 건, 납북 피해자들의 어려운 처지 때문입니다. 이지윤 북한인권시민연합 팀장은 "한국과 일본에서 북한으로 강제 납치된 피해자들은 남한과 관련 있다는 이유만으로 피라미드 형식의 계급 사회인 북한에서 최하층 계급으로 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광산 지역에 거주하면서 노예처럼 노동착취를 당하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늘 기자회견에서 관련 단체들이 공개한 현황을 보면, 6.25 전쟁 이후에도 북한에 강제로 끌려간 한국인 납북자는 약 4천여 명입니다. 이 가운데 516명이 아직까지 북한에 억류돼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최성용 전후납북자피해가족연합회 대표에 따르면, 북한에 억류된 516명 중에는 어선원이 457명으로 가장 많습니다. 군·경이 30명, 1969년 대한항공(KAL) 여객기 납치 당시 억류된 사람이 11명, 그 외 학생과 목사도 납북자에 포함돼 있습니다. 최 대표는 평양시민 명부를 확인해 조사한 결과, 평양에 납북자 21명이 남아 있다고 밝혔습니다.
■ 북한 상대로 승소해도 배상받기는 어려워
납북 피해자의 고통도 크지만, 남아있는 유족·가족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납북 피해와 관련해 북한 당국에 배상을 청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지만, 실제 배상까지는 갈 길이 멉니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한변)이 납북 피해자 유족 12명을 대리해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지난 20일 법원은 북한이 1인당 최대 3천만 원을 피해자 유족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처럼 2020년 이후 한국에서는 관련 소송의 승소 추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북한이 실제 배상에 응한 경우는 아직 없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에 음악과 그림 등의 저작권료를 지급하는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을 상대로 강제집행을 신청하는 등 간접적인 방법으로 배상을 받으려는 시도도 있지만, 이 역시 녹록지 않습니다.
국군 포로를 대리해 승소했던 엄태섭 법무법인 오킴스 변호사는 "강제집행을 신청해 인용됐지만 집행을 거부당했고, 추심금 청구 소송 1심에서도 패소했다"며 "북한 정부의 돈이 아니라 음악 등을 소유한 방송사 등에 지급할 돈이기 때문에 압류할 수 없다는 취지"라고 설명했습니다.
역시 납북 피해를 입고 있는 일본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일본인 납북 피해자와 가족을 대리해 소송 중인 겐지 후쿠다 일본 변호사는 공소시효 문제도 제기합니다. 일본에선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피해 사실이나 가해자의 신원을 알게 된 때부터 3년 내 청구해야 해, 소송 제기부터 쉽지 않다는 겁니다. 납북 피해자나 가족들은 북한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경우 오랜 시간 소송에 매달려야 하고, 승소하더라도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금을 받아내기 어려운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 "정부 대책 마련해야" 33개 단체 공동 성명
납북 피해자와 가족들은 한 목소리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강철환 KAL기 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는 "방송사 PD였던 아버지가 53년이 되도록 북한에 억류돼 있지만,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납북 피해자 가족들의 노력 끝에 2010년에는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안'이 제정돼 공포되는 성과가 있었지만, 개인 보상을 유예하고 단체보상 내용만 들어가는 등 한계가 뚜렷하다는 평가입니다. 이성의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는 "10년 동안 3번에 걸쳐 법률 개정안 상정을 시도했는데 2번은 기각됐다"며, "국가적 재난이고 희생자가 많아 감당이 안 된다고 했다"고 말했습니다.
납북 피해자 가족단체와 국내외 시민단체 등 33개 단체는 오늘, 납북 피해자 책임 규명을 새 정부에 촉구하는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유엔 강제실종 협약' 가입·비준과 북한 정부에 우리 국민의 납북사실을 인정할 것을 촉구하고 진상규명을 요청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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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아 기자 gin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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