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홍콩이 ‘버린 것’을 타이완은 되살렸다…의미는?
입력 2022.06.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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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8미터, 무게 2톤의 이 조각에는 64명의 고통스러운 표정의 사람들이 서로 얽혀있습니다.
덴마크 예술가 옌스 갤치옷이 1989년 6월 4일 중국 베이징에서 벌어졌던 '6.4 톈안먼 민주화 시위'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작품명 '수치의 기둥'입니다.

갤치옷은 1997년 '수치의 기둥'을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支聯會·지련회)에 기증했고, 이후 홍콩대학교에 전시됐습니다.
■설치 25년 만에 홍콩서 사라진 작품

하지만 '수치의 기둥'은 지난해 12월 22일 한밤 중에 기습적으로 철거됩니다. 당시 홍콩대는 이 조각이 홍콩국가보안법상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작가가 작품을 가져갈 때까지 작품을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그야말로 부끄럽게 끌어내려진 이 작품이 타이완에 다시 등장했습니다. 5개월여 만입니다.

'수치의 기둥'은 3미터 높이의 복제품으로 돌아왔습니다. 6월 4일 오후 6시 40분, 타이완 중정기념당 민주대로에서 열린 '6.4 톈안먼 민주화 시위 33주년 기념행사'에서입니다.
작가의 허가를 받은 중국인민주서원협회 등 타이완 시민단체가 3D 프린터기를 이용해 다시 만들었습니다. 작품 앞에는 '톈안먼 대학살(Tienanmen Massacre)'이라는 설명도 붙었습니다.
■홍콩서 꺼진 '톈안먼 촛불'
사실 '수치의 기둥'이 있었던 홍콩은 그동안 작품이 전시된 공간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중국이 극도로 민감하게 여기는 톈안먼 사태를 공개적으로 기념하는 몇 안 되는 장소였기 때문인데요.
홍콩 시민들은 1990년부터 매년 6월 4일이 되면 빅토리아 파크에서 톈안먼 민주화 시위 희생자들을 기리는 대규모 집회를 열어왔습니다. 그리고 이 시위는 홍콩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행사로 여겨졌습니다. 중국에서 톈안먼 민주화 시위를 언급하는 것은 금기지만 홍콩은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누려왔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홍콩은 중국과 다르다'는 걸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행사였습니다.

하지만 '수치의 기둥'이 사라진 홍콩에서는 올해 '톈안먼의 촛불'마저 꺼졌습니다.
홍콩 당국은 톈안먼 민주화 시위 기념일 하루 전인 3일 밤 11시부터 5일 오전 0시 30분까지 빅토리아 파크를 아예 봉쇄해 버렸습니다. 강화된 국가보안법 때문에 체포될까 두려운 홍콩 시민들도 공개 추모에 더는 나서지 못했습니다.
■타이완, '수치의 기둥'으로 홍콩을 잇다
일국양제라고 하지만 사실상 중국화 되고 있는 홍콩, 홍콩만큼이나 중국이 반드시 '하나'로 만들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이완입니다.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한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퇴각한 뒤 중국은 타이완을 실질적으로는 지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하나의 중국'을 외치며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꼭 통일을 이루겠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타이완도 생각이 같을까요?

10명 중에 8명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타이완의 중국 본토 담당 기구인 대륙위원회가 여론조사기관 TRS에 의뢰해 5월 26~29일까지 20세 이상 타이완 성인 1천70명을 대상으로 벌인 전화 여론 조사에서 그 결과가 드러났는데요.
타이완 사람 82.2%는 '중화민국(타이완)과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서로 예속되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심지어 지난해 11월 발표된 같은 조사와 비교해 보면 "타이완과 중국이 서로 예속되지 않는다"는 답변 비율은 4.5%p 올랐습니다.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타이완을 중국 영토에서 나눌 수 없는 일부분이라고 주장하는 중국 입장에 대해서도 83.6%가 반대했습니다.
■타이완은 '수치의 기둥'을 지킬 수 있을까?
'하나의 중국'을 대다수가 거부하는 타이완은 이제 홍콩이 하지 못 하는 일을 우리가 대신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버려진' '수치의 기둥'을 상징적으로 부활시켰고 톈안먼 민주화 시위를 공개적으로 추모하며 홍콩에 자유를 보장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타이완에 자리하게 된 '수치의 기둥'은 중국의 양안 가운데 '마지막 민주주의 보루'가 된 타이완의 현실을 상징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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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파원 리포트] 홍콩이 ‘버린 것’을 타이완은 되살렸다…의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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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06-07 08:00:14

높이 8미터, 무게 2톤의 이 조각에는 64명의 고통스러운 표정의 사람들이 서로 얽혀있습니다.
덴마크 예술가 옌스 갤치옷이 1989년 6월 4일 중국 베이징에서 벌어졌던 '6.4 톈안먼 민주화 시위'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작품명 '수치의 기둥'입니다.

갤치옷은 1997년 '수치의 기둥'을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支聯會·지련회)에 기증했고, 이후 홍콩대학교에 전시됐습니다.
■설치 25년 만에 홍콩서 사라진 작품

하지만 '수치의 기둥'은 지난해 12월 22일 한밤 중에 기습적으로 철거됩니다. 당시 홍콩대는 이 조각이 홍콩국가보안법상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작가가 작품을 가져갈 때까지 작품을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그야말로 부끄럽게 끌어내려진 이 작품이 타이완에 다시 등장했습니다. 5개월여 만입니다.

'수치의 기둥'은 3미터 높이의 복제품으로 돌아왔습니다. 6월 4일 오후 6시 40분, 타이완 중정기념당 민주대로에서 열린 '6.4 톈안먼 민주화 시위 33주년 기념행사'에서입니다.
작가의 허가를 받은 중국인민주서원협회 등 타이완 시민단체가 3D 프린터기를 이용해 다시 만들었습니다. 작품 앞에는 '톈안먼 대학살(Tienanmen Massacre)'이라는 설명도 붙었습니다.
■홍콩서 꺼진 '톈안먼 촛불'
사실 '수치의 기둥'이 있었던 홍콩은 그동안 작품이 전시된 공간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중국이 극도로 민감하게 여기는 톈안먼 사태를 공개적으로 기념하는 몇 안 되는 장소였기 때문인데요.
홍콩 시민들은 1990년부터 매년 6월 4일이 되면 빅토리아 파크에서 톈안먼 민주화 시위 희생자들을 기리는 대규모 집회를 열어왔습니다. 그리고 이 시위는 홍콩의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행사로 여겨졌습니다. 중국에서 톈안먼 민주화 시위를 언급하는 것은 금기지만 홍콩은 언론과 집회의 자유를 누려왔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홍콩은 중국과 다르다'는 걸 공개적으로 보여주는 행사였습니다.

하지만 '수치의 기둥'이 사라진 홍콩에서는 올해 '톈안먼의 촛불'마저 꺼졌습니다.
홍콩 당국은 톈안먼 민주화 시위 기념일 하루 전인 3일 밤 11시부터 5일 오전 0시 30분까지 빅토리아 파크를 아예 봉쇄해 버렸습니다. 강화된 국가보안법 때문에 체포될까 두려운 홍콩 시민들도 공개 추모에 더는 나서지 못했습니다.
■타이완, '수치의 기둥'으로 홍콩을 잇다
일국양제라고 하지만 사실상 중국화 되고 있는 홍콩, 홍콩만큼이나 중국이 반드시 '하나'로 만들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이완입니다.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한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이 타이완으로 퇴각한 뒤 중국은 타이완을 실질적으로는 지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기회 있을 때마다 '하나의 중국'을 외치며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꼭 통일을 이루겠다는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타이완도 생각이 같을까요?

10명 중에 8명은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타이완의 중국 본토 담당 기구인 대륙위원회가 여론조사기관 TRS에 의뢰해 5월 26~29일까지 20세 이상 타이완 성인 1천70명을 대상으로 벌인 전화 여론 조사에서 그 결과가 드러났는데요.
타이완 사람 82.2%는 '중화민국(타이완)과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서로 예속되지 않는다'고 여겼습니다. 심지어 지난해 11월 발표된 같은 조사와 비교해 보면 "타이완과 중국이 서로 예속되지 않는다"는 답변 비율은 4.5%p 올랐습니다.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타이완을 중국 영토에서 나눌 수 없는 일부분이라고 주장하는 중국 입장에 대해서도 83.6%가 반대했습니다.
■타이완은 '수치의 기둥'을 지킬 수 있을까?
'하나의 중국'을 대다수가 거부하는 타이완은 이제 홍콩이 하지 못 하는 일을 우리가 대신하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버려진' '수치의 기둥'을 상징적으로 부활시켰고 톈안먼 민주화 시위를 공개적으로 추모하며 홍콩에 자유를 보장하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타이완에 자리하게 된 '수치의 기둥'은 중국의 양안 가운데 '마지막 민주주의 보루'가 된 타이완의 현실을 상징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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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 기자 herb@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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