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노래자랑 34년…‘영원한 현역’ 송해의 인생역정
입력 2022.06.08 (21:06)
수정 2022.06.08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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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70년 가까이 현역으로 활동해 온 고인은 한국 방송사의 산 증인이기도 했습니다.
1세대 코미디언이자 라디오 진행자, 그리고 34년을 '전국 노래자랑' 진행자로...
고인의 일생을 강푸른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1927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때 홀로 부산으로 넘어온 스물넷 청년 송복희.
배 위에서 지은 바다 '해'자를 예명 삼아, 1955년 유랑 극단 활동을 시작합니다.
무대에서 갈고 닦은 입담으로 1964년 코미디언으로 데뷔했고, 배삼룡, 구봉서 등 우리나라 1세대 희극인과 함께 활동했습니다.
[고전유머극장/1977년 2월 20일 : "자네, 정말 강물에 빠질 게야? 따뜻한 데로 골라서 차츰차츰 적시고 들어가."]
이어 1975년부터 14년간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맡으며 인기 진행자로 자리잡습니다.
[방송의 현장/1987년 5월 24일 :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가로수를 누비며' 송해입니다."]
하나뿐인 아들을 사고로 잃는 고통스러운 시절을 거쳐, 1988년, 방송인 송해의 인생에 새 막을 열어준 건 '전국 노래자랑'이었습니다.
["딩 동 댕 동 전국~ 노래자랑!"]
매주 일요일, 전국은 물론 전 세계를 누비며 평범한 사람들의 노래를 들려주었던 국내 최장수 가요 프로그램.
34년간 현역 진행자로 활동한 공을 인정받아, 세계 최고령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북에 올랐습니다.
[송해/KBS '전국노래자랑' 진행자/지난달 23일 : "하늘을 찌르는 듯한 기분이라고 그러는데 초월한 기분입니다."]
한평생 실향의 외로움과 어머니,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서도, 슬픔에서 배운 삶의 이치로 인생을 낙관했던 '진짜 희극인' 송해.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2003년 9월 8일 : "웃음이라는 건 비극을 알아야 합니다. 눈물을 모르고 즐거움을 아는 건 그건 잘못된 거예요, 그죠?"]
친근하고 소탈한 모습으로 우리 곁을 지켰던 국민 'MC'는 이제 하늘로 무대를 옮겼습니다.
["'땡'을 맞아보지 않으면 '딩동댕'의 정의를 모릅니다. 그래서 늘 노래자랑에서 '내 인생 딩동댕'이라는 걸 남기고 싶었던 사람 중 하납니다."]
KBS 뉴스 강푸른입니다.
[故 송해 추모 게시판 바로가기]
https://program.kbs.co.kr/1tv/enter/jarang/pc/board.html?smenu=f542bd&bbs_loc=T2000-0054-04-755689,list,none,1,0
70년 가까이 현역으로 활동해 온 고인은 한국 방송사의 산 증인이기도 했습니다.
1세대 코미디언이자 라디오 진행자, 그리고 34년을 '전국 노래자랑' 진행자로...
고인의 일생을 강푸른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1927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때 홀로 부산으로 넘어온 스물넷 청년 송복희.
배 위에서 지은 바다 '해'자를 예명 삼아, 1955년 유랑 극단 활동을 시작합니다.
무대에서 갈고 닦은 입담으로 1964년 코미디언으로 데뷔했고, 배삼룡, 구봉서 등 우리나라 1세대 희극인과 함께 활동했습니다.
[고전유머극장/1977년 2월 20일 : "자네, 정말 강물에 빠질 게야? 따뜻한 데로 골라서 차츰차츰 적시고 들어가."]
이어 1975년부터 14년간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맡으며 인기 진행자로 자리잡습니다.
[방송의 현장/1987년 5월 24일 :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가로수를 누비며' 송해입니다."]
하나뿐인 아들을 사고로 잃는 고통스러운 시절을 거쳐, 1988년, 방송인 송해의 인생에 새 막을 열어준 건 '전국 노래자랑'이었습니다.
["딩 동 댕 동 전국~ 노래자랑!"]
매주 일요일, 전국은 물론 전 세계를 누비며 평범한 사람들의 노래를 들려주었던 국내 최장수 가요 프로그램.
34년간 현역 진행자로 활동한 공을 인정받아, 세계 최고령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북에 올랐습니다.
[송해/KBS '전국노래자랑' 진행자/지난달 23일 : "하늘을 찌르는 듯한 기분이라고 그러는데 초월한 기분입니다."]
한평생 실향의 외로움과 어머니,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서도, 슬픔에서 배운 삶의 이치로 인생을 낙관했던 '진짜 희극인' 송해.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2003년 9월 8일 : "웃음이라는 건 비극을 알아야 합니다. 눈물을 모르고 즐거움을 아는 건 그건 잘못된 거예요, 그죠?"]
친근하고 소탈한 모습으로 우리 곁을 지켰던 국민 'MC'는 이제 하늘로 무대를 옮겼습니다.
["'땡'을 맞아보지 않으면 '딩동댕'의 정의를 모릅니다. 그래서 늘 노래자랑에서 '내 인생 딩동댕'이라는 걸 남기고 싶었던 사람 중 하납니다."]
KBS 뉴스 강푸른입니다.
[故 송해 추모 게시판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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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06-08 21:06:25
- 수정2022-06-08 21:5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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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가까이 현역으로 활동해 온 고인은 한국 방송사의 산 증인이기도 했습니다.
1세대 코미디언이자 라디오 진행자, 그리고 34년을 '전국 노래자랑' 진행자로...
고인의 일생을 강푸른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1927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때 홀로 부산으로 넘어온 스물넷 청년 송복희.
배 위에서 지은 바다 '해'자를 예명 삼아, 1955년 유랑 극단 활동을 시작합니다.
무대에서 갈고 닦은 입담으로 1964년 코미디언으로 데뷔했고, 배삼룡, 구봉서 등 우리나라 1세대 희극인과 함께 활동했습니다.
[고전유머극장/1977년 2월 20일 : "자네, 정말 강물에 빠질 게야? 따뜻한 데로 골라서 차츰차츰 적시고 들어가."]
이어 1975년부터 14년간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맡으며 인기 진행자로 자리잡습니다.
[방송의 현장/1987년 5월 24일 :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가로수를 누비며' 송해입니다."]
하나뿐인 아들을 사고로 잃는 고통스러운 시절을 거쳐, 1988년, 방송인 송해의 인생에 새 막을 열어준 건 '전국 노래자랑'이었습니다.
["딩 동 댕 동 전국~ 노래자랑!"]
매주 일요일, 전국은 물론 전 세계를 누비며 평범한 사람들의 노래를 들려주었던 국내 최장수 가요 프로그램.
34년간 현역 진행자로 활동한 공을 인정받아, 세계 최고령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북에 올랐습니다.
[송해/KBS '전국노래자랑' 진행자/지난달 23일 : "하늘을 찌르는 듯한 기분이라고 그러는데 초월한 기분입니다."]
한평생 실향의 외로움과 어머니,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서도, 슬픔에서 배운 삶의 이치로 인생을 낙관했던 '진짜 희극인' 송해.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2003년 9월 8일 : "웃음이라는 건 비극을 알아야 합니다. 눈물을 모르고 즐거움을 아는 건 그건 잘못된 거예요, 그죠?"]
친근하고 소탈한 모습으로 우리 곁을 지켰던 국민 'MC'는 이제 하늘로 무대를 옮겼습니다.
["'땡'을 맞아보지 않으면 '딩동댕'의 정의를 모릅니다. 그래서 늘 노래자랑에서 '내 인생 딩동댕'이라는 걸 남기고 싶었던 사람 중 하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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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코미디언이자 라디오 진행자, 그리고 34년을 '전국 노래자랑' 진행자로...
고인의 일생을 강푸른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리포트]
1927년 황해도에서 태어나 한국전쟁 때 홀로 부산으로 넘어온 스물넷 청년 송복희.
배 위에서 지은 바다 '해'자를 예명 삼아, 1955년 유랑 극단 활동을 시작합니다.
무대에서 갈고 닦은 입담으로 1964년 코미디언으로 데뷔했고, 배삼룡, 구봉서 등 우리나라 1세대 희극인과 함께 활동했습니다.
[고전유머극장/1977년 2월 20일 : "자네, 정말 강물에 빠질 게야? 따뜻한 데로 골라서 차츰차츰 적시고 들어가."]
이어 1975년부터 14년간 아침 라디오 프로그램 진행을 맡으며 인기 진행자로 자리잡습니다.
[방송의 현장/1987년 5월 24일 : "여러분 안녕하셨습니까, '가로수를 누비며' 송해입니다."]
하나뿐인 아들을 사고로 잃는 고통스러운 시절을 거쳐, 1988년, 방송인 송해의 인생에 새 막을 열어준 건 '전국 노래자랑'이었습니다.
["딩 동 댕 동 전국~ 노래자랑!"]
매주 일요일, 전국은 물론 전 세계를 누비며 평범한 사람들의 노래를 들려주었던 국내 최장수 가요 프로그램.
34년간 현역 진행자로 활동한 공을 인정받아, 세계 최고령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북에 올랐습니다.
[송해/KBS '전국노래자랑' 진행자/지난달 23일 : "하늘을 찌르는 듯한 기분이라고 그러는데 초월한 기분입니다."]
한평생 실향의 외로움과 어머니,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서도, 슬픔에서 배운 삶의 이치로 인생을 낙관했던 '진짜 희극인' 송해.
['김동건의 한국, 한국인'/2003년 9월 8일 : "웃음이라는 건 비극을 알아야 합니다. 눈물을 모르고 즐거움을 아는 건 그건 잘못된 거예요, 그죠?"]
친근하고 소탈한 모습으로 우리 곁을 지켰던 국민 'MC'는 이제 하늘로 무대를 옮겼습니다.
["'땡'을 맞아보지 않으면 '딩동댕'의 정의를 모릅니다. 그래서 늘 노래자랑에서 '내 인생 딩동댕'이라는 걸 남기고 싶었던 사람 중 하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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