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돋보기] 선거의 상식? 상식의 선거!

입력 2022.06.20 (19:21) 수정 2022.06.2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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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제주 사회 현안을 심층적으로 살펴보는 '제주 돋보기', 김익태 기자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6.1 지방선거 이후 첫 돋보기 시간이네요.

선거가 끝난지 20일째 입니다만 그래도 이번 지방선거 정리해봐야겠죠.

[기자]

네, 이번 지방선거 평가와 관련해서는 KBS 뿐만 아니라 많은 지역언론에서 다뤘으니, 오늘은 다른 차원의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먼저, 선거 상식 퀴즈 드리죠.

지방선거에서 후보 기호는 어떻게 정할까요?

[앵커]

기호 순서야 모든 선거에서 똑같은 원칙을 적용하지 않나요?

국회의원 의석수가 많은 순서대로 1번부터 숫자로 메기고, 국회의원이 없는 정당 후보인 경우엔 정당 명칭의 가나다 순서로, 무소속인 경우엔 추첨으로 정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기자]

정확합니다.

그런데 이 화면을 보시죠.

박정희 대통령의 선거당시 포스터인데요.

기호가 몇번이죠?

[앵커]

6번이네요.

당시 민주공화당이 여당이고 국회 1당이었을텐데, 어떻게 6번이 된거죠?

[기자]

답은 나중에 드리도록 하고, 전두환 대통령의 선거 포스트도 볼까요?

기호가 4번이죠?

[앵커]

그렇네요.

그럼 과거엔 현재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기호부여 원칙이 달랐던 거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1948년 제헌의원 선거 때는 선거구별로 기호를 추첨했구요.

1963년부터는 추첨을 유지하되 선거구별이 아닌 전국 통일 추첨제도를 적용했습니다.

이런 추첨 방식은 1969년 이후 거대 두 정당에만 국회의석수 순서로 1,2번 기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바뀝니다.

나머지 정당은 가나다 순으로 기호를 부여하구요.

5공화국 들어 1981년 잠깐 추첨제가 부활했다가 6공화국 들어서 다시 양당 중심의 규정으로 바뀐 뒤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겁니다.

[앵커]

추첨으로 기호를 정한 방식이 대한민국 출범 당시 상식이었군요.

그건 아무래도 기호가 앞에 있는 후보가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었겠죠?

[기자]

기호 효과, 다시 말해서 투표용지 상의 후보자 이름 순서가 투표 결과에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는 국제학계에서 1950년대부터 시작됐고, 국내에서는 2000년 대 중반 이후부터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는데요.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친다고 봤습니다.

이름이 투표용지 처음에 있어서 혜택을 본다는 '초두효과', 마지막에 있어서 효과를 본다는 '최근효과' 등의 이론이 있습니다.

[앵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에서 녹색당인 경우 도지사 후보는 4번, 비례대표 후보는 5번이더라구요.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기호가 일치하던데,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거죠?

[기자]

현행 선거법이 거대정당에게만 유리하도록 변경돼 왔다는 또하나의 증거인데요.

1997년부터 국회 교섭단체에만, 즉 두 거대 정당에만 전국 통일 기호를 부여하는 방식이 도입됐습니다.

2005년부터는 국회에 5석 이상 또는 직전 선거에서 3%이상 득표 정당에게까지 전국 통일 기호를 부여했는데, 기존 두개 정당에 정의당까지만 특별한 혜택을 받아온 겁니다.

[앵커]

그렇게되면 나머지 소수정당들은 상대적인 불이익을 받는 거네요.

오히려 과거 추첨제 방식이 더 공정한 것 아닌가요?

[기자]

그렇게 봐아겠죠?

[앵커]

이 문제를 놓고 위헌심판 논란이 있었을 것 같은데,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어땠습니까?

[기자]

관련해서 1996년 이래 여덟 차례 결정이 있었는데, 헌법재판소는 모두 합헌이라고 결정했습니다.

후순위 후보자에 대한 차별을 인정하면서도, 정당제도의 헌법적 존재 의의에 비춰 다수 의석을 가진 정당에게 우선순위 기호를 부여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본 건데요.

반면 미국에서는 현직이거나 다수의석 정당에 대한 우선 배정방식을 위헌 결정한 사례가 여러 차례 있습니다.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평등선거와 선거운동 기회균등의 헌법적 가치를 소홀히 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다른 선진민주주의 국가에선 우리와 다른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는 건가요?

[기자]

미국의 30여개 주와 호주, 브라질 등에선 과거 우리처럼 추첨으로 기호를 배정하고요.

알파벳 순으로 배열하는 나라도 많습니다.

1,2,3 이라는 기호가 아예 없는 경우도 있구요.

지금 보시는 화면은 영국 한 지역구의 하원의원 투표용지인데요.

기호는 안 보이고 대신 각 정당의 상징이 눈에 띄죠.

위에서부터 자유민주당, 녹색당, 기독교계 소수정당인 커먼굿 정당, 노동당, 무소속, 보수당, 영국독립당 순인데요.

그럼 어떤 기준으로 후보 순서를 정했을까요?

[앵커]

글쎄요. 추첨으로 한 건가요?

[기자]

후보자의 성명을 기준으로 알파벳 순서로 정합니다.

성이 같을 경우엔 이름의 알파벳 순서로 나열합니다.

[앵커]

영국에서 1, 2당은 보수당과 노동당인데, 투표용지에서 순서는 여섯번째와 네번째이네요.

[기자]

이 지역구에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후보 이름의 알파벳이 기준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구에선 순서가 또 바뀌겠죠.

추첨으로 순서를 정한다는 호주의 투표용지도 볼까요?

맨 왼쪽에 정당의 로고, 즉 상징을 표시하구요.

맨 오른쪽엔 후보의 이름을 적었는데, 당 이름은 작게 썼죠.

[앵커]

네모 안에 들어간 숫자는 뭔가요?

기호가 순서대로 적혀 있지 않은데요?

[기자]

이 숫자는 기호가 아닙니다.

호주는 선호투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죠.

유권자가 모든 후보를 대상으로 선호하는 순위에 따라 기표하는 방식입니다.

이 투표용지에 투표한 유권자는 다섯번째 후보를 가장 좋아하고, 네번째 후보를 가장 싫어한다는 뜻을 나타낸 겁니다.

[앵커]

특이한 투표방식이네요.

어쨌든 후보자 순서는 추첨에 따라 결정한다는 거군요.

[기자]

결론을 말씀드리면 국회 의석수에 따라 거대정당에게 부여하는 전국 통일 기호 배정 방식은 외국에선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선거에서 상식이라고 생각해온 거대 정당 우선의 현행 기호 부여 방식보다는, 오히려 추첨제나 가나다 순이 상식적인 선거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앵커]

지방선거가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라면 기호 부여 방식에서부터 지역에 자율성을 줄 필요가 있겠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매우 중요한 언급을 해주셨는데, 현재 한국의 지방선거는 중앙정치에 철저하게 예속돼 있습니다.

지방선거임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에 "힘을 실어줄 것인가" 아니면 "견제할 것인가"를 중요한 프레임으로 삼는 중앙언론의 보도 행태에서도 확인할 수 있죠.

그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중앙당 중심의 현행 정당 체계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지방자치가 부활한지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지역에 뿌리를 둔 정치결사체는 선거에 후보조차 내기 힘든 게 현실이긴 해요.

[기자]

그 이유가 바로 현행 정당법 규정 때문입니다.

중앙당을 반드시 서울에 두게 하고, 5개 이상의 시도당을 가져야하며, 각 시도당은 천 명 이상의 당원을 확보하도록 1963년 정당법을 제정했는데, 60년 가까이 되도록 관련 조항이 그대롭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죠?

왜 중앙당을 서울에만 둬야 하죠?

왜 5개 이상의 시도당이 있어야만 정당이라고 인정해주는 걸까요?

[앵커]

아무래도 규정을 완화하면 정당이 난립하고 그렇다보면 정치가 혼란스러워진다는 우려 때문이 아닐까요?

[기자]

네, 바로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의 논리였습니다.

이후 민주화 흐름 속에서도 거대 정당이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관련 조항을 손보지 않으면서 지금까지 유지돼 왔습니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씀드리는 근거는 OECD 회원국 중에 정당설립 요건을 법으로 엄격하게 규정한 나라는 한국과 독일 뿐입니다.

독일은 과거 나찌 경험 때문에 그렇다고 본다면,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고 보면 될 겁니다.

[앵커]

그렇다면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을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다는 뜻인가요?

[기자]

우리는 보통 미국이나 영국을 민주당-공화당, 보수당-노동당, 양당만 있는 곳으로 오해하곤 합니다만, 특정 지역에서 활동하는 지역정당도 많습니다.

미국에선 알래스카 독립당, 캘리포니아 국민당, 버몬트 진보당, 뉴욕 자유당, 영국에선 스코틀랜드 국민당, 웨일스 국민당 등이 대표적인 지역정당이죠.

한국과 함께 정당설립 요건을 까다롭게 했다는 독일에서 조차 기독교사회연합, 보통 우리가 기사당이라는 부르는 정당처럼 바이에른 주에서만 활동하는 지역정당이 있죠.

독일은 정당과 구분되는 정치적 결사도 허용하고 지방선거에서 이 결사체에 대해 후보자를 공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정당과 정치결사체를 합하면 백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앵커]

이런 외국 사례를 적용하면 이번 선거에서 무소속 박찬식 제주도지사 후보가 제주가치라는 지역정당의 후보로 출마하고, 역시 같은 지역정당의 이름으로 비례대표 도의원 후보도 낼 수 있었겠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그게 상식의 선거입니다.

적어도 지방선거에서만큼은 지역정당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저의 주관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한국정치학회는 이미 2016년 지역수준에서의 정당 설립 허용을 제안했고, 지난 20대 국회에서 개헌특위 자문위원회는 지역정당에게 전국선거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까지 했습니다.

[앵커]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건 결국 두 거대 정당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인 거죠?

[기자]

그렇습니다.

이런 상식적인 제안을 담아내려면 결국 법을 바꿔야 하는데, 두 거대 정당이 기존 체제에서 특혜를 받고 있다보니 움직이지 않는 겁니다.

오늘 말씀드린 두 가지 주제, 후보 기호 배정 원칙과, 지역정당 허용 문제는 정치개혁을 위한 주춧돌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전국적으로 시행이 어렵다면 특별자치도에서, 지방선거 범위에 한정해 시범 시행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제주가 영리병원과 같은 신자유주의의 실험 장소나, 대규모 개발을 둘러싼 갈등의 장소가 아니라, 정치개혁을 위한 실험 장소로 쓰이기를 기대해보겠습니다.

[앵커]

네, 오늘 돋보기는 여기까지 하죠.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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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돋보기] 선거의 상식? 상식의 선거!
    • 입력 2022-06-20 19:21:12
    • 수정2022-06-20 20:22:13
    뉴스7(제주)
[앵커]

제주 사회 현안을 심층적으로 살펴보는 '제주 돋보기', 김익태 기자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6.1 지방선거 이후 첫 돋보기 시간이네요.

선거가 끝난지 20일째 입니다만 그래도 이번 지방선거 정리해봐야겠죠.

[기자]

네, 이번 지방선거 평가와 관련해서는 KBS 뿐만 아니라 많은 지역언론에서 다뤘으니, 오늘은 다른 차원의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먼저, 선거 상식 퀴즈 드리죠.

지방선거에서 후보 기호는 어떻게 정할까요?

[앵커]

기호 순서야 모든 선거에서 똑같은 원칙을 적용하지 않나요?

국회의원 의석수가 많은 순서대로 1번부터 숫자로 메기고, 국회의원이 없는 정당 후보인 경우엔 정당 명칭의 가나다 순서로, 무소속인 경우엔 추첨으로 정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기자]

정확합니다.

그런데 이 화면을 보시죠.

박정희 대통령의 선거당시 포스터인데요.

기호가 몇번이죠?

[앵커]

6번이네요.

당시 민주공화당이 여당이고 국회 1당이었을텐데, 어떻게 6번이 된거죠?

[기자]

답은 나중에 드리도록 하고, 전두환 대통령의 선거 포스트도 볼까요?

기호가 4번이죠?

[앵커]

그렇네요.

그럼 과거엔 현재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기호부여 원칙이 달랐던 거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1948년 제헌의원 선거 때는 선거구별로 기호를 추첨했구요.

1963년부터는 추첨을 유지하되 선거구별이 아닌 전국 통일 추첨제도를 적용했습니다.

이런 추첨 방식은 1969년 이후 거대 두 정당에만 국회의석수 순서로 1,2번 기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바뀝니다.

나머지 정당은 가나다 순으로 기호를 부여하구요.

5공화국 들어 1981년 잠깐 추첨제가 부활했다가 6공화국 들어서 다시 양당 중심의 규정으로 바뀐 뒤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겁니다.

[앵커]

추첨으로 기호를 정한 방식이 대한민국 출범 당시 상식이었군요.

그건 아무래도 기호가 앞에 있는 후보가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었겠죠?

[기자]

기호 효과, 다시 말해서 투표용지 상의 후보자 이름 순서가 투표 결과에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연구는 국제학계에서 1950년대부터 시작됐고, 국내에서는 2000년 대 중반 이후부터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는데요.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친다고 봤습니다.

이름이 투표용지 처음에 있어서 혜택을 본다는 '초두효과', 마지막에 있어서 효과를 본다는 '최근효과' 등의 이론이 있습니다.

[앵커]

그런데 이번 지방선거에서 녹색당인 경우 도지사 후보는 4번, 비례대표 후보는 5번이더라구요.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기호가 일치하던데,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거죠?

[기자]

현행 선거법이 거대정당에게만 유리하도록 변경돼 왔다는 또하나의 증거인데요.

1997년부터 국회 교섭단체에만, 즉 두 거대 정당에만 전국 통일 기호를 부여하는 방식이 도입됐습니다.

2005년부터는 국회에 5석 이상 또는 직전 선거에서 3%이상 득표 정당에게까지 전국 통일 기호를 부여했는데, 기존 두개 정당에 정의당까지만 특별한 혜택을 받아온 겁니다.

[앵커]

그렇게되면 나머지 소수정당들은 상대적인 불이익을 받는 거네요.

오히려 과거 추첨제 방식이 더 공정한 것 아닌가요?

[기자]

그렇게 봐아겠죠?

[앵커]

이 문제를 놓고 위헌심판 논란이 있었을 것 같은데,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어땠습니까?

[기자]

관련해서 1996년 이래 여덟 차례 결정이 있었는데, 헌법재판소는 모두 합헌이라고 결정했습니다.

후순위 후보자에 대한 차별을 인정하면서도, 정당제도의 헌법적 존재 의의에 비춰 다수 의석을 가진 정당에게 우선순위 기호를 부여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본 건데요.

반면 미국에서는 현직이거나 다수의석 정당에 대한 우선 배정방식을 위헌 결정한 사례가 여러 차례 있습니다.

때문에 헌법재판소가 평등선거와 선거운동 기회균등의 헌법적 가치를 소홀히 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습니다.

[앵커]

그렇다면 다른 선진민주주의 국가에선 우리와 다른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는 건가요?

[기자]

미국의 30여개 주와 호주, 브라질 등에선 과거 우리처럼 추첨으로 기호를 배정하고요.

알파벳 순으로 배열하는 나라도 많습니다.

1,2,3 이라는 기호가 아예 없는 경우도 있구요.

지금 보시는 화면은 영국 한 지역구의 하원의원 투표용지인데요.

기호는 안 보이고 대신 각 정당의 상징이 눈에 띄죠.

위에서부터 자유민주당, 녹색당, 기독교계 소수정당인 커먼굿 정당, 노동당, 무소속, 보수당, 영국독립당 순인데요.

그럼 어떤 기준으로 후보 순서를 정했을까요?

[앵커]

글쎄요. 추첨으로 한 건가요?

[기자]

후보자의 성명을 기준으로 알파벳 순서로 정합니다.

성이 같을 경우엔 이름의 알파벳 순서로 나열합니다.

[앵커]

영국에서 1, 2당은 보수당과 노동당인데, 투표용지에서 순서는 여섯번째와 네번째이네요.

[기자]

이 지역구에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후보 이름의 알파벳이 기준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구에선 순서가 또 바뀌겠죠.

추첨으로 순서를 정한다는 호주의 투표용지도 볼까요?

맨 왼쪽에 정당의 로고, 즉 상징을 표시하구요.

맨 오른쪽엔 후보의 이름을 적었는데, 당 이름은 작게 썼죠.

[앵커]

네모 안에 들어간 숫자는 뭔가요?

기호가 순서대로 적혀 있지 않은데요?

[기자]

이 숫자는 기호가 아닙니다.

호주는 선호투표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죠.

유권자가 모든 후보를 대상으로 선호하는 순위에 따라 기표하는 방식입니다.

이 투표용지에 투표한 유권자는 다섯번째 후보를 가장 좋아하고, 네번째 후보를 가장 싫어한다는 뜻을 나타낸 겁니다.

[앵커]

특이한 투표방식이네요.

어쨌든 후보자 순서는 추첨에 따라 결정한다는 거군요.

[기자]

결론을 말씀드리면 국회 의석수에 따라 거대정당에게 부여하는 전국 통일 기호 배정 방식은 외국에선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선거에서 상식이라고 생각해온 거대 정당 우선의 현행 기호 부여 방식보다는, 오히려 추첨제나 가나다 순이 상식적인 선거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앵커]

지방선거가 지역 일꾼을 뽑는 선거라면 기호 부여 방식에서부터 지역에 자율성을 줄 필요가 있겠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매우 중요한 언급을 해주셨는데, 현재 한국의 지방선거는 중앙정치에 철저하게 예속돼 있습니다.

지방선거임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에 "힘을 실어줄 것인가" 아니면 "견제할 것인가"를 중요한 프레임으로 삼는 중앙언론의 보도 행태에서도 확인할 수 있죠.

그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중앙당 중심의 현행 정당 체계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앵커]

지방자치가 부활한지 3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지역에 뿌리를 둔 정치결사체는 선거에 후보조차 내기 힘든 게 현실이긴 해요.

[기자]

그 이유가 바로 현행 정당법 규정 때문입니다.

중앙당을 반드시 서울에 두게 하고, 5개 이상의 시도당을 가져야하며, 각 시도당은 천 명 이상의 당원을 확보하도록 1963년 정당법을 제정했는데, 60년 가까이 되도록 관련 조항이 그대롭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죠?

왜 중앙당을 서울에만 둬야 하죠?

왜 5개 이상의 시도당이 있어야만 정당이라고 인정해주는 걸까요?

[앵커]

아무래도 규정을 완화하면 정당이 난립하고 그렇다보면 정치가 혼란스러워진다는 우려 때문이 아닐까요?

[기자]

네, 바로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의 논리였습니다.

이후 민주화 흐름 속에서도 거대 정당이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관련 조항을 손보지 않으면서 지금까지 유지돼 왔습니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씀드리는 근거는 OECD 회원국 중에 정당설립 요건을 법으로 엄격하게 규정한 나라는 한국과 독일 뿐입니다.

독일은 과거 나찌 경험 때문에 그렇다고 본다면,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고 보면 될 겁니다.

[앵커]

그렇다면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을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다는 뜻인가요?

[기자]

우리는 보통 미국이나 영국을 민주당-공화당, 보수당-노동당, 양당만 있는 곳으로 오해하곤 합니다만, 특정 지역에서 활동하는 지역정당도 많습니다.

미국에선 알래스카 독립당, 캘리포니아 국민당, 버몬트 진보당, 뉴욕 자유당, 영국에선 스코틀랜드 국민당, 웨일스 국민당 등이 대표적인 지역정당이죠.

한국과 함께 정당설립 요건을 까다롭게 했다는 독일에서 조차 기독교사회연합, 보통 우리가 기사당이라는 부르는 정당처럼 바이에른 주에서만 활동하는 지역정당이 있죠.

독일은 정당과 구분되는 정치적 결사도 허용하고 지방선거에서 이 결사체에 대해 후보자를 공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정당과 정치결사체를 합하면 백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앵커]

이런 외국 사례를 적용하면 이번 선거에서 무소속 박찬식 제주도지사 후보가 제주가치라는 지역정당의 후보로 출마하고, 역시 같은 지역정당의 이름으로 비례대표 도의원 후보도 낼 수 있었겠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그게 상식의 선거입니다.

적어도 지방선거에서만큼은 지역정당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저의 주관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한국정치학회는 이미 2016년 지역수준에서의 정당 설립 허용을 제안했고, 지난 20대 국회에서 개헌특위 자문위원회는 지역정당에게 전국선거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제안까지 했습니다.

[앵커]

이런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은 건 결국 두 거대 정당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인 거죠?

[기자]

그렇습니다.

이런 상식적인 제안을 담아내려면 결국 법을 바꿔야 하는데, 두 거대 정당이 기존 체제에서 특혜를 받고 있다보니 움직이지 않는 겁니다.

오늘 말씀드린 두 가지 주제, 후보 기호 배정 원칙과, 지역정당 허용 문제는 정치개혁을 위한 주춧돌이 될 수 있습니다.

바로 전국적으로 시행이 어렵다면 특별자치도에서, 지방선거 범위에 한정해 시범 시행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제주가 영리병원과 같은 신자유주의의 실험 장소나, 대규모 개발을 둘러싼 갈등의 장소가 아니라, 정치개혁을 위한 실험 장소로 쓰이기를 기대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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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오늘 돋보기는 여기까지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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