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人] 5대를 잇는 수만 번의 손길, ‘염장’ 조대용
입력 2022.06.28 (19:38)
수정 2022.06.28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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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발을 만드는 장인, 염장을 아십니까?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던 시절 햇볕을 차단하고 바람이 드나들면서 가리개 역할까지 하던 발은 여름을 나는 필수품이었는데요.
5대째 전통 발의 맥을 잇고 있는 염장을 경남인에서 만나보시죠.
[리포트]
대나무를 채취해 0.7mm 두께의 대오리가 되기까지 재료 준비에만 만 번의 손이 갑니다.
고드래에 명주실을 감아 1,700여 개의 대오리를 엮어가며 문양을 만드는 손길이 다시 수만 번.
조대용 염장은 발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엮고 전통과 현대의 멋을 연결합니다.
증조부에 이어 통영발을 지켜온 국가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 제114호 조대용 염장의 작업실입니다.
[조대용/염장 : "우연히 먹으로 조그마한 발에다 그림을 그려서 창문에 걸어놓은 것에 착안해 실을 가지고 이런 문양을 냈는데, 이건 거북 등에 있는 문양, 그래서 귀 문양이라고 하고..."]
세 개의 기쁠 ‘희’ 자로 문양을 낸 ‘삼희자 발’, 궁중의 가마에 달던 연발, 위패를 가리는 발이 있는가 하면 임금의 제를 올리는 정자각 무덤 앞 신문을 가리는 신염 등 종류도 다양하고 화려합니다.
[조대용/염장 : "검붉은 색으로 옻칠을 하고 그다음에 실 자체에는 짙은 쑥색으로 이렇게 했습니다. (줄은) 올렸다 내렸다 하는 용도로... 고종황제가 발 앞에서 신하들을 이렇게 해서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먹으로 문양을 넣어 사진 속 발을 재현했는데요, 솜씨 좋은 증조부가 먹을 새겨 만든 발은 조부, 부친을 거쳐 4대 조대용 염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조대용/염장 : "시초인 할아버지께서 향기 나는 먹을 가지고 문양을 새겨서 임금에게 진상했다고... 이걸 저도 이렇게 한번 만들어본 거지요. 먹으로."]
가늘지만 견고하고 마디가 가는 시릿대 껍질을 벗겨 쪼갠 뒤 속대와 겉대를 분리해 말리고, 다시 칼로 쪼개고 나서야 대오리를 뽑습니다.
쇠판의 미세한 구멍을 수차례 통과해 0.6mm의 두께로 다듬은 대오리는 발 하나를 만드는 데 1,700개, 2,000개가 들어갑니다.
대오리 가닥 수와 실 올의 수를 계산해 도면을 그리고 나면 비로소 발 치기가 시작되는데요,
2010년 이수자가 된 숙미 씨는 부친에 이어 5대째 염장 기능을 전수 받고 있습니다.
[김숙미/염장 이수자 : "솔직히 이걸 배우러 오시는 분들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시작을 하게 됐습니다.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 뭐가 있을까..."]
그래서 발을 자수, 목공과 접목하고, 실생활에 필요한 쟁반이나 차 받침, 붓 발로 공예 영역을 넓혔습니다.
조대용 명장도 전통 문살을 현대적 문양으로 재현하고, 화가와 공동작업으로 발에 그림을 그리는 등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통제영 백화당.
["이 선을 해가지고 가고 또 이쪽에선 어디 선을 해가지고..."]
서툰 솜씨지만 발을 엮는 마음은 설레고 진지한데요,
쓰임새가 뜸해진 발을 직접 만드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양영란/통영시 미수동 : "이건 다른 세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선생님 작품 봤을 때 대나무가 쌓여서 발이 되지만 사실은 시간이 쌓여서 되는 것이다."]
[이은미/통영시 북신동 : "통영대발 같은 경우에는 이제 명맥이 많이 이어지지 않고 있고 계승 발전시켜서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통영의 한 갤러리. 장인의 열정과 시간과의 싸움으로 엮은 대발이 세상에 내걸렸습니다.
[박경희/공예가 : "사람이 얼마의 시간을 들여서 이렇게 해야지 이런 작업이 나올까.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움으로 너무 조화롭게 잘 어울린다..."]
대나무와 함께 대를 잇는 사이 장인의 발에는 200년의 내력과 시간이 담겼습니다.
["지금 우리 가족 외에는 배우는 사람이 없고 이게 뭐 밥벌이가 되는 게 아니고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시원한 바람이 드나들 듯 시대와 세대를 잇는 소통의 발이 되길 장인은 발 앞에서 소망합니다.
발을 만드는 장인, 염장을 아십니까?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던 시절 햇볕을 차단하고 바람이 드나들면서 가리개 역할까지 하던 발은 여름을 나는 필수품이었는데요.
5대째 전통 발의 맥을 잇고 있는 염장을 경남인에서 만나보시죠.
[리포트]
대나무를 채취해 0.7mm 두께의 대오리가 되기까지 재료 준비에만 만 번의 손이 갑니다.
고드래에 명주실을 감아 1,700여 개의 대오리를 엮어가며 문양을 만드는 손길이 다시 수만 번.
조대용 염장은 발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엮고 전통과 현대의 멋을 연결합니다.
증조부에 이어 통영발을 지켜온 국가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 제114호 조대용 염장의 작업실입니다.
[조대용/염장 : "우연히 먹으로 조그마한 발에다 그림을 그려서 창문에 걸어놓은 것에 착안해 실을 가지고 이런 문양을 냈는데, 이건 거북 등에 있는 문양, 그래서 귀 문양이라고 하고..."]
세 개의 기쁠 ‘희’ 자로 문양을 낸 ‘삼희자 발’, 궁중의 가마에 달던 연발, 위패를 가리는 발이 있는가 하면 임금의 제를 올리는 정자각 무덤 앞 신문을 가리는 신염 등 종류도 다양하고 화려합니다.
[조대용/염장 : "검붉은 색으로 옻칠을 하고 그다음에 실 자체에는 짙은 쑥색으로 이렇게 했습니다. (줄은) 올렸다 내렸다 하는 용도로... 고종황제가 발 앞에서 신하들을 이렇게 해서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먹으로 문양을 넣어 사진 속 발을 재현했는데요, 솜씨 좋은 증조부가 먹을 새겨 만든 발은 조부, 부친을 거쳐 4대 조대용 염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조대용/염장 : "시초인 할아버지께서 향기 나는 먹을 가지고 문양을 새겨서 임금에게 진상했다고... 이걸 저도 이렇게 한번 만들어본 거지요. 먹으로."]
가늘지만 견고하고 마디가 가는 시릿대 껍질을 벗겨 쪼갠 뒤 속대와 겉대를 분리해 말리고, 다시 칼로 쪼개고 나서야 대오리를 뽑습니다.
쇠판의 미세한 구멍을 수차례 통과해 0.6mm의 두께로 다듬은 대오리는 발 하나를 만드는 데 1,700개, 2,000개가 들어갑니다.
대오리 가닥 수와 실 올의 수를 계산해 도면을 그리고 나면 비로소 발 치기가 시작되는데요,
2010년 이수자가 된 숙미 씨는 부친에 이어 5대째 염장 기능을 전수 받고 있습니다.
[김숙미/염장 이수자 : "솔직히 이걸 배우러 오시는 분들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시작을 하게 됐습니다.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 뭐가 있을까..."]
그래서 발을 자수, 목공과 접목하고, 실생활에 필요한 쟁반이나 차 받침, 붓 발로 공예 영역을 넓혔습니다.
조대용 명장도 전통 문살을 현대적 문양으로 재현하고, 화가와 공동작업으로 발에 그림을 그리는 등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통제영 백화당.
["이 선을 해가지고 가고 또 이쪽에선 어디 선을 해가지고..."]
서툰 솜씨지만 발을 엮는 마음은 설레고 진지한데요,
쓰임새가 뜸해진 발을 직접 만드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양영란/통영시 미수동 : "이건 다른 세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선생님 작품 봤을 때 대나무가 쌓여서 발이 되지만 사실은 시간이 쌓여서 되는 것이다."]
[이은미/통영시 북신동 : "통영대발 같은 경우에는 이제 명맥이 많이 이어지지 않고 있고 계승 발전시켜서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통영의 한 갤러리. 장인의 열정과 시간과의 싸움으로 엮은 대발이 세상에 내걸렸습니다.
[박경희/공예가 : "사람이 얼마의 시간을 들여서 이렇게 해야지 이런 작업이 나올까.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움으로 너무 조화롭게 잘 어울린다..."]
대나무와 함께 대를 잇는 사이 장인의 발에는 200년의 내력과 시간이 담겼습니다.
["지금 우리 가족 외에는 배우는 사람이 없고 이게 뭐 밥벌이가 되는 게 아니고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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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던 시절 햇볕을 차단하고 바람이 드나들면서 가리개 역할까지 하던 발은 여름을 나는 필수품이었는데요.
5대째 전통 발의 맥을 잇고 있는 염장을 경남인에서 만나보시죠.
[리포트]
대나무를 채취해 0.7mm 두께의 대오리가 되기까지 재료 준비에만 만 번의 손이 갑니다.
고드래에 명주실을 감아 1,700여 개의 대오리를 엮어가며 문양을 만드는 손길이 다시 수만 번.
조대용 염장은 발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엮고 전통과 현대의 멋을 연결합니다.
증조부에 이어 통영발을 지켜온 국가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 제114호 조대용 염장의 작업실입니다.
[조대용/염장 : "우연히 먹으로 조그마한 발에다 그림을 그려서 창문에 걸어놓은 것에 착안해 실을 가지고 이런 문양을 냈는데, 이건 거북 등에 있는 문양, 그래서 귀 문양이라고 하고..."]
세 개의 기쁠 ‘희’ 자로 문양을 낸 ‘삼희자 발’, 궁중의 가마에 달던 연발, 위패를 가리는 발이 있는가 하면 임금의 제를 올리는 정자각 무덤 앞 신문을 가리는 신염 등 종류도 다양하고 화려합니다.
[조대용/염장 : "검붉은 색으로 옻칠을 하고 그다음에 실 자체에는 짙은 쑥색으로 이렇게 했습니다. (줄은) 올렸다 내렸다 하는 용도로... 고종황제가 발 앞에서 신하들을 이렇게 해서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먹으로 문양을 넣어 사진 속 발을 재현했는데요, 솜씨 좋은 증조부가 먹을 새겨 만든 발은 조부, 부친을 거쳐 4대 조대용 염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조대용/염장 : "시초인 할아버지께서 향기 나는 먹을 가지고 문양을 새겨서 임금에게 진상했다고... 이걸 저도 이렇게 한번 만들어본 거지요. 먹으로."]
가늘지만 견고하고 마디가 가는 시릿대 껍질을 벗겨 쪼갠 뒤 속대와 겉대를 분리해 말리고, 다시 칼로 쪼개고 나서야 대오리를 뽑습니다.
쇠판의 미세한 구멍을 수차례 통과해 0.6mm의 두께로 다듬은 대오리는 발 하나를 만드는 데 1,700개, 2,000개가 들어갑니다.
대오리 가닥 수와 실 올의 수를 계산해 도면을 그리고 나면 비로소 발 치기가 시작되는데요,
2010년 이수자가 된 숙미 씨는 부친에 이어 5대째 염장 기능을 전수 받고 있습니다.
[김숙미/염장 이수자 : "솔직히 이걸 배우러 오시는 분들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시작을 하게 됐습니다.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 뭐가 있을까..."]
그래서 발을 자수, 목공과 접목하고, 실생활에 필요한 쟁반이나 차 받침, 붓 발로 공예 영역을 넓혔습니다.
조대용 명장도 전통 문살을 현대적 문양으로 재현하고, 화가와 공동작업으로 발에 그림을 그리는 등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통제영 백화당.
["이 선을 해가지고 가고 또 이쪽에선 어디 선을 해가지고..."]
서툰 솜씨지만 발을 엮는 마음은 설레고 진지한데요,
쓰임새가 뜸해진 발을 직접 만드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양영란/통영시 미수동 : "이건 다른 세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선생님 작품 봤을 때 대나무가 쌓여서 발이 되지만 사실은 시간이 쌓여서 되는 것이다."]
[이은미/통영시 북신동 : "통영대발 같은 경우에는 이제 명맥이 많이 이어지지 않고 있고 계승 발전시켜서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통영의 한 갤러리. 장인의 열정과 시간과의 싸움으로 엮은 대발이 세상에 내걸렸습니다.
[박경희/공예가 : "사람이 얼마의 시간을 들여서 이렇게 해야지 이런 작업이 나올까.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움으로 너무 조화롭게 잘 어울린다..."]
대나무와 함께 대를 잇는 사이 장인의 발에는 200년의 내력과 시간이 담겼습니다.
["지금 우리 가족 외에는 배우는 사람이 없고 이게 뭐 밥벌이가 되는 게 아니고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
시원한 바람이 드나들 듯 시대와 세대를 잇는 소통의 발이 되길 장인은 발 앞에서 소망합니다.
발을 만드는 장인, 염장을 아십니까?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던 시절 햇볕을 차단하고 바람이 드나들면서 가리개 역할까지 하던 발은 여름을 나는 필수품이었는데요.
5대째 전통 발의 맥을 잇고 있는 염장을 경남인에서 만나보시죠.
[리포트]
대나무를 채취해 0.7mm 두께의 대오리가 되기까지 재료 준비에만 만 번의 손이 갑니다.
고드래에 명주실을 감아 1,700여 개의 대오리를 엮어가며 문양을 만드는 손길이 다시 수만 번.
조대용 염장은 발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시간을 엮고 전통과 현대의 멋을 연결합니다.
증조부에 이어 통영발을 지켜온 국가무형문화재 기능 보유자 제114호 조대용 염장의 작업실입니다.
[조대용/염장 : "우연히 먹으로 조그마한 발에다 그림을 그려서 창문에 걸어놓은 것에 착안해 실을 가지고 이런 문양을 냈는데, 이건 거북 등에 있는 문양, 그래서 귀 문양이라고 하고..."]
세 개의 기쁠 ‘희’ 자로 문양을 낸 ‘삼희자 발’, 궁중의 가마에 달던 연발, 위패를 가리는 발이 있는가 하면 임금의 제를 올리는 정자각 무덤 앞 신문을 가리는 신염 등 종류도 다양하고 화려합니다.
[조대용/염장 : "검붉은 색으로 옻칠을 하고 그다음에 실 자체에는 짙은 쑥색으로 이렇게 했습니다. (줄은) 올렸다 내렸다 하는 용도로... 고종황제가 발 앞에서 신하들을 이렇게 해서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먹으로 문양을 넣어 사진 속 발을 재현했는데요, 솜씨 좋은 증조부가 먹을 새겨 만든 발은 조부, 부친을 거쳐 4대 조대용 염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조대용/염장 : "시초인 할아버지께서 향기 나는 먹을 가지고 문양을 새겨서 임금에게 진상했다고... 이걸 저도 이렇게 한번 만들어본 거지요. 먹으로."]
가늘지만 견고하고 마디가 가는 시릿대 껍질을 벗겨 쪼갠 뒤 속대와 겉대를 분리해 말리고, 다시 칼로 쪼개고 나서야 대오리를 뽑습니다.
쇠판의 미세한 구멍을 수차례 통과해 0.6mm의 두께로 다듬은 대오리는 발 하나를 만드는 데 1,700개, 2,000개가 들어갑니다.
대오리 가닥 수와 실 올의 수를 계산해 도면을 그리고 나면 비로소 발 치기가 시작되는데요,
2010년 이수자가 된 숙미 씨는 부친에 이어 5대째 염장 기능을 전수 받고 있습니다.
[김숙미/염장 이수자 : "솔직히 이걸 배우러 오시는 분들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시작을 하게 됐습니다.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 뭐가 있을까..."]
그래서 발을 자수, 목공과 접목하고, 실생활에 필요한 쟁반이나 차 받침, 붓 발로 공예 영역을 넓혔습니다.
조대용 명장도 전통 문살을 현대적 문양으로 재현하고, 화가와 공동작업으로 발에 그림을 그리는 등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통제영 백화당.
["이 선을 해가지고 가고 또 이쪽에선 어디 선을 해가지고..."]
서툰 솜씨지만 발을 엮는 마음은 설레고 진지한데요,
쓰임새가 뜸해진 발을 직접 만드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양영란/통영시 미수동 : "이건 다른 세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선생님 작품 봤을 때 대나무가 쌓여서 발이 되지만 사실은 시간이 쌓여서 되는 것이다."]
[이은미/통영시 북신동 : "통영대발 같은 경우에는 이제 명맥이 많이 이어지지 않고 있고 계승 발전시켜서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통영의 한 갤러리. 장인의 열정과 시간과의 싸움으로 엮은 대발이 세상에 내걸렸습니다.
[박경희/공예가 : "사람이 얼마의 시간을 들여서 이렇게 해야지 이런 작업이 나올까. 전통과 현대의 조화로움으로 너무 조화롭게 잘 어울린다..."]
대나무와 함께 대를 잇는 사이 장인의 발에는 200년의 내력과 시간이 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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