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대 이효연 교수 연구팀이 방사선 육종기술을 통해 최초로 개발한 무궁화 신품종. 나무 한 그루에서 세 가지 다른 색의 꽃이 피어나는 것이 특징이다. 이효연 교수 제공
제주대학교 연구팀이 한 나무에서 세 가지 다른 색의 꽃이 피는 무궁화 나무 품종을 최초로 개발해 학계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보통 키 3~4m 높이로 자라는 무궁화는 한 나무에서 한 가지 색깔의 꽃이 피는데요. 서로 다른 꽃나무의 가지를 잇는 '접붙이기'로 무궁화 한 그루에서 100가지가 넘는 색깔의 꽃을 피워낸 사례는 있지만, 접목이 아닌 방식으로 무궁화 한 그루에서 세 가지 이상 색깔의 꽃을 피워낸 건 전례가 없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 10년 전 '방사선 처리'된 무궁화 한 그루…'세 가지 꽃'이 동시에
장맛비가 내리던 이달 15일, 제주대학교 아열대원예산업연구소. 하우스 문을 열고 지나자, 연분홍빛 무궁화가 가득 심긴 너른 잔디밭이 펼쳐졌습니다. 이곳 한가운데 서 있는 성인 남성 키만 한 무궁화 나무 한 그루도 빗물을 머금고, 소담하게 꽃송이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제주대 아열대원예산업연구소에서 이효연 교수가 새로 개발한 무궁화 신품종을 소개하고 있다. 10년 전 방사선 처리를 거친 이 무궁화에선 해마다 세 가지 색깔의 꽃이 분화해서 피고 있다.
자줏빛, 연분홍, 순백색 등 3색 무궁화 꽃이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이 꽃나무를 자세히 보니, 밑동은 오직 하나뿐. 한 몸통에서 뻗어 나온 가지마다 붉은색부터 흰색까지, 세 가지 다른 빛깔 꽃이 탐스럽게 피어있었습니다.
이 무궁화 나무는 10년 전, 제주대 이효연 교수 연구팀이 심은 것입니다. 당시 연구팀의 목표는 다양한 색깔의 무궁화 품종 개발. 이 교수 연구팀은 '치구'라는 이름의 무궁화 품종을 모(母) 품종으로 삼아, 신품종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연구팀은 어린 엄마 품종의 수분(受粉) 수정 시기, 즉 꽃을 피우는 시기에 코발트 60(C60) 방사선을 쬐었습니다. 이렇게 방사선 처리된 꽃에서 '돌연변이 종자'를 얻고 인공 배양해, 땅에 심어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제주대 아열대원예산업연구소의 식물 조직 인공 배양 시설.
방사선을 쬔 무궁화 나무는 다른 꽃나무들 사이에서 평범하게 자라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해를 거듭하며 밑동이 두꺼워지고, 여름마다 꽃을 활짝 피우며 자라기를 5년째. 연구팀의 눈에 흥미로운 광경이 포착됐습니다. 붉은색부터 순백에 이르는 3가지 색깔의 꽃이 '나무 한 그루'에서 한꺼번에 목격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효연 교수는 "독자적인 무궁화 나무가 각각 꽃을 피우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무 밑에서부터 관찰을 해보니 꽃나무 세 그루가 아닌, 하나의 몸통이었다"면서 "그 전에는 나무가 작다 보니 다른 무궁화 꽃 사이에서 눈에 잘 띄지 않아 몰랐는데, 사람 눈높이만큼 키가 자람에 따라 나무 한 그루에서 '세 가지 색깔의 꽃'이 분화한 것을 알게 됐다"고 첫 관찰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제주대 이효연 교수팀이 방사선 육종기술을 통해 최초로 개발한 무궁화 신품종. ‘주가지’에서 세 갈래 가지로 뻗어 나오면서, 가지마다 다른 색깔의 꽃이 피어나고 있다.
연구팀은 10년 전, 방사선 육종 기술로 만든 해당 돌연변이 종자에서 자연스럽게 유전자 변이가 일어났고, 세 종류의 꽃이 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교수는 "자세한 메커니즘은 과학적으로 좀 더 검증을 해봐야 하겠지만, '주가지'에서 세 갈래 가지로 뻗어 나오면서 꽃의 색깔이 바뀌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무궁화 나무에서는 해마다 자줏빛과 연분홍, 순백의 세 가지 꽃이 꾸준히 피어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는 점을 확인한 연구팀은 이번 방사선 육종 기술을 이용한 '삼색 무궁화 꽃' 연구 성과를 국제 학술지에 발표하는 한편, 특허출원도 신청할 계획입니다.
제주대 연구팀은 앞서 2007년에도 이처럼 방사선 처리를 통해 만든 돌연변이 종자로 '네 잎 클로버와 다섯 잎 클로버' 대량 생산에도 성공해, 주목받은 바 있습니다.
꽃나무 한 그루에서 여러 빛깔의 꽃을 피우는 것은 보통 '접목'과 같은 간단한 재배 방식으로 구현 가능합니다. 즉, 서로 다른 색의 꽃을 피우는 각각의 나무 줄기를 잘라, 식물 조직끼리 접붙여 하나의 개체로 만드는 겁니다. 이 방법으로 한 꽃나무에서 서너 색깔의 장미를 피워내거나, 무궁화 나무 한 그루에 116가지 품종을 모은 사례가 있습니다.
그러나 '접목'이 아닌 방식으로 한 무궁화 나무에서 세 가지 이상 다른 색 꽃을 피워낸 건, 국내외에서 전례를 찾기 어렵다는 게 연구자들의 공통된 말입니다. 국립산림과학원에서 무궁화 품종 개발 연구를 하는 권해연 박사는 "식물체에 방사선을 쪼여서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연구는 기존에도 많이 진행됐지만, 방사선 육종을 통해 하나의 식물체에서 다양한 꽃을 피우게 하는 건 굉장히 드문 사례"라면서 "또 이것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10여 년간 관찰됐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정말 희귀하다고 할 수 있다"고 학술 가치를 인정했습니다.
■ 방사선 육종기술로 만든 병해충에 강하고 맛 좋은 과일…예쁘고 아름다운 관상 식물도 개발
방사선 육종기술은 식물 종자나 묘목에 방사선을 쪼여 유전자·염색체의 돌연변이를 일으킨 뒤, 우수한 형질을 지닌 변이체를 선발해 새로운 유전자원을 개발하는 기술입니다. 과일의 맛과 향을 더하고, 자연적으로는 없는 꽃 색깔이나 잎 무늬 등을 만들고, 식물체의 크기를 조절하거나 각종 병해충을 더 잘 이겨내도록 개선하는 등의 연구는 이미 오래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먹고 있는 '골드 20세기'라고 불리는 배 품종은 일본에서 방사선 처리를 통해 만든 대표적인 품종이기도 합니다.
무궁화 돌연변이 육종 연구자들은 '집에서 키울 수 있는 아담한 무궁화', '진딧물 같은 병해충에 강한 무궁화' 등 가꾸기 쉬운 반려 식물로서 무궁화를 개량하는 것뿐만 아니라, 화장품 원료나 건강기능식품 등 누구나 유용하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생활 소재'로서의 연구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제주대 연구팀의 연구 성과가 방사선 육종에서 나오는 '변이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좋은 재료로서 학술 가치도 높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권해연 박사는 "방사선 육종기술 연구를 통해 희귀하고 관상 가치가 높은 품종들을 만들게 된다면 우리나라 무궁화에 대한 관심도 높일 수 있고, 무궁화 재배 농가의 소득 증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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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궁화 한 그루서 3색 꽃이 ‘활짝’…신품종에 학계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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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07-25 08:00:12
제주대학교 연구팀이 한 나무에서 세 가지 다른 색의 꽃이 피는 무궁화 나무 품종을 최초로 개발해 학계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보통 키 3~4m 높이로 자라는 무궁화는 한 나무에서 한 가지 색깔의 꽃이 피는데요. 서로 다른 꽃나무의 가지를 잇는 '접붙이기'로 무궁화 한 그루에서 100가지가 넘는 색깔의 꽃을 피워낸 사례는 있지만, 접목이 아닌 방식으로 무궁화 한 그루에서 세 가지 이상 색깔의 꽃을 피워낸 건 전례가 없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 10년 전 '방사선 처리'된 무궁화 한 그루…'세 가지 꽃'이 동시에
장맛비가 내리던 이달 15일, 제주대학교 아열대원예산업연구소. 하우스 문을 열고 지나자, 연분홍빛 무궁화가 가득 심긴 너른 잔디밭이 펼쳐졌습니다. 이곳 한가운데 서 있는 성인 남성 키만 한 무궁화 나무 한 그루도 빗물을 머금고, 소담하게 꽃송이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자줏빛, 연분홍, 순백색 등 3색 무궁화 꽃이 신비로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이 꽃나무를 자세히 보니, 밑동은 오직 하나뿐. 한 몸통에서 뻗어 나온 가지마다 붉은색부터 흰색까지, 세 가지 다른 빛깔 꽃이 탐스럽게 피어있었습니다.
이 무궁화 나무는 10년 전, 제주대 이효연 교수 연구팀이 심은 것입니다. 당시 연구팀의 목표는 다양한 색깔의 무궁화 품종 개발. 이 교수 연구팀은 '치구'라는 이름의 무궁화 품종을 모(母) 품종으로 삼아, 신품종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연구팀은 어린 엄마 품종의 수분(受粉) 수정 시기, 즉 꽃을 피우는 시기에 코발트 60(C60) 방사선을 쬐었습니다. 이렇게 방사선 처리된 꽃에서 '돌연변이 종자'를 얻고 인공 배양해, 땅에 심어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방사선을 쬔 무궁화 나무는 다른 꽃나무들 사이에서 평범하게 자라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해를 거듭하며 밑동이 두꺼워지고, 여름마다 꽃을 활짝 피우며 자라기를 5년째. 연구팀의 눈에 흥미로운 광경이 포착됐습니다. 붉은색부터 순백에 이르는 3가지 색깔의 꽃이 '나무 한 그루'에서 한꺼번에 목격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효연 교수는 "독자적인 무궁화 나무가 각각 꽃을 피우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나무 밑에서부터 관찰을 해보니 꽃나무 세 그루가 아닌, 하나의 몸통이었다"면서 "그 전에는 나무가 작다 보니 다른 무궁화 꽃 사이에서 눈에 잘 띄지 않아 몰랐는데, 사람 눈높이만큼 키가 자람에 따라 나무 한 그루에서 '세 가지 색깔의 꽃'이 분화한 것을 알게 됐다"고 첫 관찰 당시를 떠올렸습니다.
연구팀은 10년 전, 방사선 육종 기술로 만든 해당 돌연변이 종자에서 자연스럽게 유전자 변이가 일어났고, 세 종류의 꽃이 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교수는 "자세한 메커니즘은 과학적으로 좀 더 검증을 해봐야 하겠지만, '주가지'에서 세 갈래 가지로 뻗어 나오면서 꽃의 색깔이 바뀌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무궁화 나무에서는 해마다 자줏빛과 연분홍, 순백의 세 가지 꽃이 꾸준히 피어나고 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이 일시적인 게 아니라는 점을 확인한 연구팀은 이번 방사선 육종 기술을 이용한 '삼색 무궁화 꽃' 연구 성과를 국제 학술지에 발표하는 한편, 특허출원도 신청할 계획입니다.
제주대 연구팀은 앞서 2007년에도 이처럼 방사선 처리를 통해 만든 돌연변이 종자로 '네 잎 클로버와 다섯 잎 클로버' 대량 생산에도 성공해, 주목받은 바 있습니다.
꽃나무 한 그루에서 여러 빛깔의 꽃을 피우는 것은 보통 '접목'과 같은 간단한 재배 방식으로 구현 가능합니다. 즉, 서로 다른 색의 꽃을 피우는 각각의 나무 줄기를 잘라, 식물 조직끼리 접붙여 하나의 개체로 만드는 겁니다. 이 방법으로 한 꽃나무에서 서너 색깔의 장미를 피워내거나, 무궁화 나무 한 그루에 116가지 품종을 모은 사례가 있습니다.
그러나 '접목'이 아닌 방식으로 한 무궁화 나무에서 세 가지 이상 다른 색 꽃을 피워낸 건, 국내외에서 전례를 찾기 어렵다는 게 연구자들의 공통된 말입니다. 국립산림과학원에서 무궁화 품종 개발 연구를 하는 권해연 박사는 "식물체에 방사선을 쪼여서 새로운 품종을 만드는 연구는 기존에도 많이 진행됐지만, 방사선 육종을 통해 하나의 식물체에서 다양한 꽃을 피우게 하는 건 굉장히 드문 사례"라면서 "또 이것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10여 년간 관찰됐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정말 희귀하다고 할 수 있다"고 학술 가치를 인정했습니다.
■ 방사선 육종기술로 만든 병해충에 강하고 맛 좋은 과일…예쁘고 아름다운 관상 식물도 개발
방사선 육종기술은 식물 종자나 묘목에 방사선을 쪼여 유전자·염색체의 돌연변이를 일으킨 뒤, 우수한 형질을 지닌 변이체를 선발해 새로운 유전자원을 개발하는 기술입니다. 과일의 맛과 향을 더하고, 자연적으로는 없는 꽃 색깔이나 잎 무늬 등을 만들고, 식물체의 크기를 조절하거나 각종 병해충을 더 잘 이겨내도록 개선하는 등의 연구는 이미 오래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먹고 있는 '골드 20세기'라고 불리는 배 품종은 일본에서 방사선 처리를 통해 만든 대표적인 품종이기도 합니다.
무궁화 돌연변이 육종 연구자들은 '집에서 키울 수 있는 아담한 무궁화', '진딧물 같은 병해충에 강한 무궁화' 등 가꾸기 쉬운 반려 식물로서 무궁화를 개량하는 것뿐만 아니라, 화장품 원료나 건강기능식품 등 누구나 유용하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생활 소재'로서의 연구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제주대 연구팀의 연구 성과가 방사선 육종에서 나오는 '변이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좋은 재료로서 학술 가치도 높다고 평하고 있습니다. 권해연 박사는 "방사선 육종기술 연구를 통해 희귀하고 관상 가치가 높은 품종들을 만들게 된다면 우리나라 무궁화에 대한 관심도 높일 수 있고, 무궁화 재배 농가의 소득 증대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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