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진국] 60년 전 명감독은 이미 알았네, ‘몰카’의 본질을
입력 2022.08.14 (08:00)
수정 2022.12.26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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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파월 감독의 ‘저주받은 카메라’(1960) 중 한 장면. (출처: IMDB)
※매주 일요일, 그 주의 시사 이슈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 9일, 기숙사 샤워실 등에 카메라를 설치해 동료와 제자들을 700차례나 불법 촬영한 전직 고교 교사가 징역 9년에서 7년으로 감형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카메라에 찍힌 영상이 '청소년 성 착취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감형 사유였다. 단순히 용변을 보거나 샤워를 하는 건 일반인의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행위가 아니라는 논리다.
2심 재판부는 판결을 내리며 '형벌의 법규 해석은 엄격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관련 법조문을 들여다 보면 '청소년 성 보호법상 성 착취물 제작 혐의'가 아닌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가 어떻게 도출됐는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아쉬움은 남는다. 디지털 성범죄는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는데, 관련 법규와 해석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카메라에 무엇이 찍혔는지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누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촬영했는지, 찍힌 뒤엔 어떻게 쓰였는지 등을 폭넓게 따지지 않는다면 '레깅스는 일상복이니까 찍어도 무죄' 수준의 판단이 또 나오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애초에 가해자들이 느끼는 성적 만족은 '본다' 혹은 '찍는다'는 행위 그 자체에서 온다. 타인의 일상 혹은 신체를 포착해 자신의 휴대전화 안에 가둬둘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몰래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피해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자기 삶과 몸의 통제권을 잃는다.
카메라가 본격적으로 대중화 되기도 전인 1960년, 이 범죄의 본질을 일찍이 꿰뚫어 본 영화가 있다. '카메라는 무기'라는 표현을 은유가 아닌 말 그대로 담아낸 작품, 영국의 명감독 마이클 파월이 연출한 스릴러 영화 '저주받은 카메라(Peeping Tom)'다.
영화 ‘저주받은 카메라’의 한 장면(출처: IMDB)
주인공 마크(카를하인츠 뵘)는 손에서 카메라를 떼놓는 법이 없는 청년이다. 영화 스튜디오에서 촬영 보조 기사로 일하고 부업으로는 야한 사진을 찍는다. 미모의 여배우와 반쯤 벗은 모델들이 차례로 카메라 앞에 서지만 마크는 완벽하게 연출된 모습에는 흥미가 없다. 얼굴 한쪽에 큰 흉터가 있어 미추를 가늠하기 어려운 여성, 찍지 말라고 성내는 경찰관 등을 필름에 담고 흥분한다.
영화의 규칙상 이런 청년이 정상일 리 없다. 일견 수줍음 많고 견실한 듯 보이는 마크의 정체는 사람을 죽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찍기 위해 살인을 반복하는 연쇄 살인마다. 범행 전 과정은 물론 경찰의 초동 수사까지 현장으로 돌아와 카메라에 기록하고 어두운 방 안에서 자신이 찍은 필름을 연거푸 돌려 본다.
마크의 정체와 범행 도구는 비교적 빨리 베일을 벗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영화가 숨겨 두는 비밀이 있다. 살해당한 여성들이 하나같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유다. 여기에 쓰진 않겠지만 짐작하기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다. 영화가 내내 '촬영한다'는 행위의 일방성과 폭력성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크의 살인 필름 속 여자들은 자신이 살해당할 운명인 걸 모르듯 찍히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카메라에 자신이 어떻게 노출될지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속수무책으로 고통을 받는다. '촬영'과 '살인'을 아예 하나의 행위로 결합한 주인공을 통해 감독은 이 둘이 얼마나 비슷한지 설명하며 '본다'는 행위 자체가 가진 폭력성을 실감하게 만든다. 특히 관객들을 아예 마크의 뷰파인더 앞에 데려다 놓는 연출은 그 당시에도 격렬한 논란이 됐는데, 감독은 애초에 그런 논쟁을 피할 생각이 없었던 듯하다.
어린 마크에게 처음 카메라를 선물한 심리학자 아버지 역할로 감독 본인이 카메오 출연했는데 영화 역시 관음증의 영역 안에 있음을 훌륭하게 돌려 말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OTT 서비스 가운데에선 '왓챠'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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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네마진국] 60년 전 명감독은 이미 알았네, ‘몰카’의 본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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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22-12-26 09:39:20
※매주 일요일, 그 주의 시사 이슈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지난 9일, 기숙사 샤워실 등에 카메라를 설치해 동료와 제자들을 700차례나 불법 촬영한 전직 고교 교사가 징역 9년에서 7년으로 감형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카메라에 찍힌 영상이 '청소년 성 착취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감형 사유였다. 단순히 용변을 보거나 샤워를 하는 건 일반인의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행위가 아니라는 논리다.
2심 재판부는 판결을 내리며 '형벌의 법규 해석은 엄격해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관련 법조문을 들여다 보면 '청소년 성 보호법상 성 착취물 제작 혐의'가 아닌 '성폭력처벌법상 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논리가 어떻게 도출됐는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아쉬움은 남는다. 디지털 성범죄는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는데, 관련 법규와 해석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카메라에 무엇이 찍혔는지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누가 무슨 의도를 가지고 촬영했는지, 찍힌 뒤엔 어떻게 쓰였는지 등을 폭넓게 따지지 않는다면 '레깅스는 일상복이니까 찍어도 무죄' 수준의 판단이 또 나오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
애초에 가해자들이 느끼는 성적 만족은 '본다' 혹은 '찍는다'는 행위 그 자체에서 온다. 타인의 일상 혹은 신체를 포착해 자신의 휴대전화 안에 가둬둘 수 있다는 게 핵심이다. 몰래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피해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자기 삶과 몸의 통제권을 잃는다.
카메라가 본격적으로 대중화 되기도 전인 1960년, 이 범죄의 본질을 일찍이 꿰뚫어 본 영화가 있다. '카메라는 무기'라는 표현을 은유가 아닌 말 그대로 담아낸 작품, 영국의 명감독 마이클 파월이 연출한 스릴러 영화 '저주받은 카메라(Peeping Tom)'다.
주인공 마크(카를하인츠 뵘)는 손에서 카메라를 떼놓는 법이 없는 청년이다. 영화 스튜디오에서 촬영 보조 기사로 일하고 부업으로는 야한 사진을 찍는다. 미모의 여배우와 반쯤 벗은 모델들이 차례로 카메라 앞에 서지만 마크는 완벽하게 연출된 모습에는 흥미가 없다. 얼굴 한쪽에 큰 흉터가 있어 미추를 가늠하기 어려운 여성, 찍지 말라고 성내는 경찰관 등을 필름에 담고 흥분한다.
영화의 규칙상 이런 청년이 정상일 리 없다. 일견 수줍음 많고 견실한 듯 보이는 마크의 정체는 사람을 죽이고 싶어서가 아니라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찍기 위해 살인을 반복하는 연쇄 살인마다. 범행 전 과정은 물론 경찰의 초동 수사까지 현장으로 돌아와 카메라에 기록하고 어두운 방 안에서 자신이 찍은 필름을 연거푸 돌려 본다.
마크의 정체와 범행 도구는 비교적 빨리 베일을 벗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영화가 숨겨 두는 비밀이 있다. 살해당한 여성들이 하나같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기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유다. 여기에 쓰진 않겠지만 짐작하기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다. 영화가 내내 '촬영한다'는 행위의 일방성과 폭력성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크의 살인 필름 속 여자들은 자신이 살해당할 운명인 걸 모르듯 찍히고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고 카메라에 자신이 어떻게 노출될지 통제할 수 없는 것처럼 속수무책으로 고통을 받는다. '촬영'과 '살인'을 아예 하나의 행위로 결합한 주인공을 통해 감독은 이 둘이 얼마나 비슷한지 설명하며 '본다'는 행위 자체가 가진 폭력성을 실감하게 만든다. 특히 관객들을 아예 마크의 뷰파인더 앞에 데려다 놓는 연출은 그 당시에도 격렬한 논란이 됐는데, 감독은 애초에 그런 논쟁을 피할 생각이 없었던 듯하다.
어린 마크에게 처음 카메라를 선물한 심리학자 아버지 역할로 감독 본인이 카메오 출연했는데 영화 역시 관음증의 영역 안에 있음을 훌륭하게 돌려 말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OTT 서비스 가운데에선 '왓챠'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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