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 초대석] 김훈이 그린 ‘청년 안중근’

입력 2022.08.19 (23:56) 수정 2022.08.20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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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을 통해 예리한 죽비 같은 메시지를 세상에 전달했던 김훈 소설가가 이번엔 안중근 의사와 함께 돌아왔습니다.

라인 초대석에서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어려운 걸음 하셨습니다.

지난해 건강이 좋지 않으셨다고 했는데, 지금은 좀 어떠신가요?

[답변]

금년 봄에 좋아졌어요.

지금 뭐 크게 아픈 데 없고 큰 힘도 없지만 좀 이제, 살살 조심조심 살고 있습니다.

[앵커]

건강을 회복하신 뒤 숙제를 더 미룰 수 없다며 이번달 내신 책이 '하얼빈' 입니다.

안중근 의사 거사 전후 5개월을 압축적으로 다뤘는데요.

쓰신 건 3개월이 걸렸다지만 대학생 시절부터 구상하셨던 책이죠.

그렇게 보면 50년이나 걸렸습니다?

[답변]

50년의 세월이 다 들어간 건 아니고 제가 대학교 때 안중근 심문 조서를 읽었어요.

그것은 뭐 안중근 의사가 쓴 책이 아니고 안중근 의사 거사 후에 붙잡혀가지고 안중근 의사를 수사하고 사형을 언도했던 검찰관과 그 재판관들이 쓴 조서죠, 공문서.

그걸 읽어보고 깜짝 놀랐어요.

거기에 참 아주 엄청나게 비극적이고 엄청나게 아름다운 세계가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 조서를 읽어 보니 짧게 대답을 하는데 어쨌든 그 짧은 문장에 이렇게 읽을 때마다 고압전류에 감전되는 것처럼 찌릿찌릿한 충격을 느꼈지요.

언젠가 이걸로 글을 써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졌는데 그걸 잊어버리고 있다 50년 후에 지난 봄에 겨우 썼습니다.

하여간 50년 동안 다 쓴 건 아닌데, 세월이 많이 걸린 것이죠.

[앵커]

50년 동안 안 쓰셨던 건데 3개월 만에 쓰셨으니까 그 동안 머릿속에 구상은 다 돼있을 것 같은데요?

[답변]

하여튼 내 마음속에서 아마 잘 녹아있었던 것 같아요.

금방 쓸 수 있었습니다.

[앵커]

선생님 작업실에 흰 명주옷 입은 안중근 의사 사진도 걸려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에 글 쓰실 때 영감을 좀 얻으셨습니까?

[답변]

저게 사형 직전에 찍은 사진이죠.

아마 일본 감옥에서 기록으로 남기려고 찍은 사진인 것 같은데 어머니가 해주신 옷, 흰 명주 두루마기를 입고 수갑을 차고 있는 게 볼 수가 있지요.

그 밑에는 검은 바지를 입으셨다고 그랬는데 직금 저 사진은 잘 안 보이는데 일어서면 이제 검은 바지가 보이는 것이죠.

그게 흑백의 대비가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분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얼굴 표정을 보면, 이제 곧 처형당하실 분인데도 아주 편안해요.

저 분이 거사 직후에 체포됐을 때는 그 얼굴 표정이 불안하고 어수선한 표정이었어요.

그런데 저 처형 직전에 찍은 사진을 보면은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다 완성하고 이제 가시는 분의 그런 편안함 같은 게 있더군요.

[앵커]

'왜 지금 안중근'이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안 의사를 통해 우리 시대에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셨습니까?

[답변]

안중근 의사가 우선 제일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이 세계의 현실입니다.

약육강식의 현실이 아직도 그렇게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과 이분이 주장했던 동양평화의 문제, 오늘날도 심각하죠.

지금 한국과 대만 사태를 봐도 지난주부터 지난주에 벌어진 대만 사태를 봐도 동양평화의 문제는 정말 심각한 것이로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외쳤던 그 두 개의 이슈, 약육강식에 승복할 수 없다는 것과 동양평화, 이것은 지금도 역시 여전히 유효한 외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앵커]

선생님께선 꾸준히 사회 문제에도 목소리를 내셨는데요.

2년 전 뉴스라인에 출연하셔서 인류가 코로나로 심판대에 올랐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곧 드러날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 답을 찾으셨습니까?

[답변]

그때 저는 이 사태가 결국 내가 바라는 그 고통 분담의 모습으로 해결이 되기를 바랐어요.

그런 바람이 있었고... 또 하나는 결국 고통 분담의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까 저의 걱정이 현실화된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나는 우리 지도자들이 국민의, 많은 국민의 뜻에 따라서 많은 국민이 하자는 대로 따라서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많은 국민이 하기 싫다는 쪽, 고통을 분담하는 것, 우리가 이런 그 환경 재난과 기후 재난 속에서 앞으로 좀 더 불편하게 살아야 된다는 것, 이런 메시지를 국민한테 전하고 그쪽으로 국민을 이끌고 나갈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은 쉬운 거예요, 사실은.

그런데 하기 싫다는 쪽으로 몰고 나가는 게 정말로 훌륭한 지도자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앵커]

최근엔 어떤 사회 문제에 주목하고 계십니까?

[답변]

나는 지금 우리 사회가 자유가, 개인의 자유와 기업의 자유를 더 확대해서 이 사회의 여러 가지 그 양극화의 문제나 모순과 갈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거기에 대해서 많은 의문을 갖고 있어요.

오히려 기업의 규제를 다 철폐하고 기업의 자유를 무한대로 보장을 하면 우리가 다 잘 살게 된다는 논리도 있는 것 같은데 아마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 규제라는 것은 풀어야 될 규제가 있고, 유지해야 될 규제가 있고, 더 강화해야 될 규제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자유를 지금 무한정 자꾸만 확대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게 더 악화되는 것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참 더 깊은 생각을 해야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앵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라인 초대석, 소설가 김훈 선생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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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8-19 23:56:49
    • 수정2022-08-20 00: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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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칼의 노래', '남한산성' 등을 통해 예리한 죽비 같은 메시지를 세상에 전달했던 김훈 소설가가 이번엔 안중근 의사와 함께 돌아왔습니다.

라인 초대석에서 모셨습니다.

어서 오세요.

안녕하세요.

어려운 걸음 하셨습니다.

지난해 건강이 좋지 않으셨다고 했는데, 지금은 좀 어떠신가요?

[답변]

금년 봄에 좋아졌어요.

지금 뭐 크게 아픈 데 없고 큰 힘도 없지만 좀 이제, 살살 조심조심 살고 있습니다.

[앵커]

건강을 회복하신 뒤 숙제를 더 미룰 수 없다며 이번달 내신 책이 '하얼빈' 입니다.

안중근 의사 거사 전후 5개월을 압축적으로 다뤘는데요.

쓰신 건 3개월이 걸렸다지만 대학생 시절부터 구상하셨던 책이죠.

그렇게 보면 50년이나 걸렸습니다?

[답변]

50년의 세월이 다 들어간 건 아니고 제가 대학교 때 안중근 심문 조서를 읽었어요.

그것은 뭐 안중근 의사가 쓴 책이 아니고 안중근 의사 거사 후에 붙잡혀가지고 안중근 의사를 수사하고 사형을 언도했던 검찰관과 그 재판관들이 쓴 조서죠, 공문서.

그걸 읽어보고 깜짝 놀랐어요.

거기에 참 아주 엄청나게 비극적이고 엄청나게 아름다운 세계가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 조서를 읽어 보니 짧게 대답을 하는데 어쨌든 그 짧은 문장에 이렇게 읽을 때마다 고압전류에 감전되는 것처럼 찌릿찌릿한 충격을 느꼈지요.

언젠가 이걸로 글을 써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졌는데 그걸 잊어버리고 있다 50년 후에 지난 봄에 겨우 썼습니다.

하여간 50년 동안 다 쓴 건 아닌데, 세월이 많이 걸린 것이죠.

[앵커]

50년 동안 안 쓰셨던 건데 3개월 만에 쓰셨으니까 그 동안 머릿속에 구상은 다 돼있을 것 같은데요?

[답변]

하여튼 내 마음속에서 아마 잘 녹아있었던 것 같아요.

금방 쓸 수 있었습니다.

[앵커]

선생님 작업실에 흰 명주옷 입은 안중근 의사 사진도 걸려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에 글 쓰실 때 영감을 좀 얻으셨습니까?

[답변]

저게 사형 직전에 찍은 사진이죠.

아마 일본 감옥에서 기록으로 남기려고 찍은 사진인 것 같은데 어머니가 해주신 옷, 흰 명주 두루마기를 입고 수갑을 차고 있는 게 볼 수가 있지요.

그 밑에는 검은 바지를 입으셨다고 그랬는데 직금 저 사진은 잘 안 보이는데 일어서면 이제 검은 바지가 보이는 것이죠.

그게 흑백의 대비가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분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데 얼굴 표정을 보면, 이제 곧 처형당하실 분인데도 아주 편안해요.

저 분이 거사 직후에 체포됐을 때는 그 얼굴 표정이 불안하고 어수선한 표정이었어요.

그런데 저 처형 직전에 찍은 사진을 보면은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다 완성하고 이제 가시는 분의 그런 편안함 같은 게 있더군요.

[앵커]

'왜 지금 안중근'이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안 의사를 통해 우리 시대에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셨습니까?

[답변]

안중근 의사가 우선 제일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이 세계의 현실입니다.

약육강식의 현실이 아직도 그렇게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과 이분이 주장했던 동양평화의 문제, 오늘날도 심각하죠.

지금 한국과 대만 사태를 봐도 지난주부터 지난주에 벌어진 대만 사태를 봐도 동양평화의 문제는 정말 심각한 것이로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외쳤던 그 두 개의 이슈, 약육강식에 승복할 수 없다는 것과 동양평화, 이것은 지금도 역시 여전히 유효한 외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앵커]

선생님께선 꾸준히 사회 문제에도 목소리를 내셨는데요.

2년 전 뉴스라인에 출연하셔서 인류가 코로나로 심판대에 올랐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곧 드러날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 답을 찾으셨습니까?

[답변]

그때 저는 이 사태가 결국 내가 바라는 그 고통 분담의 모습으로 해결이 되기를 바랐어요.

그런 바람이 있었고... 또 하나는 결국 고통 분담의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까 저의 걱정이 현실화된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나는 우리 지도자들이 국민의, 많은 국민의 뜻에 따라서 많은 국민이 하자는 대로 따라서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많은 국민이 하기 싫다는 쪽, 고통을 분담하는 것, 우리가 이런 그 환경 재난과 기후 재난 속에서 앞으로 좀 더 불편하게 살아야 된다는 것, 이런 메시지를 국민한테 전하고 그쪽으로 국민을 이끌고 나갈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은 쉬운 거예요, 사실은.

그런데 하기 싫다는 쪽으로 몰고 나가는 게 정말로 훌륭한 지도자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앵커]

최근엔 어떤 사회 문제에 주목하고 계십니까?

[답변]

나는 지금 우리 사회가 자유가, 개인의 자유와 기업의 자유를 더 확대해서 이 사회의 여러 가지 그 양극화의 문제나 모순과 갈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거기에 대해서 많은 의문을 갖고 있어요.

오히려 기업의 규제를 다 철폐하고 기업의 자유를 무한대로 보장을 하면 우리가 다 잘 살게 된다는 논리도 있는 것 같은데 아마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 규제라는 것은 풀어야 될 규제가 있고, 유지해야 될 규제가 있고, 더 강화해야 될 규제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런 자유를 지금 무한정 자꾸만 확대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게 더 악화되는 것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참 더 깊은 생각을 해야 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앵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라인 초대석, 소설가 김훈 선생님 모시고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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