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구미 물 분쟁’, 발상 전환으로 해결하겠다 했지만…

입력 2022.08.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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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된 장 시몽 베르텔레미의 작품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입니다.

기원전 지금의 터키 땅에 있던 프리기아의 수도 고르디움에는 복잡하게 얽힌 매듭이 달린 고르디우스의 전차가 있었습니다. 그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를 정복한다는 예언이 있었는데요. 많은 이들이 풀지 못한 매듭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단칼에 베어버렸고 예언대로 아시아를 정복했다는 전설이 내려옵니다.

이 전설에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른다는 표현이 나왔습니다. '대담한 방법으로 혹은 발상의 전환으로 복잡한 문제를 푼다' 는 뜻인데요, 경북 구미시와 취수원 이전 갈등을 빚고 있는 대구시의 홍준표 시장이 최근 이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 대구-구미 물 분쟁 종료?…'맑은 물 상생 협정' 해지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17일 SNS에 "구미시와의 13년에 걸친 물 분쟁을 종료하고자 한다"며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잘라 버리듯이 대구 시민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정치적, 정책적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날 대구시는 구미 해평 취수장 물의 대구 공급을 골자로 한 '맑은 물 나눔과 상생발전에 관한 협정'을 맺은 경북도와 구미시 등 5개 기관에 협정 해지를 통보하고 안동댐 물을 공급받는 '맑은 물 하이웨이'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 해묵은 '물 분쟁', 봉합되나 했는데…

대구와 구미의 물 분쟁은 해묵은 갈등입니다. 연원은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사건 이후 대구시는 취수원 이전을 추진합니다. 당시 대구에 물을 공급하는 취수원이 페놀 등이 유출된 구미산업단지로부터 하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구시는 낙동강 상류에 있는 구미 해평취수장을 새 취수원 이전 후보지로 꼽았습니다.

그러자 구미시가 반발했습니다. 대구에서 물을 빼가면 해평취수장의 수량이 줄고 수질도 나빠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구미시는 대구가 취수원을 옮길 게 아니라 낙동강 수질을 개선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맞서면서 두 지자체간 갈등은 계속됐습니다.

그러다 2020년 환경부는 대구시가 구미 해평취수장과 안동댐, 임하댐 물을 활용하도록 하는 '취수원 다변화' 용역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후 자치단체 간 협의가 이어졌고, 지난해 구미 해평취수장 공동 활용안이 환경부의 '낙동강 통합 물 관리 방안'으로 제시됐습니다.

구미에서는 반발이 계속 이어졌지만, 권영진 전 대구시장과 장세용 전 구미시장의 합의로 지난 4월 '맑은 물 상생 협정'이 맺어졌습니다.


■ 지자체장 바뀌면서 다시 원점으로

해결의 기미를 보이던 문제는 지난 6월 지방선거를 치른 뒤 또 다른 국면을 맞습니다. 6.1 지방선거로 대구와 구미 두 단체장 모두 바뀌었고 이들의 의견 차로 협정은 파기 수순을 밟게 된 겁니다.

사실 협정 파기는 선거 전부터 우려됐던 일입니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후보 시절부터 "구미 시민과 시의회의 동의를 얻지 않은 졸속 협약"이라며 "낙동강 구미보 위쪽으로 취수원을 이전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 달라"고 했고, 홍준표 대구시장도 후보 때부터 구미가 아닌 "안동댐과 임하댐 등에 관로를 연결해 1급수를 공급하겠다"고 공약해 왔습니다.

결국, 두 단체장의 당선 두 달여 만에 '협정 파기'라는 우려가 현실이 됐습니다.


■ 갑을 관계 역전…홍준표의 승부수 통할까?

지금까지는 홍준표 대구시장의 승부수가 갑을 관계를 역전시킨 모양새입니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대구의 '맑은 물 하이웨이'와 구미의 '해평 취수원 상류 이전안'을 함께 검토해 달라고 환경부에 건의했는데 받아들여 질지는 미지수입니다.

대구시는 협정 폐기와 함께 오·폐수 무방류 시스템 도입 등 환경 규제 강화와 구미 5산단 업종 제한을 요구하면서 구미 경제계에서는 투자 저조와 기업활동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반면, 대구시는 안동시와 안동댐 물의 대구 공급을 위한 협정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안동시는 안동시의회와 물 공급에 따른 요구 조건을 구체화하고 있고 대구시의회도 대구시의 '맑은 물 하이웨이' 정책을 지지하는 성명을 최근 발표했습니다.


■ 의견 수렴 전무…수질 개선·주민 동의 '관건'

하지만 이 역시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우선 대구와 안동 사이 물 공급에 대한 세부 조율이 필요합니다. 일부 환경단체에서는 안동댐의 부유물과 퇴적토의 중금속 오염 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안동·임하댐 물은 낙동강 물보다 비싸서 가정에서 한 달에 1,000원 정도 더 낼 수 있다는 점도 부담입니다.

이런 결정에 안동과 대구시민의 동의를 얻는 절차는 전혀 없었습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후보 시절부터 '맑은 물 하이웨이' 사업을 주창해 왔습니다. 일관성과 속도감 있는 정책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시민 의견 수렴과 다른 자치단체와의 상생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과거부터 취수원 이전의 가장 큰 걸림돌은 구미 시민들의 반발이었죠. 마찬가지로 안동 시민들이 반발할 경우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물 갈등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고르디우스 매듭을 '푸는 것'이 아니라 '잘라버린' 알렉산드로스 왕은 큰 영토를 정복했지만, 나라는 얼마 못 가 다시 분열됐습니다. 정치적인 사안은 극단적인 방법보다 민주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정책의 속도감이 지속성을 보장하지는 않는 만큼 장기적인 물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시민 그리고 다른 자치단체와의 소통과 협의가 더욱 중요해 보입니다.

그래픽: 인푸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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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구미 물 분쟁’, 발상 전환으로 해결하겠다 했지만…
    • 입력 2022-08-24 08:00:17
    취재K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된 장 시몽 베르텔레미의 작품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르는 알렉산드로스 대왕> 입니다.

기원전 지금의 터키 땅에 있던 프리기아의 수도 고르디움에는 복잡하게 얽힌 매듭이 달린 고르디우스의 전차가 있었습니다. 그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를 정복한다는 예언이 있었는데요. 많은 이들이 풀지 못한 매듭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단칼에 베어버렸고 예언대로 아시아를 정복했다는 전설이 내려옵니다.

이 전설에서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자른다는 표현이 나왔습니다. '대담한 방법으로 혹은 발상의 전환으로 복잡한 문제를 푼다' 는 뜻인데요, 경북 구미시와 취수원 이전 갈등을 빚고 있는 대구시의 홍준표 시장이 최근 이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 대구-구미 물 분쟁 종료?…'맑은 물 상생 협정' 해지

홍준표 대구시장은 지난 17일 SNS에 "구미시와의 13년에 걸친 물 분쟁을 종료하고자 한다"며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잘라 버리듯이 대구 시민들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정치적, 정책적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날 대구시는 구미 해평 취수장 물의 대구 공급을 골자로 한 '맑은 물 나눔과 상생발전에 관한 협정'을 맺은 경북도와 구미시 등 5개 기관에 협정 해지를 통보하고 안동댐 물을 공급받는 '맑은 물 하이웨이'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 해묵은 '물 분쟁', 봉합되나 했는데…

대구와 구미의 물 분쟁은 해묵은 갈등입니다. 연원은 1991년 낙동강 페놀 유출 사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사건 이후 대구시는 취수원 이전을 추진합니다. 당시 대구에 물을 공급하는 취수원이 페놀 등이 유출된 구미산업단지로부터 하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구시는 낙동강 상류에 있는 구미 해평취수장을 새 취수원 이전 후보지로 꼽았습니다.

그러자 구미시가 반발했습니다. 대구에서 물을 빼가면 해평취수장의 수량이 줄고 수질도 나빠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구미시는 대구가 취수원을 옮길 게 아니라 낙동강 수질을 개선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맞서면서 두 지자체간 갈등은 계속됐습니다.

그러다 2020년 환경부는 대구시가 구미 해평취수장과 안동댐, 임하댐 물을 활용하도록 하는 '취수원 다변화' 용역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후 자치단체 간 협의가 이어졌고, 지난해 구미 해평취수장 공동 활용안이 환경부의 '낙동강 통합 물 관리 방안'으로 제시됐습니다.

구미에서는 반발이 계속 이어졌지만, 권영진 전 대구시장과 장세용 전 구미시장의 합의로 지난 4월 '맑은 물 상생 협정'이 맺어졌습니다.


■ 지자체장 바뀌면서 다시 원점으로

해결의 기미를 보이던 문제는 지난 6월 지방선거를 치른 뒤 또 다른 국면을 맞습니다. 6.1 지방선거로 대구와 구미 두 단체장 모두 바뀌었고 이들의 의견 차로 협정은 파기 수순을 밟게 된 겁니다.

사실 협정 파기는 선거 전부터 우려됐던 일입니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후보 시절부터 "구미 시민과 시의회의 동의를 얻지 않은 졸속 협약"이라며 "낙동강 구미보 위쪽으로 취수원을 이전하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 달라"고 했고, 홍준표 대구시장도 후보 때부터 구미가 아닌 "안동댐과 임하댐 등에 관로를 연결해 1급수를 공급하겠다"고 공약해 왔습니다.

결국, 두 단체장의 당선 두 달여 만에 '협정 파기'라는 우려가 현실이 됐습니다.


■ 갑을 관계 역전…홍준표의 승부수 통할까?

지금까지는 홍준표 대구시장의 승부수가 갑을 관계를 역전시킨 모양새입니다. 김장호 구미시장은 대구의 '맑은 물 하이웨이'와 구미의 '해평 취수원 상류 이전안'을 함께 검토해 달라고 환경부에 건의했는데 받아들여 질지는 미지수입니다.

대구시는 협정 폐기와 함께 오·폐수 무방류 시스템 도입 등 환경 규제 강화와 구미 5산단 업종 제한을 요구하면서 구미 경제계에서는 투자 저조와 기업활동 위축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반면, 대구시는 안동시와 안동댐 물의 대구 공급을 위한 협정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안동시는 안동시의회와 물 공급에 따른 요구 조건을 구체화하고 있고 대구시의회도 대구시의 '맑은 물 하이웨이' 정책을 지지하는 성명을 최근 발표했습니다.


■ 의견 수렴 전무…수질 개선·주민 동의 '관건'

하지만 이 역시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우선 대구와 안동 사이 물 공급에 대한 세부 조율이 필요합니다. 일부 환경단체에서는 안동댐의 부유물과 퇴적토의 중금속 오염 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안동·임하댐 물은 낙동강 물보다 비싸서 가정에서 한 달에 1,000원 정도 더 낼 수 있다는 점도 부담입니다.

이런 결정에 안동과 대구시민의 동의를 얻는 절차는 전혀 없었습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후보 시절부터 '맑은 물 하이웨이' 사업을 주창해 왔습니다. 일관성과 속도감 있는 정책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시민 의견 수렴과 다른 자치단체와의 상생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과거부터 취수원 이전의 가장 큰 걸림돌은 구미 시민들의 반발이었죠. 마찬가지로 안동 시민들이 반발할 경우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물 갈등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고르디우스 매듭을 '푸는 것'이 아니라 '잘라버린' 알렉산드로스 왕은 큰 영토를 정복했지만, 나라는 얼마 못 가 다시 분열됐습니다. 정치적인 사안은 극단적인 방법보다 민주적으로 풀어나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정책의 속도감이 지속성을 보장하지는 않는 만큼 장기적인 물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시민 그리고 다른 자치단체와의 소통과 협의가 더욱 중요해 보입니다.

그래픽: 인푸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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