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최악의 인권유린”…‘피해 회복’은 언제?

입력 2022.08.24 (21:13) 수정 2022.08.24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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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안녕하십니까.

1984년, 이 9살 소년은 길에서 아빠를 기다리다 갑자기 어디론가 끌려갔습니다.

거기서 보낸 3년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습니다.

불법감금된 채 구타와 강제노역이 반복됐고, 숨진 사람들이 땅에 묻히는 걸 봤습니다.

벗어난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잠 잘 때 불을 끄지 못합니다.

군사정권 시절 대표적 인권침해 사례인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입니다.

세상에 알려진 지 35년 만에 처음으로 국가 차원의 진실 규명이 이뤄졌습니다.

공권력이 부당하게 인권을 짓밟았다는 겁니다.

첫 소식, 이윤우 기자입니다.

[리포트]

1977년, 박형대 씨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 부산역에서 경찰을 만났습니다.

12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박형대/형제복지원 피해자 : "꼬마야 너 이리 와봐라. 예, 왜요? 그러니깐. 너 왜 부모는 어디 가고 혼자 오냐?"]

다니는 학교, 부모님 존재도 알렸는데 경찰은 그를 막무가내로 끌고 갔습니다.

도착한 곳이, 형제복지원이었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갇힌 그 곳에서, 폭행, 강제 노역, 심지어 성폭력까지 이어졌습니다.

[박형대/형제복지원 피해자 : "힘이 없고 어리고 그러니까 소대장이 최고인데 그러니까 무서워서 그냥 당할 수밖에 없었고..."]

아들을 찾아 나선 부모가 여러 기관에 도움을 청했지만 허사였고, 재회까지 7년 세월이 걸렸습니다.

1986년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다 1년 만에 탈출한 서상열 씨.

실상을 외부에 알리려 하자, 부산시 공무원들이 찾아와 진술서를 강요했습니다.

'사회에서 충실하게 생활한 사람은 형제복지원에 들어오지 않는다', 강제 입소를 부정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수십 년이 흘렀지만, 그때 기억은 여전히 악몽 같습니다.

[서상열/형제복지원 피해자 : "진짜 많이 맞았죠. 인간이, 사람의 도리가 아닙니다."]

형제복지원 실태가 어렴풋이 세상에 알려진 지 35년.

진실화해위원회가 마침내 이 사건을 '중대한 인권 침해'로 결론 내리고,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지원을 권고했습니다.

국가의 폭력이 불러온 비극임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한 겁니다.

[정근식/2기 진실화해위원장 : "강제노역, 폭행, 가혹 행위, 성폭력, 사망에 이르는 등의 인간 존엄성을 침해받았으며, 국가는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문제에 대한 진정을 묵살했고..."]

형제복지원에 갇힌 채로 숨진 사람이 총 6백 50여 명.

진화위의 1년 남짓한 조사 과정에서만 백 다섯 명이 추가됐습니다.

KBS 뉴스 이윤우입니다.

촬영기자:송혜성/영상편집:여동용/그래픽:최창준

[앵커]

2018년 11월.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은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게 고개를 숙여 깊이 사과했습니다.

검찰이 외압 때문에 부실수사를 했다는 과거사위원회 조사를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했고, 부끄러움과 미안함에 눈물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 뒤로 진실이 규명되기까지 또 4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남은 건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일 텐데 아직 갈길은 멉니다.

이어서 김성수 기자입니다.

[리포트]

피해가 인정됐다면, 다음 절차는 사과와 보상입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형제복지원 사건 조사 결과 뒤에 '권고'를 덧붙인 이유입니다.

[정근식/2기 진실화해위원장 : "강제수용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피해 회복과 트라우마 치유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진화위는 이 권고를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된, 행정안전부· 부산시 등에 통지하겠단 방침입니다.

그런데 행안부는, 앞서 다른 사건들과 관련해 진화위가 보내온 65건의 권고를 모두 반송한 상태입니다.

권고 사항의 이행 관리는 진화위 활동이 종료된 이후, 즉 2024년 종합보고서가 나온 뒤에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관련 근거로는 대통령령을 들었는데, 진화위 측에서는 반박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상희/변호사/진화위 비상임위원 : "(해당 대통령령은) '1기' 위원회 활동 종료될 즈음해서 만들어진 거고 이것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한다면 대통령령을 개정해야 될 상황인 거지 이걸 이유로 해서 접수조차 거부한다는 건 적절하지 않은..."]

분위기가 이렇게 흐르자, 앞서 진화위 권고를 접수했던 다른 부처에서도, 행안부 결정을 보고 나서 조치하겠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벌써부터 유명무실한 권고가 될까, 걱정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한종선/형제복지원 피해자 : "진상규명을 해주셔서 한편으로는 감사합니다만, 아직 저희는 국가에 대해서 정확한 확답도 받지 못해서 불안한 건 사실입니다."]

2010년 활동이 끝난 1기 진화위의 권고도, 아직까지 200건이 이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성숩니다.

촬영기자:김경민/영상편집:강정희/그래픽:김지훈

[앵커]

이 내용 취재한 김성수 기자와 자세한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앞선 보도에서도 김 기자가 얘기했듯이, '피해 인정' 다음엔 '사과와 보상' 인데 행정적으로 이렇게 지지부진 하다면, 피해자들은 결국 어디에 기대야 할까요?

[기자]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으면, 결국, 사법부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참 쉽지 않은 길이지요?

지난해 법원에서는 국가가 피해자에 보상하라는 '조정' 결정이 나온 바 있습니다.

그런데 법무부가 '이의'를 제기하면서 실제 보상으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결국 피해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지난한 소송전을 벌이게 됐는데요.

기본적으로 '국가'가 한 일의 증거와 자료를, '민간인' 피해자들이 찾아내서 대응한다는 거, 쉽지가 않습니다.

'입증' 책임이 과연 피해자들에게 있는 것이냐? 이런 물음도 제기되는데요.

모쪼록 진화위 결정이 법적으로도 '길라잡이' 역할을 해주기를, 피해자들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앵커]

보상도 보상이지만 피해자들이 절실히 바라는 건, '국가' 차원의 인정, 사과.

뭔가 '공식적인' 조치 아니겠습니까?

[기자]

네, 아무래도 '명예 회복'이 되려면, 어떤 '공인된' 조치를 피해자들은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바로 '권고 이행' 인데요.

그 '절차' 자체가 아직 미진한 점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진화위는 두 달 전까지만 해도, 각종 권고 사항들을 해당 부처에 즉각적으로 통보하질 않았습니다.

그 문제점을 지적한 KBS 보도 이후 통보에 나서기는 했는데, 이번엔 행안부가, 앞서 보신 것처럼 '규정'을 문제삼아 반송하고, 뭔가 아직도, '교통정리'가 제대로 안 된 느낌,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앵커]

가뜩이나 형제복지원 사건은 과거에도 국가의 '외면' 때문에 상처가 더 곪았던 사건 아닌가요?

[기자]

네, 1987년 사건이 알려지고 검찰 수사가 시작된 뒤에도 당시 정부는 "강제수용이 불가피했다" 이런 입장을 보였습니다.

또 당시 부산시는 형제복지원을 탈출해 언론에 제보한 피해자를 협박하기도 했는데요.

그 피해자분 KBS 취재진이 만나봤더니, 아직도 그 때 충격으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진화위의 이번 결정 이후에도 국가가 또 그를 실망시킨다면, 상처는 영영, 회복되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우리 정부의 이런 태도는, 방한했던 유엔 특별보고관도 지적한 바가 있는데요.

"국가의 인권 침해를 국가가 너무 오래 방치한다" 이런 뼈아픈 지적이었습니다.

[앵커]

김 기자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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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제복지원, 최악의 인권유린”…‘피해 회복’은 언제?
    • 입력 2022-08-24 21:13:34
    • 수정2022-08-24 23:40:19
    뉴스 9
[앵커]

안녕하십니까.

1984년, 이 9살 소년은 길에서 아빠를 기다리다 갑자기 어디론가 끌려갔습니다.

거기서 보낸 3년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습니다.

불법감금된 채 구타와 강제노역이 반복됐고, 숨진 사람들이 땅에 묻히는 걸 봤습니다.

벗어난지 3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잠 잘 때 불을 끄지 못합니다.

군사정권 시절 대표적 인권침해 사례인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입니다.

세상에 알려진 지 35년 만에 처음으로 국가 차원의 진실 규명이 이뤄졌습니다.

공권력이 부당하게 인권을 짓밟았다는 겁니다.

첫 소식, 이윤우 기자입니다.

[리포트]

1977년, 박형대 씨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 부산역에서 경찰을 만났습니다.

12살 때의 일이었습니다.

[박형대/형제복지원 피해자 : "꼬마야 너 이리 와봐라. 예, 왜요? 그러니깐. 너 왜 부모는 어디 가고 혼자 오냐?"]

다니는 학교, 부모님 존재도 알렸는데 경찰은 그를 막무가내로 끌고 갔습니다.

도착한 곳이, 형제복지원이었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갇힌 그 곳에서, 폭행, 강제 노역, 심지어 성폭력까지 이어졌습니다.

[박형대/형제복지원 피해자 : "힘이 없고 어리고 그러니까 소대장이 최고인데 그러니까 무서워서 그냥 당할 수밖에 없었고..."]

아들을 찾아 나선 부모가 여러 기관에 도움을 청했지만 허사였고, 재회까지 7년 세월이 걸렸습니다.

1986년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다 1년 만에 탈출한 서상열 씨.

실상을 외부에 알리려 하자, 부산시 공무원들이 찾아와 진술서를 강요했습니다.

'사회에서 충실하게 생활한 사람은 형제복지원에 들어오지 않는다', 강제 입소를 부정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수십 년이 흘렀지만, 그때 기억은 여전히 악몽 같습니다.

[서상열/형제복지원 피해자 : "진짜 많이 맞았죠. 인간이, 사람의 도리가 아닙니다."]

형제복지원 실태가 어렴풋이 세상에 알려진 지 35년.

진실화해위원회가 마침내 이 사건을 '중대한 인권 침해'로 결론 내리고,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지원을 권고했습니다.

국가의 폭력이 불러온 비극임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한 겁니다.

[정근식/2기 진실화해위원장 : "강제노역, 폭행, 가혹 행위, 성폭력, 사망에 이르는 등의 인간 존엄성을 침해받았으며, 국가는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문제에 대한 진정을 묵살했고..."]

형제복지원에 갇힌 채로 숨진 사람이 총 6백 50여 명.

진화위의 1년 남짓한 조사 과정에서만 백 다섯 명이 추가됐습니다.

KBS 뉴스 이윤우입니다.

촬영기자:송혜성/영상편집:여동용/그래픽:최창준

[앵커]

2018년 11월.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은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에게 고개를 숙여 깊이 사과했습니다.

검찰이 외압 때문에 부실수사를 했다는 과거사위원회 조사를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했고, 부끄러움과 미안함에 눈물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 뒤로 진실이 규명되기까지 또 4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남은 건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와 보상일 텐데 아직 갈길은 멉니다.

이어서 김성수 기자입니다.

[리포트]

피해가 인정됐다면, 다음 절차는 사과와 보상입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형제복지원 사건 조사 결과 뒤에 '권고'를 덧붙인 이유입니다.

[정근식/2기 진실화해위원장 : "강제수용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피해 회복과 트라우마 치유 방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진화위는 이 권고를 형제복지원 사건과 관련된, 행정안전부· 부산시 등에 통지하겠단 방침입니다.

그런데 행안부는, 앞서 다른 사건들과 관련해 진화위가 보내온 65건의 권고를 모두 반송한 상태입니다.

권고 사항의 이행 관리는 진화위 활동이 종료된 이후, 즉 2024년 종합보고서가 나온 뒤에 할 수 있다는 겁니다.

관련 근거로는 대통령령을 들었는데, 진화위 측에서는 반박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상희/변호사/진화위 비상임위원 : "(해당 대통령령은) '1기' 위원회 활동 종료될 즈음해서 만들어진 거고 이것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한다면 대통령령을 개정해야 될 상황인 거지 이걸 이유로 해서 접수조차 거부한다는 건 적절하지 않은..."]

분위기가 이렇게 흐르자, 앞서 진화위 권고를 접수했던 다른 부처에서도, 행안부 결정을 보고 나서 조치하겠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벌써부터 유명무실한 권고가 될까, 걱정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한종선/형제복지원 피해자 : "진상규명을 해주셔서 한편으로는 감사합니다만, 아직 저희는 국가에 대해서 정확한 확답도 받지 못해서 불안한 건 사실입니다."]

2010년 활동이 끝난 1기 진화위의 권고도, 아직까지 200건이 이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성숩니다.

촬영기자:김경민/영상편집:강정희/그래픽:김지훈

[앵커]

이 내용 취재한 김성수 기자와 자세한 이야기 나눠 보겠습니다.

앞선 보도에서도 김 기자가 얘기했듯이, '피해 인정' 다음엔 '사과와 보상' 인데 행정적으로 이렇게 지지부진 하다면, 피해자들은 결국 어디에 기대야 할까요?

[기자]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주지 않으면, 결국, 사법부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참 쉽지 않은 길이지요?

지난해 법원에서는 국가가 피해자에 보상하라는 '조정' 결정이 나온 바 있습니다.

그런데 법무부가 '이의'를 제기하면서 실제 보상으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결국 피해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지난한 소송전을 벌이게 됐는데요.

기본적으로 '국가'가 한 일의 증거와 자료를, '민간인' 피해자들이 찾아내서 대응한다는 거, 쉽지가 않습니다.

'입증' 책임이 과연 피해자들에게 있는 것이냐? 이런 물음도 제기되는데요.

모쪼록 진화위 결정이 법적으로도 '길라잡이' 역할을 해주기를, 피해자들은 기대하고 있습니다.

[앵커]

보상도 보상이지만 피해자들이 절실히 바라는 건, '국가' 차원의 인정, 사과.

뭔가 '공식적인' 조치 아니겠습니까?

[기자]

네, 아무래도 '명예 회복'이 되려면, 어떤 '공인된' 조치를 피해자들은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바로 '권고 이행' 인데요.

그 '절차' 자체가 아직 미진한 점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진화위는 두 달 전까지만 해도, 각종 권고 사항들을 해당 부처에 즉각적으로 통보하질 않았습니다.

그 문제점을 지적한 KBS 보도 이후 통보에 나서기는 했는데, 이번엔 행안부가, 앞서 보신 것처럼 '규정'을 문제삼아 반송하고, 뭔가 아직도, '교통정리'가 제대로 안 된 느낌,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앵커]

가뜩이나 형제복지원 사건은 과거에도 국가의 '외면' 때문에 상처가 더 곪았던 사건 아닌가요?

[기자]

네, 1987년 사건이 알려지고 검찰 수사가 시작된 뒤에도 당시 정부는 "강제수용이 불가피했다" 이런 입장을 보였습니다.

또 당시 부산시는 형제복지원을 탈출해 언론에 제보한 피해자를 협박하기도 했는데요.

그 피해자분 KBS 취재진이 만나봤더니, 아직도 그 때 충격으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진화위의 이번 결정 이후에도 국가가 또 그를 실망시킨다면, 상처는 영영, 회복되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우리 정부의 이런 태도는, 방한했던 유엔 특별보고관도 지적한 바가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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